원평동의 기억-원평동 동양소리사 오종환(1948년생), 김강옥(1948년생) 부부
2019.06.15.
인천출신으로 군대에서 전역 후 팽성읍 두정리, 안정리에 거주하며 미군기지와 안정리 기지촌 전파사에서 일했다. 평택출신의 김강옥과 미군기지에서 만나 결혼하고 1970년대 말 원평동의 동양소리사를 인수해서 지금껏 운영 중이다.
원평동에서는 얼마나 사셨어요?
(김강옥)여기서는 중학교까지 살았고, 초등학교는 성동학교 중학교는 한광여자중학교, 그리고 서울로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 서울 동명여고.
할아버지는 어디 사셨고요?
(김강옥)청북 옥길리 살았어요.
할아버지가 원평동에도 살았어요?
(김강옥)여기 살 때는 계셨지. 아버님도 여기 살았고.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미군부대 다녔고.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82세에 화장실에서 미끄러져가지고.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무슨 일을 했어요?
(김강옥)노무자 같은 일을 했죠.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겠네요?
(김강옥)그렇죠. 어렵지는 않았지. 대신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당시 본정통 분위기는?
(김강옥)동양소리사 건너편은 평화슈퍼였고 그 옆에는 추어탕. 거기는 본래 약국이었는데 지금 주인이 샀지. 유명약국이라고 했는데.
유명약국 옆에는 여관이 있었다는데?
(김강옥)아니..... 그 옆에는 가게(슈퍼)였고 그 옆에 미장원이었죠. 이 골목은 번화했어요. 안쪽으로는 주택이었죠. 대로변에는 다 낡은 집들이었고. 그거 헐어버리고 길(옛 국도1호선)을 낸 거지.
어릴 때 본정통도 미군기지 TMO 있어서 화물트럭이 많이 지나다녔다는데?
(오종환) TMO가 아니라 RTO. 그 때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다 비포장이었어요.
사장님은 성함이?
(오종환) 오종환.
언제 평택으로 오셨어요?
(오종환) 1972년에 군대 제대하고 처음에는 대농골(팽성읍 두정2리)로 왔지. 미군기지 다니지는 않았고.
대농골에서는 얼마나 거주했어요?
한 3년 살았나.
결혼 전이죠?
그렇지 젊은 때니까.
그리고 원평동으로 온 거예요?
대농골에서 몇 년 살다가 안정리로 이사했고 장사하러 이곳으로 온 거지.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결혼은 좀 늦었지. 애 낳고 1983년도에 했어요.
처음부터 동양소리사를 했어요?
다른 사람이 동양소리사라는 전파사를 운영했는데 이미지가 안 좋았어. 장사가 안 되니까 나한테 넘겼는데 이름을 안 바꾸고 그대로 쓴 거지.
전자기술은 어디서 배웠어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서 인천에서 학원을 다녔어.
무슨 학원이예요?
동인천에 있는 건데 기술학원이지. 그 때 배운 기술로 여기 와서 시작한 거지.
안정리에서는 어떤 일을 했어요?
거기서도 친구 전파사에서 일했지. 다 연관된 일이여.
원평동도 미군기지 영향이 있었나요. 고객들은 주로 어떤 사람이었어요?
미군기지 영향은 없었어. 아무래도 못사는 동네니까 이것 고쳐 달라 뭐해 달라 하는 사람이 많았지. 장사는 잘 됐어.
1980년대 전후에는 주로 어떤 것을 고쳤어요?
녹음기 같은 거, 텔레비전 같은 거, 냉장고도 많이 고쳤지.
가전제품을 많이 고쳤네요?
그렇지. 전축도 많이 하고. 지금은 부속이 없어서 못해. 서비스센터가 많아져가지고 우리 할 일도 적어지고. 전파사가 많이 없어졌는데도 아직 몇 집은 있어. 1970년대 안정리에서 일할 때만 해도 13군데나 있었는데. 조그만 동네에 13집이면 많지. 그 때가 1970년대인데. 지금은 한 군데도 없어. 요즘에 (전자제품) 고쳐 쓰는 사람이 어딨어.
안정리에서는 어디쯤에서 일했어요?
정문(구정문) 앞에. 구정문(본정2리 후문은 옛날에 구정문이라고 함)은 저기 계양 쪽이잖아. 정문은 일곱집매 쪽이고. 옛날에는 안정리도 출장수리 많이 다녔어. 양색시들이 좋은 미제 가전제품 많이 가지고 있었지.
사장님은 유선라디오는 안 했어요?
그건 시골에서나 했지 여기는 안 했어요.
사모님이 원평동에 사실 때 모습은?
(김강옥)나 어릴 때도 다들 못 살았죠.
6.25 때 폭격 맞아서 이 근처가 다 파괴됐잖아요. 그 때 상황은 들은 것 없어요?
여기가 폭격 많이 맞았지. 김동섭(원평동 토박이, 작고) 형님이 살아계실 때 가끔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여기 평화마트가 (평화)병원이었는데 인민군들이 있었고, 경찰서도 했고 그랬다는 말을 들었지.
평화병원이 일제시대 건물이라고 하던데요?
옛날 건물은 아니고 보강한 거지. 이거 일본애들이 지은 것 부수는데 장비로도 안 돼서 일주일이 걸렸데. 그만큼 단단하게 지은거야.
리모델링은 언제 했어요?
한 30, 40년 되었나. 그 전에는 타일도 없었고 그랬지.
여기 공주여관도 있었고 하던데요?
공주여관도 있었지. 그 형님네(김동섭씨) 앞에 지금 중국약국하는데 그 집에서 여관했었데. 그 자리가 옛날에는 작부 두고 술집 했던 집이여.
언제까지 했어요?
1970년대 이전일 꺼여. 나도 못 봤어.
금택여관은 못 들어봤어요?
그건 못 들어봤어.
1970년대만 해도 본정통 근처는 납작한 집들만 많았다고 해요?
본정통 입구 또또포장마차 있는데 있지. 거기가 여관이었어. 서울여관. 나중에 술집이 됐는데 니나노집이었지. 그 옆에가 방앗간. 지금 철물점 자리가 방앗간 자리여. 방앗간 집 노인네 돌아가셨지.
서해수산이 우체국이었다는데?
그건 난 모르고.
평택읍사무소는 어디에?
그 거 저기 있었다는데... 행길(옛 1번국도) 건너 고물상자리에는 옛날 금고였다는데.
왜정 때 금융조합있었죠. 건너편에 상업은행이 있었고. 어릴 때 본정통 일대 골목에 어떤 가게가 많았어요?
(김강옥)슈퍼가 많았지.
식당은요?
식당은 미장원 자리에 있었지. 몇 개 없었어. 철물점, 미장원.... 1970년대는 병원은 없었고. 낙후됐었지. 옛날에는 오죽하면 둑너머라고 했겠어. 하루에 쌈 한 번 안 벌어지면 잠을 못잤어. 그 정도로 안 좋았어. 역전 옆에 노숙자들 많았고. 아까 만났던 애가 자율방법 회장인데 그거(자율방범) 해가지고 많이 개선했지. 봉사 많이 했어. 발이 넓고 사람들 많이 알지. 한영우는 기아 하청업체 사장을 했어.
동양소리사 옆은 시장이었다는데요?
우리는 못 봤죠. 골목 전체가 다 낡은 집들뿐이었지.
이쪽은 6.25때 폭격 받아서 집들도 다들 낡고 보잘 것 없었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주민들 직업은 어땠어요?
다 노가다지 뭐. 여기 사람들 다 노가다였어.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들. 그래서 그 때는 뭘 고쳐달라는 게 많아서 전파사가 괜찮았는데 지금은 살기 나아지니까 그런 일들이 없어. IMF 때도 남들은 어렵다고 했지만 우리는 괜찮았어. 오히려 지금이 더 어려워. 경기가 죽어서 더 안 돼. 땅값도 좀 비싸.
이(본정통) 아래에 오래된 세탁소도 있었잖아요?
지금 미장원 하는데. 세탁소 하던 분은 돌아가셨지.
지금도 일제 때 있었던 집들 남아 있어요?
여러 집 있었는데 원룸 짓는다고 다 없어졌지. 지금 우리 가게 자리가 문화재로 보존할 만큼 오래된 집이었는데, 일본식으로 지은 멋진 집이었는데 없어졌지. 어지간한 집들은 다 원룸을 지어서.
버스사정은 어땠어요?
옛날 1등도로(1번국도)는 (버스)안 다녔지. (김강옥)우리 어릴 때는 많이 다녔고. 어릴 때는 명동골목에 살아서 원평동은 잘 몰라요.
아버님이 미군기지 다녀서 괜찮게 살았네요?
(김강옥)그렇죠. 어려운 것은 몰랐죠.
평택극장도 많이 다녔어요?
(김강옥)1950년대 말에도 극장 있었죠.
경보극장은 생각 안 나요?
(김강옥) 경보극장 기억나죠. 사람들이 놀려면 다 명동골목 와서 놀았지.
사모님은 사장님과 어떻게 만났어요?
(김강옥)사무실에서 만났죠. 전파사 전에 우리 남편이 미군부대 안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했거든. 나도 미군부대 다녔고. 거기서 만난거지.
당시 미군기지 다니면 직장이 좋다고 했잖아요?
(김강옥)다들 좋다고는 했죠. 영어는 못해요. 간단한 의사소통만 하고.
만날 당시 사장님이 원평동에 산다는 것 알았어요?
(김강옥)그 당시 우리 남편은 안정리에 살았죠. 순전히 연애결혼이예요.
결혼 후 본정통에 가계를 얻었나요?
(김강옥)살림은 1979년에 먼저 냈고 가게를 연 뒤에 1983년 늦게 결혼식 올렸어요.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았어요?
반대는 안 했어요.
요즘에는 주로 뭘 해요?
전기수리, 전자제품 수리지 뭐. 많이 오지는 않고 출장 다니며 근근이 살지.
그동안 돈 좀 벌었어요?
그냥 먹고 사는 거지 뭐.
자녀는?
남매요. 여기 와서 일해서 애들 키우고 학교 보내고 그렇게 살은 게 전부지.
요즘 원평동 집값이 무척 올랐잖아요. 주민들 움직임은 어때요?
나는 신경 안 써서.... 땅값은 많이 올랐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가난한 사람은 더 어려워지잖아요?
어렵지. 우리는 주인아주머니 잘 만나서. 40년이나 사니까 형제같고 친척같고 그래서 잘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