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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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가 꾸미는 술 모노가다리
제 27편 소주의 유래, 역사
소주!!! 전 국민이 애용하는...... 소주!!!! 소주편을 시작합니다.
할 이야기가 많은 술이지요
천천히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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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소주는 기원전 3천년 경에 메소포타미아 남부지방에 살던 수메르인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즉 아랍의 연금술사들은 인간에게 증류주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재료를 발효시켜 만든 탁한 술을 다시 끓여서 맑고 독한 고급술을 만든 것이다.
5000년 역사의 증류주가 소주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들여온 사람들은 몽골인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 칭기즈칸과 몽골의 기마군단은 세계를 향해 정복전쟁에 나선다. 그들은 국가와 국가의 교역을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문명과 문명의 칸막이를 부수면서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아랍도 정복당했다. 그때 아랍의 증류주 기술이 몽골인들에게 소개된다.
소주의 역사는 우여곡절의 자취이다. 소주는 한국 고유의 술이 아니며 전쟁 통에 침략자들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고려시대였던 13세기 초 몽골군이 한반도에 침공해 왔을 때 묻어 들어온 것이 소주였다. 몽골군은 한국 사람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독한 증류주를 마셨는데 그것이 한반도에 소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청주(淸酒)나 법주(法酒), 막걸리(濁酒) 같은 발효주만을 마셨다.
소주를 몽골어로는 ‘아라키(亞刺吉)’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랍어로 증류주를 뜻하는 ‘아라크(araq)에서 비롯된 말이다. 소주는 아라비아에서 발달한 증류주가 몽골과 만주를 거쳐 한국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일설에는 칭기즈칸(Chingiz Khan)이 서역원정 때 아라비아의 아라크를 몽골로 들여갔다고 하는데 그것을 그의 손자인 원나라의 초대 황제 쿠빌라이칸(Kublai Khan)이 일본원정 길에 한국에 전한 것이니 소주의 전파는 전쟁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그 당시 몽골군의 주둔지였던 개성, 안동, 제주도 등이 한국 소주의 명산지라는 사실도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해 준다.
몽골군이 물러난 뒤 소주는 고려의 상류층에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소주는 귀한 곡식을 원료로 만들었으므로 일반백성들은 접근하기가 어렵고 특권계층만 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제32대 우왕(禑王)이 1375년에 “사람들이 검소할 줄 모르고 소주나 비단 또는 금이나 옥그릇에 재산을 탕진하니 앞으로 일절 금한다”고 지시한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임금의 그러한 명령도 별 효력이 없었던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원수(元帥) 김진(金縝)이 소주에 탐닉해서 본분을 지키지 않고 창기(倡妓)와 부하 장수들을 모아 밤낮으로 소주를 즐겨 마시므로 병사들이 그 무리를 소주도(燒酒徒)라고 하였다.”는 대목도 보인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소주를 과용하는 풍습은 여전했던 듯 조선의 9대 왕 성종 재위 기간(1469년~1494년)의 역사를 기록한 책<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사간(司諫) 조효동(趙孝仝)이 임금에게 “세종조에는 사대부 집에서 소주를 드물게 썼는데 지금은 보통 연회에서도 모두 쓰므로 낭비가 막심하니, 청컨대 모두 금지하도록 하소서.”라고 진언하는 대목이 올라있다. 소주는 약용으로도 쓰였던 모양인데 조선 6대 왕 단종의 행적(1452년~1455년)을 기록한 <단종실록(端宗實錄)>에는 허약하고 어린 단종에게 신하들이 소주를 약으로 마실 것을 권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17세기 초에 출간된 <지봉유설(芝峰類說)>에도 “소주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많이 마시지 않아 작은 잔으로 마셨고, 따라서 풍속에 작은 잔을 소주잔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재래식 증류소주가 겪은 수난
소주는 그렇게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가정에서 가양주(家釀酒)를 만들어 먹었는데 당시의 여러 문헌에 증류식 소주 내리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각 지방에는 감홍로, 죽력고, 이강고, 삼해소주 등 각기 독특한 주조법과 특색 있는 이름을 가진 유명소주가 자리 잡고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런데 실질적인 일제강점기였던 1909년에 처음으로 주세법이 제정되고 1916년에는 조선총독부가 강화된 주세령(酒稅令)을 반포하면서 가양주와 조선인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주류제조업시장은 크게 위축된다. 식민지의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지방의 전통주는 명맥을 잃게 되고 조선의 주류산업은 대규모 일본자본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1916년에는 소주제조업체가 28,000개를 상회했었으나 1933년경에는 430개로 대폭 줄어든다. 1934년에는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를 아예 폐지해 집에서 담그는 가양주는 그 자취조차 감추게 된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의 주세 수입은 크게 늘어나 1918년의 주세징수액은 1909년에 비해 12배나 증가하였고 1933년에 이르러서는 조선 전체세액의 33%가 주세로 채워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과정에 조선식 소줏고리와 전통 누룩으로 빚은 소주는 점점 사라지고 일본식 양조용 시루와 검은 누룩(黑麴)으로 만든 소주가 대세로 자리 잡게 된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재래식 증류 소주는 1965년에 역사상 최대의 수난을 겪게 된다. 한국정부가 식량 확보를 위한 ‘양곡관리법’을 만들어서 주류제조에 곡물의 사용을 금지함에 따라 쌀로 만든 전통의 증류식소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증류식소주가 사라진 자리에는 고구마, 당밀, 타피오카 등으로 연속 증류하여 만든 주정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가 대신하여 한국 술꾼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된다.
희석식소주를 만드는 회사들도 1960년대에는 난립해 있었으나 1973년에 한국정부가 1도(道) 1사(社) 정책을 도입하여 각 도에 소주회사를 한 개로 제한하자 총 열 개의 소주업체가 남아 오늘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조치는 각 지방에 대표 소주브랜드가 탄생하는 결정적 배경이 된다. 희석식소주는 과거 증류식소주의 고급한 이미지는 없으나 가격이 저렴한 데다 나름의 독특한 맛으로 짧은 시간에 서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술로 각광받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
한국에서 희석식소주의 역사는 알코올 도수 변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희석식소주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에 소주의 도수는 30도였다. 그러다 1973년에 25도로 낮추어졌고 그 도수는 사반세기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에 세계적인 저도주 열풍과 건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세태를 반영하여 23도짜리 소주가 선을 보이게 되고 그 이후 소주업계는 도수 낮추기 경쟁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22도짜리가 나오고 21도로 내려가더니 2006년에는 드디어 희석식 소주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20도선도 깨져버렸고 이제는 15.5도짜리까지 등장했다. 예전의 개념으로는 소주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약한 술’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즈음 들어 낮은 도수의 소주에 불만을 터뜨리는 일부 주당들을 겨냥하여 도수를 조금 올린 소주도 출시되었지만 약한 소주 열풍은 지속될 전망이다. 소주의 도수가 낮아지면서 여성시장으로도 영역을 넓혔고 브랜드네임도 바뀌었다. 원래 한국의 소주브랜드들은 진로(眞露)나 경월(鏡月), 무학(舞鶴)같이 어렵고 고루해 보이는 한자이름을 썼다. 그러다 1998년에 진로가 쉬운 한글이름의 ‘참이슬’을 출시하여 큰 성공을 이루자 다른 경쟁사들도 ‘처음처럼’, ‘좋은데이’ 등을 내놓으면서 그 대열에 동참하였고 그런 경향은 소주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소주가 한국의 국민술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첨가물에 대한 유해성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소주를 사랑하는 이들은 소주의 맛을 흔히 ‘달다’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한국의 희석식소주에는 감미료가 들어간다. 그동안 소주에 첨가되는 감미료로인 사카린((saccharine), 아스파탐(aspartame), 스테비오사이드(stevioside) 등의 유해성시비는 끊임없이 제기 되어왔고 소주제조업체들은 유해하지 않다는 해명으로 응대해왔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들은 그런 설명을 믿지 않고 있으며 이 문제는 앞으로 제조업체들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으면서 희석식소주는 한국사회에 둥지를 틀었다. 이제는 다시 쌀로 소주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실제로 과거 명성을 떨치던 전통명주들이 복원되기도 했지만, 값싸고 입에 착 감기는 희석식소주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취향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희석식소주는 이제 한국의 문화가 되었고 세계적인 술의 반열에 올랐다. 주류전문지 ‘드링크스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의 2011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소주의 대표브랜드 ‘참이슬’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spirits) 부문에 1위로 등극했고 ‘처음처럼’은 3위에 랭크되었다.
배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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