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경계
모든 사람은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장하면서 어떠한 교육과 훈련을
받느냐?! 에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는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있고,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더라도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생길 때에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선한 양심을 따라서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과 악을 아는 일과 관련한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면서 사느냐?! 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과 실패의 길로 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살면서 두 귀를 통하여 자신과 관련한 어떠한 이야기를 들을 때에
그 들은 이야기를 통하여 기분이 좋아지든지, 아니면 나빠지든지, 감정은
서서히 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에 자신이 갖게 된 감정이 과연 옳은
관점에서 가지게 된 것인지, 아니면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단지 기분이
나쁜 것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있는 감정인지?!를 분별하지 않고, 그 감정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성을 통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게 되면
십 중의 팔구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일로서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한 상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에 대하여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가인의 이름의 뜻은 “얻음”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벨의 이름에
뜻은 “숨(호흡), 공기”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서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목축을
하면서 살다가 자신들의 부모, 아담과 하와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들었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준비하였고, 드렸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선악과나무에 열매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가
살아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죽는다. 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죽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두 아들을
낳게 하셨을까요?!
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5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6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8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9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11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13 가인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14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16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나서,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았다.
17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그 때에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
18 에녹은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19 라멕은 두 아내와 함께 살았다. 한 아내의 이름은 아다이고,
또 한 아내의 이름은 씰라이다.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장막을 치고 살면서,
집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유발은 수금을 타고 퉁소를 부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2 또한 씰라는 두발가인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는 구리나 쇠를 가지고, 온갖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두발가인에게는 나아마라고 하는 누이가 있었다.
23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와 씰라는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24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였다.
마침내,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말하였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죽은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그의 아내는 아이의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26 셋도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4 : 1 ~ 26절 - 새번역성경
라멕의 뜻은 “능력 있는 자” 라는 의미이며, 아다의 뜻은 “장식, 광명”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씰라의 이름에 뜻은 “그늘, 보호”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라멕의 이름에 뜻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친 동생 아벨을
죽이고 쫓겨나서 세상을 방황하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산, 가인의 후손
중에서 라멕은 더욱더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세상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
하였으며, 두 아내의 이름에 뜻과 같이 라멕을 힘입어서 그의 그늘 아래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좋은 장식으로 자신들을 꾸미며 사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두 여인에게 그들의 남편 라멕이 어느 날 자신의 감정을 건드린 젊은 남자를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려운 나머지 두 아내를 불러놓고, 자신의 조상
가인에게 하나님이 표를 해주셔서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살해당하지 않게
하셨음을 상기 시키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큰 아들 가인을 인하여 두 아들을 모두 잃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시금
셋(대신 주셨다)을 주셨고, 다시금 셋으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셨는데,
그의 이름은 에노스로 이름의 뜻은 “사람, 인류”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때부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라고
위의 창세기 4장 26절에 기록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담을 최초로 창조 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흙으로 지으셨고,
그의 코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을 불어 넣어 주셔서, 살아있는 생명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에노스, 셋, 아담에게 이르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누가복음 3장 38절 - 새번역성경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서 죽은 것은 육체가 아닌 영혼으로 영혼이
죽었다. 라는 것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영혼이 죽은 육체는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먹었던 생명나무의 열매를
더 이상 따 먹지 못하게 되면서, 점차 썩어지게 되었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게 되면서 결국에는 최초의 배반자가 잡고 있는 죽음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권세 하에 잡히게, 된 것입니다.
아벨 대신에 셋을 주신 것은 아벨의 이름에 뜻이 “숨(호흡), 공기”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서 회복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셋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셨다.
라고 믿어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에 죽었던 영을 살리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양심으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분별
하면서 자유의지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선은 감정이 생겨날 때에 그 감정의 근원을 잘 파악하면서
감정을 끝까지 품고 있을 때에 어떠한 결과를 갖게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차이를 두면서 양심, 곧 이성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면서 점차
감정을 다스릴 때에 경계를 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 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교만함을 인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자신의 감정은
점차 사라질 것이며, 죄를 짓는데 까지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지혜롭게 판단하여 자신에게 영원히
있게 될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인하든지, 부인하든지,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 앞에 서야 하며,
이 세상을 살았던 열매로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양심의 기록을 따라서 어떠한 사람은 영생,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것이며, 어떠한 사람은 사탄에게 속하여 불 바다에서 살 것입니다.
삶을 살면서 아주 작은 일로서 관계를 망가뜨리는 일을 만드는데, 이는 교만,
자신이 옳다. 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지배하면서부터 자신의 감정을 건드린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함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 즉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만 된다는 말씀에 불순종하게 될
것이며, 곧 죄의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사탄의 하수인이
되는 일임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이나 된 것 같이 생각하기 시작할 때에 선과 악의 경계선을 넘어
악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하라고 하시며, 구원의 은혜를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그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면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시기
위한 일이며, 완전한 사랑의 공동체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