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솔은,
원래 산 소일로 수도원(Monasterio de San Zoilo)의 영지였습니다.
마을과 수도원, 성당의 이름은 순교한 코르도바 출신의 성인 산 소일로(San Zoilo)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의 유해는 현재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재앙을 물리친 성인의 전설
로스 아르꼬스와 산솔 사이의 까미노 오른쪽에는 성 그레고리오 오스띠엔세 성당이 있습니다.
교황 요한 17세는 로마사람인 그레고리오를 메뚜기 떼의 재앙을 겪고 있던 이 마을로 보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기도하며 참회하라고 전하고,
성물을 들고 행진을 한 후 메뚜기들을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그러자 기둥 모양으로 모인 메뚜기들은 하늘로 날아가 사라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레고리오는 병에 걸려 로그로뇨 근처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시신을 싣고 가던 노새가 한 곳에서 멈췄으며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이 성당에 은으로 만든 함에 보관한 성인의 두 개골이 있으며 매년 5월에 성인의 두 개골 위에 물을 흐르게 합니다.
이 물을 들에 뿌리면 메뚜기 떼의 재앙을 겪지 않는다고 합니다.
산 소일로 성당 (Iglesia de San Zoilo)
산 소일로 성당은 17세기 후기 바로크 시대의 석조 건물로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십자가상과 합창단 석에 위치한 거대한 성 베드로 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지금은 사라진, 성 베드로에게 봉헌된 수도원에 있던 것입니다.
성당의 외부에는 사각형의 높은 기둥과 종이 있는 날씬한 탑이 돋보입니다.
언덕 기슭에 위치한 또레스 델 리오에는,
그림 같은 풍경과 아름다운 전망이 숨어있습니다.
또레스 델 리오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함락되었다가
10세기 초반 산초 가르세스 1세가 몬하르딘에 이어 탈환했다고 합니다.
까미노 길을 따라 있는 성당에는 여러 가지의 문화가 조화롭게 섞여 있습니다.
이 곳은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며 머물면서 이곳에서 나오는 포도주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좁은 길에는 파사드에 문장이 장식된 바로크 양식의 집이 가득합니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순례자
어느 날 지치고 굶주린 상태에서 또레스 델 리오의 언덕을 넘던 순례자에게 화려하게 꾸민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악의에 찬 눈빛으로 순례자를 바라보며
죽을 때 영혼과 몸을 자신에게 넘기면 자기처럼 부유하게 해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순례자는 그 남자가 악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몸은 영혼에, 영혼은 하느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것을 넘겨줄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악마가 순례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순례자가 펄쩍 뛰어 공격하는 악마에게 그림자를 드리우자
악마는 그림자와 싸우다가 순례자의 그림자를 훔쳐 사라져버렸습니다.
순례자는 그림자를 잃었으나 영혼은 구한 것입니다.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에 있는 성묘성당(Iglesia del Santo Sepulcro)
12세기에 템플 기사단이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과 유사하게 만든 팔각형 평면의 성당입니다.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으로
나바라의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 잘 나타나며
팔각형 평면에 건물 동쪽에는 단순한 반원형 소성당, 서쪽에는 원통형 탑이 있습니다.
8각형 평면은 템플 기사단의 특징이며,
성묘 성당의 쿠폴라 정탑은 ‘죽은 이들의 정탑’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이유는 이 탑이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고
순례자가 죽으면 불을 켜서 알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토레스 델 리오를 벗어나면 순례길 옆에 각종 메모들을 적어놓은 종이들을
돌멩이로 눌러놓거나 나무에 걸어놓은 것이 많이 보인다.
한국인들의 메모도 많다.
까미노에는 기도문, 나무 십자가 등 이 있는 곳이 많다.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고
순례자 누군가가 하면 다음 순례자들이 따라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아나에는,
오래된 성벽이 보존되어 있으며 도시의 평면도는 사각형 모양입니다.
까스띠야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산초 7세가 기존의 성벽을 합쳐서 비아나의 성벽을 만들었습니다.
로그로뇨 법령에도 등장한 비아나는 까미노 순례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발전했습니다.
군주론의 주인공, 보르지아의 무덤
비아나의 산따 마리아 성당의 반석 아래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인물이 묻혀 있습니다.
바로 교황 알레한드로 6세의 아들인 께사르 보르지아(Cesar Borgia) 입니다.
그는 16세에 빰쁠로나의 주교, 19세에는 추기경, 22세에 가톨릭 군대의 장군이었고
24세엔 나바라 왕의 처남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 영감을 준 사람으로 군주론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르지아의 강렬한 인상은 레오나르도 같은 그 시대의 예술가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 모델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바라의 총수 라고 불렸던 보르지아는 1507년 레린백작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여 비아나에 묻혔습니다.
그의 무덤에는 비아나와 빨렌시아 (보르지아는 스페인 빨렌시아의 보르하 가문 출신)의 흙이 함께 뿌려졌고,
아직까지도 그의 무덤 위에는 남녀 어린이가 두 지역의 꽃을 걸어놓는 전통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산따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보르지아의 무덤
산 뻬드로 수도원
로그로뇨는,
산업화된 시설이 많은 박력 넘치는 도시의 모습과 오래된 구 시가지에서는 중세의 느낌을 가진 도시입니다.
로그로뇨 입구의 석조 다리에서 도시를 보면 수평선에 윤곽을 드러낸 도시의 실루엣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의 탑들, 그 중에서도 대성당의 쌍둥이 탑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산타마리아 라 레돈다 성당
로그로뇨 대성당(La Catedral de Logroño)으로도 불리는 이 15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은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되었으나 종종 고딕 양식의 요소도 보입니다.
세 개의 신랑, 세 개의 후진이 있고, 측면에 소성당이 위치하며 지붕은 궁륭으로 덮여 있습니다.
문은 철책으로 가려져 있으며 늘씬한 쌍둥이 탑은 바로크 양식입니다.
성당 안에 있는 ‘십자가의 길’은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가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19세기 스페인의 총리직까지 올랐던 스페인 역사의 두드러진 인물인 에스빠르떼로 장군의 무덤이 있습니다.
산띠아고 엘 레알 성당 (Iglesia de Santiago el Real)
859년에 끌라비호 전투가 끝나자 라미로 1세부터 1513년,
가톨릭 왕(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부벽이 세워진 신랑 하나에 소성당이 있으며, 성가대석과 소성당은 16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성당의 현관은 바로크 양식이며 벽감 안엔 거대한 산띠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전사 산띠아고) 상이 있습니다. 인접한 산띠아고 광장에서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그림으로 그린 판 위에서 주사위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산 바르똘로메 성당 (Iglesia de San Bartolome)
오래된 성벽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은 로그로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입니다.
석조 기단에 세 개의 신랑과 후진이 있습니다.
제단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신랑은 고딕 양식입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첨두 아치의 정문은 13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고딕 양식 건축물에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물 부분을 재사용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삐에드라 다리 (Puente de Piedra)
에브로 강 위에 서있는 이 다리는 로그로뇨로 들어오는 길에 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의 제자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가
12개의 아치와 세 개의 방어용 탑이 있는 석조 다리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 다리는 이후 일곱 개의 아치와 원통형 기둥이 있는 다리로 개축되었습니다.
1917년 늘어나는 교통량 때문에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다리를 현대화했습니다.
다리 건너편에는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습니다.
자랑스런 스테파노
첫날 나폴레옹 루트 넘는 날
전날 비가 와서 통제할까 걱정.
그러나 날이 맑아 도전
6시30분 출발.
앞에 아무도 없었지만 4킬로쯤 오르자 많은 사람 보임
앞 동네(오리손)에서 출발한 사람들.
보통 2일에 나폴레옹 루트를 넘음
손이 곱을 정도로 춥고 바람이 부는 중간에 간식을 먹고 1450고지를 넘어 숙소 도착. 10등 이내
매일 순례도 마을 성당마다 방문(다른 순례자들 대부분 지나침),
하지만 항상 숙소에 10위권 이내 도착
올레길에서 연습한 결과인 듯(출발 1개월 전 26코스를 왕복으로 850킬로 완주)
벌써 절뚝거리는 순례자 다수 발견.
자랑스럽다 스테파노
오늘 저녁은 숙소에서 하기로 예약.
7시 10유로
한국의 위상
숙소마다 한국인 발견. 평균 4~5명.
지금까지 중국인 2, 일본인 2 발견
생장출발 국가별 순위 한국 7위(2013년), 현재 3위라는 말도 있슴.
유럽국가들과 미국 다음
수퍼마켓에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는 흔히 듣고
숙소입구에 환영이라는 조그만 현수막 건데도 있음
어느 알베르게 세탁기 앞에는 한글로 3유로 넣으면 돈만 먹어요.
안내실에 가서 코인으로 바꾸어 넣으세요 라는
주의문을 어느 한국인 순례자가 적어 놓기도.
외국인과 인사할 때 의례 korea에서 왔어요? 할 정도
한국은 아직 카톨릭이 성장해서 그런 듯.
어쨌든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흐뭇함
순례길에 만나는 성당을 순례자 대부분이 지나침.
순례의 목적이 종교나 영성이 아닌 듯
또레스 델 리오 - 나바레떼 | 산티아고의 바람
♬ 배경음악: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 The Danish National Symphony Orchestra ♬
첫댓글 네 잎 클로버 님
황금 같은 인생기 역사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딸과 사위가 생일선물로 산티아고 순례를 가라고 했을 때는
60대 중반 나이에 왜 고생을 시키냐고 화도 냈었지만
받아들이고 갔다 오니, 너무도 잘했다고 생각듭니다.
내가 원하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이 나의 십자가라고 하는데
이를 순응하고 받아들이면 부활이 있듯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사실도 새삼 느낍니다.
다녀온지 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자주그 때를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하루동안 걷은 일만을 생각하며,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만을 지닌 채
정직하게 목표를 향해 걷던 일들...
그것이 천국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