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29)
〇 78항. “동시에, 유다-그리스도교 사유는 자연을 탈신비화했습니다. 자연의 장엄함과 거대함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으면서, 더 이상 자연에 신적 요소를 부여하지 않은 것입니다.”
☞ 우리말 번역본이 심각하게 오역했기에 지적합니다. “또한 유대-그리스도교 사유는 자연의 탈신화화를 이끌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언제나 찬미하면서도 자연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지는 않다고 여긴 것입니다.”로 번역했는데요, 탈신화화(脫神話化; demythologization)는 성경 본문에서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본래 본문이 말하려는 바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의미입니다. 회칙은 ‘유대-그리스도교 사유’가 자연을 ‘탈신화화’했다고 한 것이 아니라, 탈신비화했다(脫神祕化; demystified)고 말합니다. 「찬미받으소서」 해설(27)에서 말씀드린 ‘범신론’을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회칙은 ‘범신론’이 아니라, ‘범재신론’의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봅니다. 우리말 번역본은 “자연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지는 않다”고 번역했지만, 자연 안에 하느님의 신성이 깃들여 있다고 보는 것이 「찬미받으소서」의 시각입니다. 회칙 마지막에 등장하는 기도문을 보면 명확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온 우주 안에 현존하시며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작은 피조물 안에도 현존하시나이다.”(「찬미받으소서」, 246항).
※ 우리말 번역본이 ‘탈신화화’로 번역한 것은 영역본(demythologized)과 독일어역본(entmythologisierte)을 따라간 탓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스페인역본(desmitificó), 불역본(démystifié)은 이탈리아어본(demitizzato)을 따라 ‘탈신비화’로 번역했습니다.
〇 79항. “서로 소통하는 열린 체계로 구성된 이 우주에서, 우리는 수많은 형태의 관계와 참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전체가 하느님의 초월성에 열려 있고 그 안에서 발전한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
그러므로, 교회의 활동은 우리에게 자연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일깨워 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무엇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〇 80항. “발전해야 하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께서는 어느 정도 자제하고자 하셨습니다.” ⇒ “어떤 면에서, 하느님은 진보가 필요한 세상을 창조하심으로써 자신을 제한하려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악, 위험 또는 고통의 원천으로 여기는 많은 것들이, 실은 창조주께 협력하도록 우리를 자극하는, 산고(産苦)의 일부가 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하느님께서 궁극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세상을 창조하기를 원하셨다고, 그리고 이는 불완전과 물리적 악의 존재를 포함한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310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