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박갑순
“지금 뭐해? 당신이 싸준 사과 참 맛있네.”
원고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세수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서 시름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과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의 얼굴이 파래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과는 건강에 좋다고 한다. 건강에 좋다니 천만다행인 게 나는 과일 중에서 사과를 제일 좋아한다. 일 년 내내 사과가 냉장고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과가 떨어지면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허전하고 슬프다. 냉장고에 사과가 있음에도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만나면 또 사서 쟁이는 습성이 있다.
며칠 전 중학교 때 친구에게서 톡이 왔다. 시누이네가 사과농장을 하는데 구할 거냐고. 경상북도에서 사과 농장을 하는 시누이 남편이 아파서 농장 일을 제때 못해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내가 직접 맛보지는 않았지만 한 박스를 주문했다. 맛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내 반응이 석연치 않았던지 친구는 다시 톡을 했다. 자기는 먹어봤는데 맛있다고. 그 말에 힘을 얻어 전주에 있는 딸과 김제에 사시는 선생님과 제주에 사는 언니 것까지 주문했다. 만날 도움만 받았던 두 분께 작은 마음이라도 전할 수 있음에 기쁜 마음으로. 그러나 받으면 바로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는 말과 여름 사과라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어야 했는데….
다음 날 기다리던 사과가 도착했다. 박스를 열어보니 알이 실하고 하나하나 하얀 망으로 정성스럽게 포장되었고 때깔도 고왔다. 크기는 고르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굵었다. 외형상으로는 특상품이었다. 저녁 시간이라서 하나 깎아서 맛을 보지는 못하고, 창고에 식량을 저장하듯 김치냉장고에 잘 정리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하고 사과를 깎았다. 친구에게 잘 받았다고, 맛이 어떻다고 말을 해주어야지 싶었다. 칼이 들어가는 순간 느낌이 왔다. 퍼석했다. 사과를 무척 좋아하지만, 나는 퍼석한 사과는 먹지 못한다. 억지로 조금이라도 먹으려면 목구멍에서 자꾸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참고 몇 조각 먹다 보면 구역질까지 난다. 사과는 아삭거리고 식감이 좋은 것을 좋아한다. 시고 단맛이 좀 덜하더라도 씹히는 맛을 좋아하는 나의 사과 식성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 이걸 어쩐담!
사과를 깎으면서 난감해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이 사과는 내가 다 먹을게. 당신은 저번에 산 아삭거리는 사과 먹어.” 남편이라도 잘 먹겠다니 걱정이 다소 눅어졌지만 제주와 김제로 간 사과를, 이 미안함을 거둘 방법은 없을까?
글이 자꾸 길을 잃는다. 가려던 길로 곧게 나가지지 않고 자꾸 곁길로 새거나 쓸데없는 것들과 해찰을 한다.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세수를 하고 외출할 일도 없는데 화장을 한다. 하루 절반이 지난 시간에 화장은 여간 급한 용무가 있지 않는 한 없는 일인데 사과와 풀리지 않는 글 때문에 안 하던 짓을 해본다. 화장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으려는 순간 전화가 온다. 제주에 사는 아동문학가 김란 언니다.
“동생, 무슨 사과를 보낸?”
이실직고를 했다. 내가 먼저 맛을 보고 난 후 결정했어야 했는데…. 맛없는 사과를 보내서 죄송하다고. 언니의 반응은 예상을 벗어났다. 제주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육지 과일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다 맛있단다. 다행이다. 그렇게 말해줘서.
냉장고에 잘 보관하고 먹다가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사과잼을 만드시라고 했다. 요리도 잘하지 못하면서 언젠가 요리강좌에서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레몬과 계피가루를 넣어 만들면 참 맛있노라고. 맛없는 사과 처치 곤란해 할까 봐 꼭 잼을 만들어 드시라 신신당부를 했다.
딸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아직 깎아 먹어보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저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만 하는 걸 보니. 딸은 나보다 더 사과 맛에 대한 편력이 심하다. 퍼석거리는 사과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 큰일이다. 사과잼을 만들러 전주에 내려가야 할 모양이다.
친구가 맛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맛이 있다 없다는 개인의 차이가 있을 터이다. 특히 사과는 다양한 맛이 있어 선호도가 심하다. 신맛이 강한 것이 싫다는 사람, 너무 아삭거리는 사과는 싫고 부드러운 식감이 좋다는 사람, 신맛이 없고 단맛만 있어서 좋다는 사람, 단맛은 없고 신맛만 있어서 싫다는 사람. 어쩌면 친구는 부드러운 식감에 시고 단맛이 있는 사과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 사과는 퍼석거리지만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시고 단맛이 강하고 즙도 많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권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내게는 좋다고 생각되어지는 일이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기에.
주말에 고향 선배님이 인사동에서 하는 미술전시회에 가자고 약속 잡은 지인이 있는데 그의 기호를 다시 살펴봐야겠다. 그 미술전시회에 대해서 내가 아는 대로 좀더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동행할 건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어야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화가님이기에 무조건 가고 싶고, 가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지인은 또 다를 수도 있으므로. 내게 맛있는 사과가 그에게도 맛있는 사과일 수는 없는 일이므로.
잠시나마 맛없는 사과를 구해 선물한 것을 후회했던 마음을 다잡는다. 그분들은 부드러운 식감의 사과를 좋아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친구에게 문자를 넣는다.
“어제 사과 잘 받았다. 좋은 사과 구하게 해주어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