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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론
전정구 (문학평론가 / 전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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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시들이 백화만방 흩날리던 80년대, 그 충격과 변화의 시대에서조차도 송수권은 당대의 유행이나 특정 유파에 집착하지 않고, 전통서정시 양식이 요구하는 예술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뿌리쳐버릴 수도 있었던 서정성의 탐구에 몰두해 온 것은, 김소월 백석 서정주 박재삼 등의 서정주의 미학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면면히 이어져온 한국 서정시의 예술형식이 암묵적으로 강요했던 전통미학을 현대의 그것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의지의 일환으로 평가해야 한다.
「山門에 기대어」에 등장하는 누이의 이미지를 앞 시대의 시에 나타난 이미지와 비교해 보면 그 사실이 곧바로 이해된다. 늦깎기 시인 송수권의 시적 재능을 대번에 확인시켜준 “누이야/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지금도 살아서 보는가”에서 그가 형상화한 누이의 이미지는 미당이나 소월의 그것들과 다른 느낌을 준다. 송수권의 누이는 김소월의 “누나라고 불너보랴/오오 불설워”(「접동새」)나1) 서정주의 “다수굿이 젖어있는 붉고 흰 木花 꽃은,/누님./누님이 피우섰지요?”(「木花」)의 구절에 등장하는 누님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2) 박재삼이 노래했던 흰 옷가지를 주무르던 그리운 빨래터의 “우리 누님”(「한나절 언덕에서」)과도 다르다.3)
송수권은 전통 서정시의 묵수적(墨守的) 계승자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관심을 보인 서정의 환기력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전통미학의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그가 지금도 여전히 서정성의 언어예술적 구현 양식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식히지 않는 진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의 독자를 감동의 세계로 인도하는 송수권 시의 비결을 이러한 측면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부드럽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곡선의 상법(想法)’이라는 송수권 시에 대한 재평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2
한국적 자연의 형태를 빌어서 표현한 내적 감정으로서의 정취가 송수권 시의 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 정취의 문제를 김준오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으로 개괄했다.4) 이러한 지적은 송수권 스타일로 서정화한 시세계의 중요한 측면을 밝힌 것임에 틀림없다. 곡선의 상법에 기초하여 부드럽고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 속에서 풍부한 미의 세계를 발견해 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부 이탈리아 롬바르디 평원의 이국풍경을 돌아본 그 순간조차도 고향산천을 그리워한 「정든 땅 정든 언덕 위에」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무래도 내 깃들일 수 있는 곳은/이 대평원이 아니라 대숲마을을 빠져나온 저녁 연기들이/낮게 낮게 깔리는 그러한 들판이었다/시냇물이 좔좔 흐르고 몇 개의 징검돌이 놓이고/벌떡벌떡 살아 뜀뛰는 어린 날처럼/물방개라도 만나보고 싶은 곳이다”(「정든 땅 정든 언덕 위에」). 롬바르디 평원을 모두다 준다고 해도 한국의 고향산천을 잊을 수 없다는 말속에, 그가 평생에 걸쳐 노래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수권의 시세계를 곡선의 상법으로 한정짓는 것은 그가 이룩한 서정미학의 핵심을 놓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버선코 같다든가
기와집 추녀끝 같다든가
풀어 흘린 치마말 같다든가
처갓집 안방에 들러 안 가는 데 없이
대님 푸는 소리 같다든가
蘭을 치고 앉은 여인의 둥근 어깨 같다든가
하여튼 우리 나라 산들의 능선은
조금만 깊숙히 들어가 멩아리를 놓으면
안 울리는데 없이
그렇게 항아리처럼 있는 것이다
−−「능선」 일부
한국적 생활풍경을 그려낸 이 작품에서 능선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현장을 구성했던 다양한 곡선의 형태들 속에 간직된 부드럽고 풍요로운 미의 세계를 상징한다. 특정 지역의 풍토가 그곳에 사는 인간의 심성을 결정짓듯이 ‘버선코, 기와집 추녀끝, 풀어 흘린 치마말, 난치고 둘러 앉은 여인의 둥근 어깨, 항아리’ 등의 집합적 형태인 능선은, 우리 조상들의 깊은 정한이 담긴 삶을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적 기호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기호는 단지 형태를 지시하는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 기호가 지시하는 풍경은 놀랍게도 소리를 담고 있으며 청각적 이미지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대님 푸는 소리”를 비롯하여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 멩아리를 놓으면 “안 울리는데” 없을 만큼 소리의 울림으로 가득찬 정감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아, 저 보아라 저무는 강둑 착한, 젖먹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 농부의 뒷모습, 서해 짠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들어가 이제는 멸치떼고
새우떼고 마구 퍼올리는 한국의 강을, 저
이끼 슬은 관촉사의 저녁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러고도
이 벌판 가득 떠오르는 저 찬란한 별들을.
−−「한국의 江」 일부
한국의 강을 표현한 이 시에서 관촉사의 저녁 종소리가 빠진다면 그 전체 모습은 상당히 달라지거나 적어도 우리 국토를 구불구불 가로질러 흘러가는 강의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정취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곡선의 미학으로 그가 그려낸 자연풍경의 모습은 소리와 어울릴 때 진정한 조선적 풍경으로 핍진하게 다가오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 중요한 방법으로 송수권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은은한 울림을 전해주는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 토속적 삶의 자리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한국의 자연풍경과 조우할 때 그의 특이한 서정성이 빛을 발한다. 송수권은 귀가 예민한 시인에 속한다. 이것은 그가 한국 소리문화의 본류를 형성한 남도소리 가락에 심취했음을 뜻한다.
앞산머리 자주빛 구름 옥색빛이 섞갈려 휘돌더니
산봉우리들도 수런수런 잔기침을 놓아
보기 좋은 달 하나 解産하고
몸을 푼다.
선한 눈, 코, 잎, 짙은 숱, 눈썹
처음 눈맞춘 죄로
옥사장 큰칼을 쓰고 창틀을
넘어다볼 줄이야!
진개내 앞냇가에 개가 짖어 개가 짖어
은장도 날을 갈아
눈물에 띄운
달하
귀기서린 앞산 그리메
밤부엉이 울어쌓는데
구리 동전 녹슨 상평통보
몇 바리쯤 동헌 마루에 져다 부려야
이 몸 하나 평안하겠느냐? 평안하겠느냐?
−−「춘향이 생각」 전문
앞산머리 자주빛 구름 옥색빛이 섞갈려 휘돌고, 산봉우리들도 수런수런 잔기침을 놓는 달이 뜬 밤 풍경에서 부엉이의 울음과 어우러질 때만 ‘귀기서린 앞산의 그리메’는 조선적 정취를 자아내면서 ‘춘향의 옥살이라는 사건’에 관여한다. 이 시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시인이 자신의 견해를 독자에게 직접 설득하는 것을 우회하는 방식인데, 그것은 소리의 울림을 동반한 토속적 풍경으로 극적인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는 점이다.5) 송수권은 전통적 삶의 현장을 구성했던 사물의 형태 속에 감추어진 미세한 울림을 결코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시인의 예민한 귀는 산맥이 풀리면서 돌아가는 “엇둘 엇둘 소리”(「解氷期」)는 물론이고 “수런수런 큰기침하며 강가에 나와/우리 산은 한 모금 물 마시고 쿠렁쿠렁/양치질하는”(「하동 포구에서」) 소리까지 듣는다. 뿐만 아니라 나팔꽃은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나팔꽃」), 남풍이 불면 미루나무밭에서는 “물 푸는 소리”(「우리들의 사랑노래」)가 난다. 등꽃에서는 “파란 옥빛 구슬/꺼내드는 은은한 소리”(「등꽃 아래서」)가 들리고, “저 連連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비로소 한 소리없는 강”(「지리산 뻐꾹새」)이 열린다.
최근에 펴낸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에 수록된 작품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6) 눈감아도 시인의 귀에는 “千佛山 골짜기 쩌렁쩌렁/아직도 천 년 세월 살아서 골풀무 치는 소리”(「雲住寺 韻」)가 들린다. 천 길 물 속 물이랑을 넘는 저 숨비기꽃들의 “숨비소리”(「숨비기꽃 사랑」)를 비롯하여, 이매창 무덮 앞에 서면 “지금도 가얏고 소리”(「이매창의 무덤 앞에서」)가 끊이지 않고 그의 귓전에 맴돈다.
천고에 몇 번쯤은 학이 비껴 날았을 듯한
저 능선들,
날아가다 지쳐 스러졌을 그 학 무덤들 같은 능선들,
오늘은 시끄럽게 시끄럽게 그 능선들의 떼 울음이
창해를 끓어 넘친다.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일부
그는 한국의 자연이 그려내는 강과 산과 들과 별들의 고요한 형태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동하는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살아 움직이는 대자연의 역동적인 모습을 펼쳐낸다. 강과 산이 조화를 이룬 곡선의 “그 학 무덤들 같은 능선들”의 떼 울음소리를 들려주면서 그의 시가 그려내는 자연 풍경에 생명의 숨결이 깃들이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우리 민족의 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청각적 이미지는 그의 시에서 표현대상에 생명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삶의 현장을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도라지 너를 보면
三韓적 맑은 하늘
이슬내리는 소리
胡弓 소리
−−「도라지꽃−−조선삐」 일부
도라지꽃의 이미지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한 청각적 울림의 흐름을 타고 구체적 모습으로 독자의 내면에 자리잡는다. 도라지꽃의 인상은 순간적이고 피상적인 감각영상으로 독자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청각적 이미지로 바뀌면서 긴 음향의 여운을 타고 독자의 귓전에 오래도록 머문다. 송수권은 언어의 음향을 이용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 순간에 표현해 낸다. 조선삐 도라지꽃은 고요하고 적막한 음향(이슬 내리는 소리), 그리고 날카롭고 강한 음향(호궁 소리)의 이중주의 조화 속에서 조선적 정신을 함축하는 표현대상으로 부각된다.
대숲마을 해어스름녘
저 휘어드는 저녁 연기 보아라
오래 잊힌 진양조 설움 한 가락
−−「남도의 밤 식탁」 일부
‘진양조 설움 한 가락’의 소리이미지는 해어스름녘 대숲마을의 ‘휘어드는 저녁’ 풍경의 정취를 한 순간에 그려낸다. 아름다운 음향이 조화를 이룬 음악을 버리는 것은 시의 가능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송수권의 진면목이며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독자들의 충분한 이해와 지지를 얻는 이유이다. 동시에 그가 꿈꾸웠던 화음을 동반한 시예술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송수권 시를 읽는 독자는 그가 선택한 표현대상이 어떤 것이든 늘 음향으로 울린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곰소항의 젓갈맛”(「공소항」) 속에는 내소사의 범종 소리가 배어있고, 뻐꾹새 울음은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지리산 뻐꾹새」)로 남는다. 이와 같은 구절이 보여주듯, 송수권은 소리의 울림을 취각이나 시각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탁월한데, 소리의 구수한 냄새와 소리의 아름다운 빛깔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자연의 모든 사물은 하나가 된다.
3
송수권은 소리 자질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전통미학의 서정성을 특이한 방식으로 개성화시키고 있다. 그의 시는 민족과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담아내는 감각적 이미지들이 함께 어우러진 소리의 교향악에 비유될 수 있는데, 그 소리의 화음에 힘입어 그가 개성화한 서정은, 기층민중의 숨소리가 지배하는 독특한 무늬를 펼쳐낸다. 「燈盞」에서 익숙한 것 같으면서 어쩐지 낯선 듯한 느낌을 주는 개성적인 서정과 그 밑바탕을 형성한 민족적/민중적 감성이 나타난다. 특히 민중과의 친화감을 조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사기등잔’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송수권적인 글쓰기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서정적 언어로 실천하기 위해 시인이 발견한 상상력의 광맥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는데 적합하다. 이러한 문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전통서정시 계승자로서의 그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
무엇이냐,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고여 뜨거운 핏줄을 밝히는 것은
양반 귀족들의 품에서 놀아난 상감백자가 아니라
맑은 물 속에서 배를 뒤집는 잉어들의 무아경이 아니라
어느 천민의 손에서 흘러온 민짜로 된 사기등잔 하나
나는 십장생의 무늬가 아니라도 좋아라
六間 대청 마루에 뜨는 불빛이 아니라도 좋아라
눈감으면 한밤내 은하수가 꼬리를 치며 흘러가고
풀섶에선가 가늘게 가늘게 銀鐘이 울려퍼지는 벌판
저 강 건너 주막집에 뜨는 불빛
주먹 같은 불빛 하나
눈보라 속에 갇혀서 남한산성으로도 뛰고
강화도로도 뛰고 의주로도 뛰는
어둑한 산하
무엇이냐, 胡敵들의 꽹과리 속에서
무너져오는 저 불빛은
짚신 감발에 대패랭이를 쓴 놈들이 죽창을 들고
무에라 떠들며 오는 소리
운봉 새재 아흔아홉 굽이에도 실리고
무엇이냐,
소리도 없이 밤하늘에 잠든 旗처럼
우리들의 가슴속에 고여 뜨거운 핏줄을 밝히는 것은
이 상놈의 피는
−−「燈盞」 전문
조선 민중의 숨결이 묻어나는 소재 선택이 보여주듯 그의 글쓰기의 목적은 우리 가슴 속에 고여 있는 “뜨거운 핏줄”을 밝히는 일이다. “어느 천민의 손에서 흘러온 민짜로 된 사기등잔”이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시인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상감백자’로 함축된 양반층의 고급문화가 아니라 “이 상놈의 피”가 흠뻑 배인 민중들의 생활문화이다. 그 문화로부터 민중의 삶을 지배했던 정신적 음조를 읽어내어 그것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이 그의 시쓰기의 최종 목표인 셈이다. 따라서 그가 일정하게 감각화시킨 “銀鐘이 울려퍼지는 벌판”과 “강 건너 주막집에 뜨는 불빛”은, 민중의 핏줄을 이어온 생활세계를 그려내는 토속적 풍경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삶의 이면에 자리잡은 정신적 인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특히 그 정신적 인상의 생생함을 보장하는 것은 “胡敵들의 꽹과리 속에서/무너져오는 저 불빛”과 “죽창을 들고/무에라 떠들며 오는 소리”의 예처럼 청각과 시각, 그리고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 교차인데, 그것은 민중들의 삶의 고난을 우리의 감각기관에 호소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청각과 시각의 이미지를 교차시키는 방법으로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하는데 성공한 작품은 「대숲 바람소리」이다. 이 작품은 순수한 음향의 소리효과를 바탕으로 민족적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대숲 바람소리로 통합된 각종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이다. 대숲 바람소리에서 울려나오는 음향은 민족구성원의 삶의 현장을 구성했던 모든 것들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정한 청정한
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
−−「대숲 바람소리」 전문
대숲의 바람소리는 맑게 울리지만 그 소리는 자연현상이 불러일으키는 단순한 바람소리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역사적 삶의 현장으로 우리의 감각기관을 이끌고 가는 전령사의 역할을 한다.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라는 첫구절이 환기하듯 대숲 바람 소리에서 “오백 년 한숨”과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그리고 황토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과 “문둥이 장타령”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끝구절의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가 암시하듯 원한과 증오를 곰삭여낸 “우리들의 맑은 사랑”이 빚어내는 “청정한 숨소리”에 다름 아니다.
송수권은 자연 사물과 일체를 이룬 민족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울려오던 내적 생명의 숨소리를 듣는 밝은 귀를 지녔다. 그 귀가 조선 민중의 다양한 삶 전체를 음향의 조화 속에 자리잡게 하면서 자연현상의 하나인 대숲 바람소리에서 그들의 생활 현장이 자연스럽게 재현된다. 특히 자연현상의 하나인 대숲바람 소리가 민중의 숨결로 바뀌면서 까마득한 시간 속으로 사라졌던 민족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음향의 신비스런 울림을 타고 독자의 귀를 자극한다. 그 소리는 조선의 산천에 삶의 뿌리를 내린 민중의 생명의 소리이다.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타는 내음”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송수권은 백석의 토속적 정감의 세계를 그대로 이식한 것이 아니라, 청각적 울림의 언어로 그 세계를 재창조하고 있다. 토속성의 구현양상이 앞 시대의 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시각중심에 경도되지 않고 순수히 청각적인 울림에 있는 것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대들이 휘인다
휘이면서 소리한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우듬지들은 흰 눈을 털면서 소리하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
어떤 대들은 맑은 가락을 地上에 그려내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
눈뭉치들이 힘겹게 우듬지를 흘러내리는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삼베 옷 검은 두건을 들친 백제 젊은 修士들이 지나고
풋풋한 망아지떼 울음들이 찍혀 있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밤중 암수 무당들이 대가지를 흔드는 붉은 쾌자자락들이 보이고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넘는
미친 불개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눈 내리는 대숲 가에서」 전문
스스로 자기표현의 예술적 목적을 이룩한 이 작품에서 송수권은, 그가 지향하는 시정신의 본령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민중의 삶의 역사를 공유해온 자연산천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고, 잊혀져 가는 역사적 사건을 보편적 예술의 세계로 영접(迎接)하는 일이다. 따라서 송수권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감각적 요소로 한몫을 담당하는 청각성은 정한(情恨)의 비극적인 한숨소리를 재현하여 애상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동하는 자연산천의 숨결과 기층민중의 숨소리를 불러내는 중요한 기법이고, 그가 발 딛고 서있는 한국적인 고향풍경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우듬지들의 “흰 눈을 털면서 소리”, 어떤 대들은 “맑은 가락”, 풋풋한 망아지떼 “울음”, 불개들의 “울음 소리” 등 민중친화적 정서가 밑그림을 이룬 그의 언어들 속에는 소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 그늘이 현상일 뿐 텅빈 자연의 모습에서 생명의 숨결이 깃든 한국적 풍경을 표현하는데 일조하면서 음향의 울림으로 환기되는 민중의 약동적인 모습을 부각시킨다. 살아 움직이는 힘찬 민중의 모습을 독자의 의식 속에 각인시키는 소리의 울림에는 우리 민족의 혼이 담겨있고, 동시에 그것은 민족의 원형적 심성을 자극하는 음향적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송수권은 민중의 에너지가 분출하는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울림의 효과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모든 감각기관에 호소하여 상이한 모티브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기량으로 가시화된다.
상이한 모티브들이 종합된 아름다운 화음의 울림은 전통 서정시가 지닌 애상의 분위기를 지워버리면서 상처받은 민중의 삶을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지난 삶을 끌어안아 오늘의 그것으로 되살려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눈 내리는 대숲 가에서」의 언어들은, 역사의 현장을 누볐던 민중의 체취를 포착하고 그것을 오늘의 현실세계를 비취는 거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 역할의 핵심은 근대화 과정에서 타자화된 삶을 강요해 왔던 서구의 지배논리를 비판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때마다의 역사적 현장에서 뜨거운 숨결을 토해냈던 민중들의 삶의 깊은 뿌리를 확인하는 송수권의 시쓰기의 근본 목표에 맞닿아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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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이 스며든 남도가락의 흥취를 언어예술로 재현하기 위해 송수권은 갯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변산시대를 열었다. 채석강에 지는 낮달을 바라보면서 그는 뻘의 정신을 탐구하는 나날을 보람 삼아 이곳의 낮과 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마냥 사랑했다. 뻘의 정신이 곰삭아 가면서 그의 시에 소리의 그늘이 깃들이기 시작했고, 한국적 삶의 풍경을 모국어의 음향에 담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서툰 가락”(「향피리」)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던 그의 시는, 이제 우리 모두가 귀기울여주어야 할 단계에 도달했다. 그러나 저 물 밖 물쟁이로 떠돌다 온 세월을,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영혼 속에 잠든 바다를 “물발로 깨워서”(「쪽빛」) 뜨겁게 부르던 그 쪽빛 같은 시만을 남겨두고 송수권은 이곳에서의 한적한 삶과 작별을 고했다.
변산의 뻘내음과 노을에 젖어 갯메꽃처럼 피어 살다갈 운명을 예감했으나 세상은 그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다부지게 직장을 걷어차고 후반부의 생을 예술의 품안에 의탁하기 위해 찾아온 채석강의 삶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다. 일찍이 꿈꾸었던 적막한 바닷가의 그리운 삶, 저녁놀을 받아 서럽게 빛나던 그 바다의 적막한 삶의 그리움을 노래하기 위해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송수권은 조금 더 지속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갈밭머리 해 어스름녘/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한 마리 해오라기처럼/먼 산 바래서서/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깨워가는/갈바람 소리에/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마지막 이 바닷가에서/캄캄하게 저물 일이다“(「적막한 바닷가」).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 적막한 바닷가에서 비워놓고 살기에는 아직도 미처 이루지 못한 그 어떤 세속의 명예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1) “담밧게는垂楊의느러진가지/느러진가지는/오오 누나!/휘졋이 느러저서 그늘이 깊소.”(「널」)나 “三千里가다가다 한가운데는/웃둑한三角山이/솟기도햇소//그래 올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春香과 李道令」)에 나오는 ‘누나’의 이미지와 같지 않다.
2) 「누님의 집」이나 「菊花옆에서」의 누님의 이미지와도 다르다.
3) “한여름은 누님의 저 서늘한/모시옷”(박재삼, 「고추잠자리를 보며 1」)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4) 김준오, 「곡선의 想法과 전통시」, 『시와 시학』, 1991 가을.
5) 이 작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구리 동전 녹슨 상평통보 몇 바리쯤 동헌 마루에 져다 부려야 “이 몸 하나 평안하겠느냐?”라는 화자의 목소리이다. 그 목소리는 시인의 내면의 목소리를 대신한 것인데, 우리가 아는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춘향의 옥살이는 뇌물의 제공 여부로 해결될 성질의 사건은 아니다. 그것은 ‘성(性)’을 제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다. 따라서 탐관오리의 색욕에서 비롯된 춘향의 옥살이를, 부패한 관리의 탐욕을 질타하는 목소리로 바꾼 것은 과거의 역사적 현장을 빌어서 오늘의 관료집단의 부패를 비판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병치되면서 빚어낸 독특한 분위기가 조성한 서정적 밀도의 촘촘함으로 인하여 그 비판적 목소리가 독자의 내면의식에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독자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시키는 서정적 분위기 조성이, 과거의 사건을 끌어들여 그것을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거울로 활용하려는 시인의 작업을 구체화시키면서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6) 송수권,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 시와시학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