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가자 : 정혁현 목사님, 박연옥, 정단희, 박성호, 안태형, 이샛별, 서은혜, 서선미, 정명수, 박지현, 강형숙, 이미영 (12명)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공부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부록은 하반기로 넘어갑니다.
그동안 빠지지 않고 끝까지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강의해 주신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14장 기독교의 소망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의 창조적, 구속적 활동의 완성을 “기대하는 신앙”이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 없이는 모든 기독교 교리는 왜곡된다. 성경은 소망의 책이다.
테러 시대에 처한 소망의 위기
아브라함과 사라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어왔다. 이후 교회가 팽창하고 국교가 되면서 소망은 밀려나고 교회적 승리주의로 대체되었다. 소망은 때때로 여러 묵시주의 운동을 통해 분출했으나 대부분 잊혀졌고 다른 종류의 소망이 현대의 세속 의식과 종교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 성경의 종말론적 소망을 대체하는 것들
1.계몽주의로부터 시작해 20세기 초까지 비평가들은 성경의 묵시적 소망을 무지와 두려움의 산물이라며 경멸했다. 종말론은 자유주의적 진보 이론에 맞게 다듬어졌고 축소되었다. 기독교 신학 또한 소망을 계몽주의 이성의 한계 내로 축소하는 것을 묵인해왔다.
2. 마르크스주의적 이상주의. 한 세기 반 동안이나 인류에게 성경적 소망의 세속적, 호전적 버전 제시.
3. 유대인 학살 기억, 화학 생물 전, 핵, 계층과 빈부 격차, 전염병, 환경 위기 등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묵시적 테러라는 새 시대를 열었다(911).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에 대한 묵시적 시각은 성경에 전제되어 있고 에른스트 케제만은 이를 기독교 신학의 어머니라고까지 기술한다. 1세기 말 교회 핍박의 상황에서 나온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상징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로마 제국 권력에 저항하도록 고무시켰다. 그 메시지는 무력이 아니라 부활 신학에 뿌리를 둔 순교를 각오한 비폭력적 저항을 권고한다.
소망보다 절망에 의해 더 많이 자극 받는 현재의 묵시적 운동은 신약의 소망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가장 악의적인 신묵시주의는 최후의 우주적 전쟁에 대한 무시무시한 묘사와 테러주의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결합시키고 있다(이슬람, 흩어진 기독교 분파, 유대교 분파와 연관된 폭력적인 묵시 운동). 오늘날 미국의 묵시주의는 수없이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종말의 서적과 설교들, 세상을 등진 광신적 공동체들, 심판하는 폭력적 정치 행동 집단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묵시 문학 또한 우리를 동요 시키는 수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 신묵시주의: 이스라엘 국가 재건에 기원. 아마겟돈 전쟁을 미래의 열핵 살상과 동일시.
a 성경을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지 않고 해석자의 틀에 맞춰 왜곡 해석.
b 종말의 예정 시간표는 결정주의적이며 종말에 그리스도인은 면제된다는 수동적 관망.
c 세계는 참그리스도인과 불신자, 우리와 그들로 구분. 원수와의 화해 불가능.
d 소망의 진정한 대상은 휴거. 인간과 창조세계와의 연대감 결여.
e 그리스도의 사역과 십자가 부활에 대한 신학 부재.
기독교의 소망을 해석하는 원리
* 성서학과 조직신학에서 종말론에 대한 상호 대립적인 네 쌍의 해석
a 미래주의적 종말론vs실현된 종말론: 신약의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실재인가? 미래인가?
b 개인주의적 종말론(몰트만) vs집단적 종말론(초기 몰트만, 자유주의 신학자들):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새로운 생명과 관계 있는가? 아니면 정치, 경제, 사회적 성취와 관계 있나?
c 역사적 종말론(근대 서구 신학) vs 우주적 종말론(동방 신학과 과정 신학): 하나님 나라는 다만 인간의 삶의 성취인가? 아니면 자연과 우주 과정 전체를 포함하나?
d 하나님 활동에 초점을 둔 종말론vs 인간 활동에 집중하는 종말론: 하나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인가? 아니면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감당해야하나?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세상에서는 사망이 최종적 힘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망은 생물학적 종말보다 더 크고 심오하며 하나님이 창조하고 구원한 생명의 성취를 위협하는 부정과 파괴의 권세다. 사망과 무덤의 실재를 충분히 진지하게 다루는 자들만이 생명과 부활의 환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죄와 악과 사망의 참혹한 현상 속에서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소망 안에는 많은 차원이 존재하며 개인의 삶의 성취의 차원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 개신교 신학자들은 기독교적 소망이 정치적 차원으로 이동했기에 개인적 차원을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몇몇 가톨릭 신학자만이(칼 라너) 죽음의 신학을 전개한 바 있다. 신학이 개인의 죽음 또는 충만한 생명에 대한 개인의 소망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소망은 개인의 성취와 공동체의 성취가 불가분리적임을 주장한다. 기독교의 소망은 우주적 차원을 가지며 창조 세계 전체를 포함한다.
*오늘날 기독교 소망을 해석하는 본질적인 해석학적 원리
1기독교적 소망의 언어는 한계까지 확장된 언어, 즉 상징과 이미지가 풍성한 언어다.
2기독교적 소망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부활에 토대를 두고, 생명을 수여하는 성령의 현존과 약속에 의해 지탱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한다.
3기독교의 종말론적 상징은 비이원론적으로 해석돼야 하며(↔영과 육, 개인과 공동체, 인류와 창조 세계 등 이원론) 삶의 모든 차원에서 성취와 온전함을 추구하도록 해석되어야 한다.
4기독교의 종말론적 상징은 인간의 모든 역사적, 문화적 성취를 상대화 한다. 현재의 불의에 반대하며 현상유지를 절대화하는 모든 노력에 대립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정의, 평등, 인권을 위해 투쟁하면서도 더 큰 미래, 소망 너머의 소망을 주장한다. 공상적 이상주의 소망은 보편적 정의를 확립하고 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자원과 능력을 인간성 안에서 발견하나 기독교 신학의 소망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는다. 종말에 대한 기독교의 상징은 총체적이고 영구적인 혁명을 예언하는 기능을 한다.
5 기독교의 소망과 그 풍성한 상징은 심대하고 다양한 것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촉발한다.
기독교의 소망을 표현하는 고전적 상징들
1그리스도의 재림, 파루시아: 도착, 도래 의미. 예수 재림에 대한 소망은 ①어떤 사물이나 개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통치이고 ②미래에 대한 맹목적 소망이 아니라 이미 왔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례 속에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오시며 ③주님의 오심에 대한 우리의 모든 현재 경험은 파편적이며 잠정적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여전히 완결되지 않았다.
2죽은 자들의 부활과 몸의 부활: 부활은 기독교 소망의 통전적이고 포괄적인 특성을 상징화하는 묵시적 이미지다. ①부활은 영혼과 육체 모두 포함한다(영혼 불멸X). ②하나님의 약속이 몸을 포함한다면 이 약속은 사회, 정치, 우주 전체를 포함할 것이다. ③산 자,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들까지 포함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방식은 전 시간과 공간에 펼쳐져 있는 교제에서 시작하고 거기에서 끝난다.
3 최후의 심판: 교회 전통 속 무서운 묘사와 구별되며 심판의 실재에 대한 자유주의의 피상적인 거부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①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②부활한 그 그리스도가 우리의 심판자가 될 것이다. ③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 자기를 내어주며 남을 포괄하는 사랑이다.
4 영원한 생명 (천국)과 영원한 죽음(지옥): 영생은 화해된 삶의 완성인 만물의 화해에서 누릴 수 있는 끊임없는 기쁨이며 하나님과의 끊임 없는 완전한 하나됨이다. 천국은 “사랑의 세계”(조나단 에드워즈)이며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성취된 화해와 삶의 기쁨이며 천국, 즉 삼위일체와의 친교는 모든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다. 지옥은 종말의 처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분리되어 이웃과 소외된 채 스스로 혼자이기를 원하는 곳이다.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삶의 지독한 권태이며 자기 파괴적인 저항의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지옥은 삶의 의미와 의도가 상실될 수도 있다는 진리를 상징한다.
보편 구원이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반역적 피조물에게 조차 우세할까? 이 물음은 기독교 종말론에서 가장 논쟁적인 질문이다. 구원과 멸망의 이중 결과와 만물 구원 사이의 긴장 해소는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다(칼 바르트). 우리를 넘어서는 훨씬 더 큰 세계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소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종말론과 윤리
*기독교 소망과 기독교 윤리와의 변증법적 관계
1소망은 신음하는 창조 세계와 연대하고, 만물의 갱신을 위해 투쟁하도록 우리를 강화하는 실천이다. 윤리는 우리가 차이와 타자성을 어떻게 다룰 지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된다.
2 생명이 번성하고 악과 죽음의 세력이 사라질 변혁된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활동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생명을 창조하고 보존하고 변혁하고 성취하는 모든 것은 은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완전하게 할 수 없다. 대신 복음을 선포할 수 있으며 가정과 공동체와 교회와 국가와 국제 관계 속에서 더 많은 정의와 평화와 긍휼을 가져오기 위해 상상력과 힘을 다해 활동할 수 있다. 궁극적인 충성이 하나님께로만 향할 때에 우리는 지상에서도 가장 충실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제1계명의 윤리적인 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