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27편
* 한국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현)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길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
黃河西流崑崙頂
황하서류곤륜정
日月無光大地沈
일월무광대지침
遽然一笑回首立
거연일소회수립
靑山依舊白雲中
청산의구백운중
항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대지는 꺼지는도다.
자연앞에 급하게
한번 웃고 돌아서니
청산은 예대로
구름 속에 섰네.
– 성철(性徹)선사 –
"
※
성철(退翁 性徹,
1912~1993) 선사는
대한민국 승려이다.
속명(俗名)은
이영주(李英柱)이고
아호(兒號)는
퇴옹(退翁)이다.
대한민국
선종(禪宗)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典型)이 될 만한
승려(禪僧)로써
1912년 일제 강점기
조선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출생이며
1993년 11월 4일(81세)
합천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서
입적(入寂 열반)하였다.
1936년
해인사(海印寺)에서
동산(東山)
대종사(大宗師)에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38년
운봉(雲峰)을
계사(戒師)로 보살계(菩薩戒),
비구계(比丘戒)를 받았고
봉암사(鳳巖寺)에서
청담(靑潭) 스님과 함께
수행하면서
불타(佛陀)답게 살자고
결사(結社)하는 등
새로운 선풍(禪風)을
일으켜 고양(高揚)시켰다.
1967년
해인총림(海印叢林)에서
초대 방장(方丈)이 되었고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 7대 종정(宗正)에
취임하였다.
성철(退翁 性徹)은
세속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별장 조경터를
본인이 마음들어 하여
세워진 해운대 해월정사에서
장좌불와(長坐不臥,
오래도록 앉아서 눕지 않는다는
뜻으로, 누워 잠을 자지 않고
앉은 채 좌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휴유증(後遺症)으로
요양(療養)하며 말년(末年)을
보낸다.
1993년 11월 4일
세수 81세(歲壽 81歲)로
열반(涅槃 Nirvaba 해탈)에
들었다.
성철(退翁 性徹)은
제자(弟子)들의 부축을 받아
앉은 상태에서
친딸인
불필(不必) 스님이
가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臨終)을 맞았으며
60년대초
통합종단출범 이후
처음인
7일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한편
출가(出家)하기 전에
세속적 혼인(婚因)을 해서
다섯 살 터울의
딸이 두 명 있었으나
큰딸(이도경)은
14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 딸이
태어나기 직전인
1936년 출가를 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둘째 딸(불필 스님)의
이름은
본인(성철 스님)의
아버지가《수경》이라
지어줬고
아버지(이상언)는
유학자 집안의 장남인
본인(성철 스님)이 출가하자
" 집안 망했다. "
난리를 치기도 했으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
"
이 놈들아 !
나는 성철 스님에게 간다 .
"
고함을 지른 뒤
숨(壽命)을 거두었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타계한 어머니(강상봉)는
죽기 전에
정식 출가는 안 했지만
머리를 깎고
장삼을 착용하며
생활하면서
"
다시 태어나면
스님(比丘尼)이 되겠다.
"
말하며
여생을 마쳤고
본인(성철 스님)의
아내 이덕명 여사는
남편과
외동딸(불필 스님)이
모두 출가한 뒤
시부모님도 세상을 떠난 후
딸 불필 스님의
은사인 인홍 스님의 권유로
출가하여
《일휴》라는 법명을 받은 뒤
비구니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중국
임제종(臨濟宗)을
개종(開宗)한
임제(臨濟)의 후예(後裔)인
선사(禪師) 유신(惟信)이
선종의
내밀(內密)한 특징인
소위
도교(道敎)에서
영향받은
화광동진(和光同塵)을
교시(敎示)하려는 취지(趣旨)로
한 설법(說法)인
“
내가 삼십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옛날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냐 ?
다르냐 ?
이 것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겠노라.
”
중에서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고측(古則)을
성철이
원용(援用)하여
인상(印象)을 남기면서
유명해졌다.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화두(話頭)는
최초에 미망(迷妄)하는
단계
수도(修道)하기 이전
평범한 일상계(日常界)이나
수도를 이용해
득도(得道)하며 체험하는
평범한 일상을
완벽히 초월한 세계는
일상에서 하는 착각(錯覺)이
적멸(寂滅)한 상태이나
진정하게 득도하려면
거기서 진일보(進一步)해
평범한 세계로
회귀하여야 한다.
화광동진을 이용해
다시 돌아온 그 세계는
외양상으로는
최초처럼 속(俗)되고
평범한 단계와 같으나
내면상으로는
처음과는 차원이
판이(判異)하다.
이는
나선형(螺旋形) 성격을 띤
회귀를 뜻한다.
이로 보아
임제(臨濟)의 후예(後裔)인
선사(禪師)
유신(惟信)이 설법한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공안(公案)은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 사상을
그대로 해설(解說)한
교시(敎示)이다.
※
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