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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신앙 안에 전화위복이란 없다>의 줄거리:
신앙 안에 전화위복이란 없다
(롬8:28~30)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신앙 안에 전화위복이란 없다>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가운데는 전화위복이라는 것이 없다, 이런 뜻의 말씀입니다.
전화위복, 비슷한 말이 또 있지요? 새옹지마! 화가 변해서 복이 된다.
이 얼마나 참 위로가 되는 구절입니까? 그렇지요?
정말 가훈으로 삼는다든지 해도 될 수 있는 그런 말이에요.
고통과 환란을 당하는 중에 절대 절망하지 말고 지금의 이 불행이 복이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꿋꿋이 이겨나가라, 뭐 이런 의미가 담겨있는 귀중한 말 아닙니까?
그런데, 신앙 안에서는 전화위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 안에서는 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 바깥에,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이 8장 처음에 나왔잖아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화가 없습니다.
이게 논리적으로 맞는 얘기 아니겠어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도 화가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건 말이 안 되지요.
그리스도 밖에서 살 때에 화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고,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거 아닙니까?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화가 없어야 되는 게 맞는 얘기죠.
그러니까 화가 없으니까 전화위복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복만 있는 거예요.
복만 있으니까 복도 없는 거지요.
복이라는 게 화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는 복만 있으니까, 복에서 복으로만 이어지니까.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실패라고 하는 것도 화가 아니라 복이고,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것도 화가 아니라 복이라는 겁니다.
화가 없어요.
여러분 화가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복에서 복으로 이어지기만 하기 때문에, 복도 복 같지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자, 그런 삶이 어떤 삶인가 한번 자세히 들여다봐요.
오늘 본문에 아주 귀중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렇게 하고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고, 신앙을 갖고 있는 자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자입니다.
그리고 화가 없는 자에요.
자!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할 때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그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드시지요?
간단합니다.
이웃집 아들이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합니다.
부럽지요? 그러나 기쁘지는 않습니다.
부러운 마음과 같이 갈 수가 없습니다.
기뻐하는 척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부러운 마음이 생기면 샘이 나면 기쁨은 물 건너 간 겁니다.
같이 병존할 수 없는 감정이, 부러움과 샘나는 것과 이 기쁨입니다.
근데 이웃집 엄마는 어떻겠습니까?
그 아들이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기쁩니다.
그럼 왜 기쁩니까? 사랑하니까 기쁩니다.
나는 왜 안 기쁘고 부럽습니까? 사랑하지 않으니까, 기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려면, 내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지를 알면 됩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떨 때 기쁩니까?
돈 많이 벌었을 때? 그러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식 때문에 기쁘지요? 그러면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남편보고 기뻐하지요? 남편 사랑하고 있는 것이고, 사업이 잘 됐기 때문에 너무 마음이 좋고 기쁘지요? 사업 사랑하는 겁니다.
박 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된 뒤에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권력 사랑하는 겁니다.
뭐 틀림없습니다.
내 마음이 기쁜 이유가 뭡니까? 그 기쁜 이유를 우리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슬픔도 줍니다, 그것에서 잘 안 될 때.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거예요.
교회에 왔다고 다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에 와서도, 기뻐하는 이유가 다 제각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도.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게 아니에요.
전도상 받고 싶어 안달이 난 권사님께서, 하~도 옆집에 있는 새댁을 닦달을 하니까 그 권사님의 뜻에 의해 교회로 나올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부흥하고 싶으신 그런 욕구가 너무 강렬하셔 가지고, 전도 다섯 사람이상 안 하면 아예 안수집사 후보감으로 등록을 안 시켜줍니다.
그러니까 마지못해서 사람을 데려 왔습니다.
목사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래 뭐라고 전도했냐고 물어봤더니, 교회가면 사업 잘된다, 교회가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교회가면 자식들이 잘 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입니까? 뭡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에요.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전혀 다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왔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이용하겠다는 마음으로라도 교회로 나오는 것이 가능성은 더 커지니까, 낫다고 할 수는 있어요, 분명히.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나온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있나? 아니다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고 다른 것으로 기뻐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그게 바로 다름 아닌 영적인 간음입니다.
돈 때문에 기뻐하잖아요? 돈 때문에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헌금 두둑이 내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간음하게 해 줘서 기쁘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거 분명히 우리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거기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알건 알아야 돼요, 그래야 나아질 수가 있습니다.
기쁨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면 그게 다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 여자가 남편 말고 맨~ 다른 남자 때문에 기뻐요.
다른 남자 때문에 웃고, 다른 남자 때문에 재미있고, 다른 남자 때문에 행복해요.
그거 말이 됩니까?
그게 간음이지요. 꼭 육체적인 간음이 아니라도 그게 간음이지 뭡니까?
이거 무서운 얘기에요 그렇죠?
자!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사람들이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자, 또 하나님 만으로 기뻐하기로 마음먹는 자,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인데, 이렇게 하나님만을 향해 있는 이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이 얘기입니다.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이 얘기가 십중팔구 어떻게 이해되고 있냐 하면, 새옹지마나 전화위복과 같은 뜻으로 이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땅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이게 10년이 지나도록 안 팔리는 거예요.
당장 현금이 필요해서 팔려는데, 이게 10년 동안 속을 썩는 겁니다.
‘이놈의 땅은 괜히 갖고 있어 가지고 내가 이렇게 속을 썩는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뉴스를 보니까 자기 땅에 포함 된 지역이 새 개발지역으로 발표되는 겁니다.
이때 하는 말이 뭐에요? 합력하여 이루었다, 전화위복이다, 새옹지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뜻은 그 뜻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가 지방대에 입학할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참 서운했습니다.
근데 지방대에서 다니는 동안에 이성 친구를 하나 사귀었는데, 아! 요게 보통 똑똑하고 야무진 게 아니에요, 가문을 일으킬만한 며느리가 걸려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방대 갔다고 서운한 마음이 복이 된 거에요, 화가 변하여 복이 된 겁니다.
요런 걸 뜻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저의 어머니.
젊었을 때 좋아하던 남자가 많았대요.
그럼 왜 그리로 시집가지 그랬냐? 그래 누구냐 그랬더니. 지금 캐내다 연합 장로교 총회장을 지내신 분이 한국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어머니를 되게 좋아했대요.
그래 그 사람뿐이냐 그랬더니, 공군 쓰리 스타로 제대하신 분이 또 있대요.
하여간 소식도 잘도 알고 계셨어요, 그분이 또 당신을 그렇게 젊었을 때 좋아했대요.
다 뿌리치고 저희 아버지께 시집 왔는데, 그럼 손해 본 거 아니냐, 아버지가 돈 많이 못 벌어서 가난하게 살았으니까, ‘그래도 너희들이 있으니까’ 인사로 하는 말씀이신지 진짜로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요.
화가 변해서 복이 됐다는 얘기인지,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셨다는 얘기인지 잘 못 알아 듣겠습니다마는, 어쨌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이런 뜻이 아니라는 거예요.
본문에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 최종적인 목표인 선의 내용이 도대체 뭡니까?
그게 바로 29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이건 부르시기 위해서 택정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럼 왜 부르셨느냐, 예정하시고 택정하시고, 왜 부르셨느냐?
다른 게 아니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그렇게 미리 정하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뜻은, 모든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형제들이 되게 하려고, 예수님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하시려고 불렀다는 얘기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이 땅에서 살고 계시던 그 모습이, 이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서도 나타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모~든 우리의 인생의 삶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 선의 내용이 뭐냐 하면, 마지막으로 최종적으로 궁극적으로 합력해서 이루시려고 하는 마지막의 목표가 뭐냐 하면 바로, 이 땅에서 예수님이 사실 때 그 아들로서의 모습이 있었잖아요?
우리에게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섭리하시고 일어나게 하신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있을 때, 하나님만으로 기쁨을 삼으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이게 믿음 아닙니까? 이게 믿음이에요.
이 믿음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엄마가 임신을 합니다.
그러면 그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머물게 되잖아요?
그럼 10개월 머무는 동안에 뭐합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요? 아니에요.
엄마가 잉태를 하면, 맨 처음에 심장이 생깁니다.
그래서 심장박동이 몇 주 만에 이렇게 들리기 시작해요. ‘푹닥 푹닥’
심장이 생겼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오장육부가 생겨나고 사지백체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아이의 모습이 완전히 다 갖추어졌을 때, 그러니까 크기만 자그마하지 성인과 비교해서 조금도 상실된 부분이 없을 때, 모든 사지백체가 성인과 똑같이 구성되어 있을 때에, 그때 ‘응애~’ 하고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태어납니다.
똑같은 원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정하신 겁니다, 택정하신 거예요.
그럼 왜 택정하신 사람들을 이 땅으로 내려 보내시고 다시 부르셨느냐?
부르셔가지고 하나님만을 향하게 합니다.
하나님만을 향한다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돈만을 바라보면서 돈이 기쁘고 안 기쁘고 한 것처럼, 하나님만을 향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으로 기쁨을 삼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런 자세로 있게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인생을 인도해 나가시는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통령 되게 하는 게 아니에요, 출세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마지막 도착점으로 하는 길을 가고 있는 거잖아요.
다 도중에 끝나고, 정말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 중에 한 사람만 대통령이 되지만, 그 길의 도상에 서 있는 겁니다.
사무총장이 되는 것도 세계적인 어떤 그런 출세의 가도를 가다가, 유엔 사무총장까지 못되고 도중에 그치지요.
또 돈 벌고 싶은 사람은, 전부 재벌총수 이 건희 씨나 LG 총수의 자리로 가기 위해서 애를 쓰다가 다 중간에 멈추는 것이지요.
만의 한 사람, 십만의 한 사람이 재벌총수가 되어 갑니다.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근데 그런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살 때에 살았던 그 모습이 나타나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어머니의 뱃속과 같은 거예요.
어머니의 뱃속을 모태라 그러잖아요? 모태.
이 세상은 자궁입니다. 세상이라는 자궁입니다.
그래서 세태라고 그래요 세태.
이 세상이라는 자궁에서 되는 일이 뭐냐 하면, 대통령 되고, 유엔 사무총장 되고, 재벌총수 되고, 학자 되고, 학 박사 석학이 되고, 어머니 되고, 아빠 되고…
이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애기가 인간의 모습으로 돼 가듯이,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돼 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요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자들을, 아! 내가 이제부터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서 죽었으니까, 그래 자식에 대해 죽고, 가족에 대해서 죽고, 배우자에 대해서 죽고, 이 죽었다는 얘기는 뭡니까? 돈에 대해서 죽고, 사업에 대해서 죽었다는 얘기는, 더 이상 그것에서부터 기쁨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기대하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아내와 자식과 가정의 사람들을 대할 때는, 하나님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지, 아내 때문에 기쁘기를 바라고, 자식 때문에 기쁘기를 바라지 않겠다는 얘기에요.
그 결정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했을 때, 우리의 삶이 합력해서 이루어져 가는데, 그 모~든 삶은 의미와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예수님의 이 땅에서 살던 모습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럼 예수님이 살던 모습이 뭐였습니까?
이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잡아 끌만한 많~은 좋은 것들이 있고,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잡아 끌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 많~은 좋은 것들 중에,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만드신 세상 속에, 우리 마음을 잡아 끌만한 모든 좋은 것들이 많고 많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주님의 삶을 가만히 보면, 주님의 유일한 기쁨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였어요.
돈이 얼마나 좋아요, 권력이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돈도 거들떠보지 않으시고, 권력도 거들떠보지 않으시고, 주님의 기쁨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렇게 바라고 있는 거, 이게 바로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 우리에게 돈 버는 일만 치면, 돈이 벌릴 때도 있고 안 벌릴 때도 있습니다.
또, 정치권에 들어선 사람들이, 어떤 때는 귀양 가듯이, 옛날로 말하면 귀양 가듯이 정말 낙동강 오리 알처럼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고, 정말 천신만고 끝에 다시 일어나서 재기의 꿈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주어질 때도 있고, 또 잘 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실패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만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을 만나고, 저 여자, 저 남자면 내 인생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3년 만에 이혼도 하고, 날마다 부부싸움을 합니다, 자식을 낳으면 기쁠 줄 알았어요.
자식 때문에 기쁜 건 3년 안 가요.
말썽을 피우고, 자식이 아프고, 공부 안하고, 평생을 자식 때문에 속을 썩는 거예요.
이런 사람 만나, 저런 사람 만나 그러면서, 돈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과정을 통해서, 돈을 벌고 성공하고 돈을 성공 했는데, 돈을 쓰다가 자식이 사고를 당한 거예요.
그 돈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 자식에게 차를 사주지 않았다면, 사고가 안 났을 텐데 또 돈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돈이 없음으로써 또 지켜지는 게 있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서 새옹지마와 전화위복을 깨닫는 게 아니라, 아! 내가 돈이 없으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돈을 의지할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겠구나. 자꾸 배우는 거예요.
좋은 사람 만나서 기뻤다가, 그 좋은 사람이 돌변해서 나를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나쁜 사람 만났다가 괴로웠는데, 그 나쁜 사람이 어떨 때 보니까 또 좋은 일도 하기도 하고, 아!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이 너무너무 잘못되고, 사람을 의지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겠구나.
자꾸 우리 마음이, 의지할 돈도 있고 의지할 권력도 있고, 의지할 사람도 있는 가운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들로, 이 인생의 굴곡을 지나는 동안에 자꾸자꾸 변해 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내 인생의 행복의 근거를 두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제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눈 성령님의 기도입니다.
그 성령님의 기도입니다.
그 성령님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져 가는 거예요.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만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하나님만으로 행복하고 기쁘고 만족하기를 원하는 그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의 인생의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시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그 응답이 주어져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장로님이 사업에 실패했지 않습니까?
성령님의 기도 응답이에요.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이, 경제적인 형편이 안 풀리잖아요?
성령님의 기도의 응답인 겁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데 자식이 공부를 안 하잖아요?
성령님의 기도의 응답인 거예요.
이 모~든 성령님의 기도의 응답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합력하여 이루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내가 마음을 주지 않고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만 마음을 두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거예요.
그 독생자가 이 땅에서 살 때에 나타났던 그 모습이, 내게도 나타나게 하시려는 그 하나님의 의도를, 성령님이 받아서 기도하시고,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실패도 주시고, 때로는 성공도 주셨지만 성공이 허무함을 깨닫게 해 주시고,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셨지만 그 좋은 사람이 돌변하는 모습을 보게 하시고, 나쁜 사람을 만났지만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면이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시면서, 사람도 돈도 권력도 이 세상의 성공도 모~든 것도, 내가 의지할 것이 아니로구나, 라는 걸 깨닫게 해 주시는 겁니다.
이러면서 점점 성령님의 그 기도를 통하여 일어나는 일들을 우여곡절을 겪어가는 동안에, 이 세상에서 그렇게 좋던 것들은, 내 마음에서 점점 퇴색해가고, 그게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어가고, 보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하늘 위에 계신, 보좌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점점 더 뚜렷하고 점점 더 강력하게 내 마음에서 보이게끔 해 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합력하여 이루는 선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말은 이 세상의 형편에 우리가 마음을 둘 때, 이 세상의 환경의 차원에서 마음이 묶여 있을 때 의미가 있는 말 아닙니까?
환경이 좋았다 나빴다, 이게 바로 전화위복의 의미가 있는 말인데, 우리는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나 자신이, 하나님만을 기쁨으로 삼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일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좋은 일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쁜 일도 좋은 것이고 좋은 일도 좋은 것이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복에서 복으로 연결 되는 거예요.
지금 너무 힘든 경제적 환경, 건강상의 상태, 가족의 문제가 있습니까?
복이에요.
그 복을 통해서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별 볼일 없는 삶이 되었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는, 하나님만을 기쁨의 이유로 삼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습으로 돼 가는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 못돼도 되고, 재벌 못돼도 되고, 가난해도 상관없어요, 못 배워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새옹지마, 전화위복 그런 거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나는 지금 만들어져 가고 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나의삶을 하나님께서 지금공사중이심니다 파고파고 또 파시어서 십자가에믿음을 하나님뜻에따라 이루어주시길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