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벧전 2: 11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 벧전 2: 12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
4. 성도의 행실 ( 2: 11 – 12 )
⑪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⑫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 11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인생은 '나그네' 같은 존재이다. 모든 영혼은 죽을 때 하나님 앞에서 선악간에 판단을 받아 천국 혹은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장차 부활할 몸이 들어가는 천국과 지옥과는 구별된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며 돌아갈 영원한 처소가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내세를 준비한다. 구원은 꼭 받아야 하며 성화도 중요하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혼의 거룩한 성향을 거스르는 몸의 욕망들을 제어해야 한다. 그들은 교만과 미움과 음란과 거짓 등의 죄성을 따라 살지 말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몸과 영 혹은 영혼의 두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 영과 영혼은 한 실체에 대한 다른 두 용어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영과 혼과 몸의 세 실체로 구성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과 전통적 개혁신학에 맞지 않는다.
성경에서 영 혹은 혼이라는 말은 분명히 구별 없이 교대적으로 사용된다. 몸은 물질적 실체이며 거기에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없다.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영의 활동이다.
중생한 영 혹은 영혼은 범죄 하는가? 중생한 영이 몸과 분리된 상태 즉 죽을 때에는 즉시 천국에 올라가면 그 영은 죄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생한 성도일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범죄 한다. 그것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죄이며 그것은 다 영의 기능이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은, 비록 그 자체로는 죄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몸과 결합되어 있는 동안 한 인격체로 죄를 짓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죄성은 사람의 영과 몸 중 어디에 자리를 하는가? 죄성은 사람의 몸에 자리를 하며 그러므로 성도가 죽으면 그 영은 즉시 천국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몸에 죄성이 있다고 해서 몸을 죄악시하거나 천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화의 이치는 무엇인가? 성화는 중생한 영이 몸의 죄성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개혁신학은 중생 즉 거듭남을,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서 그 '지배적 성향'이 거룩해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범죄 할 수 없는 성향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몸에 남은 죄성을 이기기 어렵다. 여기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몸의 남은 죄성과의 싸움이 있지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를 이룬다.
로마서 8: 13-14은 '너희가 육신[몸의 죄성]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 갈라디아서 5: 16은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증언한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이것은 베드로가 본서와 베드로후서에서 모두 7회나 언급한 애정 어린 호칭이다(4: 12. 벧후 3: 1, 8, 14, 15, 17).
이 호칭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사용된 호칭이었다.(Blum, Caffin)
* 롬 12: 19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살전 2: 8 -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본서와 베드로후서에서는 간곡한 권면이나 무엇을 환기시킬 때 사용되었다.
2] 거류민과 나그네(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나그네'(파로이쿠스)는 일시적으로 거주하여 법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를 가리키며 '행인'(파레피데무스)는 거쳐 가는 길손으로 정착자가 아닌 자를 나타낸다.
베드로는 이 용어들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시민으로써 신령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 빌 3: 20 -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단지 이 세상에서의 삶은 나그네나 행인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는 유한(有限)한 것임을 시사한다(Stibbs, Lenski).
* 시 39: 12 -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 히 11: 13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왜 베드로는 성도들을 거류민과 나그네로 불렀는가?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대다수는 실제로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1: 1). 더불어 이 표현은 세상에서 일시적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신앙관을 두고 일컷는 말이다.
이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본토민이 될 수 없고, 그들로부터 환란을 겪는 거류민이요 나그네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표현은 성도들의 영원한 고향인 하늘나라(천년왕국)임을 보여준다.
3]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육체'(사르키콘)은 단순한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육체에서 비롯된 정욕은 영혼 즉 하나님께서 부여하셔서 그리스도인이 소유하고 있는 영적인 삶을 어렵게 한다.
본문에서 언급된 '육체'와 '영혼'은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신분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에 합당한 영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타락된 악한 본능과 대적하여 싸워야만 한다(Stibbs, Caffin, Blum, Leighton).
* 롬 6: 6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롬 7: 23 -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 고전 9: 27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갈 5: 16-17 - ⑯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⑰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골 3: 5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성령의 은사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소돔과 같은 음란한 이 시대에 가장 소중한 은사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절제의 은사라 하겠다. 절제의 은사는 나의 영혼이 천국 문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죄에서 안전하게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사탄이 음란을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여 우는 사자 같이 택하신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다.
* 벧전 5 : 8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러므로 죄는 곧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요. 그들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허가 받은 청소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방어권을 포기하면 안 된다.
사사 삼손이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블레셋 군인들에게 두 눈이 뽑힌 채 옥에 갇히고 말았다. 삼손은 정욕을 절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쾌락을 위하여 사용함으로 형벌을 받은 것이다.
솔로몬 역시, 노년에 음란 마귀의 시험으로 이스라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비참하게 생(生)을 마감하였다. 그는 이방의 첩들에게 산당을 지어주고 그들과 함께 아스다롯과 같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다. 열상 11 : 3에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이것이 진실로 지혜(知慧)의 왕 솔로몬의 모습인가?
예전에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완공한 후에 기도할 때 하늘에서 번제물과 제물들 위에 불이 내려왔다. 대하 7: 1은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라 증거한다. 이러한 솔로몬의 타락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교훈은 정욕을 절제하고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다윗 왕도 음란의 영에 시험으로 밧세바와 간음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처절한 고통 중에 회개했다.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삼하 11: 2) 다윗 왕은 거기에서 눈을 돌이키고 멈추어야 했다.
신앙의 거장들이 모두 음란의 영에 넘어갔다. 사탄은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이르러 방심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타켓으로 삼아서 공격한다. 지금도 마귀는 음란으로 뭇 영혼들을 사냥하고 있으며 이 같은 현상은 천국 문 앞에서 비로소 끝이 날 것이다.
* 잠 6 : 26 -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토마스 아켐피스는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악의 밤을 지낸 사람은 비탄한 아침을 맞게 될 것이라 경고하였다. 이 시간에도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수많은 영혼이 음란 마귀에게 구원을 빼앗기고 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에덴동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믿음 안에서 경건에 힘쓰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한다.
* 히 12: 14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모든 성도들은 천성을 향한 나그네와 같은 여정길에서 심판의 그날까지 성결하게 내 영혼을 지켜야 할 것이다.
* 잠 6: 32 -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벧전 2: 12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성도들은 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하게 삶으로써 그들에게 바르고 선한 생활의 본을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 16).
물론,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부당하게 비방하는 일이 적지 않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려 할 때, 바사 왕 아닥사스다를 모반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었다.
* 느 6: 6 -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 도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을 거짓으로 교묘히 자기 사람을 삼는다는 비난을 받았었다.
* 고후 12: 16 -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그러나 느헤미야와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충성된 종들이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에서 빛이 되어 선을 행함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긍휼의 날에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할 것이다.
1]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이방인'은 본래 육체적 혈통으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은 비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물론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잡히지 않는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
'선하게'(칼렌)은 나타나는 행위뿐만 아니다.
* 마 13: 8 -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그 본성까지 옳은 것을 의미한다.
* 히 13: 18 -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2]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삶 가운데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고'(에포프튜온테스)는 '감시자'를 의미하는 '에포스테스'에서 유래한 현재 능동태 분사로 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함을 시사한다(Meyer).
* 벧전 3: 2 -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권고하시는 날'은 눅 19: 44을 반영한 것이다.
* 눅 19: 44 -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위로와 해방을 주시는 날'을 의미한다.
* 출 3: 16 -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 삼상 2: 21 -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또 '심판과 형벌의 날'을 의미했다.
* 출 32: 34 -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 시 58: 6 -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이러한 '권고하시는 날'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 이방인들이 회개하는 날이다(Kuhl, Calvin, Hunter).
Ⓑ 마지막 심판하는 날이다(Hart).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다(Moffatt).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이방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편(方便)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본문의 문맥으로 보아 첫 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Lenski, Stibbs, Bl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