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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예배란 말의 뜻
구약에서는 예배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자바’라고 하는데, 이는 ‘제사 드렸다’ 또는 ‘도살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곧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구약시대 ‘제사’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리고 조금 의미를 달리해 ‘아바드’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일했다’, ‘봉사했다’, ‘경작했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샤라트’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 역시 ‘봉사했다’, ‘섬겼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신약시대 예배행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외에도 표현상 여러 가지 용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상에서 밝힌 것들은 비교적 예배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신약에서는 예배라는 말이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 중에 헬라어로 ‘고누페테오’는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곧 하나님께 기도할 때나 복종할 때 취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높은 자들 앞에서 낮은 자들이 취하는 자세를 표현할 때에 사용된다. 다음은 ‘프로스쿠네인’이라는 말인데, 이는 ‘부복하다’, ‘경의를 표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된다. 또 하나는 ‘라트류오’라는 용어인데, 이것은 조금 의미를 달리 해서 ‘봉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봉사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신에게 봉사한다는 종교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구약이나 신약에서 예배라는 단어의 뜻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예배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희생’과 ‘봉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배에 대한 일반적 관념
일반적으로 예배에 대해 비교적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단순하게는 예수를 믿는 신자가 주일 아침에 교회당에 가서 소위 대예배라는 의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곧 주일아침에 정해지 순서에 의해 묵도하고 시편을 교독한 후 신앙고백을 하고 찬송과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헌금을 한 후에 목사의 설교와 축도를 받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예배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교회법에 명시된 예배모범에 따른 의식에 참가하는 것을 예배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구약시대 제사처럼 교회당을 성전으로 삼고 헌금을 제물로 삼아 목사가 제사장이 되어 종교의식을 집례하는 것을 영적 예배 곧 산 제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고 영원한 제물이 되어 영원한 성전에서 영원한 속죄제사로 드리셨다. 따라서 구약의 모형적인 의식법 곧 제사법을 완전히 이루어주셨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새로운 방법의 영적 예배 곧 산 제사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신약교회는 예배의 4대 요소라고 하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헌금을 통한 의식절차를 ‘예배’라고 한다. 여기에 세례와 성찬예식을 곁들이기도 한다. 이는 신약시대 예배에 대한 신학적 미숙함이 낳은 과오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종합해 보면 대개가 예배를 의식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전통적 예배의식의 관습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특히 신비주의자들의 예배는 또 다른 면이 있다. 이들의 예배는 한정된 시간에 성령이 임하여 성도간에 깊은 교제를 가지는 소위 신령한 행위를 소위 ‘영적 예배’라고 한다. 곧 예언이나 방언 또는 계시와 환상 등의 신비한 현상을 동반한 집회를 영적 예배라고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예배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일반적인 생각들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 너무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께 대한 신자의 신앙적 태도라고 한다면 예배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므로 신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단순하고 명료해야 하지 않는가.
창세 이후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곧 제사 형태는 많은 변천 과정을 거쳐왔다. 비록 예배의 형태는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 예배의 정신과 의미는 예나 오늘이나 전혀 변함없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드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영원토록 드려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올바른 예배란 무엇일까.
구약시대의 예배
구약시대 예배 곧 제사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원리에 따른 결과다. 구약시대는 고대 족장시대와 국가 형성시대 또는 역대 왕정시대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그런데 그 시대마다 예배의 형태가 점진적으로 변화되었다
첫째, 고대 족장시대의 예배
고대 족장시대는 창세 이후부터 모세 이전시대까지를 말한다. 이 시대에 많은 족장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기록들이 구약 창세기에 주로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주로 돌로 제단을 쌓고 양이나 새와 같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렸다.
특히 하나님께서 가인이 농사한 곡식을 제물로 드린 제사는 열납치 않으시고, 아벨이 기른 양으로 드린 제사는 열납하셨다. 그 이유는 ‘제사’라는 것이 희생이나 도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피 흘림이 없는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치 않으시고, 피 흘림이 있는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다.
그리고 노아는 홍수 심판 후에 돌로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이나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드린 향기를 하나님께서 흠향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조인 아브라함도 하나님 여호와께서 언약을 세우실 때에 삼 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지시하신 곳에 단을 쌓고 이삭을 대신해 준비된 수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삭도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때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야곱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후,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부어 제사를 드리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족장들의 예배 곧 제사는 대부분 족장 자신들이 돌로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짐승을 잡아서 드린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둘째, 국가 형성시대의 예배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되는 시대는 모세로부터 다윗이 왕국을 세워 다스릴 때까지를 말한다. 이 때는 모세와 아론의 자손들을 기름을 부어 제사장을 삼아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그리고 기타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였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성막과 희막을 세우고 증거궤를 비롯한 모든 기구들을 거룩히 구별한 후 번제단에서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곧 번제물은 소나 양이나 새로 드리고, 소제물은 고운 가루를 태워 드렸다. 이렇게 국가 형성시대에 드린 예배 곧 제사는 제사장이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드렸다. 물론 모세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제사장이 되어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나 그 후 사사시대에도 제사장들에 의해 짐승을 잡아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사사시대 말기에 언약궤가 벧엘에 있을 때,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제사장이 되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엘리와 사무엘도 역시 제사장이 되어 성막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 때에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제물을 먼저 억지로 취하므로 엘리 가문이 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무엘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을 때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므로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 그런가 하면 제사장도 아닌 사울 왕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급하다는 핑계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가 사무엘로부터 책망과 저주를 받았다.
그 후 다윗 왕 시대 역시 하나님의 언약궤가 휘장(揮帳) 가운데 있었고 제사장들은 그 곳에서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이렇게 모세시대로부터 다윗이 왕국을 세워 다스리던 이스라엘 국가 형성시대의 예배 곧 제사는 아무나 어디서나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막에서 드려야 하는 것이 그 특징으로 나타난다.
셋째, 역대 왕정시대의 예배
이스라엘 역대 왕정시대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 시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후 부활하실 때까지를 말한다. 곧 솔로몬 왕 시대는 예루살렘에 건축한 하나님의 전에서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렸다. 곧 솔로몬 왕이 성전 공사를 마치고 언약궤를 옮긴 다음 많은 소와 양을 제물로 삼아 제사장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낙성식을 거행케 했다.
그 후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된 다음, 남쪽 유다 왕 아비야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풍속을 따라 제사장을 삼은 일을 책망했다. 그리고 남쪽 유다는 아론의 자손과 레위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 조석으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여호와께서 남쪽 유다와 함께 하실 것과, 북쪽 이스라엘이 형통치 못할 것을 예고했다.
그리고 북쪽 여로보암은 백성이 남쪽 르호보암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각각 벧엘과 단에 두도록 했다. 그리고 산당을 짓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아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게 했다. 이러한 제사는 합당치 못한 제사 이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책망과 진노를 당했다.
결국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그 무렵 남쪽 유다는 히스기야 왕이 즉위하여 성전을 수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자손들에게 명하여 제사를 회복하게 하였다. 그 결과 남쪽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 왕과 더불어 기뻐했으며 나라도 번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쪽 유다가 바벨론 포로 후에 파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방 민족들의 온갖 방해 속에서도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자손들이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예수께서 메시아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를 고비로 예배에 대한 형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수께서 출생하여 결례의 날이 되자 율법대로 아기 예수를 주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들로 제사를 드리셨다. 그리고 열두 살 되던 때도 부모를 따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일이 있다. 그리고 삼십 세 후에 사역을 하실 때에도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유월절을 잡수시기도 했다. 이렇게 솔로몬 왕 때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까지의 역대 왕정시대의 예배 곧 제사는 제사장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구약시대 예배를 정리하면,
먼저 고대 족장시대의 예배는 짐승을 제물로 해서 족장들이 돌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다음 국가 형성시대의 예배는 짐승을 제물로 해서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 다음 역대 왕정시대 예배는 짐승을 제물로 해서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짐승을 제물로 드린 것은 족장시대를 비롯한 세 시대가 모두 같으나 제사를 드리는 자는 고대 족장시대만 다르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장소는 세 시대 모두 각각 다르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예배 곧 제사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시대의 예배
신약시대는 하나님께 예배를 누가, 어디서, 무엇으로 드리는가 그리고 그 예배의 결과는 어떠한가. 신약시대 예배는 구약시대 예배와는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곧 예수께서 가르치며 친히 드리실 뿐만 아니라 사도들로 가르치게 하신 예배는 신약시대 성도들이 드릴 예배다.
첫째, 예수께서 드리신 예배
구약시대 예배는 예수께서 드리실 참되고 신령한 예배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구약 시대에 드렸던 제사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했다. 그것은 제물과 제사장과 성전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드리실 참되고 신령한 예배에도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꼭 구비되어 드려져야 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드리신 영원하고 참된 신령한 예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곧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다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드리신 신령한 예배에도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다 구비되어 있음을 확증해 주고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했다. 세례 요한도 예수에 대해 증거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임을 증거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몸이 성전이라는 사실도 밝혀 주셨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때,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을 보고 증거하였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증거하였다.
결국 예수께서 하나님께 드리신 신령한 예배는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원한 제물이 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성전이 되시며, 하늘로 승천하심으로 영원한 대제사상이 되셔서 영원한 제사 곧 예배를 드리신 것이다.
둘째,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
신약시대 사도 및 성도들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예배를 근본적인 근거로 삼는다. 그것은 사도 및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지체를 이루는 교회가 예배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사도 및 성도들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게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나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예배에 의존적으로 드려진다. 곧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따라 그의 신령한 지체가 되는 사도나 성도들의 신령한 영적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신약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에 대해 밝혀 준 바가 있다. 그는 신약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면서 이를 영적 예배라고 하였다. 그런데 산 제사로서의 영적 예배에 대한 전제조건을 앞서 밝혀 주었다. 곧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임을 하듯이 예수께서 타락한 죄인을 구속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신 일이다. 바울이 이러한 사도나 성도들의 영적 예배의 대전제조건을 밝혀주면서 산 제사로서의 영적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였다.
영적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세 가지 원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이고, 다음은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는 일이며, 그 다음은 은혜대로 받은 은사를 따라 봉사하는 삶이다.
다시 말하면 영적 예배 곧 산 제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은 그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동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살아간다는 뜻은 그와 함께 옛 사람은 죽이고 새 사람은 살리는 삶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육의 소욕은 죽이고 영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삶이 곧 영적 예배 곧 산 제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사도와 성도들의 신령한 예배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삶을 가리킨다.
바울은 영적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랑의 덕을 세우라고 권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랑으로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용납하고 짐을 지며 덕을 세우라고 권한다. 곧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건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사랑하므로 덕을 세우라고 권한 것이다. 그리고 영적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을 말한다. 따라서 영적 예배의 방법이 지체된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면,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삶 자체가 신약교회 사도나 성도들이 드리는 산 제사 곧 영적 예배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매 주일 아침마다 교회당에 모여 목사의 인도로 진행되는 소위 예배라는 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배라기 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들의 모임이므로 일명 ‘경건회’라고 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모여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라 말씀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선한 일을 도모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성도 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모이는 ‘경건회’를 통해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된다. 곧 말씀으로 분별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은혜를 깨닫고 그 영광을 찬송하며 믿음이 약한 자들의 짐을 담당하기 위해 연보에 동참하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신약시대 예배란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른 천국 백성의 신령한 영적 생활이다.
구약시대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제사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그러나 신약시대 제사 곧 예배는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영원한 제사에 의해 실체적인 산 제사로서의 영적 예배의 삶인 것이다.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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