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3-3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육적 가족보다 영적 가족을 앞세워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참조: 로마 8,1-5; 갈라 4,29). 사람이 행복한 것은 의롭고 거룩한 사람들과 육적 가족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과 행실을 순명하는 마음으로 본받으며 익혀나가기 때문이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육신을 잉태했다는 사실보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더욱 복된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라고 외치던 이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잉태하였을 때보다 더 행복하게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모시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라는 친족관계조차 마리아에게 아무런 유익도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참조: 마태 3,8-10; 루카 11,27-28; 로마 9,1-8).(아우구스티누스 『거룩한 동정』 3,3.)
마리아도 아버지의 뜻을 실행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칭송하신 것은 그의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육신을 낳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그대가 복되다 일컫는 내 어머니도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셨기 때문에 복되시다.’ 곧, 그 여인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우리 가운데 사셨기 때문이 아니라(요한 1,14 참조), 그 여인이 자신을 지어 내시고 자기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냈기에 복되다는 것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해』 10,3.)
예수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당신 가족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가득하신 그분께서는 마리아를 이 가족 구성원에 분명히 포함시키셨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선하시고 거룩하신 스승이신 예수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한테 알려드린 이른바 사적이고 개인적인 어머니의 이름마저 하찮게 여기셨습니다. 그것은 천상 가족에 대비되는 지상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서간집』(래투스에게 보낸 편지) 243,9.>
참고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며,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교부입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가 아우구스티누스가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세례를 받고 교회의 가장 훌륭한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포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도시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둔 수도생활을 하면서 주교좌가 비어 있는 도시는 절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도생활을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러 ‘히포’라는 도시에 갔습니다. 히포에는 주교가 있어서 안심하고 갔는데, 가서 보니 나이가 많고 그리스어가 모국어인 주교가 어눌하게 라틴어로 말을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미사에 참석한 것을 알고 주교가 나에게도 젋은 사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신자들이 우루르 일어나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끌어다가 제대 앞에 꿇어 앉히고 사제품을 주라고 외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자 신자들이 ‘나같이 위대한 사람에게 고작 사제품이냐!’고 엉엉 우는 줄로 오해하고, ‘사제품은 주교품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라’고 달랬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엉엉 운 것은 이제 오도가도 못하게 붙잡혀버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서 운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쩔 수없이 사제품을 받고 나중에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429년 5월 반달족이 아프리카에 침입해서 히포를 14개월 동안 포위했습니다. 포위당한 지 석 달동안 아우구스티누스는 열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병실 벽에 참회 시편을 붙여 놓게 했으며 430년 8월 28일 죽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 주시도록 입으로만 주님을 찬미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르 주님을 찬미하고 실천과 삶으로 주님을 찬미합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다”(마태 12,50; 루카 8,2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