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은 5년 간 덕후의 나라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 그 나라의 언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희진은 자기가 살던 곳과 문화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희진은 한국에서 1번, 덕후의 나라에서 1번. 총 2번의 대학교를 다닌 셈인데, 학생들의 자기소개 방식부터 달랐다.
희진의 머릿속에 저장된 자기소개 템플릿은 “안녕하세요, 저는 심리학 전공입니다.” 그리곤 누군가 실례가 안 된다면~ 이라고 운을 띄우며 슬며시 학교를 물어온다면 “아, 대학은 00대학교 입니다.” 였다면, 그 나라의 인사법은 이런 식이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000입니다.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희진은 그동안 자신의 소속을 밝히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혀왔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각자의 관심사를 궁금해했다. 요즘 뭘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 소개하는 건 그들의 당연한 문화인듯 했다. 어렸을 적부터 “I’m interested in blah blah” 훈련을 받았으니, 스스로의 관심사를 자연스럽게 개발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희진에게 그곳 사람들은 덕질 분야를 최소한 하나씩은 갖고 있는 ‘덕후의 나라’였다.
다만 이 인사가 영 어색했던 희진에게 이 덕후 문화는 한동안 고역이었다.
“암 인터레스트드 인,,,,엄,,,워칭 넷fㅡㄹ릭스?”라고 두루뭉술 대답하면, 어떤 작품이 재미있는지, 어떤 배우를 좋아하는지, 그 장르를 좋아하는 건지의 1단계 질문부터 어떤 장면이 감명 깊었는지, 왜 좋았는지 등등 줄줄이 소세지 질문이 희진을 휘감았다.
다시 돌아보면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 “그냥 재밌어. 볼만해. 재밌던데?”라고 짧게 대답하고, 한 주제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눈 경험이 많지 않았던 희진은 항상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희진은 굳이 관심사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쇼츠 회전문에 갇혀 생각 없이 웃다 보면 희진은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희진이 관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행복 개론’이라는 교양 수업이었다.
“순간적 영감은 정신적 설.사.입니다. 결국에는 멈춰야 돼요.”
교양 수업답지 않은 날것의 워딩이 희진에게 꽂혔다.
“오랜 기간의 관심 없이 일시적인 영감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성취는 그리 많지 않아요 여러분. 행복의 원천은 관심입니다. 딴 생각이 들지 않는 몰입의 순간이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경험하게 해요. 마음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 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희진은 끄덕였다. 그동안 어디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 정체성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왔는데, 관심사 하나 없는 스스로의 삶이 앞으로도 쭉 행복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동안 무언가에 깊은 관심을 두고 살아오지 않은 터라 삶이 지루했고, 끊임없이 관심사를 추천해 주는 알고리즘이 희진의 가장 큰 행복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희진의 지위는 오랜 노력을 통해 성취한 소중한 것이었지만, 그게 과연 오랜 관심의 결과물인가? 라고 물으면 희진은 또 한번 말꼬리를 흐리게 될 것 같았다.
희진은 그날의 분뇨 충격요법으로 덕후의 나라에 완벽히 스며들기 시작했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친구들에게 관심법을 설파했다. 이런 저런 관심사를 찾으러 다니느라 성적표에는 F가 간간히 등장했지만… 행복해지는 법을 제대로 배운 희진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만큼은 유창한 언어를 뽐내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첫댓글 메시지가 좋고 글도 따뜻하다. 순각적 영감은 설사다. 인상적. 뒤에 풀어진 메시지가 좋았다. 다만 덕후의 나라가 어디인가라는 궁금증이 계속 남아있었다. 굳이 몰라도 되는 설정이지만 궁금증이 해소가 안 됐다. 관심사를 물어보는 게 당연한 문화를 희진이 직접 겪는 좀 더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설명해주면 좋겠다. 교양 수업 부분 마지막 두문단을 좀 더 친절하게 상황묘사로 풀어주면 좋겠다. 도입을 좀 더 줄이고 뒷부분을 풍부하게 풀어도 좋을듯
플롯이 좋았다. 주인공의 현재상태, 소속으로 자기소개하는 사람. 문제상황1 적응 못하고 변화하지 못함 > 극적 교양수업들음. 첫줄에 덕후의 나라 >> 궁금증 유발. 관심사로 자기소개하는 세계관이 재밌었음. 출신이나 스펙으로 소개하는 경우 많은데 좋아하는 분야에서 유창함을 갖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통찰력 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