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은퇴가 꿈이지만 정년퇴직은 하고싶어. – 유인규
대학 졸업과 함께 입사하고 나서 딱 3년이 지나가던 겨울이었다. 조기은퇴를 결심한 것은.
일주일 중에서 최소 5일은 생계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현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을 때 좌절감이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왔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그 현실이 30년이 지나 내 머리가 하얘지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미래라는 합리적인 의심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사무실만 한 번 둘러보더라도 동료들 사이에서 10년 뒤 내 모습, 20년 뒤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확정된 미래가 너무 슬펐다.
처음부터 일이 아주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업무는 종류도 다양하고 규모도 1~2백대는 훌쩍 넘어가는 고객사의 IT시스템들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지 감시하는 외산 모니터링 솔루션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일반적인 업무를 할 때는 책으로 된 매뉴얼을 활용해도 충분하겠지만 알 수 없는 에러가 발생하거나 특히 장애 상황을 처리할 때는 구글을 잘 검색하는 것이 중요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해외 엔지니어들이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다, 무엇을 시도해보라 하는 등 책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들을 공유했다. 장애 현상을 검색하면 수많은 글들이 쏟아졌는데 이건 다른 상황이고, 이건 이미 시도해봤고, 이건 해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리스크도 크고, 거를 것은 빨리 걸러가면서 딱 필요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몇 번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다른 고객사를 지원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주말에도 야간에도 갑자기 호출되는 일이 늘어났다. 그래도 나는 매우 필요한 사람이구나 싶었고 일은 보람찼다.
시간이 지나면서 잘한다더라 하는 피드백은 서서히 부담이 되어갔다. 한 명이 조치를 하는 동안 열 명이 뒤에서 그 모습을 쳐다보는 게 일상적인 장애 현장과 기대치를 충족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점점 스트레스로 변해갔다. 시스템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졌고, 모니터링 솔루션은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새로운 장애는 끊임없이 발생했고, 구글에 올라오는 조치 사례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좋은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헌신이 필요했다.
결국 3년쯤 지나면서 나에게는 계속해서 쏟아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또 장애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전투의 현장은 무덤덤했고, 상황의 종료는 허무했고, 나의 상태는 무기력했다. 그땐 번아웃이란 말이 없었다.
겁이 났다. 잠깐도 아니고 이런 삶을 계속해서 살 수는 없다. 희망이라도 가져 볼 청사진이 필요했다. 조기은퇴를 목표로 삼았다. 그땐 파이어족이라는 말도 없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생각했다. 노동자의 삶은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은 다음 주에 일하기 위해 쉰다. 은퇴자의 삶은 날 위해 온전히 한 주를 쓴다. 노동은 현실이고 은퇴는 꿈이다.
발을 딛고 서있는 현실에서 올려다본 꿈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까마득했다. 하늘을 당겨 내릴 수는 없으니 차곡차곡 땅을 높여야 했다.
은퇴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텐인텐이라는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가계부도 올리고 재무계획도 올리고 소소한 일상도 공유하는 LG에 다니는 직원이 운영한다는 다음카페였다. 맞벌이부부 10년에 10억만들기라는 뜻의 텐인텐처럼 조기은퇴를 위해서는 역시 돈을 모아야 했다. 재무계획표를 만들었다. 은퇴시점으로 45세를 목표로 잡았다. 목표를 달성한 미래를 눈 앞에 그렸다. 그래 일단 45세까지는 일하자. 그리고 그 다음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더 빨리 모으려면 더 많이 벌어야 했으므로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옮겼다. 가계부를 작성했다. 월말이 되면 마치 회사처럼 ‘이번 달 지출은 프리징합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다음 달에 쓰세요.’라고 아내에게 선언했다. 삶의 가치에서 일의 의미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그보다는 매년 계획한 숫자가 만들어지는 엑셀표의 기록이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되었다. 까마득히 멀리 있는 은퇴한 미래가 목표가 되니 일하는 현재는 그저 견뎌내야 하는 덜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다. 목표를 위해 달리는 지루한 날들이 이어졌다.
돌돌돌. 스포츠카 모양의 비디오테이프 되감기 기계가 테이프를 처음으로 되감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기간동안 시대가 변했고 일에 대한 개념이 예전과 달라졌다. 일과 삶의 조화, 받는 만큼 일하기, 조용한 퇴사 같은 말에 사람들은 공감했다.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은 덜 심각해지고 가벼워졌다. 일에 대해 당돌하게 바뀐 태도를 세상이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솔직하게. 금기 없이.
조기은퇴의 꿈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회사는 전쟁이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고, 내 버킷리스트 대부분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일도 월급도 동료도 주는 회사는 나름 고마운 곳이라고 열심히 정신승리를 하며 버텨냈다.
시간은 좀 초과했지만 이제는 조기은퇴는 아니어도 그냥 평범한 은퇴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되니 예전에는 노동이 현실이고 은퇴가 꿈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은퇴가 현실이고 노동이 꿈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었고, 자율출퇴근제나 재택근무제도 제법 활성화되었다. 상사들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두기에는 요즘 회사도 일도 많이 좋아진 것 아닌가. 자아가 분열된 것처럼 내 마음 나도 모르겠고, 갈팡질팡하면서 상반된 두 개의 꿈을 꾸고 있었다.
헷갈려 하는 나를 이름도 거창한 남성쿠킹사교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은퇴한 형이 말린다. 그냥 나가라고 할 때까지 계속 회사 다녀.
아니 저 할 거 많다니까요. 자기는 그렇게 고상하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서.
예상퇴직금이 얼마나 될까? 아 퇴직금 조회 시스템을 자꾸 열어보면 인사부에서 부서장에게 연락이 간다고 하던데. 옆자리 선배가 퇴직을 하기 3개월전부터는 야근을 줄기차게 해야 한다는 팁 아닌 팁을 준다. 퇴직금 계산에 유리하다나 뭐래나.
"좋은 퇴직 프로그램 돌면 나 회사 그만둘 수도 있어." 아내에게 살짝 언질을 줬다.
"알겠는데 퇴사하더라도 건강보험은 어떻게 할지 해결하고 퇴사해. 계획을 딱 내놔. 시급제 요양보호사를 하든. 아는 친구 회사에 들어가든. 그 전까지는 안돼."
조기은퇴를 목표로 삼았다가 정년퇴직을 꿈꾸게 된다. 쉽지 않다.
첫댓글 아 어떡해. 내가 봐도 글이 너무 좋아졌어.
글이 너무 좋아졌는지 아닌지는 월요일 첨삭 때 공개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유인규님! 말씀처럼 글쓰기 성공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내용의 흐름과 짜임새, 표현들을 더 좋게 하시려고 고민한 퇴고의 흔적이 보입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