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1-11
because of (...때문에)가 아니라
in spite of(...에도 불구하고)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어떠한 일이 잘 되어지지 않았을 때에 그 일에 대하여 시비(是非)를 가리게 되고, 그럴 때 다른 사람에게 그 원인을 돌릴 때가 있다. 만약 자기로 인하여 그와 같은 일이 초래되었을 때면 갖은 너스레를 떨며 비껴가려고 한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변명과 함께 자기에게 보호막을 치는 자기방어기재(自己防禦器材)가 본능적이다 시피 작용하게 된다. 나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기보다는 둘러대기 바쁘다. 천주교에서 구호(口號)로 부르짖던 “내 탓이오”라는 말이 확 와서 닿는다. 젊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노는 놀이 가운데 그런 것을 보았다. 둘러앉아서 어떤 주제로 말들을 하다가, 진행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그것에 해당되는 사람을 손으로 가리키라는 말을 하면 여럿이 엇갈려 산만하게 다 각각의 사람들이 지목(指目)되기 보다는 몇 사람 혹은 한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가리켜 지는 그러한 놀이이다. 우리의 둘째손가락도 나보다는 앞의 상대방을 가리키기에 손쉽다.
우리는 이따금씩 대안학교(代案學校)라는 말을 듣곤 한다.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적절한 대안을 내놓으시오”라는 말도 한다. 손가락질하고 질타하기만 하는 “무엇때문에(because of) 그렇게 됐어?”라기보다는, 어느 동료의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우리 다른 일들을 더 모색해보자” “우리 뜻을 모아 다시 심기일전(心機一轉)해 보자”라고 말을 할 때에 듣기가 좋다. 이집트의 바로왕의 독재에서 항거하고 벗어난 이 후에 모세가 주동이 된 이스라엘인들이, 점령하고자 하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그 곳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하여 각 지파(支派)에서 한 명씩 선발하여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었다. 정탐 후에 열 명이 보고하기를 그곳은 매우 풍요로운 곳이기는 하나, 그 땅의 사람들은 강하여 마치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떼 같으며, 성은 견고하므로 우리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들이었다. 그러나 두 명은 같은 상황을 보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그 땅을 점령하자, 능히 이기리라는 자신에 찬 태도였다(민수기 13장). 그 둘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은 계속 진행하여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여리고성을 함락시켰다(여호수아 6장).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부정적인 말 같으나, 적어도 이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앞에 놓여 있는 산을 넘고서 하는 말이거나, 넘으면서 다음 눈앞에 보이는 산을 보며 하는 말이리라. 그런데 무엇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오르려다가 주저앉은 자의 말이다.
우리들은 문명 혹은 문명화(文明化)된 사회 속에서 많은 것들을 향유(享有)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우리들의 필요조건의 충족에 머무르기가 쉽다. 문명이 우리들의 모든 사고(思考)마저도 지배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한층 더 점진적으로 의식(意識) 혹은 더 나아가서는 의식화(意識化)가 요청된다. 그런 곳에서 한 곳에 그저 머무르는 때문에라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도약적인 아우성 소리들이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공동체(共同體)는 집합체(集合體)가 아니다. 의식을 축으로 한 집성체(集成體)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공동체 이야기
step by step (한걸음 한걸음)
가을은 떠나가는 계절이다. 우리를 감쌌던 온갖 것들이 벗겨져 나가고, 받치고 섰던 나목(裸木)만이 뿌리를 박고 자리 지키기를 한다. 삭풍(朔風)을 이기려고 유유히 서있는 나무들도 다 가시지 않은 가을바람에 흔들거리는 순식간은, 손짓할 마지막 남은 잎을 지키려고 안간힘이다. 그것마저도 잃고 나면 뼈대만이 옹그리고 서있게 될 것이다.
뇌졸중(腦卒中)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가운데 계신 선생님께서 매일 여러 시간을 들여 몇 킬로미터씩의 걷기 운동을 하신다. 그 선생님의 걷는 모습을 보면서 step by step 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 선생님은 먼 거리인데도 한 걸음 한 걸음 세다시피 하며 발을 내어 딛는다. 오늘은 겨울에 드는 입동(立冬)이다. 올 한해도 이른봄부터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선다. 삶의 여름 가을을 지나온 선생님과 막 이제 청춘에 들어선 내가 행보(行步)를 같이한다. 아니 동행(同行)이라는 말보다는 뒤따르는 미행(尾行)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누구를 따르거나 함께 걷는 길은 쉽지가 않은 고행(苦行)이다. 다른 이와 같이하면서 굳이 힘든 일을 늘어놓으라면 사람들의 장황한 말을 예사가 아닌 귀담아 듣는 것과 다른 사람과 한결같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어가면서 걷는 것이다. 나는 은근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재차 배운다. 오늘은 집안에 계시기만 하던 자매께서 가을여행을 하고싶다고 말하였다. 여행까지는 못되지만 우리는 오는 토요일에 군내(郡內)에 있는 칠백의총(七百義塚)에 가보기로 하였다. 마음먹은 대로 맑은 날씨이지만 간간이 부는 바람과 함께 그곳에 갔다. 옛 건물들이 앞에서부터 뒤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겹겹이 서있고, 이름처럼 칠백 여명이 함께 묻혀 커다란 한 무덤을 이루고 있는 칠백의총(七百義塚)은 맨 나중의 산처럼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보도블럭을 따라 앞에서부터 안쪽으로 보아갔다. 늦게늦게 뒤따르는 선생님을 앞서며 아이들과 같이 촐랑대듯 나아갔다. 빨리 가는 걸음보다도 늦게늦게 같이 맞추며 떼어놓는 발 거름이 더욱 힘들다. 결국에는 선생님과 같이 느릿느릿 무슨 생각에 빠진 사람처럼 걷지를 못하고 휙 하니 겉 할 듯이 보고 와서 앉아서 쉬는 꼴이 되었다. 정작 쉬어야 될 사람은 우리보다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선생님인데...... 다 돌아보고 와서 쉬는 자리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 돌아보고 계단 계단을 내려 설 때에 혼자 내려서지 못해서 안내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았노라고 뒷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지나쳐 가는 얘기가 그저 그렇게 들리지 않고, 앞으로 선생님과의 걸어갈 이야기로 들렸다.
한 걸음 한 걸음은 빠른 걸음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다. 제멋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어른들은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너희들도 나이 들어봐라” 이제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다음의 성경에서 말하는 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 21:18).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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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문창수
이유범
김귀숙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2001년 8월 11일에 경기도 시흥에서 오신 차현선 교회 사모님께서 10월 23일에 집으로 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 2001년 11월 10일에 새터공동체에서 가까이에 위치한 금산『칠백의총』유적지에 다녀왔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전수현.성남교회안수집사회.유계순.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6인).그리스도의집.이정애.대덕교회소년부(윤창섭외4인).주식회사EG(이성철).어귀녀.김귀숙김대학.채윤기(박현실).대덕교회(한도식)
왕지교회.살림교회(박상용).예수마을.박종만.강변교회(김민우).대덕교회.김영창대전서노회.옥천동부교회.진수정.김현석.전몰군경미망인회금산군지회(박귀례.강순정.최길애).찬미교회.유계순.한삼천교회.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최길애외2인).문창수.성화원(양인기).이종국유인숙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