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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올레꾼
천남경
“제주도의 푸른 밤 그 별 아래로~~ 떠납시다아~~~”
산악회 카톡방에 공지사항이 떴다. 제주도! 벌써 가슴이 설렌다. 얼른 날짜부터 따져보니 다행히 특별한 일정이 없다. 볼 것도 없다.
“무조건 GO, 못 묵어도 GO!”
바로 답장 날렸다. 일등이란다. 산악회 행사라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참석이다. 집안의 중요행사와 겹치지만 않는다면.
직장 초년생 시절, 오로지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어설프게 모였지만 22년 역사를 자랑하는 직장산악회이다. 처음엔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으니 산에도 자주 다니고 회비로 등산학교도 보내주고,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었다. 중국 황산, 동남아 최고봉인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산 등 해외원정산행도 가곤 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처럼 퇴직자도 생겨났다. 자연히 모임이 활성화될 수 없었고 ‘산악회’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산행 횟수도 뜸해졌다.
다소 침체된 시기도 있었지만, 산을 사랑하는 순수함 하나로 모인 처음 그 마음들은 세월이 지나도 바래어지지 않았다. 처녀 총각 시절에 만나 이제는 다들 가정을 이루었고, 그 중 회원 커플도 생겼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족 동반 행사도 가끔 했더니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다 정리되고 남은 인원이 열 명 남짓, 그 중 이번 제주도행에는 7명이 함께 했다. 여 셋 남 넷, 의리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7인의 방랑자.
드디어 출발이다! 다들 바쁜 핑계로 자주 못 만난 탓에 만나자 마자 얼싸안고 찐~한 인사를 나누었다. 평소 덤덤하고 무뚝뚝한 나도 이 사람들만 만나면 나도 모르게 살가운 행동과 말투가 절로 나온다. 남자 회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애정이 담뿍 담긴 포옹과 악수를 주고 받는다. 가족 이외에 가장 편하고 군고구마 같은 정이 느껴지는 사람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공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제주공항에서 바로 렌트카 인수받아 숙소로 가는 길에 애월 더럭분교에 들렀다. 무지개 학교라고 할까? 건물들이 온통 색색깔 고운 옷을 입고 있었다. 무지개색 건물과 함께 어우러진 앙증맞은 꽃들, 천연잔디, 마치 동화의 한 풍경 속에 서 있는 듯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였다. 학교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잠시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다음 일정은 ATV(4륜 오토바이크) 타기. 관광지에서 흔히 타는 평지에서가 아니라 숲속 언덕과 해변길 따라 울퉁불퉁한 땅의 질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신나게 달렸다. 해외 원정부대를 방불케 하는 멋진 군복에 헬멧까지 쓰고서 다들 동심으로 돌아가 웃음과 환호성. 오랜만에 질주 본능이 되살아난 남자들은 한 타임이 너무 짧아 아쉽다며 기어코 한 번씩 더 돌고왔다.
탁 트인 시야 가득 펼쳐진 제주의 저녁 풍경을 감상하며 서귀포 안덕면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바로 저녁식사 준비에 돌입. 우리는 항상 전용요리사를 달고 다닌다. 자격증은 없지만 음식솜씨는 가히 일품인 자타공인 남자요리사다. 칼쓰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다. 여자들은 걸리적거리니 뚝 떨어져서 시키는대로 보조나 하란다. 넵! 셰프님! 즉석에서 뚝딱 끓여낸 얼큰 김치찌개에 알뜰총무가 세심하게 준비한 반찬들로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다들 시장한 터라 숟가락질이 바쁘다. 술잔들이 오가고 숟가락이 부딪히고 웃음들이 터져 오르고...... 이보다 더 훌륭한 만찬이 세상 어디 있으랴.
행복한 만찬 후 산책길에 나섰다. 마침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멀지않은 곳에 있다 하여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쉬멍놀멍(‘쉬면서 놀면서’의 제주 방언) 여유롭게 걸었다. 어둠 속에 웅크린 산방산의 거대한 위용이 자못 두렵기까지 하다. 입구가 닫혀있어 발길을 돌리려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부르는 듯 홀린 듯, 막아놓은 철책 옆을 비집고 용머리 해안 쪽으로 들어갔다. 졸지에 7인의 무법자! 시커멓기만 한 바다와 바로 옆으로 발을 덮쳐오는 파도, 손 끝으로 차갑게 전해오는 층층절벽의 섬세한 굴곡, 한 밤의 무법자들을 꾸짖는 듯 밤바다는 공포의 소용돌이였다. 휴대폰 불빛을 비춰가며 간신히 서로 의지한 채 해안을 돌아나왔다. 모두 바짝 긴장해 용을 쓰느라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득의만면한 웃음들을 주고 받으며 땀을 훔쳐냈다. 스릴 만점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용머리해안의 일출 구경 나갔다. 2박 3일 짧은 일정이라 금쪽같은 시간들을 낭비할세라 잠시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다들 열심이었다. 전날 밤 어둠의 공포 속에서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장관이었다. 용머리 해안은 언덕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수천만 년 쌓이고 쌓여 형성된 사암층 절벽이다. 거기에다 해안 절벽과 파도의 오랜 세월 눈물겨운 사랑의 흔적으로 생겨난 위대한 자연의 예술품이다. 수천만 년 쌓인 이야기들이 세월 속에 묻힌 채 오늘의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했다. 그 절경을 황홀하게 어루만지며 떠오르는 태양이라니! 저도 모르게 다들 탄성을 질러댔다. 파도에 신발이 젖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마냥 풀쩍풀쩍 뛰며 팔을 높이 휘두르며.
둘째 날은 마라도에 들어가기로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안뜬다고 했다. 허탈한 발걸음 뒤로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송악산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감귤막걸리에 해산물, 파전으로 간단 요기하고 있으려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쏙 나왔다. 그래도 마라도 배는 안뜬다 하여 다음 일정인 제트보트 타러 갔다. 바다 위를 달리는 전투기라 불리는 제트보트는 맹속질주에 360도 꺾기회전 등 짜릿하고 스릴 넘친다는 설명에 좀 겁이 나기도 했다. 양 손잡이를 꼭 잡지않으면 바다 속으로 튕겨나갈 정도의 속도에다, 위로 솟구쳤다 급정거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통에 내리고 나니 온 몸이 얼얼하고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하도 엄마야~~ 고함을 질렀더니 목까지 다 쉬어버렸다.
늦은 점심을 먹고 ‘외돌개’에 들렀다. 바다 가운데 외롭게 서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높이 20m의 바위기둥이란다. 최영 장군과 얽힌 ‘장군석’전설과 ‘할망바우’의 전설 속을 거닐 듯 천천히 산책하며 바닷가 절경을 감상했다. 해가 많이 짧아졌는지 금새 어둑어둑해진다. 땅거미가 슬금슬금 내려앉으며 손을 잡는다.
근처 재래시장에서 푸짐하게 장을 봐서 중문단지 내 숙소로 들어갔다. 오늘 메뉴는 삼겹살 파티. 전용셰프께서 마지막 만찬을 또 거하게 준비하신다. 삼겹살에 닭갈비, 전복구이까지 육해공군 총 출동하셨다. 쌈을 한 입 가득 볼이 미어터지도록 밀어넣고서는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서로 쳐다보고 웃어가며 만찬을 즐긴다. 먹는 즐거움 또한 삶의 커다란 위안이다. 먹음직스런 쌈을 한 입씩 다 돌렸다. 남편한테도 잘 안해주는 최상의 서비스다. 무슨 얘기 끝에 삼각로타리 말이 나오자 누군가 배호님의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 젖히더니 노래방 가서 한 번 달려보잔다. 이 모임은 죽이 너무 잘 맞아 탈이다. 노래방으로 우루루 몰려가서 광란(?)의 밤을 보냈다. 마지막 밤이라는 아쉬움에 다들 열심히 달렸다.
비행기 시간 여유있게 맞추려니 또 새벽같이 일어나 셰프님의 정성으로 간을 맞춘 콩나물해장국으로 아침 식사.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중얼중얼~~~ ”누군가 비몽사몽 간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또 한 바탕 웃음. 공항 가는 길, 양 옆으로 단풍이 절정이다. 탄성을 연발하며 멋진 드라이브 코스 지나 한라산 입구에서 한라산 정기 한 번 힘껏 들이마시고 공항으로 출발. 가는 내내 우아한 자태로 누운 한라산 여신이 아쉬운 듯 계속 손을 흔든다. 가거들랑 혼저 옵서예~~~
2박 3일, 너무 짧다. 좋은 님들과 더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어디를 가는 지, 무엇을 먹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절감한다. 부처님의 미소를 머금고 말없이 든든하게 모임을 이끌어가시는 회장님, 전문회계사 뺨치도록 알뜰살림꾼 총무님, 발품에 막강 정보력으로 모든 일정 완벽준비하시는 큰형님, 유명호텔 요리장 울고가는 셰프님. 멋지게 깔린 멍석 위에서 신나게 잘 노는 여자 셋까지, 버릴 사람이 없다.
너무 좋은 님들과 꿈같은 시간 보내고 돌아서니 또 다시 일상. 환상에서 일상으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한 바탕 질펀하게 놀아 젖힌 가을날의 꿈이었을까? 구운몽 성진의 꿈이 이리 환상이었을까?
지금은 발효중
천남경
살아가면서 누구나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오늘 무슨 옷을 입을 건지, 점심은 무얼 먹을 건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진로 결정과 같은 중요한 선택까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재작년 이맘때 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자유로은 삶을 꿈꾸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남들 눈에 멀쩡해 보인 것이지 나 자신은 전혀 아니었다. 사람으로 인한,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고, 영혼을 갉아먹히는 일 따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죽을 것처럼 힘들 때 누군가는 자살을, 또 누군가는 억지로 버티다 결국 몸과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나는 사표를 던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인가, 몸을 망칠 것인가, 또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아무도 그들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
근래 사회복지사들이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뉴스를 여러 번 접했다. 또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갑작스런 위암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중인데,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 했다. 이들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나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가족, 친구, 동료 등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한창 일할 나이에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하는 우려들을 많이 했다. 아주 친한 동료의 간곡한 만류로 일 년을 보류하기도 했으나 결국 내 선택을 따랐다. 거기에는 첫 출발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과 내 인생이 왜 내 맘대로 되지 않는가라는 다소 분노 섞인 감정도 한 몫 했다.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내 의지대로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의지가 약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주변 상황과 여건들에 떠밀려 그렇게 흘러왔다. 이번에는 누가 뭐라 해도 내 뜻대로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물어왔다. 직장 그만둔 소감이 어떠냐고. 우물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뛰쳐나온 기분이라고 말해줬다. 딱 그 개구리 심정이었다. 좋아서 팔짝팔짝 뛰고싶을 정도로. 그러나 우물 밖의 세상은 자유가 넘치는 대신 예측할 수 없는 바다였다. 어디로든 마음껏 튈 수 있었지만, 거기에 따르는 위험을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던 길을 계속 갔으면 크고 작은 굴곡이야 늘 있었겠지만, 다소 안정적이고 평탄한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 가던 길은 익숙하면서도 제법 멀리까지 앞이 내다보였고, 내가 방향 바꿔 접어든 다른 길은 숲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었으며 이리 저리 구부러져 전혀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길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삶의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다. 가장 가까운 현실이기에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라는 라틴어가 떠오른다. 현재를 잡아라! 지금 이 순간을 뜨겁게 끌어안고 싶다. 다소 불안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던 나의 선택을 끝까지 밀어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발효중이다. 고통, 절망, 눈물, 그런 것들을 함께 끌어안고 뒹굴며 그 속에서 빛나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 발효 과정 중에 다소 고약한 냄새나 모습을 풍길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탄생을 위한 불가피한 고통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마지막까지 뜨겁게 사랑해야 할 나의 삶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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