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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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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잇기, 둘레길 스크랩 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를 마치며... 지금도 한강은 흐르고 있다. 말없이...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82 18.04.19 20: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를 마치며... 전 구간을 되돌아 보면서..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전체지도

 


삼국시대부터 계속 되어온 한반도 중앙을 흐르는 한강(큰 물)에 대한 열망은

열망이 큰 만큼 역사적으로 누구도 주인을 가리지 못하다

조선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서울을 수도로 하면서 한강의 시대가 열렸다

조선 초기 한양천도하면서 궁궐터를 둘러싸고 벌인 정도전의 북악주산론과 무학대사의 인왕주산론

그리고 화기의 산 관악산을 두고 무학대사는 화기설을 주장한 반면

정도전은 가운데 흐르고 있는 한강이 있어 불이 넘어올리 만무하다 주장

숭유억불정책이 근간인 새시대에 무학대사가 설 자리가 없었기에 정치적 부담은

결국 정도전의 승리로 지금의 북악산 아래 경복궁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무학의 예연은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한강을 떠나서는 서울을 얘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부지런히 날라다 준 물을 알뜰살뜰 모아 양수리에서 합한 뒤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한양으로 들어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한반도의 중심 한강의 중심에 세워진 경복궁을 둘러싼 역사와

강의 기적으로 얘기하는 현재를 억만분의 일이라도 느끼고자

시작했던 서울근교 55산 종주...


한강의 분수령인 한북정맥, 한강기맥, 한남정맥

거기에 한북8지맥에 한남에서 분기된 지맥들을 걸었지만 뭔가 허전했던 부분...

한양 속살로 들어온 한강이 만들어낸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

기적을 만든 것은 거대한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아니라 사람이였다

서울을 품어준 한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스스로 물을 가르는 산줄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과거와 현재...


한강은 큰 물이라는 뜻을 가진 '한물'에서 한자로 쓰다보니 漢江이 되었다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 모습에서 삼국시대에는 허리때를 두른 것 같다 하여 帶水라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의 수돗물인 아리수는 고구려 광개토왕비에 표기 되어 있다

한강 경복궁을 중심축으로 시작한 초보산꾼 서울외곽55산 종주의 긴 여정은  

하남 팔당댐 검단산에서 시작하여 두물머리를 마주하며 조안리에 있는 다산 유적지에서 끝을 알린다


55산 시작점 검단지맥 검단산에서 본 두물머리...


여기 팔당댐 검단산에서 시작한 서울외곽 55산 종주가 앞에 보이는 다산 유적지에서 마치게 된다

한강기맥과 천마지맥 사이가 북한강, 한강기맥과 앵자지맥 사이가 남한강,

검단지맥과 천마지맥 사이 한강으로 합쳐진 두 물이 서울로 들어와 서울근교 55산의 물로 더욱 살을 찌우게 된다


55산 종주 마지막 예봉산에서 본 한양 한강의 시작점 양수리



서울 한강의 시작점 하남 검단산에서 시작된 55산 종주는

은고개를 넘어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이 살아있는 남한산성을 만나게 된다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의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던 인조의 행적이 그데로 노출 된 곳

그러나 치욕의 역사 한편에는 일찍이 온조대왕이 백제의 융성을 이룬 곳이면서

신라군이 당나라군과 맞서 싸워 이겨낸 자랑스런 성이기도 하다

역사도 중요하지만 성남과 하남 그리고 광주시의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남한산성이 한양 외성의 하나이다 보니 주위에 많은 사연들을 남겼다

특히 55산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지금은 망덕봉 望德(亡德)으로 바뀐 한 때 왕이 머물렀던 왕기王基봉은 삼국시대 때 백제가  

남한산성을 거쳐 퇴각하면서 덕을 잃어 위례성을 보존하지 못하였다 한탄하여 望德(亡德)봉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保障地인 이보 치가 이배치로 변화했다는 이재배고개는

해마다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경기도 일대의 병사들을 모아 수어청(守禦廳)에서 군사훈련을 할때

제일 방어선으로 삼았던 곳으로 알려진 고개이다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고개를 의미하는 태재台峴에도  

조선시대엔 군사요새지(軍事要塞地)로서 남한산성을 방어하는데 큰 몫을 하게 되었다고 기록도 보인다

그 밖에도 보통 사람들이 살았다는 보통골,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의 묘가 있어 고불봉,

이름 앞에 주눅이 들만한  신령스런 영장산靈長山,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구황식품으로 심었던 밤나무로 유명한 율동공원까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정몽주의 묘소가 있는 모현慕賢면은 포은 정몽주를 너무 사랑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5산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무등치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에 잠들어 계시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잊을 수가 없다




무덤이 많아 무덤치가 변해 무등치가 되었다는 자료를 보면서 나는 무등을 무덤이 아니라 등급(等級)이 없는

무등(無等)으로 보고 싶었다.. 왜? 여기 무등치 아래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어 계시니...


이제 서울 55산 종주는 거대한 남한강의 분수령인 한남정맥을 조금 맛 볼 구간인 수원 광교산으로 들어선다

들머리인 새로 생긴 동천역 신도시의 발전상을 뒤로하고 고려 왕건과의 유래가 살아 있는 광교산

새로은 영웅의 탄생에는 하늘도 영웅의 편이던가?

후백제 견훤을 평정하고 군사를 위로할 때 하늘의 빛으로 축하했다는... 광교 光敎

한남정맥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지맥중 유일한 관악지맥의 학고개에서 학까지 춤을 추고...

다음에 만나게 되는 청계산은 옛날 한양에서 볼 때 관악산 뒤에 꽁꽁 숨은 산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오고개를 중심으로 천두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기 안성맞춤이였을 것이고

일두 정여창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이수봉 貳壽峰과 목숨을 담보했던 청계산 최고봉 망경대 아래 금정수... 


자료 : 초보산꾼  마왕굴인 금정수


청계산 망경대望景臺에 살아있는 고려말 충신 조견으로 인해 은둔과 지조의 땅으로도 불리지만

도적들에게도 최적의 은둔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 때 나무를 모두 잘라 버렸었다는 기록...

그러나 지금은 서울시민의 맑은 소리 淸溪로 변해 힐링의 장소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런 수난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드나드는 사람들만 다를 뿐...


청계산에서 관악지맥은 의왕 매봉으로 분기시키고 55산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들로 들어선다

서울의 숨은 명산 인능산을 넘으면 산의 모양이 할미와 같다하여 붙여진 할미산 大母山대모산...

한양에 가깝기도 하지만 명당으로 알려진만큼 많은 왕족의 묘터로 사용된 이유이다

물론 인능산도 여기서 유래를 찾는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우면산의 산사태를..

소牛가 조는 형국이어서  地氣가 꽉찬 명당으로 알려진 자리를 인간의 욕심으로 난개발이 부른 참사...


우면산과 남태령을 넘어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인데도

남태령에서 시작되는 관악산 들머리에 군 시설이 있다보니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우면산에서 남태령으로 해서 관악산으로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놓아 또 하나의 성과였다

남태령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자를 각자하여 세워둔 남태령 비석의 크기만큼이나 큰 고개이다

삼남대로의 한양의 마지막 관문 남태령을 넘기 위해서는 거치는 곳이 바로 과천이였다

그래서 옛부터 촌놈 한양갈 때 과천에서부터 긴다... 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텃세가 심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남태령에 지자체에서 많은 시설물들을 설치하여 놓아 꼭 한 번 들러 답사를 권하고 싶다

남태령에서 군부대를 통과하면 관악산의 숨은 명물 남근석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삼복더위에 여기서 김밥으로 식후경하는데 계속 목이 말라 김밥이 도저히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서 김밥을 물하고 함께 먹기는 처음...

숲속 형제들이 비춰주는 그늘이 이 때 처럼 고마워했던 기억이 있었던가?  2016년 여름이 내 기억으로 최고의 더위였다

 

서두에 얘기했던 관악산과 경복궁과의 역사적 숨은 불편한 진실...

역사는 정도전의 승리로 끝났지만 무학대사의 예연대로 계속 이어지는 조선의 피바람....

관악산에 연주암도 원각사도 지어주고 경복궁 정문에서 이 산이 덜 보이도록 일직선상에 남대문도 세우고...

밤새 낮 쉼 없이 관악산에서 불어오는 불길을 서서 막으라는 깊은 뜻으로 숭례문의 글자를 세로로 세워놓고

그 것도 모자라 남대문 앞에 인공 연못인 남지(南池)를 파서 관악산에서 오는 화기를 막고

관악산 현지에도 연주대 뒤 높은 바위에 작은 구멍을 파서 물을 가두어 화기를 누르고,,,

물론 정사가 아니고 야사에 전해지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이런 눈물나는 노력들이 숨어 있다


자료: 연주대에 있는 우물 - 혹시 이 우물도 그 때 팠나??  화기를 누르는데는 물이 최고이니...

 

16년 여름 더운만큼 많이 늦어진 산행... 날머리인 석수역에서 안양천의 환영을 받으며 55산 강남 구간을 마친다.

완벽한 55산 종주를 이어갈려면 안양천을 걸었으면 좋겠지만 숙제로 남겨 놓고....

 

백련산 안산을 지나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강북구간...

손에 잡힐 듯 한강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바위에서 양반들이 매사냥을 즐겼다는 백련산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을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던 봉수대가 있는 안산..

서대문 형무소라는 일제시대의 아품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안산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인왕산


인왕사 대웅전을 지나면 보이는 국사당


국사당 지나 인왕산 입구에 있는 이 선바위도 또한 관악산처럼 무학과 정도전의 오묘한 신경전을 벌였던 야사가 전한다


 

국사당國師堂은 전국 무속인들의 총본부격인 곳으로 원래 남산에 있었지만

일제에 의해 그들의 신사를 세우기 위해 강제로 이곳으로 쫒겨난 것인데 이 자리가 이 태조의 기도터 였다고 한다

이 태조가 선바위를 도성에 포함할 것인지를 두고 벌인 무학과 정도전의 다툼에 여기서도 정도전의 손을 들었다

성곽을 쌓을 때 이 선바위까지 품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그럼 우리가 듣고 알고는 있는데 실감이 안가는 인왕산 호랑이는 어디서 나오는 말일까?

몇 번에 걸쳐 인왕산을 답사해 봐도 호랑이가 살 것 같지 않은데...

인왕산 자체가 남쪽 도성을 호위하면서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국가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운 조선이기에 힘을 얻은 북악 주산론

지금도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으니 여전히 북악산은 지금도 주산인 것 같다

북악 하늘길로 통하는 길을 열어 준 것만도 감사하며 걷다 보면 또 다른 외성인 북한산성을 만나게 된다

북한산성과 행궁등 답사를 통해 많이 소개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그간 몇 번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 올라왔었지만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백운대 바닥에 글씨를 촬영할 염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 번에 이런 행운이...


백운대에 쓰여진 3.1운동 암각문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통제를 하고 있는 우이령 고개길을 넘으면 산경표상 한북정맥을 걷게 된다

道峰의 높은 다락에 올라 술 잔 들고 한번 웃어 보았다던 서거정의 싯귀를 생각하며 넘던 도봉산

딸 바보 선조께서 딸에게 선물했다는 사패산賜牌山... 서울 시민이 사랑하는 산들을 벗어나면...

고개가 너무 높고 험하여 넘을 때 너무 답답함을 느낀다는 울대고개...

지금은 차가 너무 많아 차가 넘기 힘든 고개가 되고 말았다.

이름이 어디서 왔을까? 첼봉

사방으로 탁 트인 한강봉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한강은 보이지 않는데 이름은 한강봉

호랑이 울음소리는 커녕 이제는 주위가 아파트 숲을 이룰 정도로 너무 발전해 산이름도 바뀌어야 하나? 호명산

우리 문화재의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양주대모산성을 지나면 임꺽정을 만나게 된다

경기도 일대의 산들을 다니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임꺽정

55산에서는 불곡산과 천마산에서 만나게 된다

나는 임꺽정이 남긴 곳을 지날 때마다 항상 가슴으로 와 닿은 노래가 있다

드라마 주제가의 가사도 좋지만 우리시대의 진정한 소리꾼 장사익님의 소리로 재탄생한 노래

티끝같은 세상 이슬같은 인생....슬퍼말아라 티끌같은 세상  슬퍼말아라 이슬같은 인생


불곡산 둘레길에서 만난 임꺽정 생가터...


홍길동 일지매와 함께 삼대 도적의 하나였던 임꺽정의 놀이터 불곡산을 지나 와니대장님과 막내님이

몇 구간 함께해 주시어 힘을 준 도락산에서 수원산까지는 한강의 병풍역할을 하는 구간이다

병풍같은 산길을 걷다 갑자기 도심 한복판을 걸었던 양주 고읍동도 지나고

잡목과 싸우다가도 맥잇기 산꾼들의 숙명으로 걷다 보니...

마지막으로 천마지맥으로 옆 울타리를 치며 마감하게 된다

탄천이 중심을 잡고 있는 강남 55산에 비해

강북 55산은 수락지맥을 중심으로 두고 왕숙천과 중량천이 한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그 만큼 산줄기가 높고 길어 한양의 병풍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산이 많고 높다는 얘기는 사람의 왕래가 그만큼 적다는 얘기일 것이다

강남 55산에 비해 역사적 얘기거리가 적은 이유일 것이다


한강은 지금도 흐로고 있다

말없이...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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