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내몸 사용 설명서.hwp
다시 쓰는 내 몸 사용 설명서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영화를 보고>
2018.6.
더불어 차 상 희
몇 년 전에 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 The Age Of Adaline" 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델라인이라는 여자 주인공의 아름다운 외모와 다양한 패션의 향연들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아델라인은 29살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녀의 남편은 일찍 사고로 죽고 딸과 함께 산다. 그러던 어느 비가 쏟아지는 밤에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때 그녀는 죽었다가 번개를 맞아 다시 심장이 살아나게 된다. 그 이후 그녀는 29살 나이 그대로의 외모로 살아가게 된다. 아름답고 젊은 외모를 유지한 채로 살 수 있는 그녀가 이때는 참 부러웠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나이 45살이 된 어느 날 신호 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되어 면허증을 보여준다. 경찰은 29살의 외모를 그대로 간직한 그녀를 45살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하게 되고 경찰서에 출두하라고 한다. 이후 그녀는 쫒기게 되면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주소와 이름 그리고 생년월일을 바꾸며 살게 되고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며 지낸다.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유일한 한사람은 그녀의 딸이다. 그녀가 107세가 되었어도 여전히 그녀는 29살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의 딸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이미 80세의 할머니 나이가 되어있다. 그녀의 친구들도 거의 죽음을 맞이한 상태이다. 혼자 늙지 않고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앨리스라는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와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의 비밀이 들킬까봐 피하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딸은 즉시 그 사람과 사랑을 하라고 한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 언젠가는 저주가 풀릴 것이고, 100년을 사랑 없이 이렇게 살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함께 늙어갈 미래가 없다면 사랑은 아픔뿐이야. 함께 늙어가지 못하면 가슴 찢어지는 사랑이야“라고 그동안 그녀가 겪었던 아픔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딸의 권유로 다시 사랑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앨리스의 가족 파티에 함께 참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앨리스의 아버지가 한때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남자였고 그 아버지도 그녀를 알아보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녀의 손에 나 있는 상처자국을 보고 그녀라고 확신을 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비밀이 탈로 난 것을 알고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다가 나무에 부딪쳐서 죽게 되지만 응급실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죽었다가 살고 또 다시 죽었다가 사는 그녀의 삶이 참 영화다웠다. 그리고 입원한 병실에서 그녀는 거울을 보게 되고 그녀의 머리에 난 흰 머리카락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세월과 함께 늙어간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린다. 흰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겐 이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니. 그렇게 다시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나이 먹고 외모도 그 나이에 맞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며 살아가게 된다.
나는 아름답고 근사하고 향기롭고 부드럽고 건강한 것들이 좋았다.
자동적으로 그러한 것들에 눈이 가고 마음이 쏠렸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흰머리가 하나둘씩 나더니 족집게로 뽑는데도 한계가 생기기 시작해서 이제는 새치염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되었다.
이가 고르고 튼튼하다는 것을 자신있어했던 때가 언제인지 잇몸도 안 좋고 떼어두었던 이는 신경까지 섞어있어서 임플란트를 하게 되었다. 이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니 음식을 먹고 나면 매번 이 사이에 끼인 음식물 때문에 개운치가 않고 불쾌한 냄새를 풍길까봐 조심스러워진다.
눈은 또 어떤가. 겨울이면 찬바람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서 화장을 한 얼굴에 눈물자국이 밉게 새겨지고 어두운 조명아래에서는 눈이 침침하다. 그런데도 밝은 불은 또 부담스러워서 꺼리게 된다.
데오드란트 광고를 해도 저런 걸 왜 쓰는지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근래에 들어 겨땀이 자주! 많이! 나기 시작하면서 옷에 까지 스며들어 밖으로 표시가 날까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특히나 더워지면 냄새가 날까 걱정을 하게 된다. 어디 거기뿐인가 손바닥이며 발바닥에도 땀이 갑자기 많이 나기 시작하니 밀폐된 공간에서 나조차도 그 꾸리꾸리한 냄새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니 성큼 다가와 버린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이다.
몸은 또 어떠한가. 나름대로 몸 관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나이가 들면서 먹는 양은 같아도 소화력도 안 좋아지고 몸에도 군살이 붙기 시작한다. 상체가 야위고 하체가 좀 튼실한 체형을 커버하기 위해 상의는 붙게 하의는 퍼지게 입었던 옷 스타일이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봐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 수영을 해서 몸이 건강해진 것은 좋은데 두 팔뚝에는 근육이 붙고 어깨는 벌어지면서 상의를 붙게 입으면 건장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제껏 나름대로 정해서 사용해 온 내 몸 사용설명서가 어느 날 부터인가 설명서가 온통 엉터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또 약간은 우울하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변화되는 나의 몸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 꽤나 힘들다.
하지만 덜 아름답더라도 덜 근사하더라도 덜 향기롭더라도 덜 건강하더라도 외형적인 변화만으로 그것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은 덜 그런 것들에 시선을 보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내게 이런 변화가 찾아온 것은 아닐까. 내게 다가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나의 변화들이 거부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라는 것을 조금씩 내게 알려주는 듯하다. 아델라인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탐했던 나는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정상적으로 늙어가는 것에 감사했던 그녀처럼 나이 들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나를 여태까지 살아내느라 고생했던 나의 흔적들로 받아들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