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장원
넥타이를 팝니다
대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오요안나
초원 위를 맹렬하게 달리는 짐승처럼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 한대
오빠의 주머니 속 매연 한줌의 원인이에요
저돌적인 앞바퀴가 으르렁대며 돌진할 때면
고개 내민 아지랑이도 숨을 죽여요
인도주행, 곡예운전, 신호위반을 서슴지 않는 찰나의 무법자, 우리 오빠
신속배달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건 배달 통속
우그러진 피자판도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흰 차선과 타이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멈추면
늙어버린 오토바이는 검은 기침을 쏟아내요
그것은 명을 다한 것들의 마지막 신호
그렇대도 오빠는 더욱 빨리 달릴 수 없는 거냐
언성 높여 윽박지를 뿐이에요
헬멧에 눈빛을 감춰버린 오빠는 표정이 없어요
그러쥔 오토바이의 손잡이에서
면접실의 차가운 문고리를 느끼기라도 했을까요
일그러진 얼굴이 아스팔트 위로 번지고 있어요
쌓여 가는 이면지는 오빠의 이력서
마지막이라 백번 다짐하며
보러간 면접에서 돌아온 오빠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문득 생각나는 밤
「넥타이 팝니다
한번도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
그날처럼 창밖으론 빗방울이 추락하고 있어요
오빠가 이틀째 연락두절이에요
그러고 보니 팔겠다던 넥타이 하나 실종되었네요
짙은 어둠이 점점 시야를 조여오는데
오빠는 대체, 어디로 간 거죠?
운문 차상
누에가 넥타이를 매는 방법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하채연
누에는 제 몸을 묶는 습성이 있다
새벽달을 집어내는 푸른 하늘이
풀섶 위에 한 겹 쌓이고
밤새 내린 이슬을 온 몸에 축이는 누에
등주름에 새겨진 음각을 굽혔다 펴며
초록을 머금는지 분주하다
희디흰 몸에 가득 찬 잎들이
점성에 못이겨 투명하게 비칠 때
두 이빨 같은 실샘 사이로 실을 토하는데
오랫동안 고수한 매듭법으로
씨실과 날실에 자신을 꼼꼼히 가두고
낮동안 그 경계 속에서 변태하는 누에는
어쩌면 고치에 날개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신발장 거울 앞에 서서
한 줄 늘어난 주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넥타이를 매느라 분주했던 아버지
오늘 밤, 비틀거리다 널브러져 자는 아버지는
죄여오는 목이 답답한지 넥타이를 끌어내린다
이불의 잎맥에서 뒤척이는 아버지는
진화하지 못한 유충일까
사실 누에는 고치를 찢는 것이 아니라
푼다, 한 점 허공이 있는 빈곳으로
허물처럼 넥타이를 벗어두고
잠든 아버지의 어깨가 유난히 뭉쳐 있다
사무실 책상 앞에 갇혀 분주했다는 증거,
다시 아버지의 날개 한 쌍이
깊은 밤 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운문 차상
홍삼 캔디
양명여자고등학교 한유정
세브란스 병원 803호실
바랜 형광등의 빛이 깜박인다
주둥이가 좁은 6인 병실 창가
새어 들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에
날짜가 지난 신문이 바르르 떨리고 있다
할아버지의 물건에는 병실의 벤젠 냄새가 배어 있다
나는 가방을 챙기다가 문득
창가에 놓은 검은 상자를 연다
거기에는 적막에 파묻힌 홍삼맛 캔디가 있다
흰 커튼을 젖히면
할아버지는 빈 링거병을 꽂고
무료하게 무균식을 씹고 있었다
이따금씩 바람소리가 정적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먼지 낀 창 밖 풍경
할아버지는 웃으며 상자 속 캔디를
꺼내곤 했다, 포장을 누런 이로 조심스럽게
뜯어내면 오래된 나무 냄새가 병실에 퍼졌다
그 향에 병실의 벤젠 냄새가 지워지곤 했다
할아버지를 안으면 깜깜하고 그리운 냄새가
났었다, 나는 그 냄새에 아린 눈을 깜박였다
나는 적막을 툭툭 털어내고
멈춘 시간을 조심스럽게 까낸 후에,
달콤한 황갈색을 혀 위로 굴린다
캔디는 그 사이 조금 녹아 있다
캔디의 맛을 더 잘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캔디를
혀끝에서 굴리다가 조금씩 씹는다
알싸한 향이 코끝에 고여간다,
나는 아린 향을 조금씩 녹이여 맛본다
상자를 열 때마다 캔디는 조금씩 녹아 있을 것이다
눅눅한 햇빛이 달콤하게 뺨 위로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