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구려-의주 검산령 평양 高句麗 (義州 劔山嶺 平壤) 2
弧矢橫行十九年
麒麟寶馬去朝天
千秋覇氣凉于水
墓裏消沈白玉鞭
弧矢의 横行한지 十九年에
麒麟寶馬로 가서 天 에 朝하였도다.
千秋霸気가 水보다 凉하니
墓裡 에 白玉鞭이 銷沈하였더라.
麟麟은 窟의 名이니 平壤府 九梯宮内와 浮碧楼에 있으니 伝説에 東明王(高句麗始祖)이 이곳에서 麟麟馬 養하였다 하고 王이 麟麟馬를 타고 이 屈에 入하여 地中으로부터 朝天石에 出하여 升天하였다 하니 그 馬跡이 今에 오히려 石上에 在하다 하며 朝天石은 麒麟窟 남쪽에 있다 하였다.
覇氣는 覇王의 氣勢라. 凉干水보다 凉함이니 覇氣가 蕭瑟하여 없어졌단 白玉鞭은 輿地勝覺에 말하되 東明王墓가 中和府 龍山에 在하니 俗에 眞珠墓라 称하니 傳說에 高句麗始祖 항상 麒麟馬를 타고 天上에 事를 奏하더니 年이 四十에 드디어 升天하고 返치 않았다. 太子가 王의 옥편을 龍山에 葬하였다 하니라.
昔日夫餘挾彈兒
東明王子號琉璃
數聲黃鳥啼深樹
猶似禾姬罵雉姬
昔日 夫余의 挟弾하던 兒는
東明王의 子인데 号를 琉璃라 하였더라.
數의 黄鳥가 深樹에 啼하니
오히려 宋姬가 禾姬를 罵함 같도다.
夫余는 擅氏後孫의 国名이라. 夫余가 三이 有하니 北夫余와 東夫余와 南夫余니 이 夫余는 東夫余를 指함이라.
挟弹兒는 三国史에 琉璃王의 諱는 類利니 初에 朱蒙이 夫余에 있을 때 礼氏女를 娶하여 有娠하였더니 朱蒙이 도망한 뒤에 礼氏 一子를 낳으니 이가 類利라.
幼時에 나가 陌上에 놀때 雀을 弾하다가 그릇 汲婦의 瓦器를 破하였더니 婦가 꾸짖어 曰 此兒가 無父 故로 頑함이 이같다 하니 類利 부끄러워하여 母에게 間하되 我父는 何人이며 何処에 在하는가.
母가로되 汝父는 常人이 아니라 国에 용납지 못하여 南地에 가서 国을 세우고 王을 称한다 하니 類利가 이에 屋智와 句鄒와 都祖 等三人으로부터 行할 때 卒本에 至하여 父王을 봄에 立하여 太子
를 삼았다.
琉璃는 類利王의 謚号라. 黄鳥는 三国史에 琉璃王이 二女를 娶하니 一은 禾姬니 鶴川 人의 女이고, 一은 雉姬니 漢人의 女이다.
二女가 寵을 争하더니 王이 涼谷에 東西 二宮을 지어 各各 두었더니 後에 王이 箕山에 사냥할 때 禾姬가 雉姬를 罵하여 曰 汝는 漢家婢妾이라 어찌지 無礼함이 甚심가.
雉姬가 慙恨하여 도망하였는데 王이 聞하고 馬를 채찍하며 따라 갔는데 雉姬가 怒하여 돌아 오지 않으니 王이 樹下에 息하다가 黄鳥 飛集함을 보고 歌曰 翩翩히 나는 黄鳥여 雌雄이 서로 依하도다. 我의 拽独함을 念함이여 誰로 더불어 帰할고 하였다.
- 한글
활시위가 횡행한 지 19년이 되어
기린 보물 말을 타고 하늘에 조하였다.
천추 패기가 물보다 시원하니
무덤 속에 흰 옥편이 잠겼었다.
길이는 동굴의 이름이니 평양부 구대궁 안과 부벽루에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동명왕(고구려 시조)이 이곳에서 기린 말을 기르었다고 하고, 왕이 기린 말을 타고 이 굴에 들어가 땅 속에서 조천석으로 나와 승천했다고 하니, 그 발자국이 지금도 돌 위에 있다고 하며, 조천석은 기린굴 남쪽에 있다고 했다.
패기는 패왕의 기세라. 찬물보다 시원하니, 패기가 쓸쓸하여 사라졌단 말이다. 백옥편은 여지승람에 말하기를 동명왕묘가 중화부 용산에 있어 속칭 진주묘라 불리는데,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 시조가 항상 기린 말을 타고 하늘에 아뢰러 갔다가 40세가 되어 마침내 승천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태자가 왕의 옥편을 용산에 묻었다고 한다.
옛날 부여의 활쏘기를 하던 아이는
동명왕의 아들인데 이름을 유리라 했었다.
수많은 황새가 깊은 나무에서 울부짖으니
마치 송희가 하희를 꾸짖는 것 같구나.
부여는 숙신후손의 나라 이름이다. 부여에 셋이 있었는데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가 있었으며 이 부여는 동부여를 가리킨다.
활쏘는 아이는 삼국사기에 유리왕의 휘는 유리인데, 초기에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 여자를 맞아 잉태했는데 주몽이 도망간 뒤에 예씨가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유리였다.
어린 시절 밖에 나가 들에서 놀 때 참새를 활로 쏘다가 우연히 물동이를 지는 여인의 옹기를 깨트렸더니, 그 여인이 꾸짖기를 "이 아이가 아버지 없이 자랐기에 고집이 세다"라고 하니, 유리가 부끄러워 어머니에게 "제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디에 계신가요?" 라고 물었다.
어머니가 "네 아비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나라에서 용납하지 못해 남쪽 땅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고 하니, 유리는 이에 완지, 구주, 도조 등 세 사람과 함께 길을 떠나 멀리서 아버지 왕을 만나 세웠고 태자가 되었다.
유리는 유리왕의 시호이다. 황새는 삼국사기에 유리왕이 두 여인을 맞이했는데, 한 명은 하희로 학천 사람의 딸이고 한 명은 치희로 한족 사람의 딸이었다.
두 여인이 총애를 다투더니 왕이 서늘한 곳에 동서 두 궁을 지어 각각 머물게 했는데, 후에 왕이 기산에서 사냥할 때 하희가 치희를 꾸짖기를 "너는 한족의 비천한 여자인데 어찌 예의가 없겠느냐"라고 하니,
치희가 부끄러워 도망갔다. 왕이 이를 듣고 말을 채찍질하며 뒤쫓아갔지만 치희가 화가 나서 돌아오지 않자, 왕이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황새 떼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노래하였다. "펄럭이며 나는 황새여, 수컷과 암컷이 서로 의지하는구나. 나의 외로움을 생각하노라, 누구와 함께 돌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