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경대승(慶大升)의 숙청운동
이때 정이의 횡포로 인하여 중신들이 능욕을 당하는 등 인민이 업을 편히 할 수 없는 고로 물의가 흉흉하나 그러나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말하는 자 없더니 장군 경대승이 그들의 날뛰는 짓을 보고 항상 분개의 뜻을 가졌더니 그 중에 송유인(宋有仁)을 두려워 감히 하수치 못하였다. 그러나 송유인은 당시에 신망이 있는 사람이라. 그러나 문극첨(文克첨) 한문준(韓文俊) 등을 배척함으로부터 시대에 합하지 못하였다.
경대승이 이 기회를 타서 용사 허승(許升)과 상의하고 왕이 장경회(藏經會)를 맞추는 밤을 기다려 거사하기로 약속하고 밤 사경에 허승은 먼저 정균의 숙직실에 들어가 정균을 죽이고 대승은 사사를 데리고 궁장을 넘어 들어가 빨리 왕의 침전에 이르러 왕께 아뢰되 신등이 결코 난을 진는 것 아니오 사직(社稷)을 위함이오니 주상은 조금도 놀라지 마십시오 인하여 금군을 벌하여 중부 등을 체포하기로 칙허를 얻어 가지고 거사하니 중부 등이 듣고 도망하여 민가에 숨은 것을 수색하여 잡아 목 베이고 이의문을 이 소문 듣고 가만히 용사들 모아 거리에 큰 문을 세우고 문을 지키며 경계하거늘 경대승이 사사 백 여인을 불러 자기 문하에 유하니 이것은 도방이라 칭하더라.
이때 경성에 도적이 일어나 자칭 도방이라 허거늘 유사들이 이를 잡아 가두거늘 대승이 이를 놓아 약탈이 심하고 국내가 소요하더라. 대승의 문객이 한 양가의 아들을 죽이거늘 유사 또 잡아 죄를 다스리니 대승이 또 주선하여 놓았다. 이로 인하여 물의가 있더니 이의문이 말하되 경대승이 죄를 범함으로 나라에서 경대승을 죽였다 하는 말을 전파하는지라. 대승이 듣고 이의문을 죽이려 하더니 명종 13년이 경대승이 죽음에 이의문이 다시 나와서 전보다 더 황포하여 길에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면 겁탈하기와 왕의 사랑하는 궁녀를 겁욕하는 등이 있으나 왕은 이것을 정죄치 못하고 방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