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조선왕조실록 ㅡ 29ㅡㅡ30
성균관의 공부벌레들 上
요즘 서울대 폐지론을 두고 갑론을박 말들이 많다.
학벌사회 철폐와 입시지옥 탈출을 위해선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국익을 위해 인재들의 집합소인 서울대를 폐지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이때 일각에선 세계 100대 대학에도 못끼는 서울대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서 슬그머니 궁금해지는 것이 과연 조선시대 서울대인 ‘성균관’은 어떤 위치였고, 그 학생들은 과연 어떤 생활을 했는지 궁금해 지지 않는가?
한번 조선시대의 서울대인 성균관에 빠져 봅시다~.
“아부지, 갑자기 성균관은 무슨 성균관 입니꺼? 지는 아직 소과에도 합격 몬했는데예?”
“이누마야, 네 애비는 폼으로 있는지 아나? 이번에 이 애비가 정3품 선전관으로 승차(승진)하지 않았나, 고마 확 인생이 핀기라.”
“야, 축하합니더, 아부지…. 그런데 아부지 승차한기라 지가 성균관 가는기라 뭔 상관이 있습니꺼? 지가 알기엔 소과 붙어가꼬, 진사나 생원 달기 전에는 성균관 몬가는걸로 아는데예? 아 특차도 있구나, 근데 특차는 서원 댕기는 아들 중에서 잘나가는 애들이나 뽑아간다 들었는데 아~ 이번에 성균관 입학생 뽑는다 카던데 그거 보라고 예? 아부지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소, 내 대가리로는 앗! 아야, 와 때리는교?”
“아따, 이눔 자식 말많네, 네가 노홍철이가? 어서 이딴놈을 낳아가꾸…. 씰데없는 소리 말고, 당장 짐싸서 성균관 가삐라, 원래 정3품 이상 되는 애비 둔 자슥들은 뒷구멍…. 아니 특차로 뽑는기다.”
정3품 선전관 조민준의 아들 조중동은 딸리는 머리와 나불거리는 입만을 가지고, 그렇게 조선최고의 석학들이 모여 있는 성균관에 입성하게 되는데, 원래는 똑똑한 애들만 가는 곳이 성균관이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뒷문은 있는 것이었다.
예외 없는 법(法)이 없단 말도 있지 않은가?
자, 그렇게 뒷문으로 성균관에 입학한 조중동의 성균관 생활기가 시작되는데….
“여기가 동재(東齋)고 저기가 서재(西齋)다. 네들은 앞으로 동재 소속으로 여기서 기숙사 생활 한다 알았지? 아침 기상은 6시고, 아침은 8시다. 나머지는 차차 생활하면서 익혀라.”
“주침야활(晝寢夜活)한지가 어언 10년인데, 군대도 아이고 와~우째 일나노?”
조중동의 푸념을 뒤로하고, 새벽 6시가 되자 성균관에는 고고히 기상나팔…이 아니라 기상북이 울리는데, 뒤이어 하인들이 튀어나온다.
“기상하십쑈! 기상하십쑈!”
“아따, 완전 군대 아이가? 와 일조점호는 안하나?”
조중동 무겁게 몸을 일으키는데, 하인 다시 튀어나온다.
“세수하십쑈~ 세수하십쑈.”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는 조중동, 세수가 끝나자 저마다 성균관 교복을 챙겨입는데 (성균관에 있는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교복을 입는다. 푸른색 도포에, 검은색 관이 기본 교복이었다)
“밥은 은제 먹는데?”
조중동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인들이 다시 튀어나온다.
“식사집합 하십시요! 생원중대는 동문앞에 집합, 진사중대는 서문 앞에 집합하십시요!”
“일마야! 생원이나 진사 아이고, 뒷구멍…이 아니고, 특차로 온놈은 어데서 집합하노?”
“그건, 그때 그때 달라요~.”
조중동 대충 눈치보면서 생원들 있는 동문 앞에 서는데, 생원중대 전부 오와 열을 맞춰 이열종대로 20명씩 딱딱 나눠 서 있었다. 조중동이 20명씩 서 있는 줄에 슬그머니 끼어드는데,
“야! 너! 너 생원 몇기야?”
“예? 지요?”
“그래 너 임마!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 말야…. 여긴 생원 211기들 줄이야 임마! 이게 어디서 짬도 안되는 게 끼어들고 지랄이야 지랄은? 절루 안가!”
그랬다. 성균관에서는 밥 먹는 것도 서열순으로 20명씩 짤라서 먹는 것이었다.
조중동 결국 생원 마지막 기수에 묻어서 겨우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야, 너 도기(到記 : 출석표)에 체크했냐?”
“도기가 뭐꼬?”
“이거 바보 아냐? 아침저녁으로 저거 체크해야 된 마, 저거 체크해야지 하루에 1점씩 올라가는 거야”
“안 올라가믄 우째 되는데?”
“300점 못 채우면 출석 미달로 특별과거 시험 자격이 박탈된마.”
“아따, 엄청 복잡하네, 대충 출석 부르면 안되나?”
대충 아침밥도 챙겨 먹고, 슬슬 한숨 자려는 조중동, 이때 하인들 다시 나타난다.
“수업 집합하십쑈!”
“아이고, 이제부터 진짜 본게임이네…. 뭐 직이기야 하겠노? 대충 뭉개면 알아서 해주겠제.”
조중동은 그렇게 개 끌려가듯 명륜당(明倫堂 : 성균관 강의실)으로 향하는데, 과연 생뚱맞게 뒷구멍으로 조선최고학부로 들어온 조중동의 성균관 생활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초특급 대하 역사 서스펜서 에듀케이션 사극 드라마 ‘성균관의 공부벌레들’ 의 다음 이야기는 내일 연재할까 생각하다가 보너스 한편더 커밍~쑤운~
계속해서~
[엽기조선왕조실록] 30. 성균관의 공부벌레들 下
해리포터가 들어간 호그와트라면 마법이라도 부리겠지만, 조중동이 들어간 성균관에서는 오로지 공부밖에 없으니, 주침야활과 면식으로 단련된 조중동 그야말로 죽지 못해 강의실에 앉아 있는데,
“자왈(子曰) 사부자피(射夫主皮)는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니 고지도야(古之道也)니라. 오늘이 어디보자 4월 초 이레니까, 7번! 그래 7번의…뒤에 옆에 앞에 옆에 뒤! 너, 이 자식이 어데서 안걸린 것 처럼, 함 해석해본나, 그래 네 말이다! 짝궁 쳐다보지 말고.”
“에…그러니까…자가 말하길 선생님이 피가 모잘라서 피박을 쓰게 생겼으니….”
“피박? 이놈자슥이 어데서 고스톱 이야기를 하고 있노? 일루 나와봐라 안 온나? 네눈엔 자왈이 자가 말한다고 들리나? 이놈자식 아예 학습의 기본이 안 돼 있네 이노마야, 지나가는 개한테 물어봐라. 자왈이 자가 말한다고 해석되나? 네는 공자님 소리도 못 들어봤나? 엉!”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아직 적응기간이 덜 지나서….”
“네가 박찬호냐 적응기간 필요하게? 와 안되겠네, 네 아부지 뭐 하시노?”
“선전관 하심더.”
“선전관? 그래 네 아부진 선전관 한다꼬 임금 꼬붕 짓 열라게 해서 네 갈키는데, 네는 뭐? 자왈이 자가 말해? 네 함 오늘 내손에 죽어보자!”
“와 이런교! 지는 뭐 좋은지 아심까?”
“이…이노마가!”
“상택아 가자!”
“상택이 저번 회에 사형집행 돼서 목짤라 죽었는데?”
조중동 그렇게 옴팡지게 깨지는데, 더 이상 성균관에 못 다닐 거 같은 조중동, 조용히 휴가때(성균관은 원칙적으로 기숙사 생활이다. 다만 매월 8일, 23일날은 휴가일로 외출이 허용되었다) 아버지를 찾는데,
“아부지예, 지 성균관 고만 두면 안 되겠어예?”
“이기 돌았나? 남들은 못 들어가 발을 구르는데, 이놈시키 배때지가 불러가꼬 헛소리 하는거가?”
“아부지예~지 나와서 열씌미 공부하겠심더. 제가 지금 적응이 안되서 그런건데….”
“마 조동아리 닥치그라. 네 성균관이 어떤덴지 아나? 거서 똘똘하게만 굴면 특채로 과거 안봐도 출사할수 있고, 관시(館試 : 성균관 유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초시)나 알성시 같은 과거 기회가 지천으로 널렸다 아이가! 그런델 우예 때려칠라 하나 응?”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 안 합니꺼, 다들 날고 기는데, 지같이 뒷문으로 들어온 놈이 우예 버티겠는교? 지는 고마 때려 칠라예!”
“셋 실때까지 후딱 성균관으로 안튀 들가믄, 네 대굴통 확 밀어서 절로 보낼끼다!”
조중동 본전도 못 찾고 다시 성균관으로 돌아오는데,
“어이 뒷구멍~ 낼 시험 있는 거 알지? 준비 좀 했냐?”
“시험? 또 쪽지 시험이가?”
“이거 바보 아냐? 내일 순말(旬末 : 10일의 끝)시험 있잖아.”
“순…말 시험? 매일 쪽지 시험보고, 10일마다 또 시험본다고?”
“월말 시험도 있고, 학년말 시험도 있으니까 걱정 마, 성균관 들어오면 시험 하나는 복터지게 보니까.”
“…….”
그렇다. 기본적으로 성균관은 일일시험, 10일마다 보는 순말(旬末)고사, 월말 보다 보는 월말고사, 학년말마다 보는 학년말 고사등 시험 하나는 복 터지게 보는 곳이었다.
“아따, 수능이라믄 찍기라도 하지. 맨날 천날 논술에 작문인데 우예 시험을 보라고…. 마 될데로 되는기다. 설마 짜르기야 하겠노?”
조중동, 그렇게 마음을 다 잡아먹고 시험을 보는데, 아뿔싸 조중동 조통(組通 : 성균관 시험 성적이다. 과목을 잘 이해해 시험을 잘 보면, 잘 이해했다고 대통大通을, 잘 이해했다면 통通,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면 약통略桶을 받았다. 제일 못 보면 조통을 받았던 것이다)을 받게 된 것이다.
“어이 뒷구멍, 명륜당 앞으로 나오란다.”
“와? 밥 묵는기가?”
시험성적을 받아들고 시무룩해 있던 조중동 동료의 말을 듣고 명륜당 앞으로 나오는데, 성균관 유생들 조중동을 보자 갑자기 달려들어 그를 빙 둘러싼다.
“와? 와 이러는기가? 지금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가?”
“이 자식 뒷구멍으로 들어오더니 완전 머리통이 비었구만.”
“야, 네 머리는 장식품이냐?”
“역시 뒷구멍 출신이라 생긴 꼬라지 하고는….”
“네…네들 지금 뭐하는기고? 지금 내 왕따시키는거가? 이기이기…마녀재판 아이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이데이! 성적가지고 같은 급우끼리 이라믄 안되지!”
조중동,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변명을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날 조중동은 같은 성균관 유생들에 둘러싸여 인민재판을 받고, 이지메를 당하게 되는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이라니까…흑흑.”
“어이 조중동, 아직 안끝났어 컴히어~.”
“예?”
같은 학생들에게 한따까리를 당한 조중동, 이번엔 교사에게 끌려가 매타작을 당하는데…. 조선시대 최고학부인 성균관, 정해진 규율에 따라 기계적으로 공부했고(1년에 300일을 출석해야 했다니,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다) 한달에 평균적으로 33번 시험을 봤던 스파르타 교육으로 유명했지만, 정말 유명했던 것은 성적 저조자들에 대한 합법적인 ‘왕따’였던 것이다.
시험성적이 바닥을 치는 학생을 인민재판과 같이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성균관의 독특한(?) 징벌제도…. 이런 징벌제도가 조선왕조를 이끌었던 인재의 보고 성균관의 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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