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큐브
송언수
원래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번 비행시간 때문에 손을 댄 수도쿠을 계속 하는 모습에 딸이 이걸 해보라며 가르쳐준 게임이 루미큐브다. 원래 보드게임인데, 게임 앱도 있단다. 보드게임을 즐기던 딸아이의 권유로 루미큐브를 시작했다.
방법은 원카드와 비슷하다. 내 손에 있는 패를 다 버리면 이기는 게임이다. 1부터 13까지 숫자가 검정·파랑·빨강·노랑 네모 패로 각 두벌씩 있다. 총 104개의 패 중에서 14개씩 가져간다. 같은 색깔의 숫자를 연이어 놓거나, 같은 숫자의 패를 다른 색깔로 버릴 수 있다. 단 바닥의 패는 최소 3개는 붙어 있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맨 처음엔 다 더해서 30이상의 수를 내놓고 등록해야한다는 것이다. 10이상의 숫자패가 각기 다른 색깔로 3개 이상이거나, 같은 색깔로 연이은 숫자를 다 더했을 때 30이상이어야 한다. 등록한 이후에는 바닥에 깔린 패를 이리저리 옮겨 내 패 놓을 자리를 만들어서 최소 한 개는 버릴 수 있다. 버릴 것이 없을 때는 새로 받아야 한다. 조커가 2장 있다. 이 조커는 어디에 붙여도 숫자를 이어준다. 이걸 잘 활용하면 유리하다.
인터넷으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페이스북과 연동되어 있어서 내 아이디를 넣으면 내 친구들과의 게임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 이모티콘과 게임 아이디를 만들어 참여한다. 페이스북과 연동해 참여하는 사람의 경우,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내 방에 앉아 외국인과 게임을 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건 완전 복불복이다. 내가 가져간 패에 등록할 만한 큰 수가 없으면, 버릴 수 있는 숫자가 될 때까지 계속 패를 받아야 한다. 늘어나는 수만큼 내가 이길 확률은 줄어든다. 상대방이 연달아 버리는 동안 나는 계속 패를 늘리는 꼴이니 말이다. 간신히 등록을 하고 패를 내더라도, 상대방과 전혀 섞일 수 없는 패를 들고 있으면 승리와 요원하다. 내 패를 버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무료다운로드일 경우 게임 참가비를 위해 광고를 봐야 한다. 참가비는 최소 100원이다. 배팅을 높여 500원이나, 1천원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 게임에서 이기면 배팅한 금액에서 수수료를 떼고 나머지 금액이 게임 머니로 쌓인다. 게임에서 1등을 하면 100점, 2등 20점, 3등 10점 등으로 점수가 쌓이면 레벨업도 시킨다.
등록을 하지 못해 남들 버릴 때 내 패가 쌓여 가면 인내의 수양을 한다. 더러 인터넷으로 접속한 사람들은 채팅 표정으로 화난 이모티콘을 보이거나, 낙담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보이지 않는 이들과의 이런 소통도 재미있다. 생각하느라 30초의 시간이 아무 동작 없이 흘러가면, 옆에서 재촉을 하기도 한다. “Please make a move”
또 누군가는 바닥에 널린 패를 가지런하게 정돈하는 사람도 있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참 다양하다. 바닥에 깔린 패를 정돈해주면 일목요연하게 보여 파악이 쉽다. 어떤 이는 그렇게 정돈하면 자기 순서에 다시 일부러 엉클어 놓는 이도 있다. 맨 마지막 패를 버리기 전 잘 놀았다고 인사하고 가는 이도 있다. 조커를 맨 처음 등록할 때 쓰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갖고 있다가 마지막 패 하나를 위해 아끼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 성격이 어찌 그리 다 다른지. 모르는 이들과 게임 한 판하면서 자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신기하다.
신기한 일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게임의 방식도 신기하다. 한 개만 버리면 내가 이기는데, 내가 갖고 있는 패를 버릴 곳이 없으면 받아야 한다. 신기한 건, 그렇게 받으면 버릴 곳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버릴 수 없을 때 추가하는 것으로 인해 버릴 수 있게 되는 경험이 생길 때마다 부증불감의 이치를 깨닫는다.
‘늘지 않으면 줄지 않는다’는 이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이 말을 붙들고 있으면 세상에 억울할 일이 하나도 없다. 어떤 결과로든 내 억울한 일이 보상될 거란 믿음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고진감래와도 같은 말이지만, 신나고 좋은 일도 그리 다독여야 한다는 점에선 새옹지마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호들갑 떨며 좋아할 일도, 세상 무너진 듯 낙담할 일도 세상엔 없다. 내가 갖고 태어난 딱 그만큼의 고난과 딱 그만큼의 행운과 딱 그만큼의 인생을 살다 갈 것이니 말이다. 그만큼의 양을 우리는 다 감당해야 할 것이니 더 크게 걱정하지도 말고, 더 크게 낙담하지도 말고 대신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며 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