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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과진리 원문보기 글쓴이: 윤승환
눈을 뜨니 하바나모텔에서 자전거 여행 5일차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전거 여행중 기이한 형상이 하나 있다면 그렇게 고된 육체적 활동을 하고도 아침에 일어나면 뻐근함도 없고 개운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처럼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거나 뒤척이는 것도 전혀 없이 그냥 벌떡 일어나는게 힘들지 않구요.
역시 피로감을 느끼는 원인은 육체적인 고됨 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피로가 많이 쌓여 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적당한(?) 운동은 잠까지 푹자게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아침입니다!
다만 그 완벽한 아침에 조금의 문제가 되는 것이 있었다면, 지난 밤 치킨에 맥주를 먹고 곧바로 뻗어버린 이유에서인지 세명 다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침밥을 빼놓을 순 없습니다. 이날 아침은 딱히 크게 기억났던 식사는 아니었지만 곤약을 간장에 조림처럼 해서
내놓은 반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으면서 느낀것은, 아주머니의 말투! 그제서야 아 우리가 정말 경상북도에 있구나 라는 느낌을 한번에 받았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출발을 하려는데 이놈의 자전거의 아주 말썽이더군요. 아주 큰 문제가 아니라면 그래도 어느정도 숙달된 실력으로 자전거를 손봐왔던 우리지만 5일차 쯤 되니까 기어와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더군요. 더군다나 전날에 그렇게 오르막내리막 산길을 많이 다녔으니. 그렇게 제 자전거를 손보느라 거의 30~40분 정도 출발이 지연됐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중 하나가 나로 인해 다른사람들까지도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 입니다. 가령 체력이 딸려 속도가 늦춰진다거나 자전거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면 다른사람들은 괜찮다 괜찮다 해도 다들 미안해 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구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거의 9시가 다되서야 출발을 했습니다. 어제 결성된 자전거 5인조 그룹은 이제 거의 부산까지 함께가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한 한 팀이 되었습니다.
센스만점 하바나모텔 할머님이 챙겨주신 오이! 자전거여행객들이 많이 묵는 모텔이다 보니 할머님께서 어김없이 저희들에게도 이렇게 오이를 엄청나게(정말 엄청나게) 챙겨주셨습니다.
지훈이와 선호형은 오이를 아껴뒀다가 나중에서야 먹으려고 보니 수분이 다 날아가서 맛없고 퍽퍽해서 그냥 버릴 수 밖에 없었다는 슬픈 전설이....
4일차에서 부터 그랬듯이 낙동강 자전거길은 정말 '아우토반'이라는 별명을 가진 만큼 그냥 계속 달리는 길밖에 없더군요.
하지만 전날 선호형을 만났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형은 꽤나 좋은 자전거에 장비도 갖추고 있었는데 자전거에 핸드폰 거치대를 장착해서 우리는 달리면서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듣던 우리는 점점 하나둘씩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성훈이는 말수가 적어 부르지 않았지만 우리 동기 셋은 신나서 생각나는대로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그런대 희한하게 부르면 부를수록 노래의 선곡들은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김광석), 사랑했지만(김광석), 여름안에서(듀스), 으쌰으쌰(신화), 3!4!(룰라)
자꾸 이런노래들이 나오자 선호형은 우리가 절대 20살일리가 없다며 부정을했습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어딘가 넉살좋고 능청스러운게 꽤나 나이가 있다는(절대 얼굴 때문이 아닙니다.) 느낌을 받았다는데 스무살이라고 얘기하니까 깜짝 놀랐다고도 하더라구요.
열광의 도가니의 절정에 이른 모습입니다.
아무리 흥이 겨워도 운전할 때는 정신을 놓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큰 교훈을 주는 동영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진짜 우리가 신나다고 느꼈었는데 지금 보니까 왜이렇게 힘들어보이지)
여튼 이렇게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유독 욱현이가 무척이나 힘들어 하더라구요. 원래 같으면 같이 오두방정을 떨어야하는데
말도 없고, 체력도 좋은애가 끙끙대면서 라이딩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존심도 쎄서 절대 일등자리를 내주지 않는 욱현인데 왠일인지 제일 뒤에서 달리고 있는게 이상했습니다. 우리는 다들 전날 이화령에서 무리를 해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에 젖어 있었습니다.
무튼 다들 땡볕에 달리다보니 역시 감진고래입니다 저 멀리 사람사는 곳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납니다!!
우리의 예상이 맞다면 저 거대한 도시는 바로 구미다!!!!!
이 날은 예상치 못하게 출발시간이 늦어버려서 배가 조금 늦게 고플까 싶었는데 그런건 전혀 없었습니다.
역시 마을, 도시가 나오면 배는 자동으로 고프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잠시 낙동강 자전거 코스에서 빠져 구미시내로 진입하였습니다. 밥을 먹기위해서!!
여지껏 와본 도시중에는 제일 큰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근처에 이마트가 있다는 정보를 얻어내 푸드코트에서 한끼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도 복잡하고 도통 이마트는 나오질 않아서 헤매고 있는 찰나, 어디선가 갑자기 항상 말도안되게 정확한 타이밍에 누군가가 등장하는 막장드라마에서 처럼마냥 자전거를 타고 저쪽에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세명의 꼬맹이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주저않고 바로 물었습니다
"얘들아 혹시 이근처에 이마트로 가는길 아니?"
묻자마자 자기들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습이 딱 저 초등학교때 자전거타고 동네 친구들이랑 송천동 여기저기 누비면서 그렇게 재밌을 수 없을 정도로 신나게 쏘다니던 딱 그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이번 여행은 제가 가능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우연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하루하루를 신나게 보냈던 어린시절의의 여운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래봤자 아직 갓 스무살이고 불과 오륙년전 저의 모습이었을 테지만 그래도 느낌이 묘한 것은 어쩔 수 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또 이게 왠일입니까!!
진짜 이런 꽁트도 없습니다ㅋㅋㅋㅋㅋㅋ 달리던 한 꼬맹이의 자전거가 못을 밟고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는 것입니다.
이건 갑자기 왠 황당시츄에이션!!!
(구멍난 바퀴에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는 중1 어린이)
평소같았다면 우리도 '아이고 어쩌지' 이러고 있을 판국이었지만, 우리는 지금 5일간 자전거를 몸의 일부로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꺼이 우리를 인도하겠다던 아이들이었는데! 우리는 기꺼이 아끼고 아꼈던 타이어 펑크패치를 꺼내서 뚝딱쓱싹 자전거를 손봐주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갑자기 그자리에서 연장을 꺼내고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우리들을 보고 적잖은 감탄과 존경심을 보내더군요(하하하 짜식들)
우리가 고쳐놓고도 스스로 뭔가 멋있는 사람들인거같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그 애들이 데려가던 길이 가다보니 맞는 길도 아니었고(무슨 자신감으로 따라오라고 한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상 밖의 사태를 대비할 펑크패치도 두개나 썼지만 결코 하나도 아깝다거나 괜히 따라왔다라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습니다.
저 아이들을 보면서 나 중1때는 저 정도로 작고 어리진 않았던 거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도 어쩌면 착각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녀석들 덕분에 도둑맞은걸 되찾은 기분도 들고 해서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놈들이 진짜 무슨 이마트랑 완전 반대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가다가 '형 저희들도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하고 가버리는 바람에 그냥 이마트는 포기하고 근처의 식당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금방 우리는 기사식당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중에 우리는 인생의 진리중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공자왈 맹자왈
'기사 식당 치고 맛 없는 식당은 없다.'
아. 어떤 근거로도 부정할 수 없는 그냥 쌩 팩트입니다 팩트.
기사식당 돼지볶음 정말 미친듯이 맛있었습니다 TㅠT. 이마트 안가길 천번만번 다행이라고 우리는 환호했습니다.
게다가 식당 이모도 굉장히 터프해서 반찬도 그냥 막 퍼주시고 물통에 얼음 넣어가라고 구멍이 작아서 잘 들어가지도 않는걸
이모가 직접 이두근과 삼각근을 사용해 퍽퍽 말그대로 쳐 넣어 주셨습니다. 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맛
여기서 우리는 성훈이와 잠시 헤어지게 됩니다. 성훈이가 체력이 부족한건지, 아니면 좀 혼자 천천히 가고 싶어서 인지 가다가 한번씩 먼저 가라고 따로 뒤 따라 가겠다고 가끔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저녁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다시 페달을 굴렀습니다.
이날의 더위는 진짜 핵더위였습니다. 아 진짜 남쪽으로 갈 수록 점점 더워지는줄은 알았지만 진짜 대구, 구미 이쪽은 더워서 힘들다 못해 해가 얼마나 뜨거운지 종아리랑 팔이 죄다 그냥 따가워서 아프기 까지 하더라구요. 구미 넘어 칠곡보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그냥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앉아 쉴 수밖에 없더라구요. 대구의 더위는 정말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이것도 오후 다섯시나 되서 찍은 사진인데 물도 거의 바닥나고 배도 너무 고프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더웠는지 풀숲을 헤치고 저 넓은 강의 기슭으로 가서 물로 손을 좀 씻으려는데 물이 미지근 해서 김빠졌습니다 정말ㅋㅋㅋㅋㅋㅋ
정신적으로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훈이의 모습입니다.
얘가 힘들때마다 저렇게 빙빙 도는 습관이 있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저때가 바로 아껴준 오이를 꺼냈다가 삼라만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과 절망을 겪었던 때라 충격이 큰상태입니다.
그렇지만 달리고 달려 대구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속이 시원하더라구요!
저 멀리 엄청난 규모의 도시 대구가 보이십니까!
이제껏 중에 광역시를 들른적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정말 도시는 도시구나 라는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자전거 쉼터도 다른 곳들이랑은 차원이 달랐는데 우선적으로 자전거 길들이 너무너무 잘되있어서 시민들이 수시로 자전거를 타기 편하게 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전거 길도 황량한 길이 아니라 길위에 아케이드로 지붕을 씌워 그늘도 만들어 놓고 구간별로 컨셉도 잡아 어느 곳은 미래도시 같은 느낌, 어느곳은 아마존 같은 느낌이 나도록 해놨더라구요. 대구에 도착해 맞는 바람은 정말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그 기억.
사진을 찍은 곳이 대구로 진입하기 전 '강정고령보'라는 보 옆의 자전거 쉼터인데요 저 위에 대구 전경 찍어놓은 사진 왼쪽을 보면
좀 현대적인 건축물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곳이 보 관리하는 건물인데. 넓은 광장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여러 시설들이 있어서 시민들이 바람쐬러 나오기 최적의 공간이더랍니다. 그곳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많이 눈에 띄는데 그 중에서도 언니랑 여동생이 뛰어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섯살, 일곱살 쯤 되었으려나. 언니가 장난을 친다고 동생의 아이스크림을 빼앗아서 달아나니까 동생이
'언↗니야↘!! 내 아이스크림 다시 도↗↘(글썽글썽)' 하는데 어찌나 귀여운지ㅋㅋㅋㅋㅋ 대구 사투리가 이렇게 귀여운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모두 대구에 신나버렸습니다!!
영상은 대구에 신나있는 우리들과, 마산출신인 욱현이가 부산과 대구의 이것저것을 비교하는 영상입니다.
하지만 대구시내 가까이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대구는 먼발치에서 보는것으로 만족!
사실 대구를 지나 약 10km정도 달리자 우리는 고뇌에 휩쌓이게 됩니다.
7시 다됐는데 좀 더 달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ㅠ
7시 반이면 날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만약 달린다면 밤중 라이딩을 해야할 위험을 감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래의 목적지인 달성보와 현풍면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만 더 힘을 내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민 끝에 얼른 더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서였는지 선호형의 속도계에는 거의 시속 30km의 속력을 유지하며 달렸습니다. 날도 어둑어둑 해지고 다들 많이 지쳐있던 상태라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뭔가 서로 말은 안하지만 괜한것에 트집이라도 하나 잡으면 누구든 기분이 상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런 내색 전혀 없이 다들 서로 화이팅 하면서 챙겨주고 달렸던 것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달성보에 도착하니 거의 8시가 다 되었더군요. 해는 완전히 져서 정말 깜깜했습니다. 달성보에 거의 다 도착하니까 마침 무슨 여름 콘서트 같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를 끝마치는 이 신나는 노래한마당!!!!! 다들 정신을 놓고 미친듯이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나올 때는 정말 아이돌을 보는 국군장병들 처럼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선호형의 우리의 나이에 대한 의문은 한층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후로 달성군 현풍면까지 찾아 들어가서 숙소를 잡아야 하는데 정말 깜깜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더군요.
우리 셋다 출발 할 때 야간라이딩은 안할 거라면서 후레쉬를 챙겨가지 않았는데, 정말 선호형 없었으면 오도가도 못할 뻔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30~40분을 달려 우리는 현풍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는 목욕탕이 딸려있는 건물이라 방을 잡으면 목욕탕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아쉽게 이미 목욕탕 문은 닫았더라구요ㅠ 현풍면의 읍내라 그랬는지 꽤나 동네가 컸습니다. 그래서 근처의 분식집에서 저녁을 해결하는데 이 때도 선호형이 밥을 사주는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밥을먹고 숙소로 들어가서 우리들끼리 자기전에 얘기를 나누는데, 혹시 셋의 부모님 중에 한 분이 걱정이 되서 돈을 주고 우리들을 따라다니면서 보살피라는 부탁을 한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해보았습니다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터무니 없는 추측이지만 그 때는 정말 심각하게 나눈 얘기였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해줬던 형입니다.
성훈이는 이날 현풍면까지 오지 못하고 달성보에서 그쳐 그곳에서 따로 밤을 새고 다음날 만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