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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 스크랩 단오 김종업(氣박사1호) 박사학위논문 3/5
익명 추천 0 조회 146 18.09.30 07:5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2. 知命과 氣의 정의 및 방법


命이라고 함은 運命, 壽命 등의 용어에서 보듯 태어나서 죽음까지에 이르는 삶의 총칭이라고 이해되어 진다.59) 삶 자체를 주관하는 본질적 요소를 알아야 한다는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통상 性과 함께 쓰여져 性命(개인의 이름)으로서 오늘날까지 언어의 형태로 개념은 남아 있다. 神誥에서의 命과 수련실체론에 있어서의 氣, 또한 氣의 외부적 형태인 音의 비교분석을 통해 命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인 의미로서는 性命精이 圓方角으로 표현된 내용이나60) 精氣神, 光音波 등의 의미로 볼 때 命의 핵심은 氣임을 알 수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원래의 命을 元命으로 한다는 신고의 내용으로 보아, 元命이 흐리고 맑은 것은 호흡으로 들어오는 氣의 質에 따른다고 하였다. 따라서 氣의 모임이 생명이고 흐트러짐이 죽음이라는 長子의 관점과도 일치한다.61)
命은 곧 生命이므로 이를 주관하는 氣란 과연 어떤 개념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신고에서 제시하는 氣의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의 感, 息, 觸을 陰氣로 하고 心氣身을 陽氣로 하는 포괄적 개념의 氣가 있는가 하면, 좁은 의미로서의 육체 내부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에너지로서의 氣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62) 생명의 파장은 본래 자리에 위치하는 참된 명(命)의 밝은 부분과, 호흡으로 들어오는 탁한 명의 어두운 부분이 합해져 파장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그 파장을 좁은 의미로서의 氣라고 하며, 氣란 곧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 요소인 것이다.63)
그러나 중국 道家에서의 氣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道를 통하는 수단으로서의 氣가 오늘날의 개념이라면 과거의 氣 개념은 “우주를 총괄하는 에너지로서의 그 무엇”이란 뜻이 더 강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64)
孔子는 생활 속의 氣, 孟子는 浩然之氣, 노자는 萬物生成之氣, 長子는 離合聚散의 氣 등으로 그 개념을 표현하고 있으며, 실제 오늘날 사용하는 개념으로서는 장자의 개념을 원용하고 있다.
“사람의 태어남은 氣의 모임이다. 氣가 모이면 삶이 되고 흩어지면 죽음이 된다. ... <중략>... 그래서 옛말에도 천하를 통해서 오직 一氣뿐이라고 했다.”65)
이로 미루어 보건대 오늘날 氣功이란 이름으로 연구 및 수련하는 사람들이 정의하는 氣란 대략 다음과 같다.66)

1) 형이상학적 정의

① 시간과 공간에 구애됨이 없는, 우주에 충만한 전일적 요소이다.
② 물질이 기로 전환되고, 기가 물질을 생성하는 중간적 요소로서 無와 有의 매개체이다.
③ 물질 속에 기가 있고 비물질 속에 기가 있으며 기속에 물질과 비물질이 다 존재하는 交互 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④ 사람, 동물, 식물 등에 의해 움직임을 주도하며, 움직임은 순응하는 대로 성장, 확산되고 축소되는 등 형태를 변화시킨다.
⑤ 인체의 기는 마음의 근원적 요소이나 마음 그 자체는 아니다.
⑥ 인체가 주도하는 감정도 기이며, 이는 생각에 의해 형상화된다.
⑦ 기의 성질, 즉 기질은 흡수 또는 추출되는 물질의 법칙도 가지고 있으며 변화에 따라 차원을 달리하는 성질도 있다.

2) 물리학적 견해

① 전기와 磁氣, 즉 생물의 場을 구성한다.
② 오라 광선에 의해 컬리언 사진에 나타난다.
③ 모종의 신호와 미립자를 띤 특수한 적외 전자파이다.
④ 전기를 띤 미립자의 연속된 흐름이다.
⑤ 세포 속 액정체의 진동파이다.
⑥ 인체 고립파의 연속된 흐름이다.

고전적 견해나 현대적 의미로서의 기란 결국 인간이 의식하고 감각하는 모든 에너지의 결정체로서 생명을 주도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氣로 이루어진 인간 스스로가 氣를 알 수 있기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정의도 가능한 것이라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偶人은 신고에서 제시하는 命의 올바른 이해야 말로 난무하는 사이비 수련단체에게 주는 경고라고 말하고 있다.

「근본원리인 知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氣만 수련하면 천년만년 살 수 있다거나, 초능력을 얻는다거나 하는 잡술에 얽매이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임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氣란 호흡으로 들어오는 탁함을 제거하고 천지의 일부로서 참 “나”의 근본을 이루는 것으로서 형이상학, 형이하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인데, 단순히 숨쉬기만 고르게 한다고 해서 건강을 찾는다든지, 체조만 하여 육체를 건강하게 보전한다든지 하는 지엽적인 것이 아니다. 명(命)의 인체내 자리매김 하는 곳은 마음(心)에 있는 고로 마음수련과 몸 수련을 병행하여 고른 호흡을 이룰 때 성통공완(性通功完)하는 것이다.」


3. 通性의 개념


신고에서 말하는 性과 고대 중국에서의 性(이때는 性理學), 조선시대 양명학(陽明學)에서의 성의 개념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67) 또한 현대인의 인식 속에 있는 性은 과거의 개념을 편리하게 인용하였음에도 sex의 개념으로 굳어버린 느낌이 있다. 道學者들이 말하는 성은 인간이든 물질이든 간에 내재하고 있는 근본 자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불교에서의 見性(‘참나’를 봄), 사물의 물리학적 俗性 등에서 그 용법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大學에서는 그 첫 머리에 天命之爲性이라 하여 “하늘이 내려준 命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 이를 性이라 한다.”고 하였다.
권극중의 性命 쌍수론이나 仙丹 호수론 등도 性과 命을 거의 같은 수준으로 논하고 있으나 수련적 의미에서는 셋이 하나를 포함한다는 신고에서의 性과 精氣神론에 있어서의 神이 거의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68)

수련의 목적이 通性이라면 약간 의아할 부분도 없지 않으나, 神誥에서는 공완을 위한 최종 수련이 性을 통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性은 수련적 의미로 본다면 「빛」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실제, 차원을 달리하는 氣체험은 빛의 느낌, 즉 두뇌가 환하다는 느낌으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데, 뒷장 수련 방법론에서 서술하겠지만 性을 통하는 개인의 느낌은 Big Bang이다. 개인이 느끼는 수준은 대폭발의 형태로 오는 경우도 있고 은은한 무지개 빛 형상으로, 또는 출렁거리는 형태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法光은 이에 대해 최종목적으로서의 빛의 경험이 아니, 진행단계로서의 느낌 세계를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다.

「법당에서 보는 그림 중에 머리위의 뱀을 그린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련 중에 나타나는 느낌을 형상화한 것인데, 전정(前丁)혈과 백회(百會)혈69) 사이로 순서를 바꿔가며 맥박이 뛰는 듯한 느낌이 오는 것을 뱀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실제 머리위에서 뱀이 또아리를 튼 듯한 움직임으로 감각이 오는데, 그것이 두뇌의 표피부근에서 최초로 움직이다가 점점 두개골 속으로 파고드는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골치가 아프다는 식의 아픔이 아니라, 시원하면서도 묵직한 그 무엇인데, 이것이 이마 앞 인당(印堂)혈까지 연결되다가 이후 “번쩍”하는 폭발의 형태로 온다. 폭발은 하얀 빛의 세계가 우주를 감싸는 듯한, 천지를 포용하는 형태이다. 이후 너무나 고요한 적막의 세계가 도래하는데, 내가 빛인지 빛이 나인지 구분되지 아니하는 상태이다. 아마 이것이 신고에서 말하는 通性의 형태가 아닌가 한다.」

偶人은 性, 즉 빛의 세계로 가기 전의 수련 느낌을 백회혈에서 새가 걸어가는 듯한 맥박의 뛰는 느낌을 경험한다고 하였다.

「등 뒤의 독맥에서 연꽃이 피어오르듯 후끈거리는 열기의 확신이 있은 후, 머리 뒤에서부터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한 느낌이 있게 된다. 지르르하면서도 상쾌한, 마치 샤워꼭지의 물줄기가 톡톡 터지는 듯한 감각인데, 이 느낌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으면 정수리 백회혈 좌우측에서 맥박이 뛰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군데서가 아닌 정확하게 두 군데서 번갈아 가며 뛴다. 마치 새가 걸어가듯 똑, 딱 하며 볼록거리는데, 점차 표피에서 두뇌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것이다. 이후에 북이 울리듯 두뇌 전체가 텅 빈 듯한 상태에서 웅~ 하는 공명이 있거나 기차가 굴러가는 소리도 들린다. 또한 귀에서 고주파가 발하는 윙하는 소리도 들리기도 하는데, 모든 것이 두뇌를 환하게 하기 전의 징조인 것이다. 폭발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환해지는 경우도 있다.」
백석은 마음의 근본자리로 들어가 경험한 우주와의 일체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빛의 세계 다음으로 경험한 것은 절대의 세계이다. 이는 우주창조와 인류창조의 근본자리 정도로 이해되는 수준이다. 언어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말로 한다면 원래부터 내가 있어온 자리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여기서 빛의 의식체가 조화와 부조화의 양극으로 대립하여 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물질을 생성해 내는데, 이것이 삼라만상이다. 인간은 그 속에 내재된 빛의 부조화로 인해 생각, 사념, 물질육체의 본능 등이 작용하여 뭉쳐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존재인 것이다. 수련을 통해 보면 빛의 세계가 다극화로 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고 이것이 창조의 법칙임을 이해하게 된다. 굳이 머리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냥 관조하면 내가 곧 우주라는 깨달음의 경지가 오는 것이다.」

法光이나 偶人, 백석이 경험한 빛의 세계는 현재 “뇌 호흡”으로 일컬어지는 국내 어느 수련단체의 수련목적 단계와도 일치한다. 즉 뇌자체가 하나의 하늘로서 인간 속에 내재한 一神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며 또한 동학사상이 제시하는 人乃天의 개념과도 상통한다.
참 본성과 통한다는 것은 언어 이전의 세계로서, 이는 어머니의 자궁 이전, 생의 끊어짐 이후가 시간의 연속성 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삶과 죽음이 구분되어진다는 것은 인간의식의 인지활동으로서 원래부터는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티벳 매장경의 하나인 “사자(死者)의 서(書)”에 의하면 죽음이 오는 순간을 빛의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는데, 밝고 환한 빛을 포함하여 일곱 가지 빛의 색이 순서 없이 드러나다 어느 한 빛으로 녹아들어 간다고 하였다. 이는 두뇌의 영적 파장이 일치하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70)
또한 독일의 심리학자인 칼 융은 「사자의 書」에 대한 해석을 달면서 그 스승인 프로이드의 공적과 한계를 동시에 논한 다음, 무의식의 빛의 세계를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의 관점으로 논하였다. 해석 서문에 의하면, 「심리학은 인간감정의 근원적 의문에 대한 출발점이지만 육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세계는 자연과 인간, 3차원과 4차원을 연결시키는 세계로서 내재된 영원과 차원을 달리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무의식이 지배하는 시공간의 내면세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즉, 죽음이란 무의식이 존재하는 빛의 공간이므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논할려면 깊은 명상상태에서 경험하는 초월의식의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두뇌에서의 性을 깨우치는 세계는 의식 저편의 빛을 경험하고, 시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존재의 존재를 느껴야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4절 수련적 의미에 대한 몸과 수련단계

   
1. 수련적 의미로서의 몸

  가. 일반적 의미


통상 수련의 갈래를 두고 몸 중심이니 마음 중심이니 하여 구분을 두는 경우가 많다. 국내 어느 단체는 마음수련원이라 하여, 근본되는 자리를 참마음에 두고 부정적인 마음을 잘라내는 방법을 쓰고 있다. 참마음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마음속에 칼을 심고 그 칼로서 감정의 부정적 상태를 잘라낸다는 자기 최면요법인데, 수련자들은 효과가 있다고 증언한다.71) 또한 몸을 이용하여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국선도나 단학 등도 몸과 마음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모두 다 옳은 방법으로 생각된다. 수련을 위한 설명이거나 초보자들에게 개념을 주입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개념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구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인간이 자신을 혁명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주체와 대상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 때문이다.72)
수련에서의 주체는 물론 마음이다. 마음은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아 자기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의 대상이 바로 몸인 것이다.73)
수련이란 몸으로 시작해서 몸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몸이 전부여서가 아니라, 몸은 무한 小의 영역에서 무한 大의 영역으로 가는 발판으로써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사람이 깨달음이라는 목표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잘못 생각하는 개념 중의 하나가 몸 자체가 “나”이고 몸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몸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이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수련적 의미로서의 몸은 땅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점유물인 관계로 깨끗이 사용한 다음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내 것”이란 개념자체가 오류라고 보는 것이다.74)
百石은 우주와 인체, 수련에 관해 몸에 대한 관점을 돌리라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우주에는 축소하는 만큼 확대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모든 존재하는 만물에 다 있다. 작은 겨자씨, 먼지 하나에도 우주를 담을 수 있는 큰 힘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의 몸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우주의 팽창과 축소하는 힘이 인간의 영역으로서 볼 때는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이다. 따라서 몸 자체가 우주의 원리대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때만이 자신을 혁명할 수 있는 기초가 됨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몸 저편의 세계에 도달한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너머에는 언어도 없고 감각도 없다. 참으로 不立文字(감히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가 수련에 대해 끝없이 말하고 글로 쓰는 것은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이지 깨달은 이후를 말하고자 함은 아닌 것이다. 저 너머의 영역은 각 개인의 그릇에 따라 달리 세워지고 느낄 뿐이다.」


나. 몸의 에너지 통로, 명문과 삼초

한방에서는 대체로 인체를 큰 틀로써 보되 징후학과 활동의 개념위주로 보고 있다. 그 중 인체의 활동을 대체로 구분하여 보면 섭취, 대사(물질동화), 배설의 세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섭취는 음식과 호흡, 대사는 소화활동, 배설은 똥 ․ 오줌 등이다.75)
이 세 가지를 작용시키는 근본 에너지를 焦라 하는데, 태운다는 의미이다. 열량을 에너지라 함은 물리학의 개념이거니와 인체의 활동도 열량, 즉 태움에서 시작되는 관계로 焦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것이 윗부분, 중간부분, 아랫부분에서 동시에 작용하는 관계로 상초, 중초, 하초를 합하여 三焦라고 이름 붙여졌다.76)
 해부학적으로나 혈자리 관계로 보아서는 3초의 부위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많은 한의학자들도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부위를 설명하고 있으나 검증된 것은 아니고, 단지 횡경막을 기준으로 하여 상초나 중초를 구분하고 있으며, 중초와 하초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할 뿐이다.77)
법광이 증언하는 몸의 에너지 통로로서 삼초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三焦를 수련적 의미에서 본다면 두뇌, 가슴, 아랫배의 부위를 총칭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인체의 구조적 삼분법이 아니라 기능적 분류이다. 따라서 삼초 중 상초는 섭취를 담당하는 기능이다. 섭취는 외부로부터의 호흡과 음식뿐만 아니라, 감각작용의 오관(눈, 입, 코, 귀, 촉)이 여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인데, 신고의 입장에서 말하는 性이 위치하는 곳이다. 따라서 上丹田이라고 하며 느낌의 초고감도 세계로서 초월의식, 무의식 또는 명상의 수단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중초는 가슴, 즉 命이 위치하는 관계로 요즘 말하는 마음자리이며 중단전이라고 한다. 실제 감정의 변화가 급작스레 일어날 때는 가슴 부위부터 먼저 느끼는데, 심장이 쿵쾅거린다든지 간이 오그라들었다든지 속이 상했다는 등의 일상용어적 표현은 모두 중초, 즉 가슴부위가 잘 타지 못하여 찌꺼기가 남아있는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命이 외부에너지와 통하는 통로를 한방에서는 명문이라고 하고 용어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생명이 들락거리는 문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실제 기능적으로는 인체의 앞부분에서 행하는 구조이지만 주관하는 자리는 등 쪽이다. 命門을 연다는 의미는 등 뒤 허리부터 견갑골까지의 척추 좌우측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따뜻한 기운이 퍼져 올라가는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경험이 없으면 표현하기 힘들다.
下焦는 꼬리뼈 부근부터 아랫배 전체를 총칭하며 하단전의 의미이다. 동물적 몸의 기능만으로 이해하면 배설을 담당하는 곳이지만, 수련적 의미로는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모두 합하여 사람기운을 만드는 곳으로서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부위이다⌟.

위 내용으로 유추해 보건대 일상용어에서도 보듯이 하초가 약하다는 뜻은 精力(sex의 에너지)이 부실하다는 의미이고, 이는 인체에너지의 중심이 虛하다는 의미이며, 신고에서 말하는 精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78) 실제, 프로이드 심리학에 있어서 핵심에너지를 Libodo(리비도), 즉 성적 에너지라 하여 인간 활동의 중심이라고 한 것은 하초의 개념을 분석적으로 설명한 것으로써, 칼융이 스승인 프로이드를 비판한 것도 사람이 全人的 存在임을 간과하여 한 가지만 본 것을 비판한 것이고, 그 자신이 주역에 심취하였던 관계로 인간의 내면적 속성인 神과 氣를 이해한 수련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79)


2. 단과 단전에 대한 이해

丹은 붉음을 뜻하는 용어이다. 우리말로는 밝음을 일컫는데, 하초, 즉 아랫배의 느낌상으로는 뜨겁다가 환하게 밝아진 다음, 복부 내에서 계란 또는 메추리알 정도의 형태로 감지되어진다.
용호비결에서는 이를 중궁이라고 하였고 하늘과 땅의 기운이 합해지는 곳이라고 하였다.80) 구체적으로는 배꼽 아래 부위인데, 생리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느낌상으로 인체의 하복부, 모제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수련원리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없이는 모든 설이 다 맞다고 할 수 있다. 주역 참동계에서 이와 관련한 명확한 도해를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문왕 팔괘도에 의해서이다. 즉 사상이 8괘를 낳는다고 할 때 그 8괘의 위치가 아랫배 전체를 일컬으며, 생리학적으로는 횡경막 아래서부터 성기의 뿌리, 즉 음모가 시작되는 부분을 감싸는 원 형태이다. 따라서 단이 위치한 아랫배 전체를 아래 단의 터전, 하단전이라고 하며 그 속에 위치한 핵심을 陽중의 陽이라고 하여 태양이라고 한다. 물론 하늘에 있는 태양을 뜻하는 말이 아닌, 내 속에 있는 생명력․핵심․씨앗을 뜻하는 말로서 하늘의 태양과 구별하기 위해 단이라고 표현한 것이다.81)
실제 偶人은 단에 대해 일반인이 감각을 쉽게 체득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하늘의 태양을 마주보고 서서 눈을 감아보면 단의 느낌을 알 수 있다. 눈 주위 모든 면이 상당히 붉은 색을 띄고 막을 드리운 형태로 드러난다. 가만히 붉은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붉은 빛이 점차로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노란 부분을 계속해서 바라보면 하얀색으로 변해 가는데, 빛의 형태가 인체와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다. 즉 온도가 높은 불일수록 흰빛이고 가장 낮은 열이 붉은 색임은 누구나가 아는 것처럼, 인체 내 단의 형성도 뜨겁다가 밝은 빛의 형태로 간다. 무겁지도 않으면서 힘이 있는 형태로 되는 느낌으로 오는데, 內觀의 경지가 되면 빛의 덩어리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法光도 유사한 형태의 느낌을 말하면서 요가에서 말하는 챠크라 그림을 예시하고 있다.

「아랫배에 뱀이 또아리를 튼 그림이 단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수련의 과정을 보면 음식과 호흡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데, 통상 음식을 많이 먹으면 호흡이 짧아지고 공복상태에서는 호흡이 깊어진다. 음식으로 배를 채울 때의 느낌은 그냥 “부르다”는 만족감뿐이지만, 깊은 호흡으로 아랫배를 부풀려 호흡의 끝이 배꼽까지 온다는 느낌이 있을 때는 압력의 형태감으로 느껴진다. 압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 배꼽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계속된다. 마치 또아리를 튼 뱀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아마 요가의 그림에서 드러난 뱀의 형상은 이런 느낌을 형상화한 것일 게다.」

구체적인 형태로서의 느낌이지만 이러한 경우 대개 수련의 초보과정에서 느끼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아 단과 단전의 위치는 상, 중, 하라기보다는 하단전, 즉 아랫배 부근이 인체의 중심이 되는 관계로 수련자들이 알파와 오메가로 표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3. 마음과 육체간의 상호 관계
 
정기신론에 의하면 인체의 무형적 에너지가 기와 신이다.82) 즉, 몸과 마음은 기라는 중간개념에 의하여 조정하고 통제 받는다는 의미인데, 마음이란 ‘마’, 즉 참 또는 뿌리라는 의미와 ‘움’, 씨앗이라는 뜻이 ‘음’으로 바뀌어 결합된 용어로서 「뿌리가 되는 첫 씨앗」이란 의미로 해석된다.83)

단순한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순수한 본래의 씨앗적인 마음과 육체가 서로 만나 육체를 이기지 못하는 섞인 마음, 서로 만나 육체를 이기는 이성적 마음 등이 서로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섞인 마음은 불순물로 가득 차 있다고 보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수련을 “닦는다”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84)

육체의 통제를 받는 마음이란, 곧 무형적인 氣가 유형화된 精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뜻인데, 精의 에너지는 호흡과 음식에 의해서 생성된다고 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여기서 食(음식)이 주관하는 육체가 되면 息(숨쉼)은 보조 역할이지만, 息(숨쉼)이 주관하는 형태의 마음이 되면 本性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수련의 핵심이다. 따라서 음식을 줄이고 호흡은 길게 하되, 점차 호흡을 끊어야 한다는 논리는 동서고금을 통해 수련의 要結로 설명되고 있다.85)
 
육체 내부의 氣를 통해, 즉 몸이 중심되어 마음을 통제한다는 의미는 한의학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뒤섞인 마음의 기 저장고가 장부론에서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86)
 

구분

감정

얼굴색

표현

심장

기쁜 감정

붉어짐

웃음

조심, 걱정

하얗게 됨

걱정 많음

건조

생각, 사유

노래짐

고민, 상사병

습기

분노

파래짐

몸이 굳는다

바람

공포

검은빛

똥오줌 배설

추위

 
위 내용은 오행과 오장, 감정의 관계를 한의학적 관점에서 설명한 것으로서 이외에도 각 장부의 맛, 색, 감각기관, 냄새, 액 등과의 연관성을 다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마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육체의 통제를 받는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근본되는 씨앗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신고에서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자리를 命이라 하였고 이것이 感에 의해 뒤섞이게 되므로 止感을 수련 방법론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드나 칼융의 무의식 자리는 근본마음과 감정이 뒤섞인 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체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은 육체중심으로 분석한 감정의 學이며, 무의식은 감정의 뿌리가 되는 기본자리, 즉 신고에서 말하는 性의 자리를 살짝 엿본 것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제 5절. 소결론 (精氣神과 수련단계)
 
1. 정기신과 성명정
 
수련방법에 있어서의 각종 이론을 정립하는데는 개인의 기질과 성격, 체질등을 고려하여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87) 이는 느낌의 강도가 삼천만 인구 각각이 다르기 때문이고 수련지도자의 능력 차이(이는 엄밀히 따진다면 집중과 이완에 의해 조절되는 몰입의 유도가 능력이기 때문에 최면술사의 능력과 비슷하다.)에 기인하는 바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수련진행 정도는 精, 氣, 神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精은 또다시 섭생과 호흡으로 단전을 강화하는 1단계, 丹田의 氣를 느낀 후에 縮氣하는 2단계, 축적된 기를 운행하는 運氣의 3단계를 거쳐야 精이 완성된 것으로 본다.88) 氣는 서두에 말한 생체에너지 전부를 뜻하는 것이 아닌, 수련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心, 즉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감정의 조절과 긍정적 사고에 의한 중단전(단중혈)의 완성을 의미한다.
 
일설에 의하면 마음자리(心)란 머리의 영과 가슴의 혼을 살리는 작업이라고 하는데89) 이에 대해서는 4차원 에너지에 대한 정립된 이론이나 검증된 자료가 없어 확인이 어렵다. 단지 기수련의 핵심이 마음공부에 둔다는 큰 틀 속에서 보면 「가슴을 열고 감정을 그친다」는 止感의 개념을 간직하고 수련에 임해야 할 것이다.

神은 靈의 깨우침으로서 일반인에게는 종교 또는 그 이상의 도에 대한 깨달음의 추구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보편적인 개념으로서는 지혜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 좋을 성싶다.90)

단 개념상으로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精氣神을 주체기관으로서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역할과 기능으로서의 精氣神이지 위치하는 자리가 머리나 가슴, 아랫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91)

고대 한국의 상고사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련의 목적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에서도 명시하고 있는 ‘弘益人間 制世利化’가 바로 그것이다.92) 
 
神誥에서는 精을 보전하고 命을 알며 性을 통하라는 인간 개인의 수련목적을 제시한 후 功完을 통하여 홍익인간 제세이화로 진행하라는 단계적 방법론을 강조하고 있다.93) 그러나 功完에 대한 개념적 해석은 「머리로부터의 이해」 수준에서 논할 것이 아니라, 수련의 완성(실제 氣功에서의 功은 수련으로 번역해도 무방)이란 체험적 바탕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느낌 강도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선 다음에야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김시습이나 권극중, 정염 같은 수련자들도 참동계에 주석을 다는 것이 先驗的 느낌이 없이는 내용자체의 이해가 어려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일 예로, 督脈의 水氣나 任脈의 火氣가 서로 합한다고 하는 周天化候는 氣海穴(하단전)에 있어서의 후끈거리는 열감이나 뭉쳐진 열기(소위 內丹이라고 하는)를 딱히 언어로 표현하기에 대단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삼일신고의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셋은 하나로, 하나는 셋으로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분리되어 설명하는 자체가 개념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인간 개인의 몸을 性命精으로 나눈 것이나 精氣神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수련의 단계별 강도를 제시하기 위한 개념의 언어화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2. 수련 단계
 
수련의 단계는 계단같이 올라가는 개념이 아니라고 하였다.94) 어느 단계가 지나면 다음 단계가 오는 수준이 아닌, 이 느낌과 저 느낌이 맞물려 왕래를 계속하거나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진전이 없이 평행선만 달리다 어느 순간 점프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도 길이 있고 관통하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이를 儒家에서는 8조목이라 하였고 佛家에서는 8정도, 仙道에서는 5정도라고 하였다.95)

과거의 개념이 어떠하든, 현대적 의미에서 본다면 먼저 인식론으로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머리에서 이해하면 몸이 따라오고, “아하! 그렇구나”하는 희열이 느껴지며 이어 실행에 옮기고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검증해 나가는 단계가 좋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는 한 과정이 끝나면 다음단계로 이어지는 연결식 인과론이 아닌 동시 진행형 결과론이다. 따라서 마지막 검증단계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진행단계를 검증해 줄 스승이 필요한 것이다.
 

  유가 8조목 :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 

平天下

  불가 8정도 :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 

正命

正精進

正念

⇒  

正定

 선가5정도 :  

正言

⇒  

正行

正身

⇒  

正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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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10.05 20:50

    첫댓글 아랫배에 뱀이 또아리를 튼 그림이 단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설명이다.
    본문 글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단은 정이 기로 化氣하는 과정, 즉 운동성으로 초월되면서 생겨나는 것인데
    아랫배에 뱀이 또아리를 튼 그림이 단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라 하니 어이가 없고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과연 수련을 제대로 하고서 글을 썼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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