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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15코스 걷기: 마니산(摩尼山) 縱走
이 글은 인천둘레길이 조성되기 전에 서울백두클럽회원들과 마니산 종주를 한 기록이다
일시: 2010년4월11일 일요일
동행: 서울백두크럽회원(박찬일회장 봉자네부부 레인보우 산깜 빙고 羅대장
수지박 김 부장)
• 마니산의 개요
표고 469.4m
위치=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민족의 성지 참성단이 있고 “마니”는 불교의 용어로 탁한 것을 맑게 하여 재앙을 물리치는 여의주를 뜻 하며 한반도(호랑이)의 심장부에 위치하며 다른 이름으로 마리산과 머리산이라 불렀다
우리에게 가장 신성시 되는 산 중의 하나로 한반도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산으로 국민관광지 정수사 함허동천 분오리돈대를 품고 있다 그리고 화도면에는 마니산 외에도 242m의 초피산 그리고 254.6m인 상봉과 이웃에 전등사와 삼랑산성이 있다
달에서 지구를 보면 실과 점을 볼 수 있는데 실처럼 보이는 것은 만리장성이고 마니산의 암릉지대는 점으로 보인 단 다
• 마니산의 전설
중국에서 다섯 형제인 마니산 혈구산 진강산 고려산 능주산가 떠내려 왔는데 그증 마니산이 맏형이다
※ Cnn go의 우리나라 아름다운 섬 33개의 순위는 8번째(8/33)
종주 산행은
210m 314m 360m 469.4m(마니산) 455m 465m(참성단) 425m 하늘재 315m 314m 303.6m 285m 254.6(상봉)-를 스쳐야 하지만 함허동천과 정수사를 들머리로 하거나 마니산국민관광지에서 917개의 계단을 따라 오를 수도 있다
• 恨 서린 강화도
역사의 숨결 속에 고려가 몽고의 침략으로 임시 수도로 39년간 항몽 투쟁으로 삼별초도 조직되었거니와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졌고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로 통상을 요구하는 외세에 대원군으로 하여금 쇄국정책을 고집토록 만들었다 그리고 또 고려의 창왕이 살챙이에서 이성계의 세력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살해 되었고 영창대군이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든지 강화도령은 철종임금이 되었거니와 그리고 고종은 몽고에 끌려가는 아들을 바라만 봐야했던 見子山의 전설도 있다
눈물의 섬에는
殺昌雨가 내리고 孫乭바람 불고 燕山作風의 설화도 있지만 나는 강화도에서 생각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강화도령과 양순이의 서글픈 사랑이야기가 가슴을 친 다 강화도령의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조향남 작사 전수린 작곡 박재란이 노래를 불렀는데-
강화 도령
1. 두메산골 갈대밭에 등짐지든/강화 도련님 강화 도련님/도련님 어쩌다가 이 고생을 하시나요/음~ 말도 마라 사람 팔자/두고 봐야 아느니라 두고봐 야 아느니라
2. 음지에도 해가 뜨고 보면/ 꽃도 피듯이 꽃도 피듯이/도련님이 운수 좋아 나랏님이 되셨구나/음~얼싸 좋다 좋고 좋고 말고/상감마마 되셨구나 상 감 마마 되셨구나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이 사람팔자 두고 봐야 아는 것- 하지만 강화도령과 양순이의 진솔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었으니 허망스럽다
나에게 들려지는 기뿐 소리(福音)는 “ 산에나 가자”는 소리요 일상 계획 중에 우선순위는 “산행계획”으로 서울백두클럽에서 마니산 종주 프로그램이 있다하여 열 일 버리고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지난 목요일에도 산을 다녀왔다 이번에 참여하면 8번째 강화도 산행이다
집 나면 즐겁고, 집에 들면 시름이라
곤드레 미친 노래로 사십년을 보냈지
홍진의 온갖 인연 모두 끊고 치우고
염불에 골몰하여 고개 한번 안 돌리네
모르겠네, 성불하여 영운같이 되려나?
관휴선월 처럼 시 솜씨도 빼어났겠다
山河도 이제서야 그 소원 풀어주리
호로병에 석장(錫杖)차림 그 또한 풍류라.
(出家歡喜在家愁 痛飮狂歌四十秋 塵世萬緣都撤手 空門一念不回頭
未知成佛同靈運 自是能詩似貫休 海岳如今償宿願 雲甁月錫更風流)
추사 감정희의 애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 순조4~고종2)의 시로서 내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집 나면 즐겁고 집 들면 시름이라”와 “곤드레 미친 노래” 등으로 萬里산길에 즐거움이 있나니 山道萬里 山行有樂- 산행에 나서기만 하면 즐겁기만 한 노릇을 어쩌랴!
8시에 송정역으로 갔다 박 회장이 가장 먼저 나와 우두커니 회원들을 기다리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는데 박 회장은 오늘 산행을 위하여 어제 답사를 다녀왔다면서 차가 출발하면서 인사말에 강화 막걸리도 사 왔다 하니-술꾼들은 꼴깍 거렸고 나에게도 막걸리 한 사발이 배급되었다 그리고 날 더러 모처럼 만에 나왔으니 인사말을 하라고 하여 주절대기를-
“ 그 동안 님들이 무척 보고 싶어서 날마다 밤마다 님들을 그렸다고 새빨간 가짓말에 이어 오늘 마니산을 한자로 풀어보면 ”摩“자는 어루만질 마- 에 ”尼“ 자는 여승 니- 로 잘 맞추어 보고 혹시 스님이 기다리고 있는 지 잘들 찾아보세요” 라고 그럴 듯이 해설을 하는데 목적지 分五里墩臺에 도착되었다
∞ 분오리돈대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6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읍 사기리 산 185-1번지
조선숙종5년(1678)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설치한 여러 개의 하나로 대포 4문을 올려놓은 포좌와 톱니바퀴모양으로 돌출시킨 치첩이 37개소가 있는 초지진의 외곽 포대이다 이 돈대는 동.서.남벽은 바다로 향한 천애 절백으 요소로서 서쪽 송곶돈대까지 거리는 3100보로서 영문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지키게 할 만큼 중요한 돈대이다 1994년에 복원되었다
9시25분
즐거운 산행이 시작되었다 분오리돈대 곁에는 동막 해수욕장이 있고 도로를 건너 절개지 사이로 입산하려니 산비둘기가 짝 찾으려 구구구 대고 산길은 칡덩굴이 얼크러져 있고 찔레나무에 새 잎이 돋아나고 있으니 “산깜”이 하는 말이 “어~찔레 다” 라고 탄성하니 문득 찔레꽃이라는 대중가요가 생각나서 산행 끝나고 집에 돌아와 나훈아의 노래를 감상하려 노랫말이 가슴에 닿는 다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저저/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사람아
2.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새 동무/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작년 봄에/모여 앉아 매일 같이/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웃기는 일이 생겼다
하필이면 시집가는 날에 등창이 난 다- 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羅 대장은 배낭을 차에 두고 내렸는데 우리 차량은 이미 하산 지점으로 이동했으니-모두를 “어이구야~” 산에 간다면서 배낭을 두고 내려 야... 깔 깔 깔들 웃었다
곧 바로 물탱크가 나왔고 좌측으로 철망이 보였고 바위로 둘러쌓인 무명봉이 나왔는데 독도에 유의하여야 한 다 바위를 돌아 내리막에서는 오른쪽으로 진행하지 말고 좌측으로 내려가야 한 다 선두 몇이서 알바들을 했고. 무명봉에서 내려오면 4거리 안부로 옛 고개 같고 주변은 벌목이 되어있다 꿩 소리가 들려서 농담 한 마디 하기를- 장끼가 짝 찾으려 애타게 “꿩 꿩” 하면 까투리는 어찌 대답할 가요-라니 푸드득 한 대나... 그래서 그것이 아니라 장끼가 꿩 꿩 하면 까투리는 꽝 꽝이라 한다고 자신 있게 풀었지만-
장끼가 꿩 꿩 하는 소리는 女寶 如寶라- 당신은 나의 보배요
까투리가 꿩 꿩 하는 소리는 當身 當身 이라- 당신은 내 몸이다-라는 것으로 부부는 “여보” “당신” 노래를 입에 담고 살아야 하제~
314봉을 향하니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고 로프가 설치된 곳도 있으며 신행 한 시간쯤이면 “119 구조 현 위치 마-21”의 알림판이 나오고 로프를 잡고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 다 전망대에서 퍼질렀더니-
배 사장이 웃기는데...
날 더러 하는 말이 “제가요 여보 하면 두 명이 대답하거들랑 요” 라면서 낄 낄 거렸는데 오늘 참석 회원 10명중 여성은 두 사람뿐인데- 여보 하면 그들이 대답한 다나- 얼씨구 그 하나는 자기 마누라 봉자네- 고 또 하나는 친구 란 다 배 사장이 “여보” 하면 두 사람이 대답하기는 했는데 그래서 나도 “여보”라 불러 봤지만 “네” 라고 들려지는 말소리는 없었는데 오늘 마니산에 온 산객 중 절반은 여성인 것 같은데 꽃순이는 보이지 않아서 서글픈 맘이 들었다 꽃순이는 집이나 지키고 있을 거- 나도 한 사람쯤은 “여보” 라고 부를 수 있는 여자가 있지 랑-
전망대에서는 막걸리가 한 잔씩 배급되어 마시면서도 앞으로 암릉이 나올 것이니까 많이들 마시지 말 어~라 하면서도 한 모금 더 달라고 졸라댔다 314m봉을 오르니 갯벌 조망이 일품이고 우측으로 지척에 있는 정수사가 나뭇가지 사이로 눈에 들고 멀리로 초피산(242m)이 우뚝 솟았다 314봉에서 내려오면 넓은 안부로 정수사에서 올라오는 산길이 있다 다사 넓은 안부가 나오면 역시나 정수사 갈림길이다
전방으로 360m봉이 우뚝 버티고 있고 바위들이 촘촘하다 바위와 바위사이로 지그재그로 땀방울 흘리면서 오르면 360봉으로 정수사를 들머리로 오르는 코스와 만난 다 여기부터 참성단(465m)까지는 달에서도 점으로 보인 다는 암릉으로 등산객은 인산인해로 오고 가는 산객들의 옷자락이 스칠 정도다 산객들은 몽땅 마니산에만 온 것 같다 안전한 우회로와 암릉 중에서 어느 쪽으로 진행할 가요- 라고 “산깜”에게 자문하니 일언지하에 암릉 쪽이라 하여 “멍에”와 김 부장과 파트너가 되어 아슬 아슬 조심-조심 올랐다 사고 다발지역이이다 출발하면서 선두 “수지박”에게 점심시간은 12시로 하고 선두가 12시가 되면 점심장소를 선택하라고 일렀거니 수지박이 460봉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460봉의 위태로운 곳에서 점심상을 차렸다 360봉부터 예 까지는 작년 가을 토산회 회원들과 정수사를 들머리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였기 때문에 그 님들 생각이 간절히 났고-오늘은 어느 산에 계실 까-
동행들이 차려온 점심상 메뉴는 호화판이지만 나는 달랑 김밥 한 덩이 24시 김밥천국에서 들고 왔는데 얌채 다 김밥천국의 김밥류 메뉴를 살펴보니- 원조김밥 야채김밥 참치김밥 모듬김밥 누들김밥등 11가지나 되었다 김밥종류가 많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걸 다 깨닫는 다 어차피 내 인생은 시시 콜콜 한 것-
막걸리와 소주잔이 빙글빙글 도는데 배 사장은 가용 松酒라니 역시 품위가 다르고 “암릉이니까 많이 걸치지 말라” 고 타이르면서도 나부터 얼큰했으니 못 말릴 일이다 다만 수지박만은 약을 복용한다면서 그 좋은 술을 침이나 꼴깍거리며 구경이나 하고 있으니 쌤통이다
13시
점심시간은 50분이나 되었고 다시 산행을 하려니 암릉에 소나무 한 그루 외로워 보였다 바위와 바위사이를 틈을 통나무로 연결된 곳을 지나 고스락에도착하니 헬기장이고 참성단 중수비, 그리고 이정표에 정수사 3Km 함허동천 2.5Km 마니산 입구 2.4Km다 다시 20분을 진행하니 참성단이 나왔다
또 방향지시목 있고 참성단은 들어 갈 수 없게 굳게 잠겨 있었는데 10월3일 개천절에 제천행사와 전국체전 성화 채취할 때나 열리고 관리자만이 드나들 것으로 내부를 들려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다
어느 기자의 산행기에서“마니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올르 수 있는 산이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참성 단이다 고대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의 개국에서부터 현대의 88세계장애 자올림픽 그리고 전국체전의 성화가 밝혀진 곳이기도 하다 사적 제136호로 1964년 지정되었고 상단 방형 하단 원형의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 참성단-위키백과
塹星壇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리산 꼭대기에 있으며 상고시대 단군이 쌓았다고 알려진 제단이다 자연석으로 기초를 둥글게 쌓고 단은 네모로 쌓은 것인데 아래 지름은 4.5m이며 성단 1변의 길이는 1.98m이다 동서에 돌층계가 있으며 총높이는 6m에 이른 다 위가 네모나고 아래가 둥글다 1964년7월11일 사적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참성단을 오르는 등산로에는 낡은 나무 팻말에 고려의 학자 목은 이색의 시 한수가 있다
단군의 자취가 이 옛단에 머물러 있으니
세월 따라 선경에 온 것이 분명하구나
질펀한 바람결에 갈매기만 깜박이니
천지도 끝이 있을 까 늙어만 가네
이 몸이 몇 번이나 이곳을 찾을 수 있은느지- 이색
시의 마지막 구절“ 이 몸이 몇 번이나 이곳을 찾을 수 있을는지”- 가 가슴을 때린 다 참서단과 기약 없이 작별하고 선수능선을 밟으려니 팻말에 참성단 가는 길 보엿고 폭 넓은 계단이 나왔다
선수능선 5.8Km의 산길은 부드럽고 해풍에 솔향기 실리는데 문득- 그님은 간데없고 佛心만 남는 다- 詩心이 가슴에 일고 오후 산행 2시간이 넘어 가려니 하늘재에 도착되었는데 바위에 하늘재라는 표식 있고 일차선 시멘트포장도로다 문경시에서 충주시를 연결하는 하늘재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도 신라의 한을 품고 넘었던 고개로 이웃에 포암산과 탄항산이 있다
하늘재를 통과하니 잔디가 잘 조성된 묘지가 보이고 방향지시표에 “선수등산로”란 다 서해바다와 갯벌을 한 없이 조망하면서 행복한 산행을 했지만 西海하니 천안함 참변이 가슴 아프게 저렸다 백령도가 가슴으로 보였다 오후 산행 3시간만인 16시에 헬기장에 도착하니 상봉(254.6m) 정상이다 “강화 311 1989 복구”라는 삼각점이 있고 마을입구 2Km와 선수선착장 방향지시표가 있었는데 청조산악회 리본이 보인 다 내 모임 명칭에 “청조회”가 있는데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상봉을 좀 지나서 느긋하게 휴식들 하는데 나는 배낭 벗고 아예 길게 뻗었더니 솔나무에 솔방울이 주렁주렁 달렸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는 않고 솔방우리나 따러 다니던 생각이 나는데 문득 비행기 소리가 솔가지를 비집고 들려 지는데 “ 저 비행기에 내 그리운 님도 탔을 거”
선수리 선착장 까지는 처음엔 로프가 설치된 곳도 있으나 내리막길이고 승용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비포장 길이다 산행도 마무리 되어가니 마음이 가벼웠지만 날씨가 비구름으로 덮여졌다 샹강나무가 노오란 꽃을 피워 생글생글 거리는데 마니산 가는 곳 1만보 산책로 장화리 가는 곳을 스치니 선수돈대가 나왔다
나무계단과 좌측에 묘지 5개를 지나서 포장도로에 도착하니 선수리 후포항으로 산행이 끝났다 정류장은 상방라-후포-장화리 우리 차는 갈매기 가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수지박의 마중을 받았다 빗방울이 비쳤으나 그 뿐이었고 선두 5리 선착장 회마트로 이동하여 개업 집 “진영호”에서 숭어회와 매운탕으로 포식하고 돌아오려니 박 회장이 GPS에 입력된 산행 자료를 통하여 산행시간이 7시간 36분이 란 다 친절도 하다 돌아오는 차내에서 “빙고”의 중국 노래 솜씨는 일품이었는데 오래전에 배웠다가 지금은 가사조차도 거의 잊어버렸지만 제목만은 생각이 나서 “아리산 처녀”를 앵콜 했더니 즉석에서 불러 주는데 짜릿 짜릿 한 것은 마니산 종주의 보너스다 “빙고-씨 다른 곳에 가서는 중국 노래하지 마 슈~ 너무나 잘 해-라” 슬그머니 질투심으로 창자가 꿈틀거렸다
후기
충북 영동에도 표고 639.4m인 摩尼山이 있고 어느 산객이 강화 마니산을 종주하면서 보여 지는 바위 모습을 주관적 입장이라면서 12가지 이름을 붙였는데 “깨진 알 바위 ”귀여운 강아지 바위“ ”석문“ ”새끼와 어미바위“ ”식빵바위“ ”오리바위“ ”복어바위“ ”악어바위“ ”자라바위“ ”촉대바위“ ”헴스터바위“ 등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
-푸불릴리우스시루스-
서기 2010년4월11일 일요일 서울백두틀럽으로 마니산 종주한 아름다운 동행님들에게는 참성단 主神과 마니산 산신령께서는 축복을 내려주시리라 굳게 믿으면서 감사 합니다 -합장-
分五里墩臺
강화 53돈대 중
4문이 포좌가 설치 된
초지진의 외곽포대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6호
마니산 종주
들머리로
서울백두클럽님들 동행이다
돈대에 올라
망망대해 바라보려니
썰물에
갯벌의 속살이 어른거리고
수로 따르는
어선들 뱃길 반갑고
이웃은
동맥해수욕장-
동행들
가야할 산길 접고
한담 나누려니
아쉬운 것은
바닷새
어디로 숨었을 까
“자~아 가십시다”
會長은 재촉하려니...
2010.4.11 일
암릉
마니산 360봉에서 참성단 사이
우람한 바위군은
달나라 선녀
항아님도
즐겨 보시는 데
달에서
지구촌의 모습은
둘 뿐인데
마니산 암릉은
점으로
만리장성은
실오라기로 보인 단 다
2009년에 이어
또 다시 오려니
암릉
아슬아슬 타면서
작년 동행님들
그립고 그립지만
잡으려 한들 잡히지 않는
가는 세월
잡지 말라
내 또 올 수 있 으 려 니-
2010년4.11 일
마니산
민족의
聖山으로
강화도 화도면에
469.3m로 솟았다
“摩尼”는 범어로
탁한 것을 맑게 하여
재앙을 물리치는
여의주 뜻이라-란 다
정수사
함허동천 품고
곁에는 참성단이라
제천의식
단군왕검부터 이어져 오고
아직도 성화는 채화 된 다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간지럽거니
썰물에
드러난 갯벌과
어우러지는 산하
아름답기 그지없고
인산인해를 이룬
산객들 웃음소리
“집 나오면 즐겁고
집에 들면 시름이라“
조선시대 역관
李尙迪은 읊었단 다 2010.4.11 일
塹星壇
사적 136호
민족의 聖山
마니산에
단군왕검 쌓았고
祭天 행사가
이어져 오며
시월사흘(개천절)이면
어김없이
오늘 날에도
제사는 이어진 다
88올림픽에도
성화를 채화 했거니
전국 체전 열려도
마니산
선녀들로부터 성화를 받는 다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강화도호부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있고
참성단
중수비도 있는데
내용에
강화군은
나라의 방패가 되는 곳-
2010.4.11 일
하늘재에서
분오리돈대에서
마니산 넘고
선수돈대로 가면서
다리품 쉬면서
시 한 수 읊조린 다
“훨훨 날자”
그래
자~아
이젠
훌...훌...털고
훨~훨~날자
새벽은 온다
미련 끊고
기다림 버리고
훌훌 털고
훨훨 날자
가벼워야
멀리
멀리
날 수 있을 것
훌훌 털고
훨훨 날자
2010.4.11 일
上峰
산자락에
상봉 한둘이 아닌 데
마을입구로 갈 가
선수선착장으로 갈 가
망설이다가
선수선착장 길 선택하고
솔방루 주렁주렁 달린
솔 나무 아래
배낭 베고
편안히 길게 누으니
“그님은
간데 없고
불심만 남는 다“ 라니
해풍에 실리는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 음향 속에
저
비행기 탄 승객들 중
내
그리운 님도
탔을 테지-
잡상이
꼬리를 무는데
문득들려진
동행들의 웃음 소리- 2010.4.11 일
船首墩臺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호
동서 18m
남북 32m
병자호란
국난에
정신 번쩍 들어
해안 경비로 만들어진
강화 53개의
돈대중 하나 다
분오리돈대에서
마니산
참성단 스치고
하늘재에서
다리 품 풀며
강산별곡으로
산하를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
佛心의
인연으로
발길 머물 수 있거니
선수리
후포항에서 옛날을 그린 다
2010.4.11 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