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레위기 14:33-57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자들로 만드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애굽이라는 부정한 세상에서 그 은혜와 능력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이 세상에 사람이 몸을 입고 찾아오신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택하신 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어 믿음으로 사는 거룩한 자들로 만들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그 거룩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의 그 거룩한 삶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의심하지 않고 말은 믿음 있는 것처럼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언어생활과 인격과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의 삶은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내가 정말 구원을 받기 원한다면 내가 삶으로 내놓은 열매를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것을 내놓는다고 하셨습니다. 나쁜 열매가 나오면 나쁜 나무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내 인격과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 앞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세계를 설명하실 때 인간의 삶으로 비유하십니다. 영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눈에 보이는 그 열매로 영적인 믿음을 스스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 식, 주는 인간이 생활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3대 요소입니다. 옷을 입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춥고 더운 것도 피할 수 없겠지만 부끄러워 어떻게 살겠습니까? 먹지 않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며칠은 살겠지만 밥을 먹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인간은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는 것입니다. 집이 없으면 또 어디에서 비와 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그 육체로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 영적인 세계를 설명하시는 겁니다. 듣고 깨닫고 믿으라고 말입니다. 의, 식, 주 가운데 그 중에 한 가지만 부족하여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없고 살 수가 없습니다.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 식, 주가 없는 그 고통스런 삶을 상상할 수가 없다면 영적인 세계는 오죽할까라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나에게 영적인 의, 식, 주가 없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런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믿음의 옷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지 못하면 영원히 벌거벗은 자가 되어 지옥에서 영원한 불에 타는 고통과 부끄러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먹지 못하면 영원히 굶주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자기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그 부자는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목이 타도 물 한 방물도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생명의 집 안에 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히 안식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괴로움을 받는 고통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집이 없어 안식하지 못하는 고통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삶으로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집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말입니다. 잠을 자고 쉬고 안식할 수 있는 집이 없으면 어디에서 뭘 하겠습니까? 다리 밑에서 박스를 깔고 어떻게 생활하겠습니까? 길에서 노숙한다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화장실은 어떻게 하고 샤워는 어떻게 하고 더위와 추위는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서 집 없이 길에서 자는 노숙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믿음의 집이 없어 받게 될 그 지옥의 고통과 비교하면 천국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그 믿음의 세계에 대하여 철저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 알아듣게 설명하는 겁니다. 영적인 그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말입니다. 성도의 삶이란 내 영혼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그 영원하고 안전한 집에 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몸을 주님이 거하는 집으로 즉 성전으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도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성도의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을 하나님을 모신 거룩한 집과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나를 위해 살던 그 부정한 집을 부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믿음의 집으로 지어져 가는 믿음의 건축자가 되는 것이 성도의 인생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증언하는 집에 발생하는 나병 색점은 악성 곰팡이를 말합니다.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건강을 위협하는 악성 곰팡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악성 곰팡이가 발생하면 집을 폐쇄하고 곰팡이 균을 긁어내야 하고 그래도 다시 발생하면 집을 허물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 집 안에 사는 사람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집도 말씀과 기도로 돌보지 않으면 영적인 곰팡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영적인 악성 곰팡이가 집에 번지면 거룩하신 주님이 떠나시는 것은 당연하고 결국에는 그 집을 허물어 내야하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린 하나님의 것이며 성전인 것입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여전히 내가 주인노릇하며 나를 위해 집을 사용한다면 그 집은 악성 곰팡이로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지 못한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이 마음에서 악성 곰팡이 되어 그 영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녁에 산책을 하는데 한 중년 여자 분이 핸드폰으로 설교를 듣고 걷는 겁니다. 산책을 하면서 말씀을 듣는 것을 보니 말씀을 많이 사모하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가는데 그 여자 분이 벤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겁니다.
무슨 말씀을 듣나 귀를 기울이니 아브라함에 관한 설교인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이 들렸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대속의 은혜를 믿는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서로의 안에 거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믿음인데 그 믿음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겁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셨는데 그것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집이 교회 건물처럼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 살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집은 가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라는 그 영적인 집은 믿음으로 거해야 되는데 그 믿음이 뭐냐 예수님의 말씀을 내 삶으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믿음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설교를 엿들으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는 그 믿음이 뭔가를 설명을 하는지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눈이 보이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해주셨음 믿고 회개하고 거듭난 그 성도의 마음 안에는 거룩하신 성령님이 계시기에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반드시 거룩한 삶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함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그 믿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에서 끝나면 성도들은 갈 바를 모릅니다.
사람들이 지혜로운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가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마시라고 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했습니까? 영적인 세계는 머리가 좋다고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보고 깨달아야 하는 겁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이고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허공에 뜬 구름 잡는 것처럼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뜬 구름 잡듯이 설명을 해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가? 마음의 중심에 있는 그 뜻은 실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스쳐가는 생각과 마음 언저리에 있는 뜻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넘겨버릴 수 있지만 마음의 중심에 분명하게 서있는 뜻은 그것을 하지 않고는 평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백세에 주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했을 때에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의 마음의 중심에 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십자가의 그 믿음이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이 될 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은 죽어야 할 죄인을 구원해주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 내가 죽어야 할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해주셨음을 마음과 영으로 믿게 될 때 회개와 죄사함과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그 믿음은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과 함께 나도 함께 믿음으로 죽고 주님을 위해 사는 자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이 그대로 내 삶에서 실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나님이 내 집이 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믿음과 구원은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호하게 믿으니 구원도 모호함 안에서 받았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집에 악성 곰팡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호하지 않습니다. 눈이 있으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믿음의 집에도 부정한 악성 곰팡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말씀과 십자가로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눈이 어두면 온 몸이 깜깜한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어둡게 되면 죄의 곰팡이가 자신의 마음과 삶에서 잔뜩 생겨나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죄를 자연스럽게 짓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다하여 자신을 섬기는 그 죄가 당연한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아니라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겁니다.
지금 내 몸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까? 지금 나는 예수 그리스도 그 안전한 집에 거하고 있습니까? 먼저 주님께 내 몸을 내어드려야 주님도 나에게 그 몸을 집으로 내어주십니다.
머리에만 있는 지식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이제 정말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나를 위해 살았던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땅에서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날 때 집이 없어 영원히 고통을 받는 그 불쌍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