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잘해야 멀리서 찾아온다는 글을 실어봅니다. 논쟁을 피하는 카네기 얘기와 화를 다스리라는 글도 함께... 이겨서 좋을 일이 없죠. 하고 싶은 말을 참고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잘합시다. 그것이 인간관계 성공의 길이니...
‘근자열 원자래 (近者悅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섭공'이라는 제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문제가 있었으니, 백성들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다 보니 인구가 줄어들고, 세수가 줄어들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초조해진 섭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님, 날마다 백성들이 도망을 가니 천리장성을 쌓아서 막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이 여섯 글자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라"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가까운 사람은 제쳐두고 남에게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내 부모, 배우자, 자녀, 상사, 동료, 부하직원, 친구 등 허물없는 이들에게 먼저 잘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줘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근자열원자래(近者悅遠者來)'는 정치, 기업경영, 가정사, 친구관계를 망라한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분들에게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새 사람 찿는 것도 좋지만, 있는 사람 안 놓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딱 맞는 고사성어입니다.
? 논쟁 ?
여러분. 우군을 얻고. 친구를 얻고 싶습니까? 논쟁을 피하십시오.
어느 날 밤, 데일 카네기는 파티에 초대받았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중 그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인간이 아무리 일을 하려고 해도 최종적인 결정은 신이 내린다." 라고 말하며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데일 카네기가 즉시 반론을 제기하자 그는"뭐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 말은 분명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카네기는 오랫동안 셰익스피어를 연구해 온 프랭크 가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가몬드는 식탁 아래로 카네기를 툭 치면서 말했습니다. "데일, 자네가 틀렸네... 저 신사분의 말씀이 맞아. 그 말은 성경에 있는 말일세! "
카네기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네기는 다시 가몬드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인용문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알지, 햄릿 4막 2장이지...
하지만 데일, 우리는 그 즐거운 파티의 손님이잖아? 왜 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나? 그렇게 하면 그가 자네를 좋아하게 될까? 왜 그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는 일에 인색한가? 그가 언제 자네의 의견을 묻기라도 했나? 왜 그 사람과 논쟁하며 좋은 시간을 망치려고 해? 옳고 그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일세."
비록 논쟁으로 자기의 옳음이 밝혀졌다 한들 인간관계를 망쳐버렸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갖겠습니까?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 패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의 명예를 높여 주는것이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그 일로 상대방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논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패배자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군을 얻고 친구를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군을 얻고 친구를 얻고 싶다면 논쟁을 그치십시오.
☆ 말 씀 ☆
♡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 고린도전서 11 : 16 )
‘화 다스리기’
오래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남들과 다투거나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자기 집 정원을 하염없이 돌았습니다. 이 특이한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하니 남자가 집 정원을 돌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 남자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남자에게 화가 나면 왜 자신의 집 정원을 도는지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남자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남자는 부자가 되고 노인이 되었지만, 예전처럼 남자는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똑같이?정원을 돌았습니다.
이제는 남자의 집도 정원도 넓어졌고 몸이 불편한 노인이 되었기에 한 바퀴 도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면 여전히 집 주위를 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의 손자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화나는 일이 생기면 집 정원을 돌았다고 하는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자 아무에게도 대답하지 않던 남자가 손자에게 처음으로 말했습니다.
“젊었을?때는?남들과?다투거나?화가?나면 내?집?정원을?돌면서?‘내?집이?이렇게?작은데 남한테?화내고?싸울?시간이?어디?있나?’라고?생각하면서 정원을 돌았단다. 그러면 화가?가라앉고?다시?일을 하는데?힘을?쓸?수?있었지.
그런데?지금은?‘내?집이?이렇게?넓어졌고?마음에?여유가?있는데, 왜?남들하고?싸우며?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정원을 돌면 바로?마음이?홀가분해지기?때문에 지금까지 화가 날 때 집?주변을?돈단다...”
요즘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발생하는 ‘욱 범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평소 눌러왔던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분노가 순간적으로 증폭되면서 범죄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나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감정을 조절하고 극복하면서 순간에 이해와 용서의 에너지로 바꿀수 있다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처음부터 화낼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반목과 분노의 에너지가 오롯이 사랑과 긍휼의 빛으로 산화되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주위의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바로 화를 내는 당사자 자신이다." ? 레프 톨스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