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에는 조선시대 서인 세력과 관련있는 관광지가 많다 옥천이 대전 회덕(원래는 공주 회덕현)과 가깝기 때문이다
대전 회덕에 송시열 등 삼송(송시열, 송준길, 송규렴) 생가가 있고 가까운 보은 화양구곡에 송시열이 또 말년을 보내면서 지내니 조선후기를 쥐고 흔들었던 그 자손 및 제자 그리고 그 척족들이 가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니들이 조선 후기 역사를 좌지우지했으니 유명한 인물도 많고 남은 유적도 많고 이어 그니들 후손이 나라를 넘기는데 앞장섰고 친일로 일제강점기에도 호의호식했고 그 연장선상에 대한민국의 현재도 있으니 이렇게 그니들의 유적이 문화재로 남고 국가의 돈으로 복원 추앙하는 세상도 당연하다 하겠다
사실 어제 탐방한 육영수 여사 생가도 삼정승집이란 명칭으로 내려온 게 서인들의 대표 성씨 김장생,김집을 필두로 한 논산의 광산 김씨, 송시열을 필두로 한 은진 송씨, 그리고 민유중, 명성황후를 필두로 한 여흥민씨 삼방파 세 정승을 일컫는 것임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옥천에 송시열의 부친 송갑조와 송시열 유적지가 있는데 되도록 찾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부소담악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 이지당이 있어 내키지 않았지만 들렀다
이왕 관광하면서 내편니편 나누는 마음이 뭐 도움이 되겠는가마는
그리고 대한민국에 살면서 그들의 후손들 덕택으로 살고 있는 면도 있는데 뭐 그리 증오의 마음을 갖으려 하는가마는
과거 역사를 알고 그들의 생태를 알고 그것이 민족의 배반임을 알고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고난을 당했음을 알고 앞으로 민생들의 미래를 위해 좋지 않음을 알기에 나 스스로에게 해로움이 됨을 알면서도 이렇게 또 그들을 비난하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지당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당으로 1901년 옥각리에 사는 금(金), 이(李), 조(趙), 안(安)의 4문중이 합작해서 세운 서당이다.
당초에는 각신동(覺新洞)이라는 마을 앞에 있었으므로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고 하였고 여기서 후학을 가르쳤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조헌(趙憲:1544~1592)이 친필로 ‘각신서당’이라는 현판을 걸면서 조헌의 서당이 되었다.
그러나 안내판에선 스승 조헌을 위하여 김장생 후손 김만균이 지은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후 우암 송시열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송시열은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인 지(止)를 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
옆에 있는 이지당은 송시열의 친필이라 한다
본채 1동과 누각건물 1동으로 되어 있지만 건물이 연접해 있어서 마치 하나의 건물과 같게 느껴진다.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서쪽으로 2칸의 방을 놓았으며, 동쪽으로 1칸의 방을 놓았다. 본채의 가장 오른쪽 1칸은 정면으로 1칸을 덧붙여서 2칸의 누각을 만들었다.
이지당은 본채의 양쪽에 돌출한 누각을 두어 눈앞의 절경을 완상(玩賞)하도록 배려한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1977년 충북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가 현재 국보로 승격되었다
주변의 경승지는 다 차지하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그들의 세상을 꾸몄다고 생각하니 눈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