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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七回 驪姬巧計殺申生 獻公臨終囑荀息
제27회: 여희가 교묘한 꾀로 신생을 죽이고, 헌공이 임종에 순식에게 부탁하다.
話說,晉獻公既並虞虢二國,群臣皆賀。惟驪姬心中不樂。他本意欲遣世子申生伐虢,卻被里克代行,又一舉成功,一時間無題目可做。乃復與優施相儀,言:「里克乃申生之黨,功高位重,我無以敵之,奈何?」優施曰:「荀息以一璧馬滅虞虢二國,其智在里克之上,其功亦不在里克之下。若求荀息為奚齊卓子之傅,則可以敵里克有餘矣。」驪姬請於獻公,遂使荀息傅奚齊卓子。驪姬又謂優施曰:「荀息已入我黨矣。里克在朝,必破我謀,何計可以去之?克去而申生乃可圖也。」
한편, 진(晉)헌공이 이미 우나라와 괵나라를 병합시키자 군신들이 모두 축하했다. 그러나 오직 여희만은 마음속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본마음은 세자 신생을 괵나라 정벌에 보내려 했으나 오히려 이극이 대신 가서 또 공로를 세움으로써 자신이 시도할 계획이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에 다시 우시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이극은 곧 신생의 소부(少傅)인데 공은 크고 지위는 높으니 내가 상대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하니, 우시가 말하기를, “순식이 벽옥과 명마로 우나라와 괵나라를 멸했으므로, 지혜는 이극 위에 있고. 그 공도 또한 이극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순식을 해제와 탁자의 스승으로 모신다면 이극과 그 일당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했다. 여희가 진헌공에게 청하여 마침내 순식을 해제와 탁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여희가 또 우시에게 말하기를, “순식은 이미 우리 쪽에 가담했으나 이극은 조정에서 반드시 우리의 계획을 방해할 것이다. 어떤 계책을 써야 이극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이극을 제거해야만 신생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했다.
優施曰:「里克為人,外強而中多顧慮。誠以利害動之,彼必持兩端,然後可收而為我用。克好飲,夫人能為我具特羊之饗,我因侍飲而以言探之。其入,則夫人之福也;即不入,我優人亦聊與為戲,何罪焉?」驪姬曰:「善。」乃代為優施治飲具。優施預請於里克曰:「大夫驅馳虞虢間,勞苦甚。施有一杯之獻,願取閒邀大夫片刻之歡,何如?」里克許之。乃攜酒至克家。克與內子孟,皆西坐為客。施再拜進觴,因侍飲於側,調笑甚洽。酒至半酣,施起舞為壽,因謂孟曰:「主啗我。我有新歌,為主歌之。」
우시가 말하기를, “이극의 사람됨이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은 꼼꼼한 사람입니다. 진실로 이해로써 그를 움직인다면 그는 틀림없이 양편을 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구슬러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됩니다. 이극은 술을 좋아하니 부인께서 이 일을 위해 좋은 양 요리로 만들어 주십시오. 내가 그에게 술을 권하다가 말로 떠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우리 당에 들어오면 부인의 복이고, 들어오지 않더라도 나는 배우이므로 역시 애오라지 장난삼아 한 것이라고 하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했다. 여희가 말하기를, “좋은 생각이오.” 하고 즉시 우시를 위해 술자리에 필요한 요리와 기구들을 마련했다. 우시는 미리 이극을 찾아가 청하기를, “대부께서는 병사를 몰아 우나라와 괵나라 사이를 달리느라 노고가 아주 많으셨습니다. 제가 술자리를 준비하여 대부께서 한가할 때 작은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떠신지요?” 하니, 이극이 허락했다. 우시가 즉시 술과 고기를 가지고 이극의 집으로 갔다. 이극과 그의 부인 맹씨(孟氏)가 모두 서쪽에 앉아 손님을 맞았다. 우시가 재배하고 술을 따라 바치고, 옆에서 술 마시는 것을 시중들고 익살을 떨며 흡족하게 했다. 술이 얼근해졌을 때 우시가 일어나 장수를 비는 춤을 추면서 맹씨에게 말하기를, “저에게 술을 한 잔 주시면 제가 새 노래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했다.
孟酌兕觥以賜施,啗以羊脾。問曰:「新歌何名?」施對曰:「名《暇豫》,大夫得此事君,可保富貴也。」乃頓嗓而歌。歌曰:「暇豫之吾吾兮,不如烏烏。眾皆集於菀兮,爾獨於枯。菀何榮且茂兮,枯招斧柯!斧柯行及兮,奈爾枯何!」歌訖,里克笑曰:「何謂菀?何謂枯?」施曰:「譬之於人,其母為夫人,其子將為君。本深枝茂,眾鳥依托,所謂菀也。若其母已死,其子又得謗,禍害將及。本搖葉落,鳥無所棲,斯為枯矣。」言罷,遂出門。里克心中怏怏,即命撤饌。起身逕入書房,獨步庭中,迴旋良久。
맹씨가 외뿔소의 뿔로 만든 큰 술잔에 술을 따라 주고 양의 내장 요리를 내주며 묻기를, “새 노래의 곡명은 무엇이오?” 하니, 우시가 대답하기를, “곡명은 ‘가예(暇豫 ; 한가한 날)’라 합니다. 대부께서 이 노래의 뜻을 아시고 주군을 섬긴다면 부귀를 보전할 것입니다.”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이르기를, “한가하여 여유로움이여, 까마귀보다 못하구나. 사람들은 모두 무성한 나무 밑에 모였는데, 그대만 홀로 고목 나무 밑에 앉았구나. 무성한 나무는 꽃 피고 번성한데, 고목 나무는 도끼를 부르는구나. 도끼로 찍으면, 고목 나무 너는 어찌하리.” 했다. 노래가 끝나자, 이극이 웃으며 말하기를, “무성한 나무는 무엇을 말하고, 고목 나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니, 우시가 말하기를,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그 모친이 군주의 부인이 되면 아들은 장차 군주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뿌리가 깊고 잎이 무성하므로 많은 새들이 나무에 의탁할 것입니다. 만일 그 모친이 이미 죽었다면 그 자식은 모함을 받아 화가 곧 몸에 미치게 됩니다.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잎이 떨어지므로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메마르다는 뜻입니다.” 했다. 우시가 말을 마치고 곧 이극의 집에서 물러갔다. 이극은 마음이 편치 않아 술상을 치우게 하고 일어나 서재에 들어갔다가 다시 뜰에 나가 혼자 거닐며 오랫동안 배회했다.
是夕,不用晚餐,挑燈就寢,展轉牀褥,不能成寐。左思右想:「優施內外俱寵,出入宮禁,今日之歌,必非無謂而發。彼欲言未竟,俟天明當再叩之。」捱至半夜,心中急不能忍,遂吩咐左右:「密喚優施到此問話。」優施已心知其故,連忙衣冠整齊,跟著來人直達寢所。里克召優施坐於牀間,以手撫其膝,問曰:「適來『菀枯』之說,我已略喻,豈非謂曲沃乎?,汝必有所聞,可與我詳言,不可隱也。」施對曰:「久欲告知,因大夫乃曲沃之傅,且未敢直言,恐見怪耳。」里克曰:「使我預圖免禍之地,是汝愛我也,何怪之有?」
그날 저녁 이극은 저녁밥도 먹지 않고 등불을 돋우고 자리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기를, “우시는 주군과 부인 모두에게 총애를 받고, 궁정에 출입하니 오늘 부른 노래도 반드시 말할 게 있어서 부른 것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 것 같으니 날이 밝기를 기다려 마땅히 다시 물어보아야겠다.” 했다. 한밤중이 되었는데, 이극의 마음이 급해져서 참을 수가 없어 마침내 좌우의 종자들에게 분부하기를, “아무도 몰래 우시를 여기로 데려오너라. 내가 물어볼 말이 있다.” 했다. 우시는 마음속으로 이미 그 연유를 짐작하고 황망 중에 의관을 정제하고 심부름하러 온 종자의 뒤를 따라 이극의 침소에 이르렀다. 이극이 우시를 불러들여 침상 앞에 앉게 하고 손으로 우시의 무릎을 쓸며 묻기를, “낮에 말한 ‘무성한 나무와 고목’에 대해서 내가 이미 대충은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 말은 곡옥에 계시는 세자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그대는 반드시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니 나에게 숨기지 말고 상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하니, 우시가 대답하기를, “오래전부터 말씀드리려고 했으나 대부께서는 곡옥에 계시는 세자마마의 소부라 제가 말씀을 드리면 괴이하게 생각하시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아직까지 감히 바로 고하지 못했습니다.” 했다. 이극이 말하기를, “나로 하여금 미리 화를 면하게 해주니, 그대가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이라. 어찌 그것을 괴이하다고 하겠는가?” 했다.
施乃俯首就枕畔低語曰:「君已許夫人,殺太子而立奚齊,有成謀矣。」里克曰:「猶可止乎?」施對曰:「君夫人之得君,子所知也。中大夫之得君,亦子所知也。夫人主乎內,中大夫主乎外,雖欲止,得乎?」里克曰:「從君而殺太子,我不忍也。輔太子以抗君,我不及也。中立而兩無所為,可以自脫否?」施對曰:「可。」施退,里克坐以待旦,取往日所書之簡視之,屈指恰是十年。嘆曰:「卜筮之理,何其神也!」遂造大夫丕鄭父之家,屏去左右告之曰:「史蘇卜偃之言,驗於今矣!」
우시가 머리를 숙이고 침상 곁으로 다가앉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태자를 죽이고 해제를 세자로 세우기로 부인에게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했다. 이극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 일을 말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니, 우시가 말하기를, “부인이 주군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께서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중대부 양오와 동관오도 역시 주군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부인은 안에서, 두 중대부는 밖에서 서로 호응하여 일을 도모하는데 비록 말린다고 한들 되겠습니까?” 했다. 이극이 말하기를, “주군의 뜻을 따라 태자를 죽이는 일은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태자를 도와 주군에게 항명하는 것도 또한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아무 쪽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에 선다면 내가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하니, 우시가 대답하기를,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우시가 물러가자 이극은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려서 옛날에 태복(太卜) 곽언(郭偃)과 태사(太史) 소(蘇)가 한 말을 적어 놓은 죽간을 꺼내서 읽어보았다. 손가락을 굽어 세어보니 과연 그날로부터 정확히 십 년째 되는 해였다. 이극이 한탄하면서 말하기를, “점괘의 이치가 어찌 이다지도 신통하단 말인가?” 하고, 즉시 대부 비정보(丕鄭父)의 집으로 가서 좌우를 물리치고 말하기를, “옛날 태사 소와 태복 곽언의 점괘가 이제 실현되려고 합니다.” 했다.
丕鄭父曰:「有聞乎?」里克曰:「夜來優施告我曰:『君將殺太子而立奚齊也。』」丕鄭父曰:「子何以復之?」里克曰:「我告以中立。」丕鄭父曰:「子之言,如見火而益之薪也。為子計,宜陽為不信,彼見子不信,必中忌而緩其謀。子乃多樹太子之黨,以固其位,然後乘間而進言,以奪君之志,成敗猶未有定。今子曰『中立』,則太子孤矣,禍可立而待也!」里克頓足曰:「惜哉!不早與吾子商之!」里克別去登車,詐墜於車下。次日遂稱傷足,不能赴朝。史臣有詩云:「特羊具享優人舞,斷送儲君一曲歌。堪笑大臣無遠識,卻將中立佐操戈。」
비정보가 말하기를, “무슨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어젯밤에 우시란 자가 나에게 고하기를 ‘주군께서 장차 태자를 죽이고 해재를 세울 예정이다.’라고 했습니다.” 했다. 비정보가 말하기를, “그래서 대부께서는 무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나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했다. 비정보가 말하기를, “대부의 말은 불난 집에 섶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대부께 한 가지 계책을 일러드리겠습니다. 대부께서 여희 일당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여, 저들도 대부가 불신하는 것을 보고, 심중에 꺼리게 되어 계획을 늦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대부께서는 즉시 태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당을 만들어 태자의 지위를 공고히 한 다음에 기회를 보아 주군에게 간하여 태자를 폐하고자 하는 뜻을 바꾸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일의 성패는 결정되었다고 할 수 없는데, 지금 대부께서 중립을 지키시겠다고 하면 태자가 고립되어 나라의 재앙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했다. 이극이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아뿔사! 좀 더 일찍 대부와 이 일을 상의하지 않았을꼬!” 했다. 이극이 수레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일부러 수레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다음날 다리를 다쳐서 조정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좋은 양고기와 술을 드리며 배우가 춤을 추고, 노래 한 곡에 태자의 생명을 끊으려 하네. 멀리 보지 못한 대신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대신의 중립은 오히려 싸움을 재촉했네!”라고 했다.
優施回復驪姬,驪姬大悅。乃夜謂獻公曰:「太子久居曲沃,君何不召之,但言妾之思見太子。妾因以為德於太子,冀免旦夕何如?」獻公果如其言,以召申生。申生應呼而至,先見獻公,再拜問安,禮畢,入宮參見驪姬。驪姬設饗待之,言語甚歡。次日,申生入宮謝宴,驪姬又留飯。是夜,驪姬復向獻公垂淚言曰:「妾欲回太子之心,故召而禮之。不意太子無禮更甚。」獻公曰:「何如?」驪姬曰:「妾留太子午餐,索飲,半酣,戲謂妾曰:『我父老矣,若母何?』妾怒而不應。
우시가 돌아와 여희에게 보고하니 여희가 크게 기뻐하였다. 밤이 되자 여희가 진헌공에게 말하기를, “태자가 곡옥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주군께서는 첩이 멀리 떠나 있는 태자를 보고 싶어 한다며 부르십시오. 첩은 단지 세자에게 덕을 베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풀어보고 싶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그 말에 따라 신생을 불렀다. 신생이 진헌공의 부름에 응하여 도성에 이르러 먼저 진헌공을 뵙고 재배하여 문안했다. 인사가 끝나자 궁에 들어가 여희를 만나 뵈었다. 여희가 음식을 차려놓고 신생을 대접하였는데 말이 아주 다정했다. 다음날 신생이 입궁하여 여희에게 전날 베풀어 준 연회에 감사하니, 여희가 다시 신생을 머물게 하고는 음식을 내어 대접했다. 그날 밤 여희가 진헌공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첩이 태자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그를 불러 예를 다했으나 뜻밖에 태자가 무례하게 나를 대하는 것이 더욱 심했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묻기를, “왜 그러는가?” 하니, 여희가 말하기를, “첩이 태자에게 점심을 대접했더니, 술을 찾아 마시고 반쯤 취하여 첩을 희롱하여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는 늙었는데, 모친은 어떠십니까?’ 라고 했습니다. 첩이 화가 나서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太子又曰:『昔我祖老,而以我母姜氏,遺於我父。今我父老,必有所遺,非子而誰?』欲前執妾手,妾拒之乃免。君若不信,妾試與太子同遊於囿,君從臺上觀之,必有睹焉。」獻公曰:「諾。」及明,驪姬召申生同遊於囿。驪姬預以蜜塗其髮,蜂蝶紛紛,皆集其髮。姬曰:「太子盍為我驅蜂蝶乎?」申生從後以袖麾之。獻公望見,以為真有調戲之事矣。心中大怒,即欲執申生行誅。驪姬跪而告曰:「妾召之而殺之,是妾殺太子也。且宮中暖昧之事,外人未知,姑忍之。」獻公乃使申生還曲沃,而使人陰求其罪。
태자가 다시 말하기를, ‘옛날에 우리 조부이신 무공께서 내 모친 강씨를 내 아버지에게 주었습니다. 지금은 부왕이 연로하시니 반드시 주어야 곳이 저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하고, 첩의 손을 잡으려 하여 첩이 거절하여 면할 수 있었습니다. 주군께서 만약 믿지 못하시면 첩이 시험 삼아 태자를 청하여 동산에서 같이 거닐겠으니 주군께서는 누대에 올라서 그것을 보시면 반드시 보고 믿게 될 것입니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그래, 그러지.” 했다. 다음날이 밝자, 여희는 신생을 불러서 동산에서 같이 거닐었다. 여희는 미리 꿀을 머리에 발라서 벌이 어지러이 머리 주위에 모여들었다. 여희가 말하기를, “태자는 어찌하여 나를 위해 벌들을 쫓지 않는가?” 하니, 신생이 뒤에서 소매를 휘둘렀다. 진헌공이 멀리서 바라보고 정말로 희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헌공이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즉시 신생을 잡아와서 죽이려고 하였으나, 여희가 무릎을 꿇고 고하기를, “첩이 태자를 불렀는데 그를 죽인다면 이것은 첩이 태자를 죽인 것이 됩니다. 또한 이 일은 궁중에서 일어나는 애매한 일이라 바깥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없습니다. 잠시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했다. 진헌공이 신생을 곡옥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람을 시켜 은밀히 그의 죄를 찾게 했다.
過數日,獻公出田於翟桓。驪姬與優施商議,使人謂太子曰:「君夢齊姜訴曰:『苦饑無食。』必速祭之。」齊姜別有祠在曲沃。申生乃設祭,祭齊姜。使人送胙於獻公。獻公未歸,乃留胙於宮中。六日後,獻公回宮。驪姬以鴆入酒,以毒藥傅肉,而獻之曰:「妾夢齊姜苦饑不可忍,因君之出也,以告太子而使祭焉。今致胙於此,待君久矣。」獻公取觶,欲嘗酒。驪姬跪而止之曰:「酒食自外來者,不可不試。」獻公曰:「然。」乃以酒瀝地,地即墳起。又呼犬,取一臠肉擲之,犬啖肉立死。
며칠이 지난 뒤, 진헌공이 적환(翟桓) 땅으로 사냥을 나갔다. 여희가 우시와 상의하여 사람을 태자에게 보내 말하기를, “주군의 꿈에 제강(태자의 모친)이 호소하기를, ‘몹시 배가 고프나 먹을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니, 빨리 제사를 지내시오.” 했다. 제강은 따로 곡옥에 사당이 있었다. 신생은 그 즉시 제사상을 차려 제강에게 제사를 올리고, 사람을 시켜 제사 고기를 진헌공에게 보냈다. 진헌공이 아직 사냥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제사 고기를 궁중에 놔두었다. 엿새 후 진헌공이 궁으로 돌아왔다. 여희가 짐독을 술에 타고 독약을 고기에 발라서 진헌공에게 바치면서 말하기를, “제강이 첩의 꿈에 나타나서 배가 고파서 참을 수 없다고 했으나 마침 주군께서 사냥 중이라 태자에게 알려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지금 여기에 제사 고기를 보내와서 주군을 기다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진헌공이 잔을 들어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여희가 무릎을 꿇고 말리면서 말하기를, “밖에서 보내온 술과 음식은 시식 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했다. 헌공이 말하기를, “그렇소.” 했다. 여희가 술을 땅에 쏟자 땅이 부풀어 올랐다. 다시 개를 불러 저민 고기 한 덩이를 던져 주니, 개가 그 고기를 먹고 바로 죽었다.
驪姬佯為不信,再呼小內侍,使嘗酒肉。小內侍不肯,強之。纔下口,七竅流血亦死。驪姬佯大驚,疾趨下堂而呼曰:「天乎!天乎!國固太子之國也。君老矣,豈旦暮之不能待,而必欲弒之?」言罷,雙淚俱下。復跪於獻公之前,帶噎而言曰:「太子所以設此謀者,徒以妾母子故也。願君以此酒肉賜妾,妾寧代君而死,以快太子之志!」即取酒欲飲。獻公奪而覆之,氣咽不能出語。驪姬哭倒在地,恨曰:「太子真忍心哉!其父而且欲弒之,況他人乎?始君欲廢之,妾固不肯。後囿中戲我,君又欲殺之,我猶力勸。今幾害我君,妾誤君甚矣!」
여희가 믿지 못하는 체하며 다시 어린 내시를 불러 그 술과 음식을 맛보게 했다. 어린 내시가 먹지 않으려고 하자 강제로 먹였다. 겨우 입속에 넣자마자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었다. 여희가 매우 놀라는 척하면서 당 아래로 뛰어 내려와서 부르짖기를, “하늘이시어, 하늘이시어! 이 나라는 장차 태자의 나라이고 주군은 늙었습니다. 어찌하여 그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반드시 시해하려고 합니까?” 했다. 말을 마치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헌공 앞에 꿇어앉아 근심의 빛을 띠고 말하기를, “태자가 이렇게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은 오로지 첩의 모자 때문이오니 원컨대 주군께서는 이 술과 고기를 첩에게 주어 첩이 차라리 주군을 대신하여 죽으면, 태자의 마음이 통쾌할 것입니다.” 하고, 즉시 술을 빼앗아 마시려고 하였다. 진헌공은 술잔을 빼앗아 엎어버리고 기가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여희가 슬피 울며 땅에 쓰러지면서 한탄하기를, “태자는 참으로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 부친을 죽이려고 했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첩은 원래 주군께서 태자를 폐하려고 할 때 반대했고, 후원에서 나를 희롱하여 주군이 또 죽이려고 할 때도 내가 힘써 권하여 죽음을 면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군을 시해하려고 하니, 첩이 주군을 크게 그르치게 하였습니다.” 했다.
獻公半晌方言,以手扶驪姬曰:「爾起。孤便當暴之群臣,誅此賊子!」當時出朝,召諸大夫議事。惟狐突久杜門,里克稱足疾,丕鄭父托以他出不至,其餘畢集朝堂。獻公以申生逆謀,告訴群臣。群臣知獻公畜謀已久,皆面面相覷,不敢置對。東關五進曰:「太子無道,臣請為君討之。」獻公乃使東關五為將,梁五副之,率車二百乘,以討曲沃。囑之曰:「太子數將兵,善用眾。爾其慎之!」狐突雖然杜門,時刻使人打聽朝事。聞「二五」戎車,心知必往曲沃。急使人密報太子申生。申生以告太傅杜原款。
진헌공이 한참 있다가, 손으로 여희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일어나시오. 내가 마땅히 군신들에게 이 사실을 드러내어 이 도적놈을 죽일 것이오!” 했다. 곧 조정에 나가 여러 대부들을 불러 태자의 일을 상의했다. 오직 호돌은 오래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고, 이극은 발이 아프다고, 비정보는 다른 곳에 나가서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 그 나머지 대신들은 모두 조당에 모였다. 진헌공은 신생이 역모를 꾀했다고 여러 신하에게 알렸다. 여러 신하는 진헌공이 옛날부터 신생을 폐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감히 진헌공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동관오가 나와서 말하기를, “태자가 무도하니 제가 주군을 위해 토벌하게 해 주십시오.” 하니, 진헌공이 즉시 동관오를 대장으로 삼고, 양오를 부장으로 삼아 전차 200대를 주어 곡옥을 토벌하게 했다. 진헌공이 당부하기를, “태자는 여러 번 군사를 거느려서 군사들을 잘 부리니 너희들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했다. 호돌이 비록 두문불출했으나 때때로 사람을 시켜 조정 일을 탐문하여, 동관오와 양오가 전차를 동원했음을 듣고 마음속으로 반드시 곡옥으로 간 줄 알았다. 급히 사람을 시켜 밀서를 태자 신생에게 보냈다. 신생이 태부 두원관에게 알렸다.
原款曰:「胙已留宮六日,其為宮中置毒明矣。子必以狀自理,群臣豈無相明者?毋束手就死為也!」申生曰:「君非姬氏,居不安,食不飽。我自理而不明,是增罪也。幸而明,君護姬,未必加罪,又以傷君之心。不如我死!」原款曰:「且適他國,以俟後圖如何?」申生曰:「君不察其無罪,而行討於我,我被弒父之名以出,人將以我為鴟鴞矣!若出而歸罪於君,是惡君也。且彰君父之惡,必見笑於諸侯。內困於父母,外困於諸侯,是重困也。棄君脫罪,是逃死也。我聞之:『仁不惡君,智不重困,勇不逃死。』」
두원관이 말하기를, “제사 고기는 이미 궁중에 엿새 동안 머물렀습니다. 궁중에서 독을 넣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자께서 진상을 스스로 밝히면 신하들 중에 어찌 이 일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부디 손 놓고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지 마십시오.” 했다. 신생이 말하기를, “부군께서는 여희가 없으면 지내기에 불안해하시며 식사도 배불리 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사리를 따진들 일의 진상을 밝히지 못할 뿐 아니라 나의 죄만 더해질 뿐입니다. 다행히 일의 진상이 밝혀진다 해도 부군은 여희를 감싸서 틀림없이 죄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 또한 부군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니, 내가 죽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두원관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다른 나라로 도망갔다가 때를 기다려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신생이 말하기를, “부군께서는 내가 죄가 없음을 살피지 않고 군사를 보내 토벌하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탈출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부엉이(불효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외국으로 도주해서 죄가 부군에게 돌아간다면 이는 부군을 미워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군의 나쁜 점을 드러나게 해서 반드시 제후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입니다. 안으로는 부모를 괴롭히고 밖으로는 제후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게 하니 이는 거듭 부군을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부군을 버리고 죄를 벗는 것은 죽음을 피하여 도망치는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어진 사람은 군주를 원망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죽음에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했다.
乃為書以復狐突曰:「申生有罪,不敢愛死。雖然,君老矣,子少,國家多難,伯氏努力以輔國家,申生雖死,受伯氏之賜實多!」於是北向再拜,自縊而死。死之明日,東關五兵到,知申生已死,乃執杜原款囚之,以報獻公曰:「世子自知罪不可逃,乃先死也。」獻公使原款證成太子之罪。原款大呼曰:「天乎冤哉!原款所以不死而就俘者,正欲明太子之心也!胙留宮六日,豈有毒而久不變者乎?」驪姬從屏後急呼曰:「原款輔導無狀,何不速殺之?」獻公使力士以銅鎚擊破其腦而死。群臣皆暗暗流涕。
신생이 곧 편지를 써서 호돌에게 말하기를, “신생은 죄가 있어 감히 죽음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군은 늙었고 그 아들은 어리니 나라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백씨(대신)께서는 온 힘을 다하여 국가를 보좌해 주시면 신생이 비록 죽어도 백씨에게 받은 은혜는 실로 크다고 하겠습니다.” 했다. 이에 북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목을 매달아 죽었다. 신생이 죽은 다음날 동관오의 군대가 이르렀으나 신생이 이미 죽은 것을 보고, 곧 두원관을 잡아서 진헌공에게 보고하기를, “세자는 스스로 죄에서 도피할 수 없음을 알고 먼저 죽었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두원관에게 태자의 죄를 증언하라고 했다. 두원관이 큰소리로 외치기를, “하늘이여, 원통하구나. 이 두원관이 죽지 않고 사로잡혀 온 이유는 태자의 마음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제사 고기를 궁중에 6일 동안 두었으니, 독이 들어 있었다면 어찌 그렇게 오랫동안 음식이 변하지 않았겠습니까?” 했다. 여희가 듣고 병풍 뒤에서 급히 소리치기를, “두원관이 세자를 잘못 보좌했는데 어찌 빨리 죽이지 않습니까?” 하니, 진헌공이 역사를 시켜 구리 망치로 그 머리를 쳐서 죽였다. 신하들은 모두가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梁五、東關五謂優施曰:「重耳夷吾,與太子一體也。太子雖死,二公子尚在,我竊憂之。」優施言於驪姬,使引二公子。驪姬夜半復泣訴獻公曰:「妾聞重耳夷吾,實同申生之謀。申生之死,二公子歸罪於妾,終日治兵,欲襲晉而殺妾,以圖大事,君不可不察!」獻公意猶未信。蚤朝,近臣報:「蒲屈二公子來覲,已至關;聞太子之變,即時俱回轅去矣。」獻公曰:「不辭而去,必同謀也。」乃遣寺人勃鞮率師往蒲,擒拿公子重耳。賈華率師往屈,擒拿公子夷吾。
양오와 동관오가 우시(優施)에게 말하기를,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는 태자와 한패인데 태자는 비록 죽었다고 하지만 아직 두 공자가 살아 있으니 우리의 우환이 없어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니, 우시가 여희에게 말하여 두 공자를 끌어오게 했다. 여희가 또 밤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진헌공에게 호소하기를, “첩이 들으니 중이와 이오가 실은 신생의 음모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두 공자는 신생이 죽은 모든 죄를 저에게 돌려 매일 군사를 훈련하고 진(晉)나라 도성을 습격하여 첩을 죽인 후에 대사를 도모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살펴보십시오.” 했다. 진헌공이 듣고 미심쩍어하며 믿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모시는 신하가 보고하기를, “포성과 굴성에 있던 두 공자께서 주군을 뵙기 위하여 이미 관문에 도착하여, 태자가 죽임을 당한 사실을 알고 즉시 수레를 돌려 돌아갔다고 합니다.” 했다. 헌공이 말하기를, “나를 보러 왔다가 말도 없이 돌아갔으면 틀림없이 신생과 공모했기 때문이다.” 하고, 즉시 시인(寺人 ; 후궁 담당) 발제(勃鞮)를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포성으로 가서 공자 중이를 잡아 오게 하고, 가화(賈華)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굴성에 가서 공자 이오를 잡아 오라고 했다.
狐突喚其次子狐偃至前,謂曰:「重耳駢脅重瞳,狀貌偉異,又素賢明,他日必能成事。且太子既死,次當及之。汝可速往蒲,助之出奔,與汝兄毛,同心輔佐,以圖後舉。」狐偃遵命,星夜奔蒲城來投重耳。重耳大驚,與狐毛狐偃方商議出奔之事,勃鞮車馬已到。蒲人欲閉門拒守,重耳曰:「君命不可抗也!」勃鞮攻入蒲城,圍重耳之宅。重耳與毛偃趨後園,勃鞮挺劍逐之。毛偃先踰牆出,推牆以招重耳。勃鞮執重耳衣袂,劍起袂絕,重耳得脫去。勃鞮收袂回報。三人遂出奔翟國。
호돌이 그의 둘째 아들 호언(狐偃)을 불러 앞에 이르자 말하기를, “공자 중이는 갈비뼈가 통짜로 생기고 눈동자가 두 개라 그 외모와 풍채가 비범하고 또한 평소에 현명하여, 훗날 반드시 패업을 이룰 것이다. 이제 태자께서 돌아가셨으니 둘째 공자가 마땅히 이어야 한다. 너는 속히 포성으로 달려가서 공자께서 외국으로 탈출하도록 도와라. 너의 형 호모(狐毛)와 함께 합심 보좌하여 후일을 도모하도록 하라.” 했다. 호언은 명을 받들어 밤낮으로 달려 중이에게 갔다. 중이가 매우 놀라 호모를 불러 세 사람이 함께 외국으로 도망칠 것을 의논하고 있는데, 발제가 이미 군사들을 이끌고 포성에 도착했다. 포성 사람들이 성문을 닫고 항거하려고 하자 중이가 말하기를, “부군의 명이라 저항할 수 없다.” 했다. 발제가 군사들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와 중이의 집을 포위했다. 중이와 호씨 형제가 후원으로 달아나자 발제가 칼을 빼 들고 그들의 뒤를 추격했다. 호모 호언 형제가 먼저 담장을 넘어 뒤따라오는 중이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발제가 중이의 소매를 잡고 칼을 뽑아 내리쳤으나 소맷자락을 베었을 뿐이었다. 중이는 담장을 넘어 달아났다. 발제가 소매를 가지고 돌아와 보고했다. 세 사람은 마침내 적(翟)나라로 도망쳤다.
翟君先夢蒼龍蟠於城上,見晉公子來到,欣然納之。須臾,城下有小車數乘,相繼而至,叫開城甚急。重耳疑是追兵,便教城上放箭。城下大叫曰:「我等非追兵,乃晉臣願追隨公子者。」重耳登城觀看,認得為首一人,姓趙,名衰,字子餘,乃大夫趙威之弟,仕晉朝為大夫。重耳曰:「子餘到此,孤無慮矣。」即命開門放入。餘人乃胥臣、魏犨、狐射姑、顛頡、介子推、先軫,皆知名之士。其他願執鞭負橐,奔走效勞,又有壺叔等數十人。重耳大驚曰:「公等在朝,何以至此?」
적(翟)나라 군주가 전날 밤 꿈속에서 푸른 용이 성 위에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진(晉)나라 공자가 온 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조금 뒤 성 아래에 작은 수레 몇 대가 계속해서 이르러 급하게 문을 열라고 외쳤다. 중이가 추격병인가 의심하여 성 위에서 화살을 쏘라고 명령했다. 성 아래에서 큰소리로 외치기를, “우리는 추격하는 군사들이 아니라 진(晉)나라 신하들로 중이 공자님을 따르려고 온 사람들입니다.” 했다. 중이가 성에 올라 살펴보니 맨 앞에 선 한 사람이 성은 조(趙)이고 이름은 쇠(衰)이며 자는 자여(子餘)로 대부 조위(趙威)의 아우로 진(晉)나라 조정에 대부 벼슬을 하고 있은 사람임을 알았다. 중이가 말하기를, “자여가 여기에 왔으니 나는 걱정이 없게 되었다.” 하고, 즉시 성문을 열고 그들을 들어오게 하였다. 그 밖의 사람들은 서신(胥臣), 위주(魏犨), 호사고(狐射古), 전힐(顚頡), 개자추(介子推), 선진(先軫) 등 모두가 이름 있는 인사들이었다. 그밖에 말채찍을 잡고 등짐을 지고 심부름이나 하면서 정성껏 모시겠다는 사람들도 호숙(壺叔)을 포함하여 수십 명이나 되었다. 중이가 매우 놀라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모두 조정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했다.
趙衰等齊聲曰:「主上失德,寵妖姬,殺世子,晉國旦晚必有大亂。素知公子寬仁下士,所以願從出亡。」翟君教開門放入,眾人進見。重耳泣曰:「諸君子能協心相輔,如肉傅骨,生死不敢忘德。」魏犨攘臂前曰:「公子居蒲數年,蒲人咸樂為公子死。若借助於狄,以用蒲人之眾,殺入絳城,朝中積憤已深,必有起為內應者。因以除君側之惡,安社稷而撫民人,豈不勝於流離道途為逋客哉?」重耳曰:「子言雖壯,然震驚君父,非亡人所敢出也。」魏犨乃一勇之夫。見重耳不從,遂咬牙切齒,以足頓地曰:「公子畏驪姬輩如猛虎蛇蝎,何日能成大事乎?」
조쇠 등이 한목소리로 말하기를, “주상이 실덕하여 요사스러운 계집에 빠져 세자를 죽였으니 진(晉)나라는 조만간에 틀림없이 큰 난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평소에 공자께서 넓은 아량과 인자한 마음으로 선비들을 대한 것을 알고 공자를 따르고자 나라 밖으로 탈출했습니다.” 했다. 적나라 군주가 문을 열고 그들을 들이게 하여 만났다. 중이가 울면서 말하기를, “여러분들이 마음을 합하여 서로 돕겠다고 하니 우리는 뼈에 살이 붙은 것처럼 한 몸이 되었소. 죽건 살건 감히 그 덕을 잊지 못할 것이오.” 하니, 위주(魏犨)가 팔을 걷어 부치고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공자께서 포성에 수년간 계시어서 포성 사람들이 모두 공자를 위하는 일이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오랑캐에게서 도움을 받고 포성 사람들을 써서 강성(絳城 ; 진나라 도읍)으로 쳐들어간다면 조정에 대한 원한이 이미 깊은 백성들 중에서 반드시 내응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군주의 측근에 있는 흉악한 간신들을 제거하여 사직을 보전하고 백성들을 무마한다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도망자 신세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했다. 중이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비록 장하나 그렇게 되면 부군을 놀라게 하여 불효를 저지르게 되니 망명 중인 자식으로서 감히 할 수 없는 짓이오.” 했다. 위주는 한 용감한 사내라 중이가 자기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갈고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공자께서 여희의 일당을 맹호나 뱀과 전갈처럼 두려워하시는데 어느 날에 능히 대사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했다.
狐偃謂犨曰:「公子非畏驪姬,畏名義耳。」犨乃不言。昔人有古風一篇,單道重耳從亡諸臣之盛:「蒲城公子遭讒變,輪蹄西指奔如電。擔囊仗劍何紛紛?英雄盡是山西彥。山西諸彥爭相從,吞雲吐雨星羅胸。文臣高等擎天柱,武將雄誇駕海虹。君不見,趙成子,冬日之溫徹人髓。又不見,司空季,六韜三略饒經濟。二狐肺腑兼尊親,出奇制變圓如輪。魏犨矯矯人中虎,賈佗強力輕千鈞。顛頡昂藏獨行意,直哉先軫胸無滯。子推介節誰與儔?百鍊堅金任磨礪。頡頏上下如掌股,周流遍歷秦齊楚。行居寢食無相離,患難之中定臣主。古來真主百靈扶,風虎雲龍自不孤。梧桐種就鸞鳳集,何問朝中菀共枯?」
호언이 위주에게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여희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명분과 의리를 생각하시기 때문이오.” 하니, 위주가 더 말하지 않았다. 옛사람이 고풍(古風) 한 편을 지어 중이를 따라 망명한 여러 신하를 노래하여, “포성의 공자가 참소로 변을 당하여, 수레를 타고 서쪽으로 번개같이 도망쳤다. 등짐에 장검을 차고 찾아온 재사들이 많기도 했다. 영웅들은 모두가 태항산 서쪽의 선비들이었다. 산서의 여러 선비가 서로 따르며, 구름을 삼키고 비를 토하며 별을 잡는 포부를 지녔었다. 문신은 높이 하늘의 기둥을 떠받들 듯하고, 무장들은 무지개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용기를 뽐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조성자(趙衰)가 겨울날 자기 체온으로 사람의 뼛속까지 따뜻하게 덥힌 일을, 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사공계(胥臣)가 육도삼략으로 부국강병을 일으킨 일을! 이호(二狐 ; 狐毛와 狐偃)는 폐부 깊숙이 부친의 당부를 지키면서, 기이한 계책으로 변란을 막아 바퀴처럼 원만하였고, 위주(魏犨)는 씩씩한 사람 중의 호랑이며, 가타(賈佗)는 천근을 가볍게 들어 올리는 장사였다. 전힐(顛頡)은 가슴에 감춘 뜻을 홀로 행하는 사람이었고, 올곧은 선진(先軫)은 막히는 것이 없었던 재사였다. 개자추(介子推)의 절개는 누구도 견줄 수 없었으니, 백 번이나 담금질하고 숫돌에 간 쇠 같았다. 훌륭한 인사들 서로 다투어 중이의 손발이 되어, 모두 진(秦), 제(齊), 초(楚) 등의 나라를 유랑하면서, 같이 걷고 머물고, 자고 먹으면서 헤어지지 않았고, 환난 중에서도 군신의 직분을 잃지 않았다. 예부터 진정한 군주는 모든 신령이 돕는다고 했는데, 바람과 호랑이, 구름과 용이 어찌하여 외롭겠는가? 오동나무를 심어 난새와 봉황이 모였으니, 조정에서 무성함과 시듦을 어찌 묻겠는가?” 했다.
重耳自幼謙恭下士,自十七歲時,已父事狐偃,師事趙衰,長事狐射姑,凡朝野知名之士,無不納交。故雖出亡,患難之際,豪傑願從者甚眾。惟大夫郤芮,與呂飴甥腹心之契,虢射是夷吾之母舅,三人獨奔屈以就夷吾。相見之間,告以:「賈華之兵,旦暮且至。」夷吾即令歛兵為城守計。賈華原無必獲夷吾之意,及兵到,故緩其圍,使人陰告夷吾曰:「公子宜速去。不然,晉兵繼至,不可當也。」夷吾謂郤芮曰:「重耳在翟,今奔翟何如?」郤芮曰:「君固言二公子同謀,以是為討。今異出而同走,驪姬有辭矣。晉兵且至翟,不如之梁。梁與秦近,秦方強盛,且婚姻之國,君百歲後,可借其力以圖歸也。」
중이는 어려서부터 선비들에게 겸손하고 공경하는 태도로 지내다가, 열일곱 살이 된 후로는 호언을 부친처럼 모셨고 조쇠를 스승으로 모셨다. 장성하자 호사고를 섬겼기 때문에 진(晉)나라 조정과 민간의 이름난 선비들과는 사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중이가 비록 망명하여 환난 중임에도 따르는 호걸들이 아주 많았다. 오직 대부 극예(郤芮)와 여이생(呂飴甥)은 서로 마음속으로 맺은 밀약이 있었고, 또한 괵석(虢射)은 이오의 외삼촌이 되기 때문에 세 사람은 굴성으로 도망가서 이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이오에게 인사를 올리고 말하기를, “가화(賈華)의 군사들이 곧 닥칠 것입니다.” 하니, 이오가 즉시 명령을 내려 군사를 수습하여 성을 지킬 계책을 세웠다. 원래 가화는 이오를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군사들을 이끌고 굴성에 도착하자 일부러 포위를 느슨하게 하고 사람을 시켜 몰래 이오에게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속히 달아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주군께서 보낸 병사들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면 그때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이오가 극예에게 말하기를, “중이가 적(翟)나라에 가 있는데 그곳으로 가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극예가 말하기를, “부군께서 두 공자님이 함께 반역을 모의하였다고 말하시고 이렇게 토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같은 곳으로 달아나면 여희가 이것을 말할 것입니다. 부군의 군사가 적나라에 이를 것이니 양(梁)나라로 가느니만 못합니다. 양나라는 진(秦)나라와 가깝고 진나라는 바야흐로 강성하며 우리나라와는 혼인으로 맺어진 우호국입니다. 공자께서 훗날 진(秦)나라의 힘을 빌려 귀국을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했다.
夷吾乃奔梁國。賈華佯追之不及,以逃奔復命。獻公大怒曰:「二子不獲其一,何以用兵?」叱左右欲縛賈華斬之。丕鄭父奏曰:「君前使人築二城,使得聚兵為備,非賈華之罪也。」梁五亦奏曰:「夷吾庸才無足慮。重耳有賢名,多士從之,朝堂為之一空。且翟吾世仇,不伐翟除重耳,後必為患。」獻公乃赦賈華,使召勃鞮。鞮聞賈華幾不免,乃自請率兵伐翟,獻公許之。勃鞮兵至翟城,翟君亦盛陳兵於採桑,相守二月餘。丕鄭父進曰:「父子無絕恩之理。二公子罪惡未彰,既已出奔,而必追殺之,得無已甚乎?且翟未可必勝,徒老我師,為鄰國笑。」獻公意稍轉,即召勃鞮還師。
이오는 즉시 양나라로 도망쳤다. 가화는 추격하는 척하다가 잡지 못하고, 달아났다고 복명했다. 진헌공이 대노하여 말하기를, “두 놈 중에 한 놈도 못 잡았으니 어찌 용병이라고 하겠는가?” 하고, 좌우에게 소리쳐 가화를 묶어 참수하라는 명을 내리려고 했다. 비정보가 아뢰기를, “주군께서 옛날에 사람을 시켜 포성과 굴성을 쌓아 병사를 두어 방비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가화의 잘못이 아닙니다.” 했다. 양오도 또한 아뢰기를, “이오는 용렬한 사람이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이는 현명하다고 이름났기 때문에 많은 인재가 따라가서 조정이 텅 비었습니다. 또한 적(翟)나라는 우리와는 대대로 원수의 나라이니 적나라를 토벌하여 중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후일에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했다. 진헌공이 가화를 용서하고, 발제를 불렀다. 발제는 가화가 거의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자청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적나라를 정벌하겠다고 했다. 진헌공이 허락했다. 발제의 군사가 적나라의 도성에 이르자 적나라 군주도 역시 채상(采桑)에 진을 펼쳐 두 달 남짓을 대치하였다. 비정보가 나아가 말하기를, “부자간의 인연은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천륜입니다. 두 공자의 죄악이 드러나지 않았고, 이미 국외로 도망쳤으니, 끝까지 쫓아가서 죽인다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또 적나라와 싸워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어 우리 군사들을 헛고생만 시키게 된다면 이웃 나라들의 웃음거리만 될 것입니다.” 했다. 진헌공은 뜻이 조금 바뀌어 즉시 발제를 불러 군사를 돌아오게 했다.
獻公疑群公子多重耳夷吾之黨,異日必為奚齊之梗,乃下令盡逐群公子。晉之公族,無敢留者。於是立奚齊為世子。百官自「二五」及荀息之外,無不人人扼腕,多有稱疾告老者。時周襄王之元年,晉獻公之二十六年也。是秋九月,獻公奔赴葵邱之會不果,於中途得疾,至國還宮。驪姬坐於足,泣曰:「君遭骨肉之釁,盡逐公族,而立妾之子。一旦設有不諱,我婦人也,奚齊年又幼,倘群公子挾外援以求入,妾母子所靠何人?」獻公曰:「夫人勿憂!太傅荀息,忠臣也,忠不二心,孤當以幼君託之。」
진헌공은 여러 공자가 대부분 중이와 이오의 당이라고 의심하여 후일에 틀림없이 해제에게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즉시 공자들을 모두 나라 안에서 쫓아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진(晉)나라의 공족들은 아무도 감히 나라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에 해제를 세자로 세웠다. 이오(二五 ; 동관오와 양오)와 순식을 제외한 모든 벼슬아치는 울분에 차서 주먹을 불끈 쥐고, 아프다거나 늙었다는 핑계를 대고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가 주양왕 원년(기원전 651년)으로 헌공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26년이었다. 그해 가을 9월에 진헌공이 규구(葵邱)의 회맹에 참석하러 길을 떠났으나, 참석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병을 얻어 귀국하여 궁으로 돌아왔다. 여희가 진헌공의 발치에 앉아 울면서 말하기를, “주군께서 골육에게 배반당하여 공족들을 모두 나라 밖으로 쫓아내고 첩의 자식으로 후계를 세우셨습니다. 당장은 모두가 복종하고 있는 듯하나 첩은 아녀자이고 해제는 아직 나이가 어립니다. 만약 주군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여러 공자가 외국의 도움을 얻어 군위를 빼앗기 위해 쳐들어온다면 첩의 모자는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까?” 하니, 진헌공이 말하기를, “부인은 걱정하지 마시오. 태부 순식은 충신이오. 충신은 두 마음을 갖지 않는 법이오. 내가 그에게 어린 해제를 부탁하겠소.” 했다.
於是召荀息至於榻前,問曰:「寡人聞『士之立身,忠信為本。』何以謂之忠信?」荀息對曰:「盡心事主曰忠,死不食言曰信。」獻公曰:「寡人欲以弱孤累大夫,大夫其許我乎?」荀息稽首對曰:「敢不竭死力!」獻公不覺墮淚,驪姬哭聲聞幕外。數日,獻公薨。驪姬抱奚齊以授荀息,時年纔十一歲。荀息遵遺命,奉奚齊主喪,百官俱就位哭泣。驪姬亦以遺命,拜荀息為上卿,梁五東關五加左右司馬,歛兵巡行國中,以備非常。國中大小事體,俱關白荀息而後行。以明年為新君元年,告訃諸侯。
이에 진헌공이 순식을 불러 침상 앞으로 다가오게 하고 묻기를, “과인이 듣기에 ‘선비의 몸가짐은 충성(忠誠)과 신의(信義)을 그 근본으로 한다.’고 하였소. 무엇을 충성과 신의라고 생각하오?” 하니, 순식이 대답하기를, “마음을 다하여 주군을 모시는 일을 충이라 하고, 죽어도 한번 한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을 신의라고 합니다.” 했다. 진헌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나이 어린 세자를 대부에게 맡기려 하니 대부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겠소?” 하니, 순식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감히 죽을힘을 다하겠습니다.” 했다. 진헌공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자, 여희의 곡소리가 장막 밖에까지 들렸다. 며칠 후에 진헌공이 죽었다. 여희가 어린 해제를 안고 와서 순식에게 인도했다. 그때 해제의 나이는 11살이었다. 순식이 진헌공의 유명을 받들어 해제를 상주로 정하자 백관들이 모두 나와 곡했다. 여희도 역시 유명이라고 하면서 순식을 상경으로 임명하고 양오와 동관오의 관직을 올려 좌우 사마(司馬)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나라 안을 순행하며 비상사태에 대비하게 했다.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은 모두 순식에게 아뢴 후에 행하게 했다. 다음 해를 새 군주의 원년으로 하여 제후들에게 부고를 보냈다.
畢竟奚齊能得幾日為君,且看下回分解。
마침내 해제가 며칠이나 임금 노릇을 할까.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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