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쇼
하 여 진
리큅에 바짝 말린 소한이 돌아올 때
사과와 오렌지와 시나몬 스틱 하나
포도주 알알이 익은 빛 온몸으로 번진다
겹겹이 우러나온 꽃과 새와 빛과 별
혀끝에 닿을 듯한 기억은 새콤달콤
하이빔 솟구치는 맛 끝도 없는 뿔이 뚝
이별은 묵을수록 모양을 잃어갈까
대본에 없는 함박눈 흐린 창가 쌓이고
건져낸 청귤칩 하나 당신은 증발한다
잘 가라 끓여 마신 지독했던 이름하나
불어터진 별빛과 달빛이 가득한 밤
땀방울 맺힌 미련에는 증오가 약이 된다
중앙일보 시조 백일장 2월 장원
로런 포니에의『자기 이론』: 고통을 사유의 뼈대로 세우는 법
최근 로런 포니에의 저서 『자기 이론: 자기의 삶으로 작업하기』를 읽으며 지나온 16년의 공백과 현재의 삶을 반추했다. 등단 후 단 한 번의 청탁도 없었던 무명의 설움, 당뇨로 시력을 잃어가는 공포, 그럼에도 15년째 학문을 놓지 않는 이유를 '자기 이론'이라는 틀로 정리해 본다.
1. 16년의 침묵, 청탁서 없는 시인의 책상
2009년 '시인세계' 등단이라는 화려한 이름표를 달았을 때, 세상은 금방이라도 내 시 구절을 받아 적을 준비가 된 줄 알았다. 그러나 16년이 흐르는 동안 내 책상 위로 날아든 청탁서는 단 한 장도 없었다. 동료들의 이름이 문예지의 면면을 채울 때, 나는 이름 없는 수급자이자 병든 노인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포니에는 말한다. “이론은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소외된 자들의 생존 전략이다.” 나의 침묵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언어를 길어 올리기 위한 고독한 잠항(潛航)이자, 나만의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고의 시간이었다.
2. 당뇨라는 실존적 불안과 15년의 배움
내 몸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당뇨는 시력을 갉아먹고, 언제 눈앞이 암전(暗轉)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매일 아침 나를 습격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육체의 위기는 나를 15년째 대학과 대학원 강의실로 떠밀었다. 나에게 배움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비명이자 기도였다.
눈이 멀어가는 공포를 철학적 사유로 치환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스러져가는 노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철학을 읽고 문학적 지식을 쌓는 순간, 나의 개별적인 고통은 인류 보편의 ‘실존적 고립’이라는 이론적 뼈대를 얻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내일 대신, 보이지 않는 사유의 깊이를 선택하기로 했다.
3. 수급자의 삶, 고통의 재료로 빚은 시조(時調)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수급자의 생활은 고달프지만, 그 빈곤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정직한 시적 소재였다. 최근 들려온 중앙일보 백일장 ‘장원’ 소식은 16년 동안 누구도 찾지 않았던 내 언어가 얼마나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었는지를 증명해 주었다.
정형화된 시조의 율격 속에 불규칙한 고통을 밀어 넣는 작업, 그것은 혼돈스러운 삶을 질서 있는 예술로 승화시키는 ‘자기 삶으로 작업하기’의 치열한 실천이다.
[나가며]
이제 나는 주저앉지 않고 다시 도전한다. 연말 결선을 앞두고 진정한 시조 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정진할 것이다. 이론은 도서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처 입은 몸속에 흐른다는 포니에의 말처럼, 내 시가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살아있는 이론이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어떤 언어로 기록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