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율사의 망신참 (亡身懺)
마음속에 담아둔 영혼의 불교성지가 있다. 나에게는 변산 부사의방이 그곳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진표율사에 대하여 많이 사랑하고 흠모하였다. 인간은 고통이 있어야 삶이 완성되고, 수행을 해야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수행의 표본을 부사의방 진표율사에게서 느낀다. 백제가 멸망하고 진표율사는 미륵보살 지장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부사의방에서 처절하게 기도수행을 한다. 천 길 낭떠러지기 절벽에 붙어있는 수행공간이다. 그곳을 참배하기 위하여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모두 마치고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학봉스님과 함께 변산 국립공원을 찾아갔다. 안내소에 가서 의상봉 아래 부사의방을 물어보니 자신은 입사한지 오래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내소사 종무소를 찾았다. 마침 진학(眞學)주지스님께서 우리를 보고 부사의방 찾아가는 코스를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의상봉 정상 가까운 곳에 부사의방이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길이 초행길은
쉽지 않다고 하였다. 그곳까지 길을 안내할 분을 소개시켜 주면 후사를 하겠다고 간청했더니, 주지스님께서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나와 학봉스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서공군부대에 통지하고, 당신이 직접 차를 몰고 30여 분을 달려 의상봉 위에 공군부대까지함께 갔다. 공군부대는 군법당이 있어서 진학스님이 지도법사였는데, 무사히 군부대를 통과 할 수 있었고, 법당을 찾아 부처님께 예배하고 진학스님은 군법사에게 200만원 법회비를 전달 하였다. 그리고 군법사의 안내로 부사의방까지 갔다. 부사의방은 공군부대에서 10분 정도 산 아래로 걸어가면 도착한다.
부사의방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 지방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외지에서 찾아왔다면 꼼꼼히 잘 살펴야 한다. 부안군 청림면에서 의상봉 아래 있는 부사의방을 찾아가는 길이 있는가 하면, 부안군 하서면 비득치에서 산길로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의상봉 아래 진표율사의 부사의방이 있다 그러나 현지에 가서 잘 묻고 살펴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산에 와서도 못 찾고 돌아간다 부사의방 지리를 잘 아는 안내인을 대동하고 출발하면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불자들에게는 비득치에서 올라가기를 권유한다. 사실 공군부대에서 내려가면 좋지만 그것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부대에 들어 갈 수 없다. 부사의방은 로프를 타고 절벽 아래로 20미터정도 내려가야 한다. 여성불자들에게는 쉽지 않아 보였다 미리 줄타기 연습을 하고 부사의방을 찾기 바란다 이번에 내소사 주지스님의 은덕으로 망신참 성지를 잘 참배하게 해 주어 무한히 감사 드린다.
고려시대 백운 이규보선생은 변산에서 관리로 있을 당시 부사의 방을 다녀와서 이렇게 적었다.“이른바 부사의방이란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서 구경하였다. 그 높고 험함이 원효방보다 만 배였고, 높이 백자쯤 되는 나무 사다리가 곧게 절벽에 걸쳐 있었다. 3면이 모두 위험한 골짜기라 몸을 돌려 계단을 하나씩 딛고 내려가야만 방에 이를 수가 있다. 한 번만 헛디디면 다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나는 평소에 높이 한 길에 불과한 누대를 오를 때도 두통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아찔하여 굽어 볼 수 없었는데, 이에 이르러서더욱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 올라가기도 전에 머리가 벌써 빙 돈다. 그러나 이 승적을 익히들어오다가 이제 다행히 일부러 오게 되었는데, 만일 이 방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또 진표대사의 상을 뵙지 못한다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어정어정 기어 내려가는데 발은 오히려 사다리에 있으면서도 금방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들어가서 부싯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향을 피우고 율사의 진영에 예배하였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서
과거 백제는 미륵보살 신앙이 중심이었다. 미륵신앙은 선운사 금산사 미륵사 법주사 발연사 동화사등 여러지역에서 나타난다. 왜 미륵신앙을 갈망 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리라 석가모니부처님은 이미 열반에 드셨고 새로운 부처님이 나타나 고통과 슬픔과 아픔에서 우리들을 구원해 주기를 갈망했으리라 삼국유사에“관동풍악의 발연수 비석의 기록”조에 보면 진표율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율사는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수기를 받기 위하여 변산(邊山)에 있는 부사의방(不思議房)으로 찾아간다. 부사의방은 천길 낭떨어지기에 있는 수행기도 도량이다. 고려시대 백운 이규보도이곳을 참방하고는 “쇠줄로 집을 잡아 메고 바위에 못질을 하였다”라고 적어 놓았다. 그것을보면 얼마나 불사의방이 위험한 곳에 시설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진표율사는 미륵보살님께 서원을 세우고 3년동안 계행을 지키며 수행정진 하였으나 감응이 없었다. 진표율사는 발분(發憤)하여 자기 몸을 바위 아래로 던졌다. 천동천녀가 나타나 율사를 받아 본래의 제자리에 있게 하였다. 율사는 다시 삼칠일을 서원하고 발원하면서 돌로 자기의몸을 두드리며 참회하자 손가락과 팔이 부러졌다. 지장보살이 나타나 율사의 손을 예전처럼되게 하고 가사와 발우를 주었다. 망신참이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음을 각오로하는 참회를 말한다.
율사는 더욱 열심히 정진 하였다. 미륵보살이 나타나 율사의 이마를 만지면서 “장하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법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참회를 하였구나.”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율사는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하고 속리산으로
가다가 길에서 소달구지 탄 사람을 만났다. 소들이 율사를 보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자 소달구지 주인이 내려와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이 소들이 스님을 보고 우는 것입니까? 스님은 어디에서 옵니까?”“나는 금산사 진표라고 합니다.일찍이 변산의 부사의방에 들어가 미륵보살과 지장보살 두 성인 앞에서 계법진생(戒法眞栍)을 받고 수도할 수 있는 절을 짓고자 찾으러 온 것입니다. 이 소들은 겉은 어리석으나 속은 현명하여 내가 계법 받은 것을 알고 불법을 소중히 여겨 무릎 꿇고 우는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소달구지주인은 “말 못하는 짐승도 오히려 믿는 마음이 있는데 어찌 사람이 믿는 마음이 없겠습니까?”그는 즉시 낫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진표율사는 그를 제자 영심(永深)으로 받아 들이고 그를 데리고 길상초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서 절을 창건하였다 그 절이 속리산 법주사이다
나의 졸시이다.
진표율사의 망신참 (亡身懺)
천 길 낭떠러지기 위로 올라 갈수도
밑으로 내려 갈수도 없는 아득한 부사의방
3년을 죽기로 맹세하고
미륵보살이여! 지장보살이여!
절벽 아래 몸을 던졌다.
사즉생인가? 불가사의
돌로 업을 찧고 찧으며 간절하고 절박했다
길을 가던 소가 눈물을 흘리고
무릎를 꿇고 엎드린다
계법진생 戒法眞栍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
미륵 지장을 만나리라
*당시 내소사 주지 진학큰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함께 가셔서 사진까지 찍어 주셨다(2012,6,9)
일광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