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성일 - 개척자의 피 땀 눈물 - 2. 초창기 부산에서 입교
1 그때 범천교회에 다니는 김재산 권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는데 신앙이 몹시 돈독하고 정성이 지극하였다. 그런데 언젠가 강도사가 설교하면서 김재산 권사를 나무라면서 ‘청년이 집회하는 그곳이 이단이니 홀리지 말라’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교회는 다 같은 줄 알았는데 이단이니 하는 말은 무엇일까 하고 의아해했다.
2 그 후 얼마 있다가 우리 집 가까이에 신암 장로교회가 세워졌다. 그래서 그곳으로 교회를 옮겼고 얼마 후 학교가 서울로 올라가므로 경성전기공업학교에서 오산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
3 그때 둘째 누님(김복순)이 김재산 권사를 알게 되어 은혜가 많고 성경 해석을 잘하는 곳이 있으니 가보자고 해서 수정동에 계신 문선명 선생님을 뵙고는 자주 예배보러 그곳으로 가게 된 모양이었다. 하루는 김 권사가 우리 집에 와서 누님에게 ‘아우님, 이 길이 옳은가 아닌가 기도해서 응답을 받아 보자’라고 하더니 둘이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4 한참 후에 누님이 역사를 하면서 “옳다, 선생님이 세계를 통일하러 오신 주님이시다”라고 말하였다. 그 후에 누님은 나를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회는 다 같은 곳이고 하나님은 어느 곳이나 계시는데 가까운 교회를 두고 뭣하러 멀리까지 가겠는가” 하고 반대하곤 했다.
5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 누님은 부친을 모시고 갔다. 부친은 돌아와서 몹시 기뻐하시면서 그곳으로 예배 보러 나가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부친이 나를 전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사코 반대했다. 부친은 “사람은 일생에 한 번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뵙는 것도 힘들다.
6 옛날에 성현 한 분 찾기 위해서 평생 찾아다닌 사람들이 있었지만 만나지 못하고 죽었는데 너는 가까운 곳에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다는데 한 번 뵙는 것도 못하겠느냐. 네가 선생님을 한 번 뵙는 것이 나의 부탁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7 나는 부친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다음 주일에 가겠다고 해놓고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 두 번이나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세 번째는 어쩔 수 없이 부친과 누님을 따라서 영도교회를 찾아갔다. 조그만 기와집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고 한글과 영어로 쓰인 간판이 걸려 있었다.
8 현관을 들어서니 조그만 방에 몇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부친이 젊은 청년에게 엎드려서 큰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청년은 태연하게 절을 받고 있었다. 정말 잠바 차림의 젊은 청년이 당돌하게 생각되었다. 부친은 인사를 하고 나서 “너도 인사드려라” 하기에 나는 엉겁결에 큰 절을 했다.
9 그 선생이라는 청년은 나를 쳐다보더니 “아들이요" 한마디 하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부인들에게 꿈 얘기, 환상 본 것 등등을 묻고는 또 해명을 해주고 하였다. 예배는 형식도 없고 순서도 없이 보았다.
10 나는 ‘이런 교회도 있나’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면서 먼저 일어나 갈 수도 없어서 지루한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배를 마쳤는지 젊은 선생이 기도를 하는데 모인 식구들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엄숙하고 슬픈 마음이 북받쳐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11 집에 와서 생각하니 장로교회와 별다른 건 없고 좀 기도가 감명 있었을 뿐인 것 같았다. 그 후로 다시 장로교회에 그대로 나갔다. 그런 때에 김원필 선생이 우리 집 근처로 오시게 됐는데 그분이 원리 강의를 처음으로 하니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12 내가 참석한 그날 책상 위에 흰 종이를 놓고 연필로 하나님의 실존과 피조물의 창조 과정, 성장기의 3단계 등 몇 가지를 추려서 강의를 했다. 그 다음 날에는 타락론을 듣고 선·악의 문제와 인간 타락을 간섭치 않으신 이유 등을 알고는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사명 못한 문제 등도 알게 되니 놀라기만 했다.
13 원리를 며칠 듣고는 장로교회 학생회 총무직을 사퇴하고 통일교회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가서도 공부가 되지 않고 원리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제부터 전도를 해야지’ 하고는 시간만 끝나면 서툰 강의지만 친구들에게 해주고는 교회에 데리고 와서 원리강의를 듣게 했다.
14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뜻은 몰랐는데 하루는 누님이 “너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질문을 하였다. 나는 영문을 몰라서 의아해했더니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다”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가 1954년 6월 15일이었다. 그 후 김원필 선생은 상경하시고 이봉운 장로가 교회를 인도하셨는데 나는 성화학생회를 창설하고 지도 위원이 되었다.
15 그 후 이요한 목사가 부임하시고 나서 본격적인 전도와 발전이 있었다. 매일 원리강의를 계속했다. 식구들은 전도에 열중하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난 후에도 학교에서 전도에만 열중했다. 시험 때에도 교회를 하루만 안 가도 마음이 잡히지 않아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16 원리대로 살아 보자고 노력도 무척 했다. 마음에 가책 가는 일이 있거나 여자를 보고 ‘아름답다’ ‘좀 사귀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만 해도 교회 문전에 도착할 때까지 청산이 안 되면 문 앞에서 기도하고 정리하고서야 교회에 들어갔다. 나는 뜻밖에 모르고 기뻐하는 할머니들이 참으로 순결하고 거룩하게 보여서 몹시 부러웠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정말 읽으면서 은혜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