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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SGI 교학부장 강의 (2011년 7월, 9월)
가연정업서(可延定業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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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본존 근본’ ‘강성한 신심’ ‘창제행 지속’을!
<본문> (어서 985쪽 1행~3행)
대저 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일(一)에는 경병(輕病) 이(二)는 중병(重病) · 중병조차 명의(名醫)를 만나서 서둘러 대치(對治)하면 그대로 존명하는데 황차 경병에 있으서랴.
업(業)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일(一)에는 정업(定業) 이(二)에는 부정업(不定業), 정업(定業)조차 깊이깊이 참회하면 반드시 소멸하니 황차 부정업에 있어서랴.
이 어서는 1275년 봄, 대성인이 54세 때 도키조닌의 부인인 도키니부인에게 주신 편지다. 이 어서의 집필 연도는 1279년으로 되어 있지만, 연구가 진행되면서 1275년 봄에 대성인은 시조깅고에게 도키니부인이 중병에 걸린 것 같다고 걱정하는 보고를 듣고 이 어서를 바로 쓰셨다.
도키니부인은 남편을 내조하고 두 아들을 대성인 슬하로 출가시키며 아쓰하라법난이 일어났을 때는 박해를 받는 대성인의 제자들을 숨겨주는 등 병과 투쟁하면서도 의연히 불퇴전의 신심을 관철했다.
도키니부인은 병으로는 괴로워했지만, 대성인의 지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독위약하여 일생성불의 신심을 관철할 수 있었다.
먼저 “병에는 경병과 중병의 두 종류가 있는데 중병이라도 좋은 의사를 만나 서둘러 치료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하물며 경병을 치료하지 못할 리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어문은 도키니부인의 병이 중병일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이처럼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중병이라도 좋은 의사를 만나 서둘러 치료하면 목숨을 연장할 수 있다. 하물며 경병은 낫지 않을 리 없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생명을 소중히 하세요”라고 격려하신다.
이어서 “업에는 정업(定業)과 부정업(不定業)이 있다. 정업이라도 깊이 깊이 참회하면 반드시 소멸된다. 하물며 부정업이 소멸되지 않을 리 없다.”고 말씀하신다.
불법에서는 병이 일어나는 원인으로 <오타입도전답서>(어서 1009쪽)에서 다음과 같이 여섯 종류를 설한다.
“병이 일어나는 인연을 밝힘에 육(六)이 있으니, 일(一)에는 사대(四大) 불순(不順)하므로 병듬·이(二)에는 음식이 부절하므로 병듬·삼(三)에는 좌선이 부조(不調)하므로 병듬·사(四)에는 귀(鬼)가 득편함·오(五)에는 마(魔)의 소위·육(六)에는 업(業)이 일어나므로 병듬”
대성인은 이 여섯 종류의 병, 즉 모든 병 중 업병이 가장 치유하기 어렵지만, 특히 묘호렌게쿄의 양약이 있으면 중병 중의 중병인 법화 방법의 죄업으로 인한 업병도 치유할 수 있다고 명확히 말씀하신다.
이 점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먼저 ‘정업’에 관해 설명하겠다.
‘업’(카르마)이란 몸과 마음과 입(말)으로 하는 활동, 즉 몸으로 활동하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신(身), 구(口), 의(意)의 세 가지 활동은 반드시 그 활동을 한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의 영향력을 남긴다. 이 활동과 영향력을 합해서 업(카르마)이라고 한다.
중생 한사람의 생명에는 무수한 업과 무수한 영향력이 축적되는데, 그 중 미래에 반드시 선악과 고락의 과보를 가져오는 강한 영향력을 지닌 업이 있으며 그것을 ‘정업’이라고 한다.
또 영향력이 약해 반드시 선악과 고락의 과보를 가져온다고 할 수 없는 업을 ‘부정업’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정업’이 형성되는 경우를 ‘구사론’에 의거하여 세 가지를 생각해보겠다.
① 행동의 동기가 매우 강한 번뇌인 경우 또는 반대로 매우 깨끗한 마음인 경우.
② 강한 동기가 없어도 행동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경우.
③ 부처와 법 등 행동의 대상 자체에 매우 풍부한 가치가 갖춰진 경우.
첫 번째로, 행동의 동기가 매우 강한 번뇌인 경우 또는 반대로 매우 깨끗한 마음인 경우는, 미래에 고(苦)나 낙(樂)의 과(果)를 반드시 가져오는 정업이 된다고 있다.
번뇌가 강하면 영향력이 강하므로 악의 정업을 형성한다. 또 매우 깨끗한 마음이 정업을 형성하는 것은 악을 밀어내고 선의 영향력을 가져오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정업에는 선과 악이 있다. 최고의 선의 정업은 일생성불의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다.
대성인은 <일생성불초>를 비롯한 여러 어서에서 일생성불의 중요한 요인으로 ‘강성한 신심’을 말씀하셨다.
강성한 신심은 묘법을 정직하게 믿고 지속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마음이기 때문에 그 선의 영향력이 강해서 반드시 불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힘이 있다.
두 번째로, 강한 동기가 없어도 행동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경우는 반드시 고나 낙의 과보를 가져오는 정업이 된다.
대성인은 <일생성불초> 등 여러 어서에서 우리가 불계의 생명을 나타내는 작업을 정업화하기 위한 수행으로 신심을 일으켜 제목을 부르는 창제행을 날마다 반복하는 중요성을 가르치셨다.
세 번째로, 부처와 법 등 행동의 대상자체에 매우 풍부한 가치가 갖춰진 경우에는 행동의 동기가 강하지 않아도 또 습관적으로 반복하지 않아도 강한 영향력이 그 사람의 업으로 남아 정업을 형성한다.
이 경우는 대상에 대한 행동의 순역, 즉 순종과 거역에 따라 선의 과보 또는 악의 과보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대성인은 말법 사람들의 일생성불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고 사바세계를 불국토로 만들기 위해 신심의
대상으로 어본존을 도현해 주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매우 풍요로운 가치를, 대성인 자신이 실증을 보인 어본존을 우리에게 강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도현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세 가지의 경우 영향력이 강한 업은 반드시 선악과 고락의 과보를 가져온다. 그리고 또 과보가 나타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을 ‘정업’이라고 한다.
과보가 나타나는 시기란, 현세에 나타나는지 내세에 나타나는지 내세 이후에 나타나는지가 정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정업 이외의 업은 과보의 내용과 나타나는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부정업’이라고 한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이 ‘정업’을 문제로 삼는 까닭은 병이 과거세의 업에 의한 강한 영향력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세의 업에 인한 영향력으로 일어나는 병을 ‘업병’이라고 하는데, 대성인이 문제로 삼은 업병은 과거세의 방법으로 인해 일어나는 업병이며 생사에도 관련이 있는 가장 무거운 병, 즉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 방법(謗法)으로 인한 업병을 ‘정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즉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므로 이 어서에서는 ‘정업’이라는 말이 ‘수명’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창제행이라는 실천 속에 최고의 선의 정업을 형성하는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행동의 동기는 어본존에 대한 신(信, 믿음)이다. 이것은 미혹을 극복한 부처의 지혜를 믿는 가장 깨끗한 마음이며 생명에 강한 선(善)의 영향력을 가져오는 힘이다.
또 창제에는 활동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면도 갖추고 있다. 부처의 지혜의 이름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날마다 부르는 것이 창제행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강한 선의 영향력을 생명에 가져온다.
그리고 창제행에는 최고로 풍부한 가치를 갖춘 대상에 대한 행동이라는 면도 있다.
즉 부처의 가장 존귀한 생명을 나타낸 어본존을 배례하는 것만으로도 생명에 강한 선의 영향력을 가져온다. 더구나 자신과 만인의 생명에도 나타나는 존귀한 생명이 어본존이라고 믿으면 내 생명을 정화하는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져온다.
대성인이 설한 창제행에는 생명에 선한 영향력을 가져오는 세 가지 면이 갖춰져 있다. 따라서 불계 용현이라는 최선의 과보를 결정짓는 힘을 지닌다. 그러므로 금세에 일생성불도 가능하다. 현세에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불계를 용현하는 연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 ‘정업’에 관한 고찰을 통해 ‘악의 정업’을 전환하는 힘, 바꿔 말하면 ‘업병’을 치유하는 힘, 그리고 ‘수명’을 연장하는 힘이 명백해졌다.
결론적으로 ① 행동의 동기라는 면에서는 ‘강성한 신심’이며 ② 행동의 습관적인 반복이라는 면에서는 ‘신심을 근본으로 한 창제행의 지속’ ③ 풍부한 가치를 갖춘 대상에 대한 행동이라는 면에서는 부처의 가장 존귀한 생명 즉 ‘어본존에 대한 신심과 창제’가 된다.
따라서 병에 걸렸을 때일수록 ‘신심’을 분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어본존’ 즉 ‘부처의 가장 존귀한 생명’ 즉 ‘자신의 생명의 존엄성’을 믿고 존경하는 활동인 창제행을, 자행화타에 걸쳐 끝까지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악의 정업을 전환하는 즉 숙명전환의 힘을 지닌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병에 걸렸을 때일수록 더욱 신심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점을 배워야겠다.
생명의 존엄을 아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의 진수!
<본문> (어서 985쪽 14행~986쪽 15행)
그러므로 日蓮은 비모(悲母)를 기념(祈念)하였던바 현신(現身)으로 병(病)을 고칠뿐더러 사개년(四箇年)의 수명(壽命)을 연장(延長)했느니라.
지금 여인(女人)의 몸으로서 병(病)을 몸에 얻으셨도다. 시험(試驗)삼아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을 세워 보시라, 게다가 선의(善醫)가 있는데 나까쓰까사사부로자에몬노죠전(中務三郞左衛門尉殿)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라.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일신(一身) 제일(第一)의 진보(珍寶)이니 일일(一日)이라도 이를 연장(延長)한다면 천만량의 황금보다도 더 값지도다,
법화경이 일대(一代)의 성교(聖敎)보다 초과하여 존귀하다 함은 수량품(壽量品) 때문이니라, 염부(閻浮) 제일의 태자(太子)일지라도 단명(短命)하면 풀보다도 가볍고, 일륜(日輪)과 같은 지자(智者)일지라도 요사(夭死)한다면 살아 있는 개만도 못하니라, 빨리 신심(信心)의 재보(財寶)를 쌓아 서둘러서 치료(治療)하시라.(중략)
부디부디 몸의 재보(財寶)만을 아끼신다면 이 병(病)은 낫기 어려우리라. 일일(一日)의 수명(壽命)은 삼천계(三千界)의 재물(財物)보다 더함이니, 먼저 신심(信心)을 나타내 보이시라, 법화경(法華經)의 제칠(第七)의 권(卷)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재물을 공양하느니보다도 손의 일지(一指)를 태워서 불(佛) ․ 법화경(法華經)에게 공양하라고 설해져 있음은 이것이니라.
생명은 삼천(三千)보다도 더함이니라. 그런데 연령(年齡)도 아직 많지 않으시고, 더구나 법화경도 만나셨으니 일일(一日)이라도 살아 계시면 공덕을 쌓이리라. 얼마나 아까운 생명이뇨 ․ 아까운 생명이뇨.
성명(姓名)과 나이를 스스로 써서 다음번에 보내시라, 대일월천(大日月天)에게 여쭈리라, 이요전(伊豫殿)도 대단히 한탄하고 있으니 일월천(日月天)에게 자아게(自我偈)를 읽고 있으리라.
이 어서는 1275년 봄 대성인이 54세 때 도키조닌의 부인인 도키니부인에게 주신 편지다.
당시 중병이었던 도키니부인은 남편을 내조하고 두 아들을 대성인 슬하로 출가시키며 아쓰하라법난이 일어났을 때는 박해를 받는 대성인의 제자들을 숨겨주는 등 병과 투쟁하면서도 의연히 불퇴전의 신심을 관철했다.
도키니부인은 병으로 괴로워했지만, 대성인의 지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독위약하여 일생성불의 신심을 관철할 수 있었다.
이 어문에서 대성인은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일신 제일의 진보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어서의 마지막에도 “생명은 삼천보다도 더함이니라” 즉 목숨은 전 우주에 깔려 있는 재보보다도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대성인이 생명의 존귀함을 강조하신 까닭은 ‘하루라도 더 오래 사세요’라며 도키니부인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생명은 본디 한없이 존귀하다. 하루라도 더 산다면 그 하루는 이를테면 ‘천만 냥의 황금’ ‘삼천계의 재보’보다 더 존귀한 가치를 지닌다. 하루를 살면 무량의 가치가 있다. 따라서 하루라도 더 살라고 격려하신다.
또 법화경의 <여래수랑품>이 존귀한 까닭은 생명 존엄을 설했기 때문이다.
석존이 설한 가르침의 진수인 법화경의 <여래수량품>은 참으로 무한한 생명의 존귀함을 설해 밝히고 있다.
이런 생명의 존엄을 아는 것이 바로 불법의 진수다. 그러므로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존엄한 생명을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래수량이란 ‘여래의 수명을 가늠한다’는 뜻이다. 모든 경전 중에서 <수량품>만이 석존의 영원한 수명을 설해 밝힌다.
그러나 우리 곁을 떠나 석존 혼자만 ‘영원한 생명’에 사는 특별한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수량품에서 설하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 생명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영원한 생명’ ‘위대한 생명’을 현실에서 내 몸에 나타낼 수 있다.
그것을 수량품에서는 구원(久遠)의 여래인 석존의 모습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대성인은 모든 사람이 정말로 영원하고 그지없이 존귀한 생명을 자신의 몸에 실현할 수 있도록 남묘호렌계쿄를 나타내셨다.
병은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생명이 본디 영원한 생명임을 알기 위한 계기다.
대양약이 바로 묘법이다. 치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며, 치료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자신의 신심이다. 본문에서 ‘신심의 재보’라고 말씀하신 까닭이 명확히 나타나 있다.
어문에서 ‘몸의 재보를 아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병을 치료하려는 행동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신 부분이다.
시조깅고에게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도키니부인이 직접 자진해서 부탁을 하라고 충고하신다.
분명 도키니부인은 중병의 징후가 보여 불안한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대성인은 그러한 도키니부인의 심리를 충분히 파악하시고 생명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하시며 서둘러 진찰과 치료를 받도록 권하신다.
그렇게 투쟁심‘을 일으키는 일이 병을 치료하는 첫걸음이다.
이케다 SGI 회장의 지도 중 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얕보지 않는다’는 말씀에는 병에 맞서는 신심의 자세가 그대로 담겨 있다. 또 병에 걸렸을 때 두려움과 불안에 져서 치료를 망설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완치해 보이겠다는 도전심이 바로 신심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심을 하니까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방심도 금물이다. 병을 얕보지 말고 최고의 치료를 기원하며 그러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신심이다.
신심은 관념이 아닌 행동이다. 두려움에 의한 정체가 아니라 용기 있는 도전이다. 방심에 의한 퇴행이 아니라 세심한 배려와 주의에 따른 일보 전진이다.
본문에서 대성인은 “우주의 모든 재보를 공양하는 것보다 손가락 하나를 태워 부처와 법화경에 공양하라”는 법화경 약왕품의 경문을 인용하시며 ‘몸의 공양’이 진정한 법화경 공양이라고 말씀하신다.
법화경에서는 ‘전 우주에 깔려 있는 재보보다도 나의 생명이 존귀하다. 그러므로 이 존귀한 생명을 법화경을 위해 사용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이 존귀한 나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렸으므로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말고 전력으로 행동해야 하며 그것이 법화경의 정신에 통한다고 말씀하신다.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다. 또는 일이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 먼저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몸의 재보를 아껴서는 안 된다”는 지도를 상기하라는 말씀이라 생각된다.
법화경이 생명 존엄 철학이라고 해서 병의 치료를 거리낀다거나 망설인다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심전력하는 것이 바로 법화경 정신에 맞는 신심의 올바른 자세다.
또 ‘한탄’도 마음의 패배로 이어진다. 대성인은 후에 병과 투쟁하는 도키니부인에게 “몸을 소중(所重)히 하고 마음속으로 아무 일도 한탄(恨軟)하지 말지어다”(어서 975쪽) 라고 말씀하신다.
투병생활이 길어지면 무심코 약해져 한탄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람이기 때문에 무거운 병이나 오랜 기간에 걸쳐 병으로 체력과 기력이 쇠약해지면 무심코 이러쿵저러쿵 한탄하거나 포기하거나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탄은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병에 걸렸을 때 가장 중요한 ‘병마와 싸우는 마음’을 잃게 만든다. 게다가 투병 생활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몸을 염려하는 마음의 작용’이 둔해진다.
어떠한 병이라도 한탄하지 않는 일념으로 끝까지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제목이 있다.
한 번의 제목에도 무량무변의 힘이 있다. ‘투쟁심’이 견고하면 문제없다.
이케다 SGI 회장은 1밀리미터라도 2밀리미터라도 미음이 전진하면 된다며 “월월 일일 강성해지시라”(어서 1190쪽)는 마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 생명이 앞으로 전진하면 된다고 지도하시며, 대성인의 말씀대로 우리가 부처가 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한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학회원 중에도 투병하는 분이 많다. 병을 훌륭하게 극복한 분들을 보면 확실히 어본존에 대한 절대적 확신과 병을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강한 결심이 있다.
어본존을 확신한다고 해서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치료도 철저히 받는다. 다만 신심을 통해 마음이 상쾌하기 때문에 깊이 결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우리 생명에 무한한 힘이 움직인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자각한 사람은 단 하루를 살더라도 무한한 공력을 낳을 수 있다. 그 만큼 훌륭한 생명이다. 이 점을 진실로 깨닫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포인트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일일이라도 살아 계시면 공덕이 쌓이리라. 얼마나 아까운 생명이뇨 아까운 생명이뇨”라고 말씀하셨다.
인간혁명과 일생성불을 위해 병에 걸린다는 말씀은 병에 대한 굉장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듯 굉장한 철학을 실천했으면 한다.
결국 도키니부인은 병과 싸워 문하의 건강장수를 끝까지 기원한 대성인의 대자대비에 감싸여 살았다. 그리고 스승의 한없이 깊은 진심에 어떻게든 보답하기 위해 지도대로 용기 있는 신심을 관철했다.
이 사제의 공전으로 도키니부인은 20여 년이나 수명을 연장했다고 한다. 대성인이 입멸하신 후에도 도키니부인은 후계이신 닛코상인의 슬하에서 지도를 따르며 생애 신심을 관철했다고 전해진다.
참으로 ‘정업’을 훌륭하게 전환한 ‘건강장수’의 승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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