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관옥스테이-無爲의 숲
열렸습니다.
7월 17일 19:00 ~18일 점심밥모심까지,
順天수도원 일부님의 안내로 눈뜨는 꽃혜민, 테레사,
노을, 명자, 향원, 마리아, 언연, 자허
그리고 아침차담때는 관옥선생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問 잘 듣고
思 깊이 생각하고
修 실험하는
7월 관옥스테이-無爲의 숲은 <연기찬탄송-쫑카파> <사랑-고린도전서13장>의 경을 읽으며 만납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그만 일어나요
그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잠들어 있는 '본디 나', '내 안의 나'를 다시 깨우는 일이 공부지요. 주문처럼 흥얼거리게 됩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그만 일어나요. 그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의지하여 나타나기에 멸함이 없고 생겨남이 없다.
끊어짐이 없고 영원함이 없다.
옴이 없고 감이 없다.
하나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다.
희론戱論의 적멸함 설하신
최상의 설법자, 원만구족하신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나모 구루 만주고샤야
(스승님과 문수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동 틀 무렵, 길을 걷습니다.
배움터를 나서서 하사들에 있는 논으로 향합니다. 5월에 손모내기를 하고, 이제는 피사리를 마치고 논물을 빼는 중입니다. 배움터 논두렁과 이웃논두렁이 다릅니다. 우리는 이어져 있습니다. 농약으로 누렇게 변한 이웃논두렁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 '연기'를 배웁니다. 이도저도 다 까닭이 있겠지요.
갯벌앞에서 두팔 벌려 바람과 하늘과 몸을 펼쳐 봅니다. 이른 아침, 몸을 깨우는 의식이 우리를 고요로 이끌지요.
잔디밭에서 잔디와 다른 무엇을 찾습니다. 토끼풀을 찾고 팽나무싹을 찾고 이름도 알수 없는 풀을 뽑습니다. 뜯지 않고 뿌리까지 뽑아 내려면 찬찬히 잎을 들추어서 줄기를 따라 더듬어야 합니다. 그래야 쏙 당겨서 뽑을 수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파리만 손을 따라 오지요.
내 안에 있는 낡은 버릇도 이와 다르지 않지요. 더듬고 더듬어, 찬찬히 살펴서 그 본디 자리를 쏙! 물론 한번만에 되는 일은 아니지요. 잔디밭에서 잔디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다른 무엇을 뽑을 수 있는 것처럼 제 속에 자라는 낡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관옥스테이-無爲의 숲 아침차담은 선생님께 질문하고, 스스로 배움을 詩로 나누는 자리입니다.
지혜로운 옛 사람들은 새 사람을 들일 때 밥 먹는 모습을 보았다 합니다. 밥 먹는 모습 말이지요. 우리는 늘 '밥먹는 모습이 다다'라는 말을 듣고 삽니다. 선생님께서 한마디 더 보태어 주십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는 눈길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하셨지요.
"칠십 고개를 넘어서니 든 생각이 있다.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더라. 너무 커서 사랑을 내가 할 수 없더라. 사랑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이 사랑이시니 제 몸으로 당신이 사랑하시면 더 바랄 게 없어요."
"다시 고린도전서를 보니 바울이 저절로 써 진 것이라는데. '사랑하라'는 말이 없네."
"하고 싶은 일을 누르지 마라, 심부름꾼은 물으면 된다. 묻는 것은 기도다. 제자는 선생을 따라 가면 된다. 눈 감고 있는 사람은 그의 길을 모른다. 눈 떠서 선생이 걸어가는 길을 보는 것 그것이 '기도'다."
"눈 먼 자가 되라, 어떤 길로 갈지 생각하지 마라 무엇을 할 것이니도 생각하지 마라 다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내가 길을 찾아 갈 필요가 없다. 그러니 아주 쉽다."
눈 먼 자의 걸음으로, 거미줄에 끌려 가듯이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하면 안되는가는 생각하는 사람을 꿈꿉니다.
요한 23세의 말씀도 다시 듣습니다. 전체를 보라, 모든 것에 눈 감아라, 그리고 극히 작은 부분을 손 보아라.
하느님의 간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라 한다는 젊은 예수의 말씀을 그분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동참한다는 사실을 배움터 기도문으로 다시 새기게 됩니다.
연기緣起에는 세 종류가 있다 합니다.
곧장 알게 되는 연기, 생각해 보아서 아는 연기, 도무지 알길 없는 연기.
이 가르침을 '대략적인 이해만이라도 얻는다면' 더 없는 기쁨이지요.
그럴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있고 없음을 집착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극단의 견해가 더 강해지고,
지혜로운 이 연기를 보면
분별망상의 그물을 모조리 끊는다네.
"모든 것은 본질이 공하고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이해는
모순 없이 서로를 돕는다."고 말씀하셨네
흙날명상때는 길벗들과 함께 <무위당장일순의 노자이야기> 14장 모양 없는 모양을 읽습니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한다.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한다.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이 셋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섞이어 하나를 이룬다. 그 위는 밝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않다. 이어지고 이어져서 이름을 지을 수 없다. 다시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돌아가는지라, 이를 일컬어 모양 없는 모양이요 모습 없는 모습이라 한다. 이를 일컬어 어리벙벙함이라 한다. 맞이해서 보되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따라가며 보되 그 뒤를 볼 수가 없다. 道의 비롯함을 잡으면 이로써 오늘의 현상을 다스릴 수 있다. 능히 천지의 비롯함을 알면 이를 일컬어 道의 근본이라고 한다.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시지불견, 명왈이. 청지불문, 명왈희. 박지불득, 명왈미. 차삼자,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曒, 其下不昧. 繩繩兮, 不可名.
불가치힐. 고혼이위일. 기상불교, 기하불매. 승승혜, 불가명.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惚恍. 迎之不見其首,
복귀어무물. 시위무상지상, 무물지상. 시위홀황. 영지불견기수,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수지불견기후. 집고지도, 이어금지유. 능지고시, 시위도기.
-보이지 않는 그것을 이름지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하느님', '한님' 이라 한다.
-무엇을 안다, 앎 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그 앎의 길은 우리한테도 열려 있다.
-꽃이라는 형상, 모양은 사라지지만 곷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수 왈 '난 사람의 아들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동그라미를 만난 것은 나를 만난 거다.
-겉 모양에 속지 말자.
-사람이 일을 할 때 중용, 중요하다. 그런데 한님이 일을 하실 때는 중용 아닌 것이 없어.
해날 예배, <히말라야.바람> 에서 드립니다.
바람의 경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티벳사람들은 갖가지 천에다 소원이나 경을 새긴다고 합니다. '룽따'를 높은 산이나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바람을 타고 펄럭이게 되지요. 룽따를 매단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는 온 세상을 돌아 하늘에 가 닿을 거라고 믿는답니다.
우리 배움터의 새로운 공간, 히말라야. 바람도 간절한 기도를 품은 곳이면 좋겠습니다. 지구별의 가장 성스러운 곳, 히말라야로 불어 오는 바람과 큰 스승님들로 부터 배운 지혜가 이곳에 깃들어 우리를 친절과 연민으로 물들이고 다시 온세상으로 흘러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습니다.
공간을 멋지어가는 중이지만 기도 자리를 허락해 주신 천지만물께 절합니다.
어린 동무들 하진이와 하민이의 맑은 기운과 관옥스테이-무위의 숲 기운이 어우러진 특별한 시간입니다.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제 할 일은
도로 내어 드리는 것밖에 없다는
드림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는 본디
사랑어린 사람임을 알아
참사랑을 실험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옴
7월 관옥스테이-무위의 숲,
함께 어울려 맑은 기운을 나누어 주신
눈뜨는 꽃들과
천지만물께 절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