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그리고 갈망해결의 원천
우리가 헛된 갈망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화해를 위하여
오늘 1독서 로마서 5장의 말씀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해의 삶을 당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기도를 올립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화해하는 삶’을 특별히 강조하십니다. 법적인 다툼이 일어서 고소하여 법리적 다툼을 하러갈 양이면, 법정에 도달하기 전에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화해는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조율하고 양보해야 가능합니다. 내 입장과 주장을 앞세우면 결코 화해를 할 수 없습니다.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화해하려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을 해야 합니다. 함께 느낌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합니다. 함께 겪음의 의미와 같습니다. 같은 입장에서 그 심정과 삶을 헤아리는 것이 바로 한마음으로 공유하는 느낌입니다. ‘연민’과 동정하는 마음의 뜻인 compassion(함께 느낌)은 일차적으로 그러한 의미에서 쓰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내 이웃과, 내 고향사람과, 내 민족과의 입장에서만 공감을 하면 그 또한 나와 다른 이웃, 나와 다른 고향사람, 나와 다른 민족을 배제하는 마음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내가 연민을 느끼고, 동정하는 그 마음 바탕에 주님은 바로 예수님의 보편적 인간 사랑의 그 마음을 놓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야 참으로 화해의 근본 바탕에 서게 된다고 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느님과의 화해에서 종종 시험에 들곤 합니다. 나는 정직하고 선하고 착하게 사는데 왜 이러한 고통을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고통과 악이 버젓이 존재한다면 전능하신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느냐는 원망을 쏟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우리가 화해하는 것, 즉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지향해 나가는 것이 ‘하느님과의 화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로움과 선함 그리고 죄지음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과 그 희망을 누리는 기쁨을 주시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희망은 거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고난의 과정을 거쳐서 옵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일련의 수난의 과정 말이지요. 사순은 그러한 과정의 성찰입니다. 그렇게 오는 희망일 때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오늘 1독서 로마서 5장의 말씀입니다.
의로운 자를 위해서, 착한 일을 위해 일하는 자, 즉 선한 자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기는 하지만 그러한 일은 매우 드문 일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내 놓았으니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오늘 복음말씀은 전도 중에 만나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입니다. 당대의 시대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시대는 신분제가 확고했고, 여성의 지위는 노예 바로 위의 존재였습니다. 사마리아지역은 북쪽의 갈릴리와 남쪽 유다지역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사마리아인들의 습격을 종종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지역의 여인과 만남은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런 편견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진지하게 나눕니다. 유다인인 예수님은 사마리아여인에게는 원수지간임에도 물을 달라고 합니다. 여인은 어떻게 서로 상종도 하지 않는 사이의 종족임에도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여인은 물을 달라고 하는 당사자가 예수님임을 알지도 못하니 더욱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역사적인 환경에서 조상들 특히 야곱의 시대부터 마셨던 물임을 말하면서 여인은 그런 물인데 그 야곱보다도 더 훌륭한 분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마셔온 물은 갈증을 해소하기는 해도 곧 갈증이 다시 오는 물이었다면, 자신이 제공하는 물은 한 번 마시면 더 이상 갈증에 허덕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로 놀라운 일, 기적적인 그런 말씀입니다. 어떤 물이기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살아있는 물, 헛된 갈증에서 벗어나서 영원히 갈증에 시달리지 않는 그런 ‘생명수’를 주겠다는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그 여자가 “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겠지요.” 하자 예수께서는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4:23-25)
오늘 복음말씀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사역은 하늘의 생명을 땅에 전해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물은 두 가지입니다. 사마리아 여성에게 요청하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갈증을 해결하는 그런 ‘생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물에 관해 단순히 육신의 목마름을 채우는 것 이상의 ‘생수’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줄 그러한 놀라운 힘을 가진 ‘살아있게 하는 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