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보 정당, 독자적인 합법 정당을 추구하다.(2) 그중 첫째의 노동자와 농민의 인권 향상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부르짖은 잘사는 나라 건설을 위한 조국 군대화의 기치에는 공업화가 필수적이었으며 공업화는 수많은 가난한 노동자들을 양산하였지요. 당시 한국의 공업화 과정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린 노동자들의 피땀을 통해 이룩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와 인권, 더 나은 삶에 눈을 뜬 노동자들은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그 운동의 초기인 70년대 말과 80년대의 정부와 사용자들은 그들을 탄압하기만 했어요. 그러니 공산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계급 투쟁론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노동자들은 운동 방식을 레닌의 방식을 원용해 왔던 것입니다. 원래 공산주의라는 것이 노동자와 농민의 굶주림 삶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출발했지요. 그렇게 보면 매우 인간적이며 정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아주 멋진 혁명적 사상운동이었습니다. 오래전의 제정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 역시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한 계몽운동이지요. 당시 일부의 지식인들은 농촌으로 가서 그들을 일깨우는 계몽운동을 벌였지요. 그러나 그것은 크게 탄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르크스가 과학적으로 정치, 경제 상황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였고, 뒷날 레닌이 그것을 현실 정치로 이어받으며 철저한 계급 투쟁의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그들은 현실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급 투쟁의 혁명적 방법밖에 없음을 천명하면서 자본주의적 질서의 타도를 외쳤습니다. 그것이 현실로 성공한 것이 볼셰비키 혁명이지요.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공산주의적 계급 투쟁 혁명의 과정에는 처절한 피를 흘렸지요. 피의 대가에 의한 혁명이며 지금도 그 피의 대가는 치르고 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부르짖었던 노동자와 농민의 세상은 오지 않았으며, 공산혁명을 성공한 나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난에 허덕여 왔습니다. 그들은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에 만족하며 행복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강요된 행복이지요. 그래서 지금은 실제로 정치를 제외한 경제적인 부분의 대부분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되돌아왔지요. **) 그런데 1970년대 이후의 한국에서의 노동자와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한국의 상황을 공산혁명이 일어나던 당시의 상황에 비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해방하는 수단으로서는 레닌의 방식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자와 농민 해방을 부르짖는 계급 투쟁적 혁명주의자들은 1980년대를 들면서 신군부의 출현과 함께 정치 민주화와 궤를 같이하면서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였지요. 그래서 그들이 부르짖은 것은 민중 해방과 통일, 외세배격 등이었습니다. 신군부를 지탱하는 권력이 통일을 빙자하며 방해하고 있으며 분단을 정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릭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세는 신군부를 옹호하며 이용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구실이고 실제로는 자본주의 타도와 노동자와 농민 혁명이었습니다. 그것이 사노맹 사건 등으로 대변됩니다. 당시 저도 그 운동권들과 접촉하며 함께 활동한 적이 있는데 말마다 투쟁이고 읽는 책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레닌의 경험 비판론 등 좌경 서적 중심의 사회학 서적들이었어요. 저도 당시 그런 책들을 열심히 탐독했지요. 이때 진보주의자들은 철저하게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 서게 되었지요. 진보주의 정치이념은 그런 틀 안에서 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겉으로 드러낸 중요한 슬로건은 민주화였습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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