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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내가 전체 세상 나라의 시작이다>의 줄거리 :
왕이나 임금이 아니라도, 모든 사람 심지어 옛날 노예나 종들까지도 각자 다 자기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바라보는 자기만의 세상 나라를 가집니다. 부부라도 각각 바라보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이런 내 나라는 지금 80억 개가 있고 거의 모두가 세상 나라입니다. 이제 이들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전환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전체 세상 나라의 시작이다
(요한계시록 11:15~19)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본문에서는 드디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서 일곱 번째 재앙의 서막이 오릅니다. 지금 지구에는 80억 명에 가까운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에 형성된 전체 시작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제목은 바로 ‘내가 전체 세상 나라의 시작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순간은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이 기대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아직 재앙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너무나 고무적인 음성이 들리고, 이에 대해 이십사 장로가 경배하는 모습이 계시됩니다. 일곱 번째 나팔 재앙에 대한 본격적인 내용은 16장에서 나타납니다. 11장 마지막 부분에서부터 15장까지는 재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확인되어야 할 일들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삼대 칠중 재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 번째 인을 뗄 때 일곱 나팔 재앙을 불러오는 것처럼,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릴 때 일곱 대접 재앙을 불러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 속에 삽화처럼 들어가 있는 세 가지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는 흰옷을 입은 자들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경배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로서 셀 수 없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침의 과정은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대로 완벽과 충만 그 자체라는 내용의 계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재앙이 끝난 뒤에 두 개의 삽화가 들어갑니다.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든 천사에 대한 계시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두 증인에 관한 계시입니다.
이러한 내용 이후에 일곱째 천사의 나팔 소리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당장 일곱 대접 재앙은 시작되지 않고, 12~15장까지는 다른 이야기가 삽화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든 사람들의 이야기,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든 천사에 대한 이야기, 두 증인의 이야기에 더해 또 하나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세 번에 걸쳐 일곱 재앙이 내려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중에서 본문의 핵심은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12~15장까지 이어집니다.
다음 시간에 살펴볼 12장에 대한 내용을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굉장히 유명한 계시가 등장합니다. 한 여인이 아기를 낳으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서 아기를 삼키려 하고, 여인은 낳은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전부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주제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 번에 걸친 일곱 재앙이 임하는 이 세상에서, 성도가 보여야 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중간중간 삽화를 집어넣듯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주제는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계시록에서 ‘우리 주’라는 표현은 종종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합니다.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살펴볼 계시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세상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실 때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께서는“…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이 기록한 본문에서는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의미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언제일지 모를 예수님 재림 직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석합니다. 물론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재림 직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은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맥락을 완전히 오해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지구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녹아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말씀은 그러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재림 이전의 모든 세대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에도 이루어지는 일이었으며, 그 뒤로 천 년이 흐른 중세 시대에도 이루어지는 일이었고, 지금도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천 년 전에도 세상 나라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었고, 지금도 세상 나라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해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본문에 기록된 세상 나라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두 증인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증인에 의해 세상 사람들 중에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자들이 생기고, 그 하나님만을 마음 채울 것으로 여겨 하나님 부자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만으로 부자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일이 모세로 상징되는 세상 탈출과, 엘리야로 상징되는 천국 진입의 과정을 날마다 숙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 탈출과 천국 진입을 반복하며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또한 마음의 공백을 하나님만으로 채우려는 소망으로 가득 찬 달인들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이 지구 전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게 되리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은 인격체로서 전부 자기의 세상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80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면 80억 개의 세상 나라가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에서 똑같은 바다와 똑같은 땅과 똑같은 산과 강을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스웨덴 사람들이 한반도를 포함하는 지구에서 살고 있듯이, 우리도 스웨덴을 포함하는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내와 아이라는 가족이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면, 누군가는 태승철이라는 사람과 그 가족이 있는 세상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지구상 80억 명의 사람에게 나는 80억 번 공유되고 있는 셈입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어떤 사람이 저를 알 리가 없고 저의 집사람을 알 리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있고 집사람이 존재하는 그 지구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아있는 사람만큼 세상 나라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공유하고 있는 대상 중에서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대상부터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바라봄에서 생기는 관계의 다리는 지구 전체를 덮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처음에 바라보는 대상을 자기만의 생각으로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갖습니다. 저와 아내가 마주할 때 아내는 저라는 사람을 바라봄으로써 연줄로 삼아 전체 세상을 인식한다면, 저는 아내를 바라봄으로써 연줄로 삼아 전체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지만 하나의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바라보는 세상을 아내는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남편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각자가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구 전체라는 자기만의 세상 나라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가진 관계의 다리란 두 다리, 세 다리, 네 다리만 넘어가도 전혀 알지 못하는 완전한 남입니다. 그러나 모든 대상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내게 가장 가까운 대상을 바라봄을 통해 나만의 지구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자기만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주민센터 9급 공무원에게는 그에게만 해당하는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꼭 왕이나 재벌처럼 영향력이 큰 사람들만이 자기의 세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노예도 노예라는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는 지구가 있고 그것이 자기의 세상 나라입니다.
이로부터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상징적 묵시나 계시를 접할 때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고 하니, 막연하게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석들도 구체적이고 정확한 선을 긋기보다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임하리라는 막연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하지 않더라도 지금도 하나님의 주권은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공중 권세를 잡도록 허락하신 것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죄악 된 상태를 편안해하고 좋아하며 주저앉으려는 사람들에게 공중 권세 잡은 마귀의 역사가 임하도록 허락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두 증인 이야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당신의 선민들에게 재앙 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주시면서 십자가로 끌고 가시려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것은 교정적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나를 교정시키기 위하여 주권을 사용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땅에서 이루고 싶으셨던 자발적이고 창조적 계획들을 막힘이나 방해 없이 이루시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도 엄연히 하나님의 주권은 임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상태는 아닙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격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강릉 해변에는 소나무 숲이 있는데 소나무가 바라보는 세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소나무 숲에는 청설모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청설모가 바라보는 세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가까이 있는 대상을 바라볼 때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작동하는 인격체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내게 가장 가까운 대상이 배우자나 자녀나 친구 혹은 회사 동료일 수 있습니다. 그런 대상들을 온 지구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도 각자가 다르게 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다르게 보면서 그 사람만의 세상이 시작됩니다.
요셉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갑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지구 전체를 자기의 세상 나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보디발은 장군의 입장에서 지구 전체를 자기의 세상 나라로 가지고 있었고, 요셉은 노예의 입장에서 지구 전체를 자기의 세상 나라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요셉은 이제 죄수로서 바라보는 지구 전체를 자기의 세상 나라로 갖게 됩니다. 요셉은 자기 입장을 통해 전체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애굽의 집권자 바로는 왕의 자리에서 애굽 전체를 바라보는 세상 나라를 갖고 있었습니다.
집권자 바로는 왕의 입장을 통해 애굽을 포함하는 지구 전체를 세상 나라로 갖고 있었고, 보디발은 장군의 입장에서 애굽을 포함하는 지구 전체를 세상 나라로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들의 인식이 애굽 너머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을지라도 그 연관성은 애굽 옆에는 다른 나라가 있고, 그 옆에는 또 다른 나라가 있는 식으로 확장되어 한반도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에게 가까운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갖습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입니다.
바로는 왕의 입장, 보디발은 장군의 입장, 요셉은 죄수의 입장에서 자기 세상 나라를 가지고 있는데 요셉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만으로 평강의 근거를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땅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나 보디발이 아닌 요셉을 거점으로 삼으십니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과 근동지역에 기근이 임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총리의 자리에 앉히십니다.
바로는 왕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기의 세상 나라가 있었고, 보디발은 장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기의 세상 나라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죄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기의 세상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바라보는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바뀝니다. 그러면서 바로의 세상 나라에 포함되어 있던 애굽 땅은 요셉의 나라에 포함되어 있던 애굽 땅으로 전입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 나라에서 역사하셨기에, 애굽을 포함한 근동지역과 지구 전체가 연관성을 갖게 되면서 요셉의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15절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요셉이 꿈꾸는 자였다는 것은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자였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요셉은 성령을 통해 오실 예수님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어린 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곧 어린 양을 받아들이면 세상 탈출과 천국 진입이 이루어지며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반면 어린 양을 통하지 않으면 세상 탈출도 없고 천국 진입도 없습니다. 천국 진입이 되어야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통해서 지구 전체를 다스려 가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로부터 시작하는 지구 전체라는 세상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동료 목사님도 자기로 시작하는 지구 전체라는 세상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동료 목사님이 어린 양의 십자가를 붙잡고 세상 탈출과 천국 진입을 하게 되면 두 개의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 두 개의 나라에서 공유하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으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백 사람이 나타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백 사람은 서로 입장이 달라도 똑같은 지구 전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유 중인 대상들에 대해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조화를 이루도록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저의 집사람에게는 오빠와 동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바라보는 집사람이 있고, 오빠가 바라보는 집사람이 있고, 동생이 바라보는 집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 사람이 어린 양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제가 바라보는 집사람, 오빠가 바라보는 집사람, 동생이 바라보는 집사람이 하나님의 조화로운 인도하심과 다스리심에 의해서 각자에게 필요한 모습대로 비춰질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는 이 세상 나라 안에서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든지, 어떤 지위에 있든지, 어떤 배경의 출신이든지, 어떤 외모를 갖고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어린 양과 연합하여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으로 진입해 들어갈 뿐입니다. 그럴 때 나는 세상 속에서의 내 조건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거점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구 전체라는 세상 나라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하나님만으로 배부르기 위하여, 어린 양의 십자가를 굳게 붙잡아 탈출과 진입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어간다면, 여러분은 능력이나 지위나 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지구 전체라는 세상 나라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거점이 됩니다. 이것은 무서울 정도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렇기에 공중 권세 잡은 마귀는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 이 역사를 방해하고자 합니다. 그 내용이 12장부터 펼쳐집니다.
세상에서 여러분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의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미 여러분은 지구 전체라는 세상 나라의 시작점입니다. 여러분의 처지나 능력과는 상관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바라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지구 전체라는 세상 나라의 시작점입니다. 지구 전체의 시작점인 여러분이 어린 양을 붙잡고 세상 탈출과 천국 진입을 밥 먹듯이 일상적으로 숙달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로 바뀌는 거점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구 전체의 세상 나라가 지금도 내게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시작점인 내가 어린 양을 붙잡아 반드시 지구 전체를 향하는 하나님 나라의 거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