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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비원에서 나와 이곳으로 올 때 택시 안에서 도로 우측에 본 것 같아 박물관을 가보기로 하고 도로를 따라 걷는데 아무리 찾아도 박물관이 안 보여 학생들에게 물어 보고 경찰에게도 물어 보니 내가 잘못 본 것이다. 선배부부께 죄송하다 말씀을 드리고 택시를 타고 이드 카 모스크(Id Kah Mosque)로 갔더니 12시가 다 되었는데, 매표소는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아 우선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식사 후 매표소 문 여는 시간이 남아 더위도 식힐 겸 까페를 찾아보니 인근에는 카페가 보이지 않아 근처 그늘에서 쉰다.
이드 카 모스크는 신장위구르지역의 가장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드 카는 위구르어로 '기념일에 예배드리는 장소'와 '축제의 광장'이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고 하며, 이 건물은 청진사(淸眞寺)로도 불려지는데 중국에서는 이슬람교가 위구르족(回紇族)을 통하여 전래되었기에 후이후이교(回回敎) 또는 청진교(淸眞敎)라고 하며 이슬람 사원은 청진사(淸眞寺)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 묘지로 사용했던 곳으로 9세기경에 궁정 관료들이 이곳에 무덤을 만들기 시작해 그 이후 실크로드를 왕래하던 거상들과 아라비아인, 페르시아인 등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422년(이슬람력 846년) 왕이었던 사커써쯔 미자얼(沙克色孜·米扎尔)이 죽자, 후손들이 왕을 기리기 위해 조그만 사원을 세우고 매일 참배를 드렸는데 이 사원이 청진사의 시초라고 한다. 이후 1533년에 카슈가르 통치자는 자신의 동생이 죽자 이곳에 매장하고 청진사를 개수해 매주 금요 예배를 추가하였으며 그 이후 거액 기부를 한 두 여인 때문에 현재와 같은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01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두 탑 중 하나가 무너졌고, 1962년 중국정부가 '신강성 문물중점 보호단위'로 지정하면서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었지만, 1960년대 문화혁명 때 청진사를 파괴하기 위해 홍위병들이 들이닥쳤을 때 무슬림들이 목숨을 바쳐 지켰고 그 후 중국정부가 위구르족들을 달래기 위해서 보수를 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매표소 개점시간(오후 1시)이 돼 매표소로 가 할인권을 사려고 여권을 제시하니 65세 이상 무료라며 무료입장권을 준다. 사원의 규모는 남북 140m, 동서 120m, 면적 16,000㎡로, 신장지역 최대 규모의 이슬람사원으로, 정문은 노란색 아치 형태로 되어 있으며, 대문루 높이가 17m, 좌우 첨탑 높이는 18m로서 그 위용이 대단하다.
입장권을 제시하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간다. 광장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갑자기 차단돼 조용한 정원에는 웅장하게 뻗은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성당에 들어갈 때 느낄 수 있는 기분과 비슷한 느낌이다. 정원을 지나면 초록색 기둥이 인상적인 예배당이 있는데 매주 금요일에는 1만명 정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교 최대 축제일인 쿠르반헤이트(희생양절 축제)와 로즈헤이트(금식 종료절 축제)에는 수 만명의 신도가 이곳에 모여든다고 한다. 모스크 건물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고 큰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스크 내부를 받치는 초록색 기둥들이 눈에 띄는데 모스크보다는 도심 안에 섬처럼 잘 꾸며진 정원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무슬림이 아닌 관광객 입장에선 이드 카 모스크는 명성에 비해 볼 것은 별로 없어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든다.
이드 카 모스크 앞의 넓은 광장은, 원래 2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아시아 최대시장 중 하나인 바자르가 열리는 장소로 1주일에 한번 바자르가 열리는 날이면, 중앙아시아 상인을 비롯하여 카스 일대 위구르족들이 이 바자르로 몰려와 물건을 사고 팔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세상 흐름을 파악하는 등 단순한 시장 기능 이상의 역할을 하는 위구르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유서깊은 바자르였지만, 중국 당국이 도시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카스 외곽으로 옮겨, 1주일에 한번 열리던 시장을 상설시장으로 바꾸고, 옆에는 상가형태의 시장을 새로 설립하여, 위구르인의 힘을 분산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모스크 건너편에는 한족들이 운영하는 대규모 쇼핑센터를 설립하여, 위구르족의 상징이었던 이드카 모스크 앞을 한족들이 채우고 있으며, 인민광장 부근에는 매우 큰 상업 보행가를 만들어 한족 상인들의 주 무대로 만드는 등 위구르족의 결집을 해체하려는 중국의 정책에 의해, 위구르족 중심의 이드 카 모스크에서 한족 중심의 모택동 동상 부근 인민광장 쪽으로, 카스의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고 한다.
광장에서 보니 위그르인 남자들은 모두 녹색 모자를 쓰고 있다. 녹색은 위그르인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생명을 나타내는 색이고 활력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녹색 모자를 많이 쓴다. 반면 중국인들은 녹색 모자를 쓰지 않는데, 녹색 모자를 쓰면 곧 바보라는 뜻이라 중국에 가면 절대로 녹색 모자를 쓰면 안 된다고 한다. 두 가지 유래가 있는데, 하나는 당나라 때 바람을 잘 피는 예쁜 새색시가 있었는데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우는데 남편이 들이닥치자 당황한 새 색시는 외간남자를 침대 밑에 숨기고 남편의 눈을 가리기 위해 수박 껍질을 남편 머리에 씌웠다고 해 “녹색 모자를 쓴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또 하나는 오래 전에 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장사로 집 비우는 기간이 길어지자 외로움을 못이긴 부인은 천 장수와 바람을 피우는데 남편이 집에 돌아 올 때를 대비해 아내는 녹색 천으로 모자를 만들고 남편이 외출할 때 그 모자를 씌워 암시를 주었다. 남편은 그 녹색 모자가 그저 아내의 선물인줄 알고 마을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비웃으면서 “녹색 모자를 쓴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모자 하나에서도 중국인과 위구르인들은 이렇게 극과 극이니 같은 나라 국민이 맞기는 한 것이지 모르겠다.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카스 시립박물관으로 간다. 1992년 말에 완공되어 3년이 넘는 준비 끝에 1995년 10월 31일 공식적으로 개방한 박물관은 4층으로 전시 면적은 6,500㎡다. 본관은 3개의 전시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는 서부 지역의 메아리(Echoes of the Western Regions) • 실크로드 롱송(Silk Road Long Song) — 신장의 역사, 민족, 종교 문화를 다룬 특별 전시가 있으며, 2층은 곤륜 분지·고대 도로 보물 — 카슈가르 역사 유물 전시관이며, 3층은 카슈가르 지역 계획 전시관이다. 신장의 역사 및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품 외엔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중국의 역사 왜곡 지도가 눈에 띤다.
카스박물관 관람을 마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카스고성 관람에 나선다. 어제 저녁 익혀 둔 길을 따라 칸바자르(汗把扎, Khan Bazzar)로 향한다. 카스고성은 상가와 노점으로 이어지는 칸바자르 도로 양편에 위치하며 위구르족의 생활 모습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신장에서 뿐 아니라 중국 내에서도 만리장성, 자금성과 같은 동급의 인기 있는 관광지다.
칸바자르는 낮에는 이국적인 기념품 거리로, 밤에는 활기찬 야시장으로 변모하며 천 년의 활기를 이어가고 있다. 화려한 전통 의상과 세련된 소품을 파는 상점부터,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온 여행자들의 갈증을 달래주었을 신선한 과일 노점들이 가득하다. 잘 익은 무화과와 석류, 건포도 등 빛깔 고운 과일들이 좌판 위에 가득 쌓인 광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속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위구르의 독특한 식문화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꼬치구이 가게 앞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고, 양고기와 채소를 푹 끓여낸 위구르식 수프가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화덕에서 갓 구워낸 낭(饢)은 표면이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수프 한 사발에 뜯어 적시면 그보다 더 소박하고 완전한 한 끼가 없을 것 같다.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 준 또 다른 별미는 낙타 우유 젤리다. 낙타 우유를 전통 방식으로 굳혀 만든 하얀 젤리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행객들에게, 하얀 위생복을 입은 위구르족 여인이 정겨운 미소와 함께 시식용 젤리를 건기에 먹어보니 차갑고 부드러운 한 조각이 입 안에서 스르르 녹는 순간, 낯선 땅에서 느끼는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것이 밀려온다. 이 달콤한 맛 또한 아주 오래전 서역을 오가던 이들이 나누던 환대의 맛이었을 것이다.
거리 곳곳에는 아름다운 위구르 전통 의상을 입고 카스고성의 골목과 주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화려한 자수와 보석으로 장식된 위구르 전통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붉은 양탄자 위를 걸어갈 때면, 과거 실크로드 전설 속 서역의 공주가 시공간을 초월해 걸어 나오는 것 같다.
카스고성은 여느 고성처럼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 옛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대로로 오래된 고성을 보존하는 문화재 느낌이 아니라, 여전히 지금도 주민들이 거주하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 살아있는 도시 유적이다. 좁은 골목길(胡同, 후퉁)과 진흙 벽돌로 지은 전통 가옥 앞에선 여전히 위구르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노인들은 한담을 즐기고 있는데 위구르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여인들과 관광객들이 카스고성 곳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해가 기울면 칸바자르가 있는 카스고성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황혼 무렵부터 골목마다 주황빛 등이 켜지고, 낮의 상인들이 자리를 접으면 저녁의 악사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두타르(두 줄 현악기)를 튕기는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고요하면서도 애잔해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음악 없이도 노래하는 도시, 카슈가르는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속내를 조금씩 내보이는 것 같다.
<카스고성에서 본 각종 문 장식>
카스고성 칸바자르를 둘러 본 나에게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실크로드의 심장 소리를 듣고, 그 길 위에서 피어난 삶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흙벽돌 골목길의 따뜻한 온기, 낙타 우유 젤리의 서늘한 감촉, 두타르 선율의 여운 — 그것들은 내가 이 길을 지나갔다는, 그리고 이 길이 나를 지나갔다는 가장 묵직하고 아름다운 증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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