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수업의 방향은 처음 시작 5분에서 많이 좌우가 됩니다. 마치 영화의 처음 장면이 재미있다면 몰입되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에 빠지게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교사가 수업 첫 단계에 재미있는 수업 동기유발 자료를 제시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십자도 시나리오’의 저자인 윤자영 생물 교사(도림고등학교)는 “특히 스토리텔링은 수업 동기 유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스토리텔링 수업시간에 활용한 사례를 설명했다.
스토리텔링 수업, 아이들 호기심 자극
‘유전’과 관련된 단원을 공부할 때 ‘미맹’이 나온다. 미맹이란 쓴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보통 미맹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PTC용액을 사용한다. PTC용액에서 쓴맛을 느끼면 정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맹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도 15%정도가 미맹이다. 문제는 이 내용 그대로 정보만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재미를 못 느낀다는 점이다.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일 뿐인 셈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하게 되면 달라진다.
십자도 시나리오는 교과서 생물 내용을 바탕으로 추리소설이다. ⓒ 윤자영
“학생들에게 ‘외딴섬으로 어떤 반이 수학여행을 갔는데, 밤새 술판을 벌인 학급 문제아인 A, B, C 중 A가 아침에 배를 움켜쥐고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어.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질 정도였지. 외딴섬이라서 금방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어쨌든 급한 대로 섬에서 긴급의약품인 마약을 찾아서 투약했어. 이 학생들 어떻게 됐을까? 금세 진정은 됐지.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어 2시간 이후 그 학생은 죽어. 모두들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있었는데, 관찰을 좋아하는 다른 학생이 생수통에 조금 남아있는 물의 맛을 본 후 이 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맞히게 되는데. 너희들은 알겠니?’ 라고 물어봅니다.”
윤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면 확실히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다”며 “학생들은 궁금함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자신들의 추리를 말하기도 하고 호기심이 자극돼서인지 수업에 몰입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윤 선생의 질문의 답은 수업시간에 자연히 알게 된다. PTC용액이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미맹 유전을 공부하면서는 자연스레 A가 미맹이었고, 이것을 알고 있는 범인이 물 대신에 PTC용액을 넣어 두었다는 것을 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매번 스토리텔링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고등학생들에게 어울리는 스토리텔링 주제를 찾기가 어려워서이다.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동화, 연극, 전설 등을 이야기하면 되지만 고등학교는 아무래도 좀 더 지식이 복잡해지는 까닭에 이에 합당한 관련 이야기를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현재까지 개발된 자료가 부족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직접 담당교사가 만들어내기도 그리 녹녹한 작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론 수업만 하기도 빠듯해
“고등학교에서 과학은 수능위주의 이론수업이 주를 이룹니다. 과학은 실생활의 문제해결을 위하여 실험․실습, 탐구활동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모두 다루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기 때문이죠. 보통 생명과학Ⅰ교과가 1년이면 주당 2시간으로 이론을 나가기도 빠듯한 시간이거든요.”
윤 선생은 “설혹 실험이 진행되더라도 학생들을 관리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현재 학생 수로서는 어렵다”며 탐구활동 수업 경험을 소개했다.
항원-항체 반응에서 자신의 혈액형 판정하는 활동 중에 한 학생이 기절하는 소동이 있었다. 무통 사혈침으로 손끝을 찔러 혈액을 조금만 얻으면 되는데, 무서워서 그것을 하지 못하는 학생이 자신의 피를 보고 쓰러져서 수업 시간이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탐구활동 수업이 가르치는 입장에서 늘 긴장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쩔 줄 모르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수업을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여중에서 심장 구조와 기능을 배우며 돼지 심장을 이용해 해부를 했던 수업은 윤 선생이 학생들을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돼지 심장 해부 수업 역시 여학생들 처음에는 징그럽다면 참여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서서히 해부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의 집중력은 높아졌다. 게다가 학생들이 돼지 동맥을 가로로 잘라 반지처럼 끼워서 손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환경적 제약 안에서 스토리텔링은 창의적 수업의 대표적 방안
윤 선생은 “이런 수업을 자주 하고 싶지만 역시 제약되는 것이 많다”며 “스토리텔링은 이런 환경 속에서 학습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최적의 수업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윤 선생이 ‘십자도 시나리오’ 책을 집필한 계기는 좀 독특하다. 10여 년간 생물을 가르치면서 수업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니다. 한 학생이 ‘이런 생물 지식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어요?’ 라는 질문에 답을 주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실생활에서 여러 가지로 쓰일 수 있는 모습을 이야기 안에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글감’의 소재로서 생물 지식은 쓰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더 재미있고 창의적 수업을 위해서 과학과목에 스토리텔링을 적용해보고 싶다.
“많은 과학교사들의 협력했으면 합니다. 저 혼자만으로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생물 지식이 담긴 소설을 썼듯이 만화를 그리는 재능이 있는 선생님은 교과와 연계된 만화 콘텐츠를,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은 ‘사이언스 송(science song)’을 만들어서 서로 콘텐츠를 교환하면 좋겠지요. 제작이 뛰어난 선생님은 단편 영화로 스토리텔링 자료를 제작한다면 과학 수업이 더욱 재미있었질 겁니다.”
윤 선생은 “시작이 중요하다”며 “단순히 지식 전달인 아닌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고등학생 수준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부가 지원한다면 스토리텔링 수업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첫댓글 문제중심수업(PBL) 모형에서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교사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의 수업이네요 ^^ 흥미있는 문제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ㅎㅎ
교과서부터 그렇게 구성하면 좋을텐데 정말 많은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번에 교생 중에 그런 수업을 하는 친구가 있던데 그 스토리를 아이들이 이해하고 교과 내용과 연관 짓게 구성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