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화장품산업의 선구자이자 세계적 미용 기업가들인 헬레나 루빈스타인, 엘리자베스 아덴, 에스티 로더보다 훨씬 앞서, 마담 레이첼Madame Rachel이 있었다. 그녀는 찢어지는 가난으로 시작하여 큰 부를 이루고, 결국 옥중에서 죽음을 맞는 극적인 삶을 살았다.
사라 레이첼 러셀은 1815년경 런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헌 옷, 감자, 생선 튀김 등을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19세기 후반 여성들이 외모 가꾸기에 점점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녀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여왕(1837-1901)은 화장을 '무례하고, 기만적이며, 배우, 창녀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많은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를 간파한 레이첼은 당시 런던 무대에서 인기를 끌던 프랑스 배우 마드무아젤 라셸Mademoiselle Rachelle의 이름을 슬쩍 따와 자신을 '마담 레이첼'이라고 불렀다.
친구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사창가를 돕는 중개인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 귀족 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오리엔탈풍 미용실’을 열고, '영원한 아름다움 Beautiful For Ever' 라는 간판을 걸었다. 마담 레이첼은 화려한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호화로운 실내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그녀의 미용실은 '피부의 잡색을 없애고, 하얗고 부드럽고 빛나는 피부를 만든다'고 선전하며, '사하라의 자성암에서 솟아 나온 자석의 이슬, 술탄의 특별 허가를 받은 낙타가 모로코로 실어온 것' 같은 이름을 붙인 제품, ‘로열 아라비안 크림’, ‘서커시아 금발 세정액’, ‘하이메투스산의 꿀 비누’ 등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았다. 하지만 그녀는 화장품이 아니라 '협박'으로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얻었다.
마담 레이첼의 대표 상품은 얼굴 ‘에나멜링’이었다. 상류층 여성들은, 농사로 햇빛에 그을린 서민들과 달리 창백한 얼굴을 귀족의 상징으로 여겼다. 에나멜링은 마치 '하얀 도자기로 빚은 듯한 얼굴'을 만들어 준다며, 귀족 부인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레이첼은 에나멜링의 비법을 철저히 숨겼고,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아름다움'을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엔 ‘광고 진실성’ 법이나 화장품 성분 규제가 전혀 없었으니, 황당무계한 주장을 마음껏 할 수가 있었다.
“요르단 강의 생수가 주름을 없앤다”고도 광고했는데, 그 ‘요르단 강물’은 템스 강에서 퍼온 물이었을 것이다. 또 “얼굴에 잡티가 있으면 사랑받지 못하고 축복받지 못한 채 잊혀진 존재가 될 것”이라고 겁을 주며, 마담 레이첼의 화장품을 쓰면, '결혼 생활의 행복을 가져다 줄 고운 아름다움'을 보장한다고 선전했다.
에나멜링은 족집게로 얼굴의 털을 뽑는 것으로 시작하여, 부식성이 있는 묽은 황산이나 청산으로 피부를 벗겨낸다(박피). 그리곤 염화제일수은을 발라 기미와 주근깨를 없앤다. 수은 화합물은 멜라닌 생성 효소인 티로시나아제를 억제해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수은은 신장과 신경계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는 독성 물질이다. 또 삼산화비소도 들어있었는데, 이것 역시 멜라닌 생성을 방해하며, 피부 혈관을 수축시켜 창백하게 보이게 한다.
마지막으로 탄산납을 테레빈유(송진유)와 경랍(향유고래 왁스)에 섞은 마감제로 주름을 메운다. 그러면 얼굴은 말그대로 ‘에나멜을 칠한 듯’ 보이지만, 웃거나 울면 코팅이 갈라지고, 정말로 울음이 날 정도로 큰돈인 20기니(오늘날 약 500만 원 이상)를 지불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라 광고 문안을 딸이 대신 작성했다고 한다.
그 당시 부인들은 지갑은 들고 다녔지만, 돈 사용 결정권은 남편에게 있었다. 마담 레이첼은 손님이 당장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외상’을 허용했다. 부인들은 남편 몰래 미용실을 방문했기에, 나중에 돈을 갚지 못하면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대신 귀금속을 받아 전당포에 맡겼다.
1868년, 메리 터커 보러데일이라는 과부가 용기를 냈다. 그녀는 레이첼이 “귀족이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니, 미모를 가꾸어야 한다”고 자신을 속였다며, 그 말을 믿고 비싼 미용 시술을 계속 받았지만, 결국 그 ‘귀족의 관심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으며, 레이첼이 계속 돈을 갈취하려 해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털어 놓았다. 두 번의 재판 끝에 레이첼은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사람들은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출소 후에도 그녀는 다시 같은 수법을 반복했는데, 또 다른 피해자 세실리아 피어스가 나타나, 그녀를 협박과 피부 손상 혐의로 고소했다. 화학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그녀의 로션은 피부를 부식시킬 만큼 강한 산을 함유하고 있다”고 증언하면서 레이첼은 다시 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녀는 더 이상 여성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을 약속할 수 없었다. 복역 중 2년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스스로 다른 의미의 ‘영원함’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담 레이첼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용 사기의 기록이 아니라, 광고의 허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적 압력과 그 욕망의 착취, 덧없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한 시대의 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