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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11일 올렸던 후기, 원문 그대로 다시 올립니다
요세미티 원정대
거벽 7박8일
*원정대원:호우(김태수 63세)심형(심학수 61세)박대장(박수홍 56세)막내(조경희-여성 55세)
*원정기간 : 2015년6월3일부터 2015년6월20일. 등반기간 : 6월7일부터 6월14일
*등반지/등반루트 : 요세미티 엘 케피탄/조디악
- 드리는 말씀 -
후기란 기록물입니다.
저자의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글입니다.
즉 표현된 감정과 느낌이 저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판단은 제3자가 읽고 판단하는 것 일뿐 저자의 몫은 아니며
만약 저자가 객관적인 입장에 선다면 후기가 아니라 소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표현된 대화내용도 단어 하나까지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옮기려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도전의 꿈을 이어갈 원정대에게
먼저 다녀온 한 사람의 선배로써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이 글을 올립니다.
물론, 아름답고 즐거운 등반의 이야기만으로 수놓아 졌다면 저 또한 얼마나 행복한 마음이겠습니까 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글을 올리게 됨은 이 또한 후배들에게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혹 불편함을 느꼈다면 넓은 의미의 진전으로 이해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해서, 저자의 판단에 따라 원정대원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음을 양해바랍니다.
7박8일 생사를 함께한 대원여러분 사랑합니다.
(엘 케피탄 전경)
-갈림길에서
2015년 3월 13일 오후, 유양리 채석장
6월3일로 예정된
요세미티 엘켑의 조디악 루트 원정을 위한 훈련에 땀을 쏟고 있는 '호우'
해는 저물어 가고
마지막 확보지점의 볼트가 저만치 보이는
루트가 끝나 가는 지점.
직선으로 올라와 우측 긴 트레바스를 지나
다시 직상 크렉으로 접어들어
다섯번째 캠을 꽂는다.
좀 작다,
캠의 벌어진 각도가 120도는 될 것 같다.
꽂았던 캠을 빼 들고는 허리춤을 뒤적이며 다른 캠을 하나 빼 들고는 좀 전 그 자리에 다시 꽂는다.
역시 작다,
벌어진 각도가 좀 전 캠과 비슷하다.
제법 긴 거리를 오다 보니 맞는 장비가 거의 다 떨어진 것이다.
순간, 장비 지원을 요청할까?
생각도 했지만 어두워지고 있는데다 확보지점이 바로 저긴데...
그 동안 가끔씩은 이정도 각도의 캠을 써본 경험도 있지 않았든가?
네다를 걸고 몇 번 당겨 보고 밟아 보고 무게 중심을 옮긴다.
그리고 확보 줄을 당기는 순간
“퍽!”---
- - - - - -
눈을 떴다,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로
등 쪽에서 전해 오는 극심한 통증을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숨을 몰아쉬는 '호우' 자신을 발견 한다.
우리말로 바닥을 친 것이다.
최악의 상황
우측 벽으로 부터 무너져 내린 바위더미 위로 '호우' 몸뚱이가 그대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가장 윗 캠이 터지면서 떨어지는 충격에 아래 캠들이 잡아주지 못하고
쟈크가 터지듯 다섯 개의 캠이 연이어 터져 버린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아래쪽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형님! 어떻게 됐어요?”
“형님!”
단독 등반중 일어난 순식간의 일이라
추락 순간을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고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에 고개 들어 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제야, 사고를 인지한 것이다.
일단, 살아 있음을 알려야 하는데
목소리는 아예 나오지 않고 오른팔을 조금씩 움직여 머리위로 올린다.
그러고는 바위 너머로 손을 내밀고 손가락으로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형님이 올라 오란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 왔다.
무너져 내린 바위더미 위인지라 쉽게 올라 올수 있는 곳도 아닌데
모두들 번개같이 올라 왔다.
'박대장'이 묻는다.
“형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등 쪽이 아픈데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아.”
‘재광’이가 취조 하듯이 다그친다.
“회장님 발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괜찮아, 자, 자 움직이잖아.“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자, 자 움직이잖아, 괜찮대두 자꾸 그러네.“
“목을 움직여 보세요.”
”자, 자 움직이잖아.“
부상 정도를 감추기 위해 애써 태연한척 동작을 더 크게 하는데
숨 쉬는 게 여간 고통이 아니다.
'호우'가
”아마 등 뒤쪽 뼈가 나간 것 같애.“
'박대장'이
”그럼 갈비뼈 일거예요.“
”뭐? 등 뒤에 무슨 갈비뼈가 있다고.“
”아니, 등 뒤에 등갈비 있잖아요.“
”응 그래, 그래, 갈비가 있지.“
'호우'는 순간 갈비뼈는 앞에만 있다고 착각 한 것이다.
”그래 맞아 등갈비인 것 같애.
통증 부위를 보아 척추는 비켜 갔고 아마 갈비 한두 대가 나간 것 같애,
뼈는 보름이면 붙는 것이니 시간은 충분해, 문제없어!“
그때 '박대장'이 말을 받아
”그래요 보름이면 다 붙어요. 그리고 시간도 충분해요“
듣고 있든 ‘재광’이가 웃으며
“회장님, 지금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마, 더 큰 부상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원정 출국이 6월 3일이니 2달 20일이 남았고
우리 계산대로라면 보름정도는 그리 걱정스런 시간도 아닌 것이다.
물론 희망 사항이고 서로를 위로하는 말임을 우린 알고 있지만. . .
‘재광’이가 묻는다.
“회장님(ER35기 회장), 119를 불러야지요?”
. . . . . .
“119를 부를까요?”
잠시 생각 하다가
“아니야, 부르지 마.
어프로치가 짧으니 '박대장'이 좀 업고가.”
그러지 않아도 채석장 폐쇄 얘기가 가끔 흘러나오는데 119를 불러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박대장'이 분주한 손놀림으로 ''호우''의 하네스를 벗겼다가 다시 채우고
'박대장'도 지금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이 위치에서는 업을 수도 들 수도 없다 .
무너지고 깨어진 바위더미 위에서 우선 ''호우''를 아래로 내려야 하는데,
''호우''의 하네스에 로프를 걸고
위쪽 깨어진 바위에 로프를 걸어 줄을 서서히 늦추어 주면서 ''호우''를 내리는 것이다.
부상 정도를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천천히. . . 천천히. . .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지금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오가는 등산객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분위기
아래바닥에 도착하자
'박대장'이 '호우'를 들쳐 업었다
“재광아, 의정부 무슨 병원으로 갈까?”
‘재광’이가 살고 있는 곳이 의정부라 직접 물어본다.
“성모병원도 있고~”
더 이상 고를 시간도 여유도 없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우'가
“그래 성모병원이다”
들머리 가까이에 있던 ‘천학’이 차의 뒷좌석에 몸을 실었고 '박대장'은 앞에 탔다.
'호우'는 통증을 참기위해
비스듬히 쪼그라든 자세로 가슴을 움켜쥐고 짧은 호흡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천학’이가 네비로 성모병원을 찍고 출발한다.
현장에 많은 짐들이 있어 '재광'이를 유양리에 남겨두고 일단 출발했는데
'호우'가 ‘재광’이에게 전화를 건다.
“어~ 총무님(ER 35기 총무) 오늘일은 우리만 아는 것으로 합시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차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호우'는 오늘부터 한 달간 지방 출장입니다”
X-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여기, 3대가 부러지고 2대가 금이 갔네요”
. . . .
“선생님, 저 일해야 되는 데요. 언제부터 할 수 있을까요?”
사진에서 눈을 때곤
딱하다는 표정으로 '호우'를 쳐다보더니
다시 사진을 쳐다보며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뭐, 힘들고 무거운 것 들고 그러는 일입니까?”
“예, 무거운 것도 들고 당기고 합니다.”
. . . . . .. . . .
“아마, 빨라야 2,3달 지나야 할 겁니다.”
“예!? 두세 달!”
의사가 또 한 번 힐끗 쳐다본다.
그것도 자기가 인심이나 쓴 것처럼. . .
'호우' 동네로 병원을 옮겼다.
이래저래 알게 된 친구들이 이때다 싶어 몰려 왔다.
“야! 니, 이제 그만 둘꺼 제,
이번일이 다 니를 위해서 생긴기라,
잘 됐지 뭐 ,
내가 안 카더나 니 나이를 생각 해봐라 니가 지금 니 정신인지,
이제 위험한 짓 고만하고. . . .“
오는 놈들마다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이 짜슥들이 신이 났다.
'호우'는 언제부터 운명론자가 되었는지 더욱 확신에 차 있는데
“야! 야!, 나는 요즘 운명이란 게 정말 있다고 믿는다.
죽고 사는 건 내 맘대로 안 되는 기라,
이번 일만 하더라도 봐라
나 보다 훨씬 하찮은 사고였는데도 오랫동안 고생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갈비뼈 외에는 이렇게 멀쩡 하잖아
니 생각은 어떻노?”
“..........”
“쫌 더 하라는 뜻 아이겠나?”
듣고 있던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심 하다는 듯
“이 짜슥은 거꾸로 생각 하네,
나 참~”
. . . . . .
“그라고 내가 지금 이 사고로 그만 둔다 하자,
몇 년이 지나서 아니 10년이 지나서 내가 힘이 없을 때 후회 하겠나 안 하겠나
그때 힘 있을 때 했을 걸 하고 분명 후회 할게 뻔한데
그 짓을 왜 하노
니 같으면 후회 안 하겠나?
그런데 어쩌면 무서울 만도 한데 지금도 마음은 그 벽에 가있는데 우짜겠노.”
“..........”
“그라고 애초에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시작 했겠나?”
“말리지 마라”
친구가 말한다.
“야가, 지 정신이 아닌 건 맞네.”
사고 한 달만인 4월11일 채석장을 찾았고
한 단계씩 강도를 높여가는 훈련이 시작 되었다.
물론 아직 갈비뼈는 붙지 않은 상태
아는 분들이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주신다. ㅎㅎ
내일 모래면 출국이다.
6월1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래도 현재의 뼈 상태를 알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훨씬 좋아진 상태를 기대하긴 했었다.
컴퓨터 사진을 가리키며
“자~ 보세요.”
5개중 4개는 잘 붙고 있는데
대각선으로 쪼개진 9번 갈비뼈는 아직 떨어져 있네요.
좀 더 시간이 걸리겠네요.
. . . . .
“아프진 않으세요?”
“예, 그런 거 없습니다.”
“넘어지지 말고 부딪치지 말고 충격주지 말고. . . ”
또 저소리, 듣기 싫은, 항상 지껄이는 말씀
우씨~
돌아서며 '호우'가 혼자말로 지껄인다.
“그럼 그렇지
지난번과 별 차이 없네 계속된 훈련에 뼈가 자꾸 움직였으니 붙을 수가 있었겠나”
“보지 말고 그냥 갈 껄.”
“그래, 9번 갈비, 너만 믿는다.
한 20일만 잘 견뎌주라 다녀와선 꼼짝 않고 있으께.”
(조디악 앞에서 '호우')
-엘 케피탄 벽에 붙다
3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4일. 새벽 요세미티 제 4캠프 도착
시차적응을 위해 하루 쉬고
5일.
이른 아침 엘켑으로 갔다.
오늘 벽에 붙는 날이다.
오늘은 총 15피치의 조디악 루트 중에서 '호우'가 3피치까지 등반을 끝내고
지고 간 장비와 물 등을 3 피치에 달아놓고 하산하는 게 계획된 일정이다.
'박대장'이 빌레이를 보고
'호우'가 벽에 붙었다.
'호우'가 고개를 들어 위를 한번 쳐다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엘켑을.
이제, 함 붙어봐?
다시 한 번
엘켑의 끝을 향해 하늘을 쳐다본다.
아마, 엘켑의 기를 누르고자 마음을 다 잡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를 올랐나?
“'박대장'!”
“중간 캠 좀 올려줘.”
'박대장'이 '호우' 뒤쪽 엉덩이에 달고 간 홀링용 줄에 장비를 묶고는
“형님 당기세요.”
당기기 시작 하는데 한참을 올려도 그 자리에 있는 것 만 같다.
“어!, 이렇게 많이 올라 왔나?”
국내 훈련 때는 높아 봐야 그게 그 높인데
지금, 이제 막 시작인데
조금 더 높아지니 아주 생소한 높이로 느껴지면서 갑자기 고도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음~ 엘켑!, 만만치 않구만.”
그 높이에 조금은 기가 죽었는지 ‘'호우'‘가 중얼 거린다.
직상 크랙이 끝나고 우측 천장 트레바스가 시작되는 1피치 마지막 단계
트레바스쪽의 크랙이 너무 좁고 믿음이 가질 않아
직상 끝 부분에 진행과는 상관없는 버드빅을 하나 때려 박고 로프를 걸었다.
그리곤 천장 크랙에 C3 아주 작은 캠을 꽂고 일어서는데-
몸이 날랐다, 추락이다,
. . . . . . . . . . .
거꾸로 뒤집힌 채 줄에 매달린 몸을 일으켜 세우며
'호우'가 아래쪽 '박대장'을 보고 말한다.
“C3가 터졌어, 내 그럴 줄 알고 버드빅을 박았는데 역시 그놈이 날 잡아주는군.”
누가 물어 보기나 했나? 괜히 추락한 게 창피 한지 '호우'가 말을 건넸다.
“형님 괜찮아요?”
“응, 아무 일 없어, 괜찮아.”
다시 주마를 걸고 올랐다.
그런데 지금도 '호우'는 유양리 채석장에 있는 걸로 착각 하고 있다.
전혀 이국땅 엘켑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 것이다.
1피치가 완료되고 '박대장'이 회수하며 오르고
확보지점에 자리를 잡자 곧 2피치를 향해 출발했다.
'박대장'이
“형님, 바람이 비올 바람인데요.”
왠지 습하고 기분 나쁜 바람이 불고 있고
저기 저 멀리는 어두움과 함께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제 일기 예보엔 ‘새벽 3시 폭우, 6시부터 가랑비’였는데 아직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
그게 지금 오려나?
1피치 천장 밑에서 '박대장'이 빌레이를 보고 있고
'호우'는 천장 트레바스가 끝나고 턱진 곳을 넘고 있다.
이곳만 넘어서면 '박대장'과는 서로 보이지 않는다.
그때 쯤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날씨가 급변 하는 것이다.
요세미티 계곡의 천둥소리는
계곡 전체를 울리는 소리라 그런지 더 큰 진동이 몸으로 느껴졌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호우'의 마음에 왠지 두려움 같은 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더니 어느새 폭우로 변해 버리고 만다.
'호우'는 이미 턱진 곳을 넘어 섰고 좌측 크랙으로 올라야 하는데
여기가 크럭스인 모양이다.
도저히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보기엔 올라 설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인데,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전진을 못하고 계속 씨름하고 있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박대장'이 소리쳤다.
“형, 문제 있어요?”
“아니 없어.”
“그런데 왜 줄이 안 나가요.”
“응, 시간이 좀 걸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호우'의 상태가 염려 되는 모양이다.
'훅'을 걸었다.
좌측으로 이동하여 올라 설 생각으로
'훅'이 움직일까 봐 꼭 잡은 채 오른 발을 턱 위로 들어 올리고 일어서는데
바위가 '호우'를 밀어내는 형국,
다시 '훅'을 잡아 쥔 채로 원상 복귀
아직도 전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올라섰다.
한 발자국을 옮기려는데 몸이 나가질 않는다. 무엇이 당기고 있다.
밑을 보니 크렉에 망치 끝이 걸려 있는 것이다
“어~ 어!”
자세가 무너지고 있고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잽싸게 훅을 움켜잡고 떨어진다.
훅에 걸려 팔에 작은 상처만 남기고 걸렸다.
휴~ 다행이다.
몇 번의 시도에 벌써 팔 힘이 빠져 버린 것 같은데
'박대장'의 외침이 또 들려 왔다.
“형, 문제 있어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없어”
그런데 왜 줄이 나가지 않아요?“
“응 ,시간이 좀 걸려.”
쏟아지는 폭우에
우측 바로 옆 어딘 가엔 벌써 폭포가 되어버린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호우'는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천둥소리와 번개 속에 폭우는 쏟아지지, 줄은 나가지 않지
'박대장'은 이미 많은 생각에 온 몸은 무서움에 젖어 있는 것이다.
'호우'가 쏟아지는 폭우를 향해 허공을 바라보고 뒤돌아 봤다.
그러고는 팔을 쭉 뻗고 손바닥을 폈다
아니!,비가 닿지 앉는 것이다.
한 팔을 넘어 저 멀리서 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호우' 몸은 비 한 방울 젖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 조디악 루트는 오버행!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조디악 루트는 밑에서부터 올라갈수록 뒤로 누운 게 아니라 반대로 앞으로 넘어진 형태인 것이다.
그러나 소리만으로도 이미 젖었고 무서움 또한 맴돌고 있지 않은가
비가 언제 그치려나? 계속 올건가? 언제 까지 오려나?
'호우'도 서서히 위험의 덫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야! '호우'야
뭐, 잘 됐네!,
그래, 이게 바로 '호우'가 맞이하기를 꿈꾸던 그런 상황 아니더냐?
무언가 더 극한의 상황,
더 특별히 위험한 상황에서
더 처절한 모습의 자신을 시험 해보고 싶어 하던 그 꿈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 '호우'야 오늘 임자 만났네.
소원 푸시게
잘~ 해보게나.
우씨~
'호우'가 장갑을 벗었다.
자유등반으로 돌파 하겠다는 생각인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폭우 속에서 '박대장'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왜?”
“형님, 완료 하시면 픽스하고 그대로 하강 하세요.
저는 여기서 하강 하겠습니다.”
“알았어.”
폭우속의 목소리는 차라리 안타까웠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지금 '박대장'은 어떤 사고를 예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빨리 내려가고자 하는 것이고 '호우'에게 경고 하는 것이다.
'호우'가 소리친다.
“박 대장 그곳도 어차피 비는 안 맞잖아?”
“예‘ 안 맞아요. 형님도 비 안 맞으세요?”
“응, 나도 비 한 방울 안 맞는다네.”
그 폭우 속에 등반을 하고 있다고 생각 했으니 오죽 속이 탔을까?
온갖 생각을 다 했을 텐데 . . . .
이제 좀 안심이 되는 듯
“저는 형님이 폭우를 맞고 있는 줄 알았어요.”
크럭스를 돌파했는데 어떻게 돌파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직상 크랙으로 접어들었고
귀를 때리던 천둥소리도 비 소리도 갑자기 잠잠해졌다.
조용해지고 나니 좀 전의 전쟁터 같았든 폭우 상황이 느껴진다.
“형님, 다 돼가요?”
조금 전 보단 톤이 다르다. 훨씬 안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응.”
“얼마나 남았어요.”
“세 걸음.”
캠을 꽂았다. 또 C3
확보줄을 당기는데
몸이 날았다. 추락이다.
. . . . .
정신이 들고 보니
거꾸로 뒤집힌 채 매달려 있다.
이번엔 한참을 날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 두 개가 터져 나왔다.
좌측을 보니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
저 멀리 천장밑에서 빌레이를 보던 '박대장'의 눈과 마주친다.
'박대장'이 걱정스레 묻는다.
“형님 괜찮아요?”
“그럼, 아주 좋아.”
“우씨~, 거의 다 갔는데.”
다시 주마를 걸고 올라갔다.
완료하고 '박대장'이 회수하고 올라 왔다.
“형님, 오늘은 하산 합시다.”
“왜? 3피치까지 할 수 있는데, 아직 시간도 있고.”
“내일 합시다.”
'박대장'이 폭우에 무척 놀랐던 모양이다
사실 '호우'도 폭우 때문에 너무 긴장 했던 탓에 체력이 좀 오버 돼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 낼 하지 뭐.”
물과 장비 등을 바위 틈새에 숨기고 하산했다.
하산 길에 3피치를 다 채우지 못한 아쉬움에 캠프까지 워킹으로 달렸다. 약 8키로?
6일.
이틀 늦게 합류한 ‘심형‘과 ’막내‘(여자)
그동안 다른 팀의 일원으로 훈련을 해 오다가
출국 열흘 전에 두 명인 우리 조디악 팀과 합류하기로 결정하고
마지막 이틀을 유양리 채석장에서 한 팀으로 훈련한 뒤
미리 예약해둔 비행 편에 따라 오늘 도착 한 것이다.
'호우'와는 같은 ER 출신이고 안면이 있는 분들이다.
(2피치 선등 중인 '호우')
-첫 번째 위기(탈출을 고민 하는 '호우')
7일.(벽 하루째)
본격등반이 시작 되는 날이다
새벽3시반
주위 야영객들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런 행동으로 출발 준비를 한다.
간단하게 1회용 쌀국수로 아침을 때우고 교무님의 차에 오른다.
엘켑이 바로 코앞에 잡히는 곳에 차가 섰다.
여기서 무거운 홀빽을 매고 1시간 반은 올라야 한다.
짐을 내리고 각자 짐을 챙기고 있는데 흐트러진 줄을 사리던
'박대장'이
“이런 건 어제 미리 좀 해놓지.”
또 지적질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무님이 말을 막는다.
“어~ 스타트부터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좋은 말만 해야지.”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호우'는 안다, '박대장'의 지적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그러나 그 끝은 아직 '호우'도 가늠 할 수 없는데
벽 앞에 섰다.
6박7일 예정의 여정이 시작 되는 것이다.
오늘은 ‘막내’가 3피치, '호우'가 4피치, ‘심형’이 5피치
손바닥을 마주치며 홧팅!을 외치고 2피치를 향해 ‘막내’의 주마가 시작된다.
‘막내’의 3피치 등반이 완료되고 '호우'가 회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호우'의 컨디션이 영 이상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맥이 풀려버리는 것이다.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
'호우'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어쩔 방도가 없다.
힘들게 회수를 끝내고 3피치에 올라서니
기다리던 ‘막내’가 저기 좁은 턱에서 한숨 잤다며 일어난다.
'호우'가 용기를 내서 편치 않은 얼굴로 막내에게 말한다.
“'막내'야 내가 부탁 하나 할게.
지금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 체력도 떨어지고 몸 상태가 엉망이야.
나대신 4피치 가줄래?”
'호우'가 지금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래요. 제가 갈게요.”
연이은 피치에 부담이 될까봐 어렵게 부탁을 하는데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주 흔쾌히 받아주는 ‘막내’가 고맙기 그지없다.
그런데, '호우' 컨디션이 왜 갑자기... 무슨 문제가 있나?
엊그제 까지만 해도
하루에 3피치를 넘어 어디까지라도 갈수 있을 것 같았던 '호우'가 아닌가?
그도 모자라 캠프까지 구보로 달려간 '호우'가 아니던가?
체력이라면 자신 있고 30년 가까이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아닌가?
순간, 그래 집히는 게 있다.
그동안 ‘'박대장'’과 몇 달을 함께 훈련해 오면서
그 사람의 좋고 나쁜 됨됨이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그래서 참고 또 참고 . . .
그러다 어느 날 끝내야 한다고 생각 했을 때
'박대장'의 사과로 다시 시작 한 경험도 있지 않았든가?
지금 생각하면 엘켑 정상을 향한 '호우'의 열망이 너무 컸기에
받아서는 안 될 사과를 핑계 삼아 비겁한 용서를 하고 다시 합친 것이다.
그때 용서되지 않을 '박대장'을 엘켑에 눈이 멀어 용서 된 것처럼 포장하고
여기까지 온 어리석고 비겁한 '호우'가 지금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사이 '박대장'의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불쾌하고 불손한 언행으로
그동안 쌓여 왔던 스트레스가 함께 폭발하고 터져 나오면서 소위 말하는 홧병이 이런 건가?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쌓아 두었나?
일일이 맞대응하면 좀 나을 수도 있었겠으나
함께 하는 팀원으로써 나 자신 보다는 분위기 또한 중요하기에
참아만 온게 이런 결과가 되어 돌아 올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
'호우' 자신도 어떻게 자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4피치를 넘어서면 탈출도 불가능 하다는 조디악,
끝내려면 여기서 끝내야 한다.
‘심형’은 회수에 들어갔고
등반완료 후 하강을 끝낸 ‘막내’와 '박대장' 그리고 '호우' 이렇게 세 명이 3피치에 모였다.
'호우'가 '박대장'을 바라보고 말한다.
무언가 결심한듯
“'박대장',내가 물어 볼 말이 있는데...“
“예, 하세요.”
“4피치를 넘어서면 탈출이 불가능하지?”
“예.”
. . . .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나 지금 탈출해야 할 것 같아.”
옆에 있던 ‘막내’가 놀란 눈을 반짝이며 '호우'를 쳐다보고
'박대장'은 놀란 기색이라기보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로 올게 왔다는 듯한 표정이다.
“나 지금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 오직 했으면 내가 갈 길을 막내에게 그것도 여자에게 부탁 했겠나.”
그렇다, '호우'의 사전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호우'가 자기가 갈 길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다니 그것도 막내인 여자에게.
“그동안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인 것 같아,"
'박대장'의 계속되는 지적과 잔소리에 참아만 온 내가 그 스트레스에 지금 몸이 엉망이야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이 이상 더 가다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것 같고. . .“
'박대장'이
“형님도 제 스타일을 이해 하시잖아요?.“
“그래, 이해 하지, 그러니까 여기 까지 왔지.
그런데 이해 하는 것과 용서하는 건 전혀 다른 거지.
이해 했다고 다 용서 되고, 이해 했다고 아픔이 아물고, 깊은 골이 메꾸어 지는 것은 아니지
지금 당장 보이지 않을 뿐 가슴 깊숙한 곳에 쌓여만 가지.”
"지금 이상태 이 기분으로는 더 이상 오르는건 힘들것 같아"
"내려 가야겠어"
'박대장'이
“형님이 하산하면 우리 모두 다 하산 합니다.”
“'박대장',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중간에 도망가려고 왔겠나?,
오죽 하면 탈출을 얘기 하겠나?"
. . . . . .. .
'박대장'이 도와 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가 지금 정상을 갈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거라구"
. . . . . . . . . . . . . . .
도대체 무슨 얘기야! 끝내자는 거야 뭐야!
이런!, '호우'!
이 자쓱이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좀 전,
하산의 그 결심은 어디 가고
정상만 밟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 또 그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허약하고 비열한 '호우'를 내 여기서 만나 보다니
두고 봐라 '호우'!
정상이 그렇게도 중요 하더냐
오늘의 굴욕적이고 낮추어진 너의 모습은 영원히 기록되어 두고두고 너를 괴롭힐 것이다
“형님, 내일 4피치에서 다 모여 의논 합시다”
오늘은 늦었기에 줄은 4피치에 걸고 잠은 3피치에서 자기로 했다
부지런히 움직였건만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누웠다.
아~엘켑의 첫 밤,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힘들다.
(6피치 선등 중인 '호우')
-이상한 등반
8일.(벽 2일째)
벽 이틀째다.
‘심형’이 5피치를 하기로 한 날이다.
어제의 '호우'가 얘기한 하산 문제는 아무도 거론 않은 채 각자의 일에 열중해 있다
모두들 잊어버린 것처럼. . .
그래, 가자~
일단,
어제 하고픈 말을 쏟아서인지 기분도 많이 좋아졌고 컨디션도 상당히 좋아졌음을 느낀다.
막내가 빌레이를 보고 ‘심형’이 5피치를 오르는데
'호우'가 말한다.
“‘심형’ 줄 유통에 신경 쓰세요. 여기만 지나면 완전 지그재그예요.”
“알겠습니다.”
턱을 넘어서는 ‘심형’에게 다시 이른다.
“심형. 줄 유통에 신경 쓰세요, 조심해요.”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무전기에서 ‘심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줄을 주세요.”
빌레이를 보던 ‘막내’가 무전기로
“줄은 풀려있습니다.”
잠시 후
“줄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당겨 보세요.”
다시 들려오는 ‘심형’의 목소리
“당겨지지 않습니다. 걸린 것 같습니다.”
“확보 지점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좀 남았습니다.”
“힘껏 당겨 보세요.”
몇 번이나 일러준 줄 유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지그재그 길에서. . .
'박대장'이 무전기에 말한다.
“그럼, 픽스하고 하강해서 줄 정리하고 가면 안됩니까?”
“안 돼. 줄이 꼼짝을 하지 않아.”
그때 '호우'가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든다.
“그럼, 그냥 픽스시키고 뒷줄로 단독 등반 하라고 해.”
'박대장'이 묻는다.
“그럼, 그 곳에 픽스할 곳이 있습니까?
지금 있는 곳에 이퀄라이징이 되어있나요?”
그때 무전기에 ER교무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저 멀리 다리위에서 망원경으로 우리의 등반을 지켜보고 무전 내용을 듣고 계신 것이다.
우리와 무전기 주파수를 맞춰 논 상태라 서로 교신이 가능한데
“‘학수’씨, ‘학수’씨!”
“예, 교무님 말씀하세요.”
“지금 어디에 픽스하고 계시나요?”
“예, 픽스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디에 픽스하고 있습니까?"
“픽스 하고 있습니다.”
무전기가 문제인지, 뭐가 문제인지, 뭔가 대화가 소통이 안 되고 있다.
'박대장'이
“형, 그런 말씀이 아니고 캠인지 리벳인지 볼트인지 어떤 장비에 픽스했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예, 볼트입니다.”
교무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떤 볼트 입니까?
두 개짜리입니까?”
'박형'이
"볼트입니다"
"아니, 몇개짜리 볼트입니까?
"등반 할때 박혀있는 볼트입니다"
"볼트가 몇개 입니까?"
“한 개입니다.”
- - - -
그러고도 말뜻을 이해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심형이 갑자기 맨붕이 왔나 할 정도였다.
교무님이
“그럼 회수 들어가면서 줄 정리 할 테니 그 볼트에 픽스해 주세요”
누구랄 것도 없이 '호우'가 나선다.
“볼트 한 개?, 그거면 충분해!”
팀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큰소리로 허세를 부린다.
“회수 출발.”
'호우'가 ‘심’형에게 신호를 보내고 회수에 들어가는데
교무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호우'선배님이 회수 하십니까?”
“예”
“볼트 하나이니 탠 너무 많이 주지 말고 조심 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시작이 좌측 트레바스로 시작 되는데 보지도 못한 볼트 하나란 말이 자구 신경 쓰인다.
올라 가보니 지그재그 구간에 줄 유통을 위한 설치가 되어 있지를 않은 상태,
줄이 나갈리 만무했다.
안전지대에서 확보하고 빌레이에 들어갔고 ‘심형’은 다시 출발했다.
출발하고 한, 두 발짝 올랐나?
그러고는 도무지 진전이 없다.
또 무슨 일이 있는지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참을 지나 교무님의 목소리가 무전기에 들린다.
“‘학수’씨!, ‘학수’씨! 왜 나가지 않습니까?”
밑에서 망원경을 통해 계속해서 바라보고 계신 것이다.
속이 타시는 가 보다.
'호우'의 시야에서도 이미 넘어가 버리고
뒷모습만 조금 보일 뿐이니 상황을 알 수가 없다.
‘심형’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듯
“걸려서...”
교무님의 애타는 목소리
“그 곳에 걸릴게 뭐가 있죠?”
“‘학수’씨!, ‘학수’씨!”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 애처로움이 짙어지는데
“‘학수’씨!, ‘학수’씨!”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대답이 없다.
잠시 후
‘박 대장’이 직접 '호우'에게 묻는다.
“형님, 교무님이 지금 ’학수‘형 뭐하시냐고 묻는데요?”
''호우''의 시야에도 보이지 않고 답도 없는 답답한 상황
“‘학수’씨 지금 바쁘답니다.”
대충 성의 없는 답으로 넘어간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
“‘학수’형 지금 바쁘답니다.”
성의 없는 답변이 그대로 교무님께 전달된다.
그 뒤로는 교무님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오늘도 늦은 시간에 종료 되었다.
5피치에서 끝낼 수밖에
언제나 다른 팀처럼 좀 일찍 잠자리에 들어보나.
오늘도 12시가 넘었다.
소문대로 우리 팀은 '원 데이 원 피치' ㅎㅎ
오늘이 2박 째인데
그 참,
이상한 등반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등반이라면
해뜨기 전 새벽에 등반이 시작되어 오후4시경에 등반이 마감되고
해가 지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것인데
이놈의 웃기는 등반 팀은
밤 12시가 넘어 남들은 꿈길을 가고 있는 칠흑 같은 고요한 밤이 되어야
포타레지 친다고 동네방네 야단법석이고
아침은 해가 떠야 일어나고
출발은 해가 중천에 떠야만 시작하는
어느 나라에서 온 등반 팀인지 희한한 짓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등반의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현지인들의 평가가 궁금해지는데. . .
여보시게들, 아직 2박 째이고 남은 날이 많은 것 같으니 좀 더 두고 보시지요
(8피치 선등 중인 '막내')
-막내야, 미안해
9일(벽 3일째)
'호우'가 '블랙타워' 구간이라 부르는 6피치를 가는 날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뱃속에서 소식이 왔다.
'호우'는 내가 알기로는 40년 넘게 아침에 눈뜨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게 하루의 시작이요
만약 그냥 넘어가는 날은 하루 종일 몸이 무겁고 기분이 맑지를 못한 것이다.
어제도 신호를 받고 시작 했건만
숙달 되지 못한 쪼그려 앉은 자세와 흔들리는 포타레지의 상황에 적응 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고 원하지 않았던 소변만 한 주머니를 받아들고 말았는데
변 봉지를 찾고 있는 '호우'에게 위층 포타레지의 ‘막내’가 변 봉투를 건네주며
“여기 있어요, 어제 사용한 재활용입니다.”
하네스를 내리고
'박대장'을 중심에 앉혀 중심을 잡게 하고
그의 등 뒤에서 등을 잡은 채 검은 변 봉지를 벌려 엉덩이에 씌우고는 힘을 준다.
등을 잡고 보는 자세라 상당한 안정감에서 오는 편안함에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아마; 어제 실패한 양까지 같이 밀려 나오는 듯
한참을 행복감에 젖어 있는데
등을 돌리고 앉아있던 '박대장'이
“형님, 이상해요 엉덩이가 축축해요, 뭔가 새는 것 같아요”
그때 윗 층 포타레지의 막내가 소리지른다.
“큰형!, 깜박 했어요 어제 소변 버린다고 구멍 뚫어 놓았잖아요. 그것 구멍 뚫린 거예요”
아차!
아래를 보니 그 구멍으로 누른 물이 콸 콸-
갑자기 소란해지고 분주해지는데
우선 나오는 양을 급하게 끊고
봉지를 들고, 새는 쪽을 포타레지 밖으로 내밀어 아래로 떨어지게 한다.
지금은 아래쪽에 다른 팀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완전히 다 뒤집어 쓸 수밖에,
그러나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박대장'은 꼼짝 할 수가 없다.
'포타레지'는 2인용 노젓는 보트와 같아
'호우'가 일어나 있는 상태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90키로의 저 거구가 갑자기 일어섰다가는
그러잖아도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중심을 잃어버리는 이 포타레지가 뒤집어지는 불상사사가 일어날게 분명하니
꼼짝없이 앉은 자세로 그 물(?)을 몸소 다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종이란 종이는 다 동원해서 바닥에 깔고 본다.
하필 포타레지는 방수력이 워낙 좋아 절대 새지 않고 있으니 젠장 다 닦아야만 하는데
'호우' 양말도 이미 푹 젖어버렸다.
. . . . .
그 한두 시간 전,
더 깊은 새벽에
윗층 포타레지의 막내가 살며시 일어났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누워 발을 코앞에 두고 자는 2인용 포타레지의 특성상
‘심형’의 발쪽 구석으로 중심을 옮기고
살며시 심형의 빨간 헬멧을 걷더니
쓰레기통에 봉지 쉬우듯 변 봉지를 쉬우고는 조용히 깔고 앉았다.
그러고는 조용한 미소와 함께 힘을 준다.
완전 맞춤인 것처럼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에서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데
그날부터 항상 ‘심형’의 헬멧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심형’은 하산 뒤에나 알았으니ㅋㅋㅋ
헬멧마다 밑 둘레의 모양이 다른데
마침 ‘심형’의 헬멧이 변통으로 유용하게 사용 될 줄이야.
'호우'가 출발한다.
모두가 손등을 모으고 홧팅!을 외친다.
'블랙타워'구간 시작점,
누가 자연 등반이 가능 한 시작점이라 했나?
넓은 슬랩 구간인데
누구야! 해봐라 되는지.
맨몸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러나 장비 무게와 밟히고 걸리는 장비로 인해 도저히 자연등반은 불가한 것이다. 최소한 '호우'능력에는...
죽고 싶으냐?
자연등반이 가능하다해서 몇 번을 시도하다 용만 쓰고 힘만 소진하고 있는데
계속 용을 쓰는 '호우'가 딱했는지
'박대장'이
“형님, 인공등반 하세요.”
결국 자존심만 죽이고 캠을 줄줄이 꽂고 시작한다.
'블래타워' 아래에 도착하고 '네다'를 빼는 순간,
어~ 날아 가버린다. 놓친 것이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호우'를 향해 ‘막내’가 소리친다.
“큰형님 괜찮아, 괜찮아. 또 있어요. 올려 줄게요.
큰형님 홧팅! 홧팅!”
사그라들던 사기가 갑자기 어디서 쏟는지 힘이 배가되는 느낌이다.
이게 우리 팀의 ‘막내’다 다른 팀은 이런 ‘막내’ 있나?
형아 들이 힘들 때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는 이런 ‘막내’ 말이다.
'블랙타워'를 넘자 직상의' 버드빅' 길이 나온다.
'버드빅' 이라면 '유양리' 채석장에서 많이도 해본 길이 아니던가?
제법 자신 있게('호우' 생각) 6피치를 완료하고
‘심형’의 회수가 시작 됐다.
한참 뒤에
회수가 끝난 ‘심형’이 올라 와서는
“'버드빅'이 깊게 박혀있어 못 빼고 그대로 두고 왔어요, 머리가 안보여요.”
'호우'가
“머리 안보이면 꽁무니에서 빼면 되요,
망치 뾰족한 부분을 뒤꽁무니에 걸고 지렛대로 움직이듯이 빼면 되요.”
“몇 개인데요?”
“8개인가. . . . . ?”
”예? 8개!“
그럼 한 개도 안 빼고 그냥 올라 왔다는 얘기인데
‘심형’이
”저는 유양리에서도 많이 안 빼봤어요, 잘 못 빼요.“
한 두개면 버리고 갈 수도 있겠지만 더구나 지금 '버드빅'이 모자라는 판인데.
”알았어요, 제가 뺄 수 있어요.“
회수 장비를 차고 '그리그리'로 하강하는 '호우',
선등 때는 몰랐는데 오버행에 대각선이었나 보다. 몸이 자꾸 우측 벽으로 멀어진다.
중간 중간 로프를 걸고 직상 첫 부분부터 하나씩 회수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버드빅'만 좀 힘들었지 그 외 '버드빅'은 별 어려움 없이 잘 빠지는데
회수를 마치고 올라서니
7피치를 간다고 ‘심형’이 준비 중이다.
아니, 오늘 7피치는 '박대장'에게 기회를 주자고 약속한 길이 아닌가?
그리고 가기로 했었는데 왜 갑자기
나중에 안일이지만 '박대장'이 뒷마무리가 걱정 된다며 ‘심형’에게 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심형’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보는 바로 앞에서 '네다' 하나를 날려버린다.
'호우'가
“우리 ‘심형’은 의리도 있으셔 내가 하나 버리고 미안해 하니 ‘심형’도 하나 버려 주시는군. 홧팅!”
시선에서 사라진 얼마 후 무전기에 ‘심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줄 풀어주세요.”
빌레이 보던 ‘막내’가
“예, 줄 풀려있습니다.”
“줄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이런, 또 사고다. 줄 유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다시 픽스 하도록 하고 ‘막내’가 회수에 나선다.
역시나
오늘도 깜깜한 밤에 홀통을 띄우고 '박대장'이 올라왔다.
‘막내’가 올라온 '박대장'을 보며 곧 울어버릴 듯한 불쌍한 표정으로
“형, 부탁하나 할게... 이해해줘, 응, 형 이해해주고...”
이런!
우리가 지금 ‘막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건 부탁이 아니다.
애원을 넘어 빌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늦었는데 제발 조용히 넘어가 달라고, 꼬투리 잡지 말고 제발... ”
이렇게 애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막내야, 참 더러운 세상이다, 그지?
말문이 막힌다.
박 대장이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나?
그동안 여기까지 오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계속되는 꼬투리와 지적질, 그리고 고함소리
낮밤을 가리지 않는 짜증에 우리 세 사람 모두 지쳐있고 이제는 주눅이 들어있는데
당신은 그것을 안전 때문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고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막내’가 어떤 ‘막내’인데 이렇게 비굴하게 당신한테 애원 해야만 한단 말인가?
도울 길 없는 이 ‘호우’는 초라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수가 없는데
형아 들을 대신해서 오늘 하루를 평온하게 넘어가게 하려고
이 ‘막내’가 저렇게 빌고 있으니
오늘의 이 수치럽고 부끄러운 이 모멸감을 어찌 할꼬,
앞으로 살아가면서 잊혀나 지려나?
아직도 갈 길은 먼데...
윗 '포타렛지'에서는 저녁 식사 준비로 분주한데
식사 준비래야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는 국수, 떡국, 누룽지뿐이지만
아침에 '포타레지'를 접는 과정에서 '박대장'의 바람막이가 날아가 버렸다.
“어~ 어, 저기 라이타가 들었는데.”
원래 라이타 두 개를 준비 했었는데
한 개는 막내가 갖고 있다가 언제 어디서 날아갔는지 모르게 보냈고
이제 하나 남은 라이타마저 보내 버린 것이다
그때 ‘막내’가
“형, 걱정 마. 성냥이 있어.”
떠날 때 교무님이 꼭 필요 할 때가 있을 거라며 손에 쥐어 줬다는 것이다.
그 참~ 교무님, 미아리에 족집게? 감사합니다.
성냥통을 찾아 통을 연다.
어! 4개비 밖에 없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아침 저녁을 먹고 점심은 행동식으로 때우니 이틀은 갈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은 생식, 행동식으로 때워야 하나?
그건 그때 일~
자동점화가 고장 난 제트보일을 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막내가 성냥을 긋는다.
악!~ 피 같은 한 알이 붙어 보지도 못하고 깨져 버린 것이다.
또 한 알을 집어 들고는 심호흡을 하고는 잽싸게 긋는다.
붙었다! 불이 붙었다!
따끈한 국물에 하루의 피로를 날려 버리곤 잠자리에 들었다.
막내의 애원이 효과를 봤는지 조용한 밤이었다.
모처럼의 평온한 밤에 몸을 뉘었다.
(9피치 선등 중인 '심형')
-조디악의 눈물
10일.(벽 4일째)
새벽,
흑, 흑
흑, 흑, 흑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윗 포타레지에서 막내가 울고 있는 것이다.
이 이국땅 엘켑 조디악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한 여인이
이 이른 새벽에 서러움에 흐느끼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서러운 눈물인지 흐느끼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고 '호우'의 가슴에 전해지는데
얼마나 분하고 마음 아팠으면. . . .
그래 ‘막내’야 울어라.
울어라 ‘막내’야.
그래야 어제의 그 모욕감과 치욕이 조금이라도 씻길 수 있다면
. . . . .
흐느낌이 그치고
그렇게 울고도
아무 일 없었든 것처럼
눈물만 훔치고는
아침 식사준비에 분주한 저 '막내'!
천상 여자- ‘막내’다.
바위에서는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한 마리의 새가 되고
힘든 형아 들 앞에서는 기꺼이 든든한 받침목이 되고
어려워하는 형아 들 앞에서는 청량음료가 되어 주는 우리의 여전사가 아니더냐.
“'박대장' 들었나? 새벽에 ‘막내’가 우는 거.”
모른단다,
한참을 울었는데도.. .
‘막내’가 심호흡을 하고 마지막 남은 두 개비 중 한 개비를 골라 성냥을 그었다.
마음을 비운 그자세로 그냥 그었다.
으악! 붙었다.
아직도 눈물이 고인듯한 눈두덩이는 붉게 물들어 있는데
‘막내’가 8피치를 가겠단다.
그래, 마음도 울적한데 엘켑에 그 맘을 묻어버려라.
홧팅!을 외치고
돌아서는 막내를 떠나보낸다.
그래 왠지 떠나보낸다는 말이 맞다, 지금의 심정은.
그래 막내야 홧팅!이다, 홧팅!
어디 멀리 떠나보내는 아비의 심정이 이런가?
안쓰럽기 짝이 없는데
막내가 8피치를 완료하고 '호우'가 주마를 시작하는데
막 오르고 있는데
'호우' 가슴에 달려있던 무전기가 아래로 힘없이 날아가 버린다.
비너가 열렸나?
또 날아갔다.
장비가 하나씩 날아갈 때마다 사기도 날아가는 듯 하건만.
회수를 끝낸 ‘심형’이 9피치를 준비 중이다.
애초부터 니플 구간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기에 '호우'도 미련 없이 양보하기로 한 구간이다.
한참을 지나 ‘심형’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얼마가 지났나?
무전기에 ‘심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줄을 주세요.”
빌레이를 보던 ‘막내’가
“줄은 풀려있습니다.”
“줄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애고~ 또 줄 유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박대장'이
“줄을 최대한 당기고 픽스하고 하강해서 줄 정리하고 올라가서 진행 하세요.”
한참이 지나
'니플' 언덕으로 부터 하강하는 ‘심형’의 모습이 보이고
. . . . . . . . . .
'호우'가 회수에 나섰을 때는 이미 해는 졌고 깜감한 밤이다.
우리 팀의 색깔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등반열정에 비해 등반 속도가 떨어져 보이는 ‘심형’
팀의 빠른 진행을 위해 경우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양보 할 수도 있으련만
어이 이토록 자신의 즐거움만 추구 하시는지...
물론 우리 팀은 애초에
“늦으면 늦는 데로 하룻밤 더 자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등반에 임했으니
늦는다고 재촉할 수도 제지할 수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피곤한건 사실이다.
'호우'가 우측 대각선으로 시작되는 '니플' 밑 부분쯤에 도착해 보니
몇 개의 캠이 꽂혀있는데 중간 중간 로프가 빠져 나간 캠이 보이고
로프가 걸린 캠 사이가 너무 멀어 한 개 뺄 때 마다 날아다니는데
줄 없는 캠을 뺄 때는
시간을 아끼려고 확보줄에 달린 피피를 걸고 가까이 가서는
캠을 쥐고 속으로 하나 둘 세면서 반동을 주는 순간,
순식간에 회수하는데
몸은 니플 저만치 날아가고
밑에서 보고 있던 '박대장'과 ‘막내’가 깜짝 놀라 걱정스런 듯
“괞찮아요?”
“물론, 이미 날아갈 걸 알고 있었으니 괜찮아, 다른 방법이 없잖나?”
이제 끝인가 하고 마지막 캠을 뽑으며 위를 보는 순간 뭔가 시선을 스치는데
아니, 보이지 않았던 니플 오른쪽 깊은 크렉에 큰 캠 세 개가 줄도 없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런 곳에 줄만 빼버리고 캠만 남겨두면 회수는 어찌 하라고
워낙 깊은 크랙이라 가까이 하기조차 어렵다
줄은 그쪽 방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니플 언덕에서 밑으로 직하하고 있는데
난감하다,
은근히 화가 난 '호우', ‘심형’이 들리라고
“아니 줄을 뺄 때 캠을 같이 뽑았어야지 캠 만 남겨 두고 줄만 걷어 가버리면 어떡해!”
혼잣말하는 것처럼...
이미 '호우'의 몸은 땀으로 젖었는데
위에 있는 ‘심형’은 춥다고 옷을 올려 달라고 아우성이다
회수에 어려움을 격던 '호우'가 아래를 보며
“'박대장', 네다를 올려줘 도저히 안 되겠어.”
“왜요 안돼요?”
“응, 접근이 어려워.“
그러고는 어찌 어찌하다 반동으로 몸을 날려 아래쪽 캠을 잡는데 성공하고
곧장 줄을 걸었다.
”'박대장' 됐어, 됐어! 네다 없어도 돼!“
오늘이 4박째
역시나
오늘도 달빛하나 없는 밤 한시에 포타레치 치는 소리가 엘캡의 밤하늘을 깨운다.
잘한다, 홧팅!이다.
위 포타레지에서는 저녁준비에 열중인데
‘심형’이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고
‘막내’가 비장한 모습으로 마지막 성냥개비를 신주 모시듯 꺼집어낸다.
그리곤 숨을 가다듬고 성냥 뺨을 쓰친다
앗! 붙었다.
그 순간
휙!~
꺼져 버렸다, 불어온 바람에-
이런 씨~
. . . . . . . . .
생 떡국을 나누어 주면서 씹으란다, 정말 싫은데.
그때 ‘막내’의 재치가 빛을 발한다.
떡국에 찬 물을 붓더니 반찬으로 갖고 있던 오징어 젓갈을 넣는다.
휘 휘 젖고는 먹어보더니
큰형도 만들어 보라며 아래 포타레지로 오징어 젓갈을 내려 보낸다.
그 참 생각 보다 훌륭한 ‘물 떡국회?’
그 맛은 잊지 못 할 거야.
앞으로가 문제다
이제 반쯤 온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걱정도 안 되는 모양이다.
식사량이 보기 보다 많은 '호우'가 과연 생식으로 견딜 수 있을까?
자꾸 의문이 들고 불안해지는데
(13피치 선등 중인 '호우')
- 두 번째 위기(그래 차라리 갈라서자, 여기서)
11일.(벽 5일째)
남들이야
“줄에 매달린 채 캠핑하는 등반”이라고 현지인들이 과분한(?) 좋은 평(?)을 하고 있었지만
그딴 소리 마라!
그래, 너 네들 우리같이 이렇게 밤일을 죽 먹듯이 해봤냐?
그나마 코리아 역전의 할배들이니 해내지 너 네들 같았으면 벌써 몇 놈은 코피 쏟고 헬기 떴을 걸.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라
남들이 뭐라 하든 계속되는 밤일에 잠도 설치고 해서
오늘은 하루 쉬기로 하고
포타레지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한 그야말로 조디악의 공휴일인 것이다.
분주한 소리에 눈을 떴는데
그럼 그렇지, 그냥 넘어갈 ‘막내’가 아니다.
이미 장비 정리 끝내고 10피치를 가겠단다.
누가 말리랴?
출발하는 막내를 돌려 세우고는
“홧팅 하고 가야지” 하면서 손바닥을 맞대고 홧팅!
12시가 넘었다.
대장이 나누어준 행동식을 허리춤에 차는데
'박대장'이
“행동식,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이런, 최소한 삼일은 더 남은 것 같은데 벌써 끝이라니 아껴 먹어야겠다.
생식에다 행동식까지 양을 줄여야 하는,
무슨 생존 드라마를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인가?
10피치를 끝낸 ‘막내’가 “완료”라고 외치며 신호를 보낸다.
'호우'가 회수를 시작하려는데 망치가 보이지 않는다.
무전기로 '호우'가 묻는다.
”‘막내’야, 혹 망치 두 개 차고 갔냐?“
엊그제도 무거운 망치를 두 개씩이나 차고 갔다고 투덜거린 경력이 있기에 기대를 하고 있는데
”아닌데요. 한 개예요.“
”그래? 망치가 없어서.“
그때 옆에 있던 '박대장'이
”어제 밤에 뭔가 날아가는 걸 봤는데 그게 망치였나 보네요.”
한 밤중 작업이라 뭐가 날아가도 떨어져도 소리가 없으니 알 수가 없고
이젠 안보이면 찾지도 않고 날아 간걸로 인정 하는 게 대세,
벽 생활 며칠 만에 생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감각이 둔해진다고 할까?
어찌 보면 좋은 현상이기도 할 듯한데 긴 벽 생활에서
나참~
이러다 장비 없어 못가고 조난당하는 건 아닌지.
“‘막내’야 망치가 없어, 망치 내려줄래.”
이날부터 선등이 끝나면 망치를 내려주고 그 망치를 받고 회수가 시작되는 색다른 시스템이 추가 되었다.
회수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박대장'이 올라 왔다.
‘막내’가 가장 좌측에서 시스템 구축을 점검하고 있고
그 우측에서 ‘심형’이 돕고 있고
자리가 협소한 탓에 ‘심형’ 밑에 '호우'가 바라보고 있는데
'호우' 좌측 아래,
즉 ‘막내’ 아래쪽에 있던 '박대장'이
슬링으로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 세트를 아무 말 없이 ‘'호우'‘에게 건네준다,
받아든 '호우'는 다시 ‘막내’에게 건네주고 ‘
막내’는 '박대장'이 건네준 거라 설치하라는 걸로 알고 볼트에 설치한다.
보고 있던 '박대장'
“그거 왜 거기 설치해요?”
그러지 않아도 받아서 건네주면서 '호우'도 좀 이상하게 생각 한 게,
이미 다 설치되어 있는데 왜 또 설치하라고 주나 하고 생각 했었다.
놀라는 표정으로 ‘막내’가
“예?”
‘대장’의 목소리가 달라진다.
“왜 그걸 거기에 설치 하냐구요.“
”아니 형이 준거니 설치하라는 줄 알았지.“
“지금 설치되어 있는데 왜 또 설치 하냐구요!”
이미 대장의 목소리 톤은 높아지고 거칠어졌다.
다그치기 시작했고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니 형이 주니까...”
대장의 목소리는 이미 폭행에 가까운 고함 소리로 변해 있었다.
상대방의 정당한 의사표현도
그에겐 한낱 폭언의 구실만 주는 먹잇감에 불과했고
용서되지 않는 대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말에 두 말 없이 고개 숙일 때까지
집요하게 상대방에게 위협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고 끝장을 내려는 것이다.
그러다 그마저 속이 안차면
“그러면 저는 가만히 있을 테니 알아서들 하세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 팀의 대장이라는 리더가 벽에 매달린 생명을 담보로 협박과 공갈을 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무슨 무기가 되는 것처럼,
누구나 리더의 자격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자질 없는 자격은 오히려 문제만 야기 시키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걸 아는지
“내가 설치하라고 줬어요?
주면 주는 대로 다 설치 할거요!”
. . . . . .
그럼, 애초에 그런 상황에서 주기는 왜 줬는데?
대장의 목소리는 이미 고함과 호통을 치고 넘어 위협을 느낄 만큼의 폭력으로 변해있었고
상대가 모멸감과 무너지는 자존감에 쓰러질 때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이제 몇 마디 건넸을 뿐인데 언어는 벌써 막장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끝까지 가봐!
같이 소리 지르고 막말이 나오고 그러다
같이 안고 뛰어내려 버려?
아님, 잘라버려?
씨~ㅂ
이미 '박대장'는 제왕이 되어 있었고 누구하나 자신의 말에 토를 달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게 어제 오늘의 상황이 아니고 계속 되어온
이젠 예측 가능하기 까지한 일상이 아니던가?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그는 그의 앞에 있는 이 사람들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에 서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사람과 함께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우리 셋은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했는데
24시간 감시당하는 기분에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눈만 뜨면 대장과 떨어지기 위해 선등을 자처해 왔지 않았든가?
시시콜콜 한 것까지 안전, 안전을 빌미로 상대방을 비하하고,
모멸감까지 느끼게 하는 그 고함소리에 얼마나 힘든 시간을 인내해왔던가.
오죽했으면 '호우'는 4피치에서 끝낼 생각을 하고 탈출을 생각했을까?
기억하고 있다.
요세미티를 다녀온 1기 ‘한인석’씨가 '호우'가 원정을 준비 중인걸 알고 때만 되면 일부러 찾아 와서
“선배님, 가시면
조금씩만 이해하시고 양보하시고,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하시고,
홧팅! 홧팅! 하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성공합니다.“
몇 번씩이나 신신당부 하지 않았든가.
그 뜻을 '호우'는 지금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잘한다?”
내 나이에 칭찬에 목말라 있는 것도 아닐 테지만
대장한테는 한 번도 들어 본적도 없는 생소한 소리 인데
꼬투리 잡기에 열중인 그에게 이런 얘기가 어떻게 들릴는지...
우리가 지금 함께 가고 있는 건
길이 외길이라 어쩔수 없이 함께 갈 뿐이고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기고 흩어져 따로 가는 슬픈 등반을 하고 있지 않는가?
손을 모아 홧팅!을 외칠 때도
우리끼리의 격려였지 대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임을 우리 셋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졸지에 일격을 당하고 출구를 찾지 못하는 황당함에 갇혀 버린 ‘막내’가
결국 반항 한번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엉, 엉,엉,
엉,엉,엉,
어디서 그런 울음이 나오는지 쌓이고 쌓인 한이 터져 나오듯 큰 소리로 울어 버린다.
엘켑이 떠나가도록
엉, 엉, 엉,
울면서 ‘막내’가 말한다.
“내가 어제 아침에도 울었는데 왜 울었는지 알아?
여기까지 와서 무슨 등반이 즐거움이란 하나도 없고 눈치나 보고 쓸데없는 긴장의 연속이니
이러자고 내가 여기 왔나 싶어. 오죽 한심했으면 울었겠냐구요?”
엉, 엉, 엉”
그때 ‘심형’이 작심 한 듯
“‘수홍’이 이제 우리 갈라서자.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더는 못 참겠다
낼 아침에 장비와 모든 걸 나누고 따로 가자구.
이제 며칠 남았다고 아직 이 짓이야!.
내일 갈라서자구!”
‘막내’는 계속 울고 있고 ‘막내’를 달래기만 하던'호우'가
“그래요 낼 아침에, 갈라서 가든 각자 가든, 헬기를 부르든 결정합시다.”
‘헬기’라는 말에 힘주어 말하는 '호우'
“그리고 며칠이 남았던 몇 시간이 남았던 그건 중요치 않아요.
한 시간이 남았어도 아닌 건 아닙니다.”
참, 이해 못할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 살 어린애도 웃을 일이 아니냔 말이다.
이게 어디 고함지르고 윽박지르고 할 일인가?
“그건 설치하는 게 아닌데요?”
이렇게 웃고 넘어갈 너무나 사소한 일이 아니냔 말이다
'박대장'!
그래 인정한다,
우리가 시스템이라는 게 아직 숙달 되지도 않았고 당신만큼 완벽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고 칩시다.
그럼 그것 때문에 그렇게 난리치고 호통치고 대원들이 치욕을 느껴야 할 정도의 심각한 문제였다면
애초에 리더란 사람이,
다 익혀지고 숙달 되도록 훈련시켜야 했고
또 그때까지 출발시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다 익힐 때까지 기다려서 원정에 나서야 하는 게 리더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닌가?
팀원들이 가잔 다고 그냥 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시스템이 숙달이 되지 않아 좀 느릴 뿐인데
항상 그렇게 닥달을 하고 . . .
앞으로 원정은 프로들 끼리만 가야것네?
그리고 대장이 왜 있는데,
사실 팀원들은 자신들이 부족한건 대장이 메꾸어 줄 것으로 믿고 따르는 게 아닌가?
그런데 잘 모른다고 설치가 느리다고
윽박지르고 핀잔이나 주고 고함이나 질러 창피나 주고
자괴감에 빠져들어 공항 상태가 되고.
그 뿐인가?
15피치를 가는 동안 항상 마지막 홀백을 띄어 주면서
위에 있는 세 사람은 놀면서 홀백 안 띄어 준다고?
“홀백 올려!, 홀백 올려!, 뭐하고 있어요?
고래 고래 소리 지르고 . . . . .
누가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아니, 바로 옆 루트를 가는 ‘상우‘나 ’장 대장‘팀도 다 들었을 텐데
저 팀은 대장만 똑똑하고 대장만 일하고 나머지는 모두 바보들만 모인 팀으로
대장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을까?
그것도 매 피치마다 매번 난리를 쳤으니 . . .
물론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좀 지루하게도 느껴지고 시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이 나이에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놀려고 왔겠는가?
줄 정리하고 시스템 확인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좀 늦다고
꼬투리도 그런 꼬투리로 소리 지르고 닥달을 하니
할 수 있는 것도 공항 상태가 되어버리는데
혹, 그렇게 되길 바랬던건 아닌지?
그러라고 대장이 있고 리더가 있는 건가?
오히려 격려와 칭찬으로 사기를 올려 주며
실수는 감싸고 잘못은 숨겨 주면서 방향을 잡아주는 게
리더로서의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겠는가?
요세미티가 어디 교육장인가? 훈련장인가?
요즘 아이들도 그런 식이면 다 뛰쳐나갈 걸
어느 벽이었는지 생각이 나진 않는데 '호우'와 막내가 둘이 벽에 붙었다
'호우'가 ‘막내’를 보며
“‘막내’야 만약 이 등반이 성공한다면 나는 모든 게 ‘막내’ 덕분이라고 생각해.”
'호우'의 그 용기와 패기와 자신감이 계속 되는 정신적인 피곤함에 무너져 가고 있는 지금
오히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의연한 막내의 모습은
어느새 호우에게는 위안이 되어 든든한 정신적 받침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아이, 무슨 말씀을...”
“아니야 정말이야, ‘막내’가 아니었으면 나는 불가능 했을지도 몰라, 고맙게 생각해.”
포타레지를 친다.
이미 주위는 어둠이 짙은 밤중인데
포타레지 설치를 돕기 위에 픽스 된 한 로프에 '그리그리'를 걸었다.
작업 중이지만 '호우'의 머릿속은 내일 아침에 헬기를 불러 떠나는 생각으로 꽉 차있다.
비용이 얼마랬더라,
200 ,300
지금 그게 문제야 이 공간만 벗어날 수 있다면
교무님한테 무전으로 구조 요청을 해야겠지?
뭐라고 하지?
아프다고?
그래야 겠지?
. . . . . . .
4피치에서 돌아서지 못한 분함에 자신을 가눌 수가 없는데
. . . . . . .
한참 작업 중인데 옆에 있던 대장이 묻는다.
“형님, 끝줄 매듭 확인했어요?”
뒷줄을 잡고는 있지만 확인은 안 한것 같다.
손을 들어 확인해보니 약2,30센티를 남기고 매듭이 없는 상태
별일 아닌 듯 매듭을 짓는다.
지금 '호우'는 엄청난 위험에 처할 번한 상황인데도
낼 아침에 벌어질 상황에 생각이 잠겨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포타레지안에서 신도 벗지 않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 . . . .
“그래, 오늘의 이 결정은 잘 한 거겠지?
그럼 '호우'야,
너도 그만하면 참을 만큼 충분히 참았어.
오히려 지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끌려가면 더 후회 할걸
그럼 잘 한거 맞지?
그럼 최선의 선택이야.
서울 가서 그 짜쓱들 만나면 뭐라고 하지?
탈출했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 . . . .
야들아!
'호우'는 그래도 끌려 내려가진 않았어.
최소한 헬기는 타고 다닌다구.“
자려고 누웠든 대장이
“형님, 안 주무세요?
뭐 하실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하세요.”
- - - - -
“없다!”
이미 결심은 섰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렇게 그냥 날 새기를 기다린다.
(포타레지 위의 '막내')
12일(벽 6일째)
눈을 떴다.
신발도 신은 채 한쪽 귀퉁이에 쪼그려 옆으로 쓰러져 있는 '호우',
깜박 잠이 들었나본데
밖은 이미 분주하다.
장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막내가
“큰형, 이번 11피치 제가 갈게요. 제 12피치랑 바꿔요.”
웃으며 “그래 그렇게 해.”
그래 빨리 벗어나고 싶겠지.
어디에도 어젯밤의 그 긴장감은 보이지 않고
그냥 전진이다.
참~ 무섭다 인간들이
이젠 탈출을 위한 전진이다
탈출~~.
그래, 달려라 달려.
오늘 12피치를 끝내면 내일은 13, 14, 15피치를 하루에 끊을 수가 있는 것이다.
거리도 짧아 13피치에서 정상까지 한 번에 홀링할 수 있다.
오늘 하루,
그래 오늘만 지나면 낼은 정상이다!
모두들 홧팅!이다
홧팅!
'호우'의 선창으로 4명의 손등이 모였다.
홧팅!
참 재밌는 팀이다.
역시 ‘막내’다.
오전 중에 완료하고 12피치를 '호우'가 준비하려는데
‘심형’이
“선배님 제가 12피치를 하면 안 될까요?”
자신이 지금 12피치를 가고 '호우'가 낼 아침에 13피치를 가는 걸로 바꾸잔다.
'호우'가 웃으며
“그래요, 그러지요 뭐”
이제 1시니 아무리 늦어도 해지기 전에는 끝날 것이고
오늘은 정말 일찍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막내’가 빌레이를 보고 “심형‘이 출발한다.
“잠시 후에 봅시다.”
‘심형’의 모습이 사라지고
잠시 후 무전기에서 ‘심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줄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줄은 풀려 있는데요.
세게 당겨 보세요.”
빌레이를 보던 ‘막내’가 대답한다.
가만히 보니 얼 만큼 세게 당기는지는 모르나 로프가 조금씩 움직이며 올라가기는 하는데
유통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이번에는 줄 유통사고 없이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
“픽스 하고 기다리세요. 회수 들어갑니다.”
빌레이 보던 막내가 회수에 들어갔다.
잠시 후
회수에 들어간 막내가 화가 난 듯 ‘심형’을 향해 소리친다.
“여기에 줄이 꺾였는데 줄 처리를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요. 이러니 줄이 올라갈리 없지.”
계속되는 ‘심형’을 향한 투덜거림이 계속되고
잠시 후,
이젠 ‘막내’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 지점에서 확보하고 ‘심형’을 출발 시켰겠지.
시간은 흐르고 6시가 넘어 7시가 되었는데 완료 소식이 없다.
이제 곧 어두워질 텐데.
대장과 '호우'는 발끝하나 기댈 곳 없는 벽에서 외줄에 매달려 벌써 6시간 넘게 꼼짝 못하고
선등자인 ‘심형’이 완료를 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허리가 아파오고
발끝은 저려오고
하네스에 조여 있는 허벅지는 감각이 없어지는데
이젠 날도 저물고 어느새 깜깜한 밤
완료 소식은 들리지 않고 '호우'가 소리친다.
“막내야! 다 되가나?”
“예, 좀 남았어요.”
“얼마나 남았어.”
“한 시간 쯤요.”
아이고~
아직도 한 시간 그것도 좀 당겨 말한 게 틀림없는데
오늘도 일찍 자는 건 꿈이었고
“우씨~ 그만 내가 갈껄, 아까 바꾸는 게 아닌데.”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바꾼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닐테지만 그래도 ‘호우’는 좀 낫다고 생각 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나?”
'호우'의 얼굴은 후회 하는 표정이 역역하다.
욕도 튀어 나온다
우씨~
걱정 되는 것이
이렇게 오랫동안 하네스에 의지해 매달려 있다보니
하네스가 허리 쪽 갈비뼈를 자꾸 밀어 올리고 압박을 가하여 통증이 가속화 되는것이다
'호우'가 찡그리는 얼굴로 오른쪽 옆구리를 계속 만지며
”이거 더 벌어지는 거 아니야?“
오른쪽 갈비뼈에 자꾸 신경이 쓰여 왼쪽으로 압박이 가도록 자세를 왼쪽으로 튼 불편한 상황이 계속된다.
간간히 막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 홧팅!”
“형, 홧팅”
‘심형’이 어려운가보다.
그래 잘한다, ‘막내’야.
좀 전에는 욕까지 중얼거려 놓고는 막내의 응원소리엔 또 가세하는 것이다.
'호우'가 큰소리로
“‘심형’ 홧팅!”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호우'가 또 소리친다.
“‘막내’야 왜 이렇게 늦어?
못 가는 거야?
허리 아파 죽겠어.”
“‘막내’야 그럼 바꿔서 ‘막내‘가 가.”
지금 '호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이 점점 심해오니 '호우'도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 . . . . . .
밤 10시경
“완료!”
밤하늘을 가른 완료소리에 막내가 답한다.
“형님 수고 하셨어요.”
'호우'도 따라서
“'심형' 수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른다.
어쨌든 8시간에 걸친 인내의 시간은 끝이 난 것이다.
이제 '호우'의 주마가 시작 된다.
지금 이곳에서는
위에서 내려온 주마 줄이 수직이 되는 곳까지 얼마나 먼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달빛 한 점 없고 별빛마저 묻혀 버렸나?
칠흙 같은 밤,
고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아래가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는 이곳에서 수직선상의 저곳까지 날아가야 한다.
'그리그리'의 레바를 천천히 당긴다.
망망대해에 한 점 나룻배가 저 멀리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이럴까?
아니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이럴까?
지금 대장이 서 있는 저 곳과 서서히 멀어 질수록 무서움과 두려움이 '호우'를 덮치고 있다.
세상은 어둠에 잠겨 있는데
대장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잠길 때 쯤 로프가 멈췄다.
'그리그리'를 바꿔 타고 이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위를 올려본다.
헤드랜턴이 밝히는 불빛의 끝은 검은색 허공만 보일 뿐 끝이 없다.
'호우는 '몸을 감싸고도는 무서움을 떨치고자 눈을 감는다.
그리곤 힘찬 주마질이 시작된다.
계속된 강행군과 부족한 잠으로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음을 느낀다.
짧은 주마질에도
거칠어진 숨소리에 '호우'자신도 놀라
주마를 멈추고 두 팔을 벌려 줄을 꼭 끌어안는다.
몇 번을 그렇게 쉬고 오르고
거친 숨소리에 다시 멈추고 위를 올려다본다.
끝이 어딘지 확인하는 것이다.
아직 끝은 보이지 않고 어둠에 묻힌 밤이니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데
다시 주마는 시작되고 온힘을 다해 당기도 또 당기고
저 멀리 저기가 끝인가 보다.
희미한 불빛이 세어 나오는데
“아~ 저기다!”
땀에 젖은 채로 '피넛레지'라 부르는 12피치 확보점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한 ‘심형’도 온몸이 땀에 젖어 있고 막내도 힘들었는지 풀 죽어있다.
'호우'가
“심형, 이렇게 길고 힘든 길 인줄 몰랐어요.
심형도 이런 줄 알았다면 애초에 간다고 안했을 테지요. 고생 하셨어요.”
'심형'이
“그래요,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안 했지요.”
“여튼, 미안해요 밑에서 ‘심형’ 욕을 얼마나 했는데요, 미안해요.”
‘심형’이
“저도 왜 나섰는지 후회 많이 했어요.”
땀에 젖어 초췌해진 심형을 보면서
8시간의 사투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는데 그 모습이 측은해 보인다.
포타레지를 치고 앉으니 역시 3시
‘심형’이
“내일 아침 '김선배님'이 13피치를 가시기로 했지요?“
”예?, 낼 아침요?
그건 정상적으로 잠을 잤을때 얘기지 지금 이상태로 낼 일어나기나 하겠어요?“
오늘 아침에 '박대장'이,
안 입던 바람막이를 꺼내 입다가 예전에 사용하던 라이타를 발견했다.
하루종일 따뜻한 국물을 생각하며 밤을 기다렸고
저녁 준비에 들떠있는데
가스를 찾던
'박대장'이
“어디로 갔지?”
홀백을 전부 뒤지고 소란을 피우는데
“분명히 넣어 뒀는데”
가스가 없어진 것이다.
또 날아갔구만
이 허탈함이란.
안 되는 집구석은 뭘 해도 안 돼.
가스가 있는데 라이타 없어 굶고. 라이타 찾으니 가스 없어 굶고.
이게 팔자라는 건가?
나누어준 생 떡가래를 입에 물고 씹는 둥 마는 둥 잠이 들었다.
13일(벽 일곱째날)
눈을 떴다.
침낭 커버만 덮어쓰고 잔 것이다.
그냥 일어났다.
2,3시간 눈 붙혔나?
어차피 오늘 ‘'호우'‘가 시작 하지 않으면 전진이 안 되고 그러면 오늘 정상의 꿈은 날아 가버린다.
어제 이미 정해진 대로 13피치를'호우' 14피치를 ‘막내’ 마지막 정상은 ‘대장’
자고 있는 대장을 깨웠다.
“'박대장' 일어나, 자~ 시작 해야지.”
그때 저 밖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후라이를 들치고 밖을 보니
우리 좌측 루트인 '제냐타 몬다타'를 솔로등반중인 ‘상우‘가 등반 중에
우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형님, 저 오늘 1시반경 정상에 도착해요.”
“그래, 우리도 오늘 정상 가.
내가 지금 출발 할 거야,
그래 좀 있다 정상에서 봐.”
‘상우’를 보니 없던 힘이 쏟는 것 같다.
‘상우’가 누군가?
이상우
빅월 대회에서 여러 번의 우승경력을 가진 국내 최상급의 빅월 등반가이다.
이번에 엘켑 '제냐타 몬다타'를 솔로로 도전하여 신속하고 능수능란한 등반 실력으로
현지 클라이머 사이에서도 화제가 된 젊은이다.
등반도 솔로, 생활도 솔로다.
‘상우’야 파트너 빨리 구해라.
‘상우’도 오늘 등반이 끝나는가 보다.
마지막 날이다
생각해서인지 기분이 좋고 머리도 맑아 진 것 같다.
'호우'가 출발한다.
소위 말하는 돌려막기 구간이다.
얼마를 올랐나
'박대장'이
“형님 그 정도에서 하나 박고 가시죠?”
내려다보니 상당히 높게 올라와 있다.
“아니 캠이 든든해서 괜찮을 것 같아.”
“그래도 트랑고 하나 박아 놓으세요.“
자꾸 그러니 왠지 찝찝하다. 결국 중간에 하나 박아 두고 전진한다.
잠시 후 “완료”를 외치고
‘심형’이 회수를 마칠 즈음
외국인 2인1조팀이 아래 12피치에 도착했다.
이 친구들은 2박3일 일정으로 등반하는데 속도가 엄청 빠르다.
이들도 오늘 정상에 간단다.
어느새 13피치에 오르고
우리에게 길 양보를 부탁해서 앞서가게 한다.
잠깐사이 14피치로 올랐다.
정말 빠르다.
이제 막내가 14피치를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 주마 줄이 큰 원을 그리며 빙 빙 돌고 있는 것이다.
이 줄이 홀링 줄에 감기면 문제가 커진다.
선뜻 오르지 못하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박대장'이 위쪽의 '호우'를 향해
“형님, 그대로 14피치 가시지요.”
“안 돼,
지금 컨디션이 별로야.
내가 13피치를 한 것도 약속이 있었고 또 해야만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리한 거야.
사실 며칠 밤을 제대로 못 잤잖아.
지금은 안 돼.
이 컨디션으론 위험해.”
바람이 약해지자 ‘막내’가 오르고 곧장 14피치를 친다.
14피치 확보점에서 고개를 들면 바로 머리위에 15피치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한데
“그대로 곧장 정상까지 가버려.”
'막내'를 부추긴다.
14피치에서 멈춘 ‘막내’가 완료를 외친다.
15피치를 '박대장'에게 양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원래 13피치에서 정상까지 한 번에 홀링하게 되어 있는데 14피치에서 홀링하게 한다.
홀링이 끝날 때는 이미 어두워진 상태
'박대장'이
“야등으로 정상을 가야겠어.”
하며 해드랜턴을 점검하고 출발한다.
한두 걸음 나갔나?
우측 위에서 무지 큰 검은 덩어리가 떨어졌다.
'박대장'이 추락한 것이다. 90키로의 '박대장'이...
빌레이를 보던 막내가 그 충격으로 바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가 되고
로프가 팔목을 스치면서 상처를 입었다.
일어난 '박대장'
”안되겠어요, 어두워서 안보여요 내일 해야 겠어요.“
그때 '호우'가 말했다
“내가 할까?”
훈련 때도 '호우'는 "여차하면 야등이라도 할 거야" 하면서 몇 번의 야등을 순조롭게 해 봤기 때문에
자신감에서 쉽게 말이 나온 것인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
그때서야 눈치를 채고 입을 다물었다.
대장도 한 피치는 하고 정상을 먼저 밟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우리의 약속이었다.
바로 손만 뻗어도 닿을 것 같은 머리 위 정상을 내일로 미루어 놓은채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벽 턱에 앉았다.
우씨~
잠깐이면 정상에서 다리 펴고 잘 수 있었는데 추락은 왜 해 가지고. . .
벽에 등을 대고 엉덩이만 걸친 채
발은 천 길 낭떠러지를 향하고
시선은 허공을 향한 채
확보줄만 벽에 걸고 4명이 나란히 앉았다.
오늘은 그냥 이자세로 비박을 하기로 한다.
누룽지 봉지에 찬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리다 ‘막내’가 '호우'에게 건넨다.
“큰형, 식사예요. 한사람이 열 스푼입니다. 정량 초과는 안돼요.”
“알써.”
정말 맛이 굿이다.
자꾸 더 먹고 싶은데 정량이 초과 될까 봐 하나 둘 셋 숫자를 센다.
너무 아껴 먹었나?
한 바퀴 돌고
막내가 남았다고 다시 돌린다.
이게, 웬 떡!
배고픔을 참고 있던 차에 눈치 없이 제법 많이 먹었나보다.
그래도 남기고 '박대장'에게 넘긴다.
하늘에 별이 보인다.
그냥 보일 뿐이다.
어느 후기에서는
엘켑의 밤 하늘을 수놓은 별을 노래하기도 하더만
다 팔자 좋은 사람들의 낭만이 아니든가
별빛만 따진다면야 우리만 했겠어?
달빛 한 점 없는 나날을 보냈으니
그 칠흑의 밤하늘에 뿌려진 별빛만 했겠냐구요?
어느 부잣집 애들이나 지껄이는
‘무슨 별빛이 어떻고 달빛이 어떻고’
그딴 소릴랑 마요.
그 시간엔 우린 살기위해 몸부림 쳤고 지쳐서 쓰러졌다오.
그 동안 별도 달도 '호우'는 본적도 말해본 적도 없다.
최소한 기억엔 없다.
침낭을 뒤집어 쓴 옆의 ‘심형’은 잠이 들었나 보다. 거친 숨소리가 대단하시다.
옆의 '박대장'도‘ 막내’도 조용한데
'호우'는 계속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안 된다, 도저히 이 자세로는 잠들 자신이 없다.
이상하다.
며칠을 잠 못 자고 있는데 쓰러져야 할 '호우'가 뜬눈으로 지새우는 것이다.
이 밤만 지나면 끝이라 그런가?
14일(벽 8일째)
침낭 커버만 뒤집어쓰고 계속 뒤척이다 날이 새는 걸 지켜본다.
'호우'가 옆의 '박대장'을 깨운다.
“박 대장 일어나지 이제 시작해야지?”
덮어 쓰고 있든 침낭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아직 어두워서 안 되요. 잘 안보여요.”
‘호우’가
“아니야 준비하면 밝아 질 거야, 금방이야.”
'박대장'은 아직은 아니라는 듯 침낭을 다시 뒤집어 쓴다.
“그 참 ~ 빨리 시작하지.”
'호우'는 잠도 못자고 있으니 빨리 정상을 밟고 싶은 것이다.
잠시 후
잠깐사이 날이 밝았다.
누구 먼저랄 것 없이 침낭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애벌레가 껍질을 벗듯 3마리의 고치가 밖으로 나온다.
잠시 후면 정상이다.
'박대장'이 출발한다. ‘막내’가 빌레이를 보고
중간쯤 올랐나?
'박대장'이
“어! 어!”
올려보니
저 멀리 날아가는' 네다'.
'네다' 한조를 몽땅 떨어뜨린 것이다.
“그래 잘한다, 이제 끝이라고 무게 줄이는구만.”
'호우'가 웃으며 말한다.
“완료!”
'박대장'이 정상에 올랐다
2시간 반이 걸렸다.
'호우'가 회수에 나서고 두 번째로 정상에 올랐다.
그냥 올랐을 뿐이다.
동네 뒷산에 올랐나?
무슨 감격?
무슨 울먹여지는 감흥?
그러게?
그딴 것과는 전혀 다르다.
기대는 했었다, 어떤 특별한 감흥을.
그 어려움을 헤치고 올랐으니
하, 하,
그건 기우였다.
속았다.
그냥 북한산이고 수락산이었다.
기분은 그랬다.
정말 그랬다
(정상에서 "호우")
하산 길, 차라리 지옥의 길을 가겠다.
예정보다 하루를 넘긴 7박 8일간의 여정이 끝났다.
어제 정상에서 ‘상우’와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우리 팀의 차질로 인해 먼저 하산하면서 정상에 물건을 숨겨두기로 무전 연락을 했었다.
‘심형’이 급한 볼일이라고 저쪽으로 달려간다.
그동안 일주일을 한 번도 배출하지 않고 있었으니 정상에 와서야 급한 것이다.
그걸 일주일씩이나?
'호우'는 이해하지 못할 일인데
'박대장'이 어제 ‘상우’가 숨겨 두고 간 물 2병과 라이타 그리고 가스 1통을 찾아왔다.
이거 얼마만의 따뜻한 국물에 익은 음식인가?
일회용 국수에 배가 놀라지 않게 아껴먹는다.
그 맛을 음미하면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떡국을 나누어 먹고 오랜 배고픔의 설움을 달래본다
그래, '호우' 수고했다.
견뎌준 '호우'가 그래도 장했다.
신발을 벗었다.
8일 동안 한 번도 벗어보지 못한 양말을 곱게 펴서 햇볕에 넌다.
이미 떡지고 뻣뻣하게 굳어 있지만 하산길에 또 신어야 하는 것이니.
내려가면 그 동안 못한 양치질도 해야지.
물론 세수도 하고
8일 동안 상태가 심히 걱정스러운 속옷도 갈아줘야지.
뭐, 하고픈 게 하나 둘이겠어?
기념사진도 찍고
대자로 누워도 본다.
'박대장'이 무전기를 든다.
“교무님.”
“예”
“수홍입니다.
정상입니다 .12시경 하산합니다.”
교무님이
“수고 하셨습니다. 조심해서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1시가 넘어 짐을 나누어 메고 하산 길에 올랐다.
변통을 자진해서 '호우'가 매고
종일 변 냄새로 시달린 걸 생각하면 잘못한 선택이었는데.
4시간짜리 하산 길로 알고 있는데 지금 2시 전이니 시간은 넉넉하다.
내려오는 외국인을 붙잡고 말이 통하는 ‘심형’이 길을 묻는다.
“저쪽으로 내려가면 돌탑들이 있는데 그것만 따라 가다가 5층 돌탑이 나오는 곳이예요.”
뭐, 대충 이렇게 통역이 되고
뭐 쉽겠네.
짊어진 홀백의 무게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무게다.
개인장비 무게에다 로프, 공동장비, 생활 용품 그리고 변통까지,
중심을 위로 올려놓아 움직일 때마다 좌우로 흔들린다.
더구나 변통을 제일위에 올려놓았는데, 더운 날씨에 그 향기가 대단하다.
돌탑을 따라 가는데 막상 설명보다 쉽지 않다.
가파르고 거친 돌길이라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체력소모가 보통이 아니다.
'박대장'이 무전기로 계속 ‘상우’와 통화하면서 길 안내를 받는다.
돌탑도 우리네와는 규모가 다르다.
'호우'는 돌탑이라 해서 우리네 돌탑을 연상하고 있었는데
고작 손바닥만 한 공기돌? 2개 3개 많은게 5개 올려놓고 돌탑이란다.
돌탑이라면 적어도 무더기로 쌓아 놓여 있어야지 무슨 저러고도 돌탑이라니
얘네들 언제 우리나라 돌탑 견학한번 시켜야겠다.
몇 개를 찾아 따라 내려가는데 돌탑이 끊겼다.
이리저리 헤매는데
앞장서서 ‘상우’와 통화하는 '박대장'은 ’소나무 한그루’만 자꾸 얘기한다.
헤매기는 마찬가지 '호우'가 소리친다.
“모두 여기 짐 내리고 있어요.
무거운 짐 메고 이러다간 전부 힘만 빠져요.
제가 내려가서 길을 확인하고 올테니 꼼짝 말고 있어요.”
짐을 내려놓은 '호우'가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계속 소리친다.
“여기에 돌탑이 있네.”
잠시 후
“여기에 또 있네.”
또 잠시 후
“여기도 있네.”
계속 내려가면서 돌탑을 확인하던 '호우'
“5개짜리 돌탑도 찾았어요.“
너무 많이 내려갔기에 일단 여기가지 내려와서 다시 찾을 생각으로 다시 올라온다.
“저 아래까지 내려갑시다. 그곳에서 다시 찾아봅시다.”
모두가
그 곳까지 왔는데
더 이상 길이 없다.
돌탑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길이 없는 것이다.
거의 낭떠러지에 가까운 붉은색의 슬랩이 길게 펼쳐져 이어져 있고 조금 밑에는 아예 절벽이다.
벽은 왼쪽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돌탑은 벽 반대편 오른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일단 무거운 홀통을 내려놓고 이리저리 길을 찾는데
오른쪽 끝으로 가본다
길이 없다.
몇 시간 전부터 '박대장'은 ‘상우’와 계속 통화 하는데 아직도 ‘소나무 한그루’ 얘기만 나온다.
여기 저기 전부 소나무인데 한 그루가 한두 개도 아니고
조금 떨어져 있으면 한그루로 보이고 조금 가까이 있으면 두 그루로 보이고,
무슨 하루 종일 소나무 한그루 타령만 하나?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곳에서 소나무 한그루를 찾는 게 아니라,
한참 내려가서 벽을 끼고 다시 한참을 내려가서
하강 포인트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얘기였는데
무슨 놈의 교신이 뭐가 잘못 된 건지 몇 시간 전부터 소나무 타령만 하고 있었으니
이 사람들 오늘 욕 좀 보것네.
대책이 없는데 ‘심형’이 말한다.
“선배님, 슬랩으로 내려갑시다.”
'호우'가 깜짝 놀라며
“예, 여긴 길이 아니예요.
더구나 무거운 홀통을 메고 갈수 있는 길은 더더군다나 아니예요. 사고 나요.”
빈 몸으로 잠깐 내려가다 올라오는데도 영 어려운 슬랩인데 무거운 짐을 메고 내려간다니
“‘심형’이 더위 먹었나?”
예전에 교무님이 얘기하시던 게 생각나는데
“벽을 따라 가다가 검은 그물망 같은 검은 벽이 나오고
그게 어깨높이 만큼 올 때에 멈추고
우측을 보면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고 그곳이 하강 포인트다.”
나한테 얘기 한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 하는 걸 옆에서 귀 동냥 한 적이 있는지라
지금 상황에서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 그래 왼쪽에 벽이 있고 저쪽 아래에 검은색의 벽이 있긴 한데
들머리가 없다.
다시 가까이에 가서 길을 찾는데 없다.
아예 길이 없다.
'박대장'은 계속해서 ‘상우’와 길 찾기 교신을 하고 있는데
“'상우'야 나 지금 퍼졌어. 기진맥진이야”
뜨거운 땡볕아래 무거운 홀백을 지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이제 지친 걸 떠나 기진맥진한 것이다.
아직 시작점이나 마찬 가지인데
벌써 하산 완료 시간인 4시간도 지났고
6시가 가까워진다.
절망이다.
날머리를 시작도 전에 물도 체력도 고갈 되었으니...
우리 팀은 며칠을 한줌 마른 누룽지로 배를 채우고
몇 개의 간식을 아껴 먹고 며칠 밤을 제대로 못자면서
지금 그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은발의 중년 외국인 한명이 홀백을 메고 왼쪽 벽을 향해 하산 중인걸 발견하곤
‘심형’을 급히부른다.
‘심형’이 달려가서 외국인에게 하강 포인트를 묻고 같이 안내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지금 갈 길이 바빠 같이 갈수 없다며 홀로 내려가고 만다.
이때 ‘막내’가 재빠른 걸음으로 따라 붙는다.
“제가 길 알아 놓을께요.”
저 무거운 홀백을 매고 아직 저런 체력이 남았나?
우리도 홀백을 들쳐지고 따라 나서는데
이런,
아까 '호우'가 벽쪽으로 붙어서 찾았던 그 쪽보다 조금 아래쪽에 들머리가 있지 않은가?
길이라야 완전히 벽에 붙은 손바닥만 한 좁은 길이였다.
우씨~
조금만 더 밑에서 찾아 볼 걸.
한참을 내려오니 막내가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을 가리키며
“외국인이 저쪽으로 갔어요. 그곳에 하강 포인터가 있는 것 같아요.”
모두들 홀백을 내려놓고 호흡을 가다듬는데 이미 '박대장'은 지친 기색이 역역하다.
이거 큰일이네.
이제 시작인데 은근히 염려된다. 이미 물도 바닥이 나버렸으니.
하강 포인트에 주저앉아 의논을 했다.
30미터 30미터 두 번 하강에 또 짧은 하강이 연이어 있는데
지금의 체력으로 홀통을 메고 하강하기는 위험이 따를 것 같아
짐만 먼저 내리고 나중에 몸만 내려가는 걸로 결정했다.
3명이 지금 다 같이 힘들어 하는 것이다.
홀통을 60미터짜리 우리 로프로 한 번에 내리기로 했고
대장이 로프로 묶고 있는데
‘막내’가 기존에 걸려있는 로프에 하강기를 걸고는 홀백을 메고 하강 준비를 하면서
“저는 그냥 하강 할께요.”
'호우'가 걱정스레 묻는다.
“아니, 할 수 있겠어?”
“예, 오버행이 아니고 발이 닫는 각도라서 할 수 있겠네요.”
그러곤 자연스럽게 하강을 하는 게 아닌가?.
물 흐르는 듯한 '막내'의 하강은
역시 산악 구조대원으로 활동 중인 그 경력에 배테랑 다운 면모가 그대로 묻어나는 한 점 티 없이 깔끔한 하강이었다.
'호우'가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허나, 이미 결정하고 홀백을 묶고 있는 중이라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박대장이 홀백을 내리고 있는데 ‘심형’은 짐을 받겠다며 하강해버렸다.
내려가던 홀백이 몇 미터 가지 못하고 중간에 걸려버린다.
'호우'가 그리그리를 걸고 하강해서 걸린 홀백을 띄우고
내려가는 짐을 따라 하강하다 중간에 걸리면 다시 띄워주면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큰소리로 '호우'가 외친다.
“잠깐! 잠깐! 내리지 말아!”
위에서 보면 벽을 따라 그대로 직하 할 것으로 보이는 벽이
두 번째 하강 벽부터는 왼쪽으로 기울어져서 홀통이 그 쪽으로 흘러가는데
이거 웬걸
그쪽 끝은 아래에서 대기 하고 있는 곳이 아니라
훨씬 떨어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인 것이다.
즉 절벽 낭떠러지인 것이다
만약 그쪽으로 넘어가면 '호우'의 손도 벗어 날 뿐만 아니라
지금 '박대장'의 체력으로는 끌어 올릴 수가 없을 것이 분명 한데
지금 막 벽을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첫 하강을 끝내고 대기하던 젊은 외국인이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날리듯 잽싸게 오른 손을 뻗어 로프를 잡아채는데
“생큐, 생큐 베리마치”
가장 자신 있는 미국말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 줄을 함께 끌어 당겼다.
휴~ 아찔한 순간이었다.
“줄 내려!”
‘심형’과 ‘막내’가 대기 하고 있는 두 번째 하강 끝에까지 내려주고 다시 주마를 걸고 올라간다.
그러다 '호우'가 잠깐 멈추고 아래쪽 ‘심형’을 향해 말한다.
“‘심형‘ 지금 '박대장'이 퍼졌어요.
완전 그로기 상태인데 지금 위에는 짐이 세 개 남았어요.
그런데 벽 끝이 좌측으로 기울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아 줘야 하고
짐이 내려 올 때 마다 제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하니 한번만 도와주세요,
저도 지금 체력 소모가 넘 심해요.
예, 한번 만 올라 와 줘요”
밑을 보고 사정 반 부탁 반으로 얘기 하고 올라가는데 답이 없다
'호우'가 올라가면서 생각 한다.
“음~ 올라오지 않겠군.”
그럼 이 방법으론 안 되겠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홀통 달고 하강하는 식으로 해야겠다.
좀 전에도 외국인들이 그렇게 내려가는 걸 보았기 때문에 '호우' 생각이 바뀐 것이다.
위에 도착하니
주저 않은 채로
'박대장'이
“형, 물 좀 있어요?”
“응 그래.”
'호우'가 허리리에 차고 있던 650짜리 물통을 건넸다 .
'박대장'은 오늘 '호우'물을 벌써 세 번째 마시고 있는데
'호우'는 '박대장'에게 첫 번째 물을 줄 때 부터 '박대장'의 물이 떨어졌음을 알았고
그때부터는 아예 물을 먹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호우'는 안다.
'박대장'은 물이 부족하면 입술부터 하얗게 말라버리고 엄청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을.
이 물은 비상시 '박대장'을 위해 남겨 놓는 것이다.
물이 바닥에 찰랑대는 것을 '박대장'도 알기에 그야 말로 입술만 적신다.
그러곤
“형, 이제 형이 좀 도와 줘요.”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 하는 것이다.
'호우'가 지금의 위기에서 자신을 도와 줄 거라 믿는 것이다.
'호우'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무슨 말씀을, 당연한 것을.
'박대장', 이대로는 안 되겠어 홀링백 달고 하강 하는 방법으로 하강 하자구.”
유양리에서 말만 들었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법으로 '호우'가 하강 하겠다는 것이다.
'박대장'도 한번도 해보지 않은 '호우'가 염려가 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나.
어쩌겠나 시간은 자꾸 흘러가지 체력도 고갈이지 지금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의 방법인데.
'박대장'이 60미터 회색의 스태틱 로프를 '호우'에게 건네며
“형님, '그리그리'에 거세요,”
홀백에 비너를 채우고는
“이 비너를 '그리그리'에 거세요. 예, 맞아요.”
“그리고 하네스의 비너를 거세요. 예 됐어요.”
처음 경험하는 초짜의 하강을 지켜보아야 하는 긴장감이 '박대장'의 표정으로 나타나는데
홀백을 앞에 달고 자세를 잡고는 서서히 레바를 당긴다.
그러곤 좀전 외국인 하던 것 처럼 발 뒷굼치로 홀백을 사정 없이 걷어 찬다
내려가면서 '호우'가 혼자말로
“별 거 아닌 걸 괜히 쫄았자나?”
'박대장'이 하강중인 '호우'를 향해
“형님, 아예 끝까지 하강 하십시오. 나머진 제가 갖고 갈게요.”
“알았어.”
두 번째 하강 끝 지점에 멈췄다.
여기서 다시 기존 로프로 갈아타야 하는 것이다.
‘막내’와 ‘심형’이 기다리고 있다가 내려가기가 무섭게
‘심형’이
“김 선배님, 아까 올라 오라는데 못 올라가서 미안해요,
너무 힘들어서 못 올라 가겠드라구요. 체력도 다 떨어지고, 미안해요.”
이미 지치고 힘든 모습으로 '호우'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것이다.
“괜찮아요. 힘드시니까 그렇죠.
그런데 ‘심형’ 지금 '박대장'이 퍼진 것 아시죠.
완전히 체력이 한계에 왔어요. '
박대장'이 밉지만 미운 건 미운 거고 지금 같이 어려울 땐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먼저 하강 할께요.”
줄을 갈아 타고 좀 전 방식 그대로 '그리그리' 레바를 당긴다.
“하강 완료!”
홀백 달고 첫 하강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전원 하강을 마치니 이미 어두워져 있는데 헤드랜턴을 켜고 지친 몸을 추스르면서
'박대장'이
“형님 물좀 있어요?”
'호우'가 허리에서 물병을 빼 건내면서
“이건 '박대장' 만 먹는 물이야.“
밑바닥에 찰랑거리는 물병을 받아들고
입술을 적시곤 다시 '호우'에게 건네는데
옆에 앉았던 ‘심형’이
“그래요? 나도 줘 봐요.”
하면서 물병을 받아 쥐더니 홀랑 마셔버린다.
깜짝 놀란 '호우'가
“아니 ‘심형’ 이건 '박대장' 줄려고 나도 안 먹고 있는 물인데.”
“뭐 조금 밖에 없던 데요."
‘심형’은 '호우'가 왜 물을 '박대장'만 챙기는 줄 알리가 있겠나 만은. . . . .
그 참~
'호우'는 몇시간 전 부터 물을 굶고 있었는데
앞서 가든 ‘막내’가 섰다.
‘심형’도 따라 서고
길을 찾는 것이다.
저쪽 끝에서 아래로 랜턴을 비추며 뭔가 확인하더니 아래쪽을 가리키며 막내가
‘여긴 낭떠러지예요, 길이 없는데요?“
이리저리 찾아보는데 길이라 할 만한 게 없다.
이미 '박대장'과 '호우'는 홀백에 쓰러져있다.
한참을 지나고
완전히 어둠에 묻힌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그 무렵
오른쪽 어둠속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사람 소리가 들린다.
”여기예요? 여기 계셨군요.“
‘상우’가 구조하러 올라온 것이다.
정상이나 다를바 없는 이곳까지 그 먼거리를 뛰어 올라 온 것이다
밑의 낭떠러지를 랜턴으로 가리키며 벼랑 끝에 서 있는 ‘막내’를 보고
“누님, 거긴 낭떠러지예요!,
길이 아니예요!.
떨어져요!.
이쪽으로 나오세요.“
우선 지고 온 물통 두 개를 배낭에서 꺼내더니 나누어 준다
이 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으랴?
휴~~
누군가 ‘상우’보고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어?”
“하산하는 팀 중에 안면 있는 한국인2세가 있어 물어 보았는데 상황이 어려울 것 같다 하더라구요.“
'상우'가 빠른 손놀림으로 포타레지 두 개를 묵어 들더니
“자, 가요. 교무님이 기다리세요.”
낮부터 우리의 하산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그러곤 앞장서는데 '
시작부터 도저히 길이라 상상이 가지 않는 바위사이를 넘어 내려간다.
어느 정도 내려갔는데
밑에서 잡아주고 받쳐주고 험난하고 난해한길의 연속이다.
앞서가던 ‘상우’가 막 내려서는 '호우'에게
“잠깐 기다리세요”하고는
앞선 막내의 홀백을 받아 쥐고 막내를 향해 기존에 걸려있는 로프를 주면서
“로프를 타고 내려가 계세요”
하면서 내려 보낸다.
아래를 보니 20미터 정도의 가파른 절벽이다.
‘막내’가 내려가자
'호우' 홀백을 벗게 하고는
기존 로프 끝에 ‘막내’ 홀통의 비너를 걸더니
그 로프를 옆에 있는 바위에 돌려 걸고는
“형님 서서히 놓아 주세요”하고는
홀통을 아래로 던지다시피 내려 보낸다.
“형님 줄 꼭 잡으세요, 놓으세요 좀 더 좀더...”
다음은 '호우'의 홀통을 내리고 다음은 ‘심형’의 홀통을 내리고. . .
순식간에 하강을 끝내버리고 또 하산이 이어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호우'는
그 빠르고 정확하고 망설임 없는 행동에 프로다운 면모를 느끼고는 할 말을 잊는다.
‘상우’가 무전기를 든다.
“상우, 상우.”
교무님의 목소리다.
“어떻게 됐어?”
“예‘ 지금 내려가고 있습니다.”
“응, 수고 많았어.”
이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무게 때문에 휘청이다가
좀 깊이 내려서는 곳에서는 아예 주저앉아 버리고는 엉덩이로 밀고 가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그렇게 뛰었지만 이렇게 앉은뱅이로 가보진 않았는데
정말 이게 지옥이지 지옥이 따로 없다.
앞서 가는 선두를 놓칠까 봐 조바심은 나고 발은 따라가질 못하고
“선두, 천천히!”
“빨리 가면 안되요!”
“길 못 찾아요.”
계속 소리치며 죽을 힘을 다해 쫒아가는데
'박대장'은 헤드랜턴이 배터리가 없어 '호우'의 뒤만 바짝 붙어 따라오다가
'박대장'이
“형, 여기서 자고 가.”
“안 돼, 이제 다 와 갈 거야.”
'박대장'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호우'는 알고 있다.
이미 체력의 한계를 넘어버린 '박대장'은
다리의 힘이 풀려 시작 때부터 엉덩이로 밀고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형, 쉬어요.”
“응, 알았어.”
점점 휴식간의 거리가 짧아지고
앉았다하면 도저히 일으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행군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호우'도 앉았다하면 온몸이 내려 앉아 그만 잤으면 하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길을 죽음의길 지옥의 하산길이라 했나.?
지금 옥황상제께서 지옥의 길과 하산 길 중 택하라 하시면 거침없이 지옥의 길을 택할 것이다,
선두가 멈추고 이제야 만났다.
‘상우’가 말한다.
“이제 얼마 안가면 인수봉 가는 길 정도의 좋은 길이 나옵니다.
그리고 30분만 가면 됩니다.”
그러고는 또 사라진다
“형, 우리 여기서 자고 가자.”
또 '박대장'이 유혹 한다.
아미 모를 거야,
'박대장'은
지금 '호우' 심정이 '박대장'과 같다는 것을.
일어서면 몇 걸음 못가 금방 주저앉는다.
조금만 낮은 디딤에도 다리가 짐 무게를 받쳐 주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제는 알아서 엉덩이부터 깔고 앉는다,
‘형, 좀 쉬어가.“
“알았어.”
잠시 후
“형 우리 자고 가.”
쳐다보니
이미 눈을 감고 자고 있는데
“자~ 가자 가자.”
“얼마나 남았어요?”
“아마 얼마 안 남았을 거야.”
이제 길은 평탄한 흙길로 변하고 있었다.
그럼 30분~
중간에 기다리는 선두와 만났다.
상우가 무전기를 켰다.
교무님의 목소리다.
“어디쯤 왔어?”
“예,10분쯤 남았습니다, 다 와갑니다.”
“알았어.”
또 우리 둘만 남기고 선두는 어둠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유~ 씨~~
어라 차~차!
기압까지 곁들이며 홀통을 매는데 휘청 휘청
이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한 친구는 원정을 떠나는 '호우'를 보고
“나는 니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부러진 갈비뼈를 안고 원정을 떠나는 '호우'가 친구 눈에는 이해가 안 갔던 모양인데
그 친구가 지금 이 '호우'꼴을 보면 뭐라 할까?
우~씨
“자, 이제 다 왔는가 봐”
저 멀리 숲 사이로 불빛이 보이고 사람소리도 들린다.
길게도 뻗은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우리를 반겨주는데
불빛을 막아서고 교무님이 손을 내미신다.
“수고 하셨어요.”
“고맙습니다.”
'호우'의 손을 꼭 잡고는
얼굴을 찬찬히 보시더니
측은한 듯 미소 지으며
“선배님 왜 우실려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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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늘은 밤 12시 전에 끝났다.
7박8일중 가장 빠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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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2박 3일 걸리는 젊은 놈들만 뜨거운 가슴이 있고 눈물이 있고 감동이 있답디까?
7박 8일 걸린 늙은이도
더 뜨거운 가슴으로 울었고 더 뜨거운 눈물로 엘켑을 적셨고 몸서리 쳐지는 처절함으로 한계를 넘고 또 넘었다오.
부디 기억해 주오
엘겝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당신과 생사를 함께 할 동료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마음의 벽 말이요.
그 벽은 보이는 벽 보다 더 많은 눈물과 더 많은 시련을 당신에게 강요하며
자칫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평생 당신을 괴롭힐 수 있음을 잊지 마시오, 부디~
귀국 비행기를 타던 날
교무님이
“선배님, 내년에 또 오실 겁니까?”
“예, 좋은 사람들만 있다면요”
. . . . . . . .
성공 했냐구요?
아니요.
굳이 성공이라 한다면
절반의 성공이지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벽은 넘지 못했으니까요.
조만간 남은 절반을 찾기 위해 기필코 다시 찾을 겁니다.
도전이라구요?
. . . . .
아뇨.
뒤 돌아 보니
일상이더라구요ㅎ
청춘은 60부터랍니다. ^ ^
대장으로써 리더로써 항상 위험에 노출 되어있는 대원들의 안위가 염려 되었을 박대장,
누가 그 심정을 모를까만은
그 열정적인 정성과 넘치는 관심이 어쩌면 오히려 서로의 마음에 짐이 되고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이번 원정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준 교훈이라 생각 됩니다 .
물론 대원들 또한 철저한 훈련으로 리더의 짐을 덜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이 또한 중요한 교훈으로 남겠지만요
박대장!,
우리, 그 벽 넘으러 갑시다
남겨 두고 온 그 절반
넘지 못한 그 벽 말이요
넘고 와야 되지 않겠소
그 벽이 한이 되어 이 가슴에 박혔는데
어찌 편한 삶을 살것소
. . . . . . . . . . . . . .
수고하셨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진실이면 글로 다 옮길 수 있다고 생각 했답니다
아니더라구요
. . . . .
못다 쓴 진실은
추억의 보따리 가장 구석진 곳에 넣어 두렵니다
나중에 찾지도 못하게
아주 깊숙이요
. . . . . . . . . . . . . . . . . . . .
세월이 지나
우연히라도 찾게 되면
또 그 상처가 되새겨질까. . . .
*[첨부]
박대장과 '호우'는 같은 S등산학교 출신 동문으로 몇해 전부터 등반도 여려차례 함께 한 사이였고
'호우'가 이번 원정을 ER35기 동기인 '유근세'씨(중간에 빠지게 됨)와 계획하고 훈련 하던 중
거벽원정이 처음인 두사람의 능력으론 부족함 을 느끼고
원정대원을 보충하는 과정에서 '호우'의 권유로 합류하게 되었고
지난해 조디악 원정에는 실패 하였지만 원정 경험도 있고
S등산학교 동문회 거벽대장도 맡았던 경력이 있는 박대장이 원정대장을 맡기로 하였습니다.
'호우'가 박대장과 함께 하는 걸 알고는 박대장의 성격을 아는 몇몇 S동문들의 적극적인 만류가 있었지만
그 또한 상대성이 있다고 생각 했던지라
한 예로, 몇 개월의 훈련동안 박대장은 한번도 빠짐없이 '호우'에게 하루세끼의 식사를 직접 챙겨 주었을 만큼의 자상함과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성격상 부족한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호우'가 감당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원정에 성공 할 수만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답니다
첫댓글 최근 읽었던 등반기중에
보기드믄 최고였습니다.
몇번 울컥하는 장면도 있었구요!!!
개성과 캐릭터가 살아있는 글쓴이와
각 대원 인물들의 심리묘사도 좋았어요.
머세드강을 바라보며, 몇번의 흐느낌과 ,
요세계곡이 떠나가도록 통곡했다던 막내(경복언니)의 눈물과
제가 5년전 동계하프돔 벽에 메달려
하나뿐인 카메라를 떨궜을때 벽에 얼굴을 파뭍고 울며
잠시간에 느낀 절망과 초연함에
조금은 맡닿아 공감이 느껴지구요~
더 멋진건 실화이고
아직은 진행중인 해피엔딩이라는거^^*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대원분들과
구조? 하러 뛰어간 상우형 그리고 교무님 !!
너무너무 수고많으셨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잘 쓰신 등반기 잘 읽었습니다.
교무님과 상우를 포함하여, 다들 어마어마하게 고생하신게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아옹다옹이 아닌
아롱다롱
아름다운실로
엮으시러
한번 더 가셔야 겠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고
막내와 함께 울었고..
구조아닌.. 구조를 나와주신
동문께는 존경을.
한 편의 단편소설
맛깔나게
너무 잘 쓰셨습니다.
제 앨캡도전시 많은도움이
될만한 기록입니다.
고생하셨고
고생하셨고
고생하셨습니다.
역대 요세캠프중
가장 험난했을 2015년도
가장 큰 고생하신
교무님께
진심으로ㅡ
존경의 인사올립니다.
그간의 사정을 들어서 잘 알면서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죄송한 마음마저듭니다. 한학희 선배님과 김태곤 선매님의 글이 전혀 다른듯하면서도 그 맛이 대단합니다. 벽에서 7박8일을 함께 보내신 네분. 세월이 지나면 이 추억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 궁금해집니다. 긍정과 이알의 힘으로 남길기대합니다.
두분의 글을 읽고 ......두관점 하나의 펙트를 보았습니다.
준비 부족에서오는 등반의 어려움과 시스템보다 앞서야 되는 등반에 대한 마음 .....등반철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등반기 입니다.
등반이 이렇게 피곤한 등반만 있겠습니까? ...... 앞으로 좋은 등반만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한번의 실패에 다시 도전 하여 성공 하신 등반자는 꼭 성공 하겠다는 의지가 부른 과잉 친절?로 인한 대원간의 힘든 7박 8일간의 등반기 꼭 제가 고산에서 느꼈던 일이 생각 났습니다 정말 생생한 등반기 잘읽고 갑니다 세월이 지나면 아름 다운 추억이 되겠지요 잘읽고 느끼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길고 험한 등반만큼 등반기도 그 치열함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울선배님들 등반기는ᆞ정말잘읽었습니다
저의ᆢ37기도ᆢ같은벽을등반하고ᆢ읽으니더욱공감과ᆢ살아있는듯한 등반기네요ᆢ진한눈물이나옴니다ᆢ
ᆢ^^
선배님들의 등반후기글 감동있게 잘보았습니다~~~
저도 요세미티 원정을 준비하고 훈련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교육중에 강사님의
한마디가 가슴속깊이 남아있습니다~~(떠나기전 자신의 모든것을 비우고 버리고 가라)
이후기글을 읽으면서 그말씀이 무슨뜻을 전하시는건지 잘알게 되었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또한 그길을 후배들이 가면서 선배님들의 그마음을 수백번 되새기면서
다녀오려합니다~~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