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온몸의 불꽃으로 스스로를 태운 스물 두 살 청년 전태일.
그가 죽은 지 어느덧 38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왜 끝내 분신을 선택했을까요?
자신만큼이나 괴로운 삶을 강요 당한 평화시장 여직공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 행복을 되돌려주는 것.
그것은 청년 전태일의 삶의 이유이자, 죽음의 이유였습니다.
캄캄한 공장에서 피를 토하도록 일하면서도,
돈이 없어 굶는 소녀들을 위해,
자신의 돈을 털어 붕어빵을 사주고 나면
정작 본인은 굶어야 했고, 차비가 없어 집으로 두 시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머릿속은 늘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대학생나눔문화는 매년 오늘 11월 13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치러지는 전태일 열사의 추도식에 갑니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그의 진실했던 삶과
절박했던 생의 물음을 가슴에 새기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스물 두 살의 전태일이 스물 두 살의 대학생나눔문화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할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데요.

오늘은 촛불소녀들과 함께 갔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촛불소녀들이 오기를 몹시 기다린 때문일까요.
수능이라 모처럼 학교도 쉬는 날이고, 작년과 달리 날씨도 무척 따뜻했습니다.

전태일 열사 묘지 앞에는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찾아온 학생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시는 이소선 어머님(전태일 열사 어머니),
80년대 민주화 항쟁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에 자식을 잃은 배은심 어머님(이한열 열사 어머니),
전태일 분신을 촉매로 노동자들의 뜨거운 기대와 희망이 이어져 탄생한 민주노총과 노동조합들,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에 맞서 철탑농성과 단식을 해야 했던 기륭전자 노조,
전태일을 기리는 많은 사람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매년 찾아올 때마다 “내년에 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점점 그 약속을 못 지키는 미안함 때문입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생계조차 빠듯한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 만 명에 달하는 현실,
전태일 열사의 영전 앞에서 쉽사리 희망을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여기 다시 모여 그를 추모하는 것은
단지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입니까,
그의 어머님께 힘을 보태드리기 위함입니까,
아니죠. 깊어가는 시대의 어둠 속에 절박한 우리가
열사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까.”
-정진우 목사

“'작년에 찾아와 내년에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당신 앞에 고하겠노라' 약속했는데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노동현장에서 100일 넘게 단식농성이 이어지는 현실이
얼마나 이어질지 마음이 아픕니다.
노동자와 농부들의 피 어린 땀으로 만들어온 세상이 아닙니까.
내년에는 부디 더 좋은 소식으로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배은심 어머님

“38년 전, 태일이와 우리는 22살이었습니다.
저녁 10시 이후엔 쉬게 해달라, 일요일은 쉬게 해달라,
매일 만나 근로기준법대로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지만,
동조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태일이의 분신은 결국 현실을 바꿨습니다.
태일이의 순수한 마음을 우리가 늘 새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삼동친목회 이승철님

“찾아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기 기륭노조도 왔습니다.
비정규직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도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세상이 찾아올 때까지
살아보려고 했고, 한 건 없지만 많은 세월을 기다려 왔습니다.
저는 부끄럽고 할말이 없습니다.
그저 찾아오신 분들, 다시 한 번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소선 어머님
추도식이 끝나고, 모두 전태일 열사의 영전 앞에
분향을 하고 인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우리에게 "너 지금 어디 서 있는가?" 라고 물어오는 전태일 열사의 음성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득, 언어로는 모두 담지 못할 세상의 아픔들이 떠올랐습니다.
가난과 차별의 고통을 감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뿐 아니라
법무부 단속에 쫓기는 불안한 이주노동자들,
유례없는 취업난과 경쟁에 몸과 마음이 짓눌리는 대학생들,
대부분의 나라가 풍요를 말하는 21세기에도
군부독재에 맞서 고독한 투쟁을 이어가는 버마 사람들,
전투기와 탱크를 앞세운 침공 앞에, 하루하루 저항하며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이라크, 레바논 사람들.

“너 지금 어디 서 있는가?”
당신의 물음을 생각하며
세상의 아픔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정직하게 살아왔노라고,
꾸준히 노력하며 나직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노라고,
그래서 오늘보다 큰 희망과 좋은 소식을 들고 내년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한결 새로워진 마음을 품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