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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전달되다
열두번째 단계. "우리는 우리의 체험을 다른 알콜중독자에게 전달했다."
나는 내 병이 나으리라는 확신, 그리고 랭스에서 내가 겪은 불행이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왜 중독환자들을 환영해 불러들이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단주를 확고부동하게 해주는 A.A. 그룹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내 기쁨을 증언하는 증인을 더 많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사람이 행복하도록 내가 도와주었다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환자가 완전히 의욕을 잃은 상태라면?"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다.
"오십시오. 나를 데리러 낭시까지 오지 마십시오.제가 콜롱베 출구에 있는 토탈 주유소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들은 약속한 시간에 도착했다. 부인이 운전을 하고 왔다. 그녀는 복슬강아지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부인이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10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루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건지, 나하고는 아무 볼일이 없다는 걸 과시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동차의 번호판을 보니 그들은 멀리서 왔다. 부인이 필요없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통에 시간을 뺏겼다. 나는 그 남자에게 관심이 갔다. 그는 꽤 젊었다. 밤이 깊어갔다.
"자크, 당신은 나하고 같이 내 차에 타고 가고 부인께서는 나를 따라 오십시오. 메츠에 있는 프랑수아즈 집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메츠에 부인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았다.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우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이제는 자기 자신이 술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에 술을 끊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빨아놓은 깨긋한 시트를 침대에다 깔았다. 베개에다 푸른색 베개잇을 덮어씌우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공기 매트에다 바람을 넣어서 책상 옆에다 폈다.
"시장하시오?" 흔히는 배가 고프지 않다.
"목이 마르시오? 찬장 안에 버찌 술이 있소. 마음대로 마셔도 좋소. 크로낭부르(역주* 독일 맥주) 마시고 싶소?" 그는 전부 거절했다.
그는 내 팔걸이의자에 주저앉는다. 육체도 영혼도 똑같이 병들어 지쳐 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내 병을, 그가 거짓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쉬지 않고 계속 지껄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 어떤 환자들은 그래도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말예요, 무슈, 저는 리옹에 있는 수도원에서 자랐습니다. 아시겠지만, 집사람은 아주 독실한 신자랍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신앙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또 어떤 환자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비외르반(역주* 리옹의 교외)의 공장감독입니다. 우리 남편은 기술자구요. 저는 전파탐지기의 책임자예요. 내가 그리스에 있던 해.........등등." 한마디로 말하면 그 사람들은 내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수치와 슬픔에 짓눌려 녹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크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눈으로 보는 듯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자크가 느끼는 자기혐오를 밑바닥까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팔걸이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고 나는 책상 위의 전등만 남기고 불을 껐다. 나는 자크에 대해, 그도 틀림없이 느끼고 있을 따뜻한 정을 느꼈다. (알콜중독자는 즉시 그것을 감지한다.)
그 다음 나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완전한 신뢰를 갖고서, 왜냐하면 그가 나를 결코 배반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경험에 비추어 알기 때문이다. 슬픔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내가 겪었던 최악의 일, 최대의 수모, 가장 쓰라렸던 아픔을 이야기한다. 내게서 자랑거리가 될 것은 한마디도 비치지 않는다. 그러면 상대방도 꼭같이 자랑거리를 내놓을테니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속에는, 그의 고독의 문을 때려 부수고 싶은 욕망, 그의 침묵의 벽을 뒤엎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를 끓어오른다. 그가 내 말을 듣고 이해하기를 바란다. 내가 자크와 같다는 것, 그리고 자크도 나와 같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시계를 벗어 테이블 위에 놓는다.
"자크, 지금 9시요. 한 시간 동안 마시지 않기로 해봅시다." 자크는 아무말이 없다. (반대로 어떤 환자는 내게 말했다. " 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오. 어쨌든 그 정도도 못 참을 만큼 다된 것은 아니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그의 태도와 시선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게 말해준다. 나는 그의 불가침성과 그의 불신이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속임수도 없이, 조용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숨김없이 말한다. 진실은 그를 구출할 것이다. 자크도 역시 구출될 것이다.
약속한 한 시간이 다 되자 그에게 묻는다. "목마르오?" "아닙니다." 참 이상하다.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이 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라져버린다. 왜 그렇게 되는지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술 안 마시기 세 시간째로 접어든다. 알프스에서 있었던 내 자동차사고에 자크가 관심을 보인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가 말한다. 이 자백이 그의 첫 단계의 시작이다. 성공이다, 얼마나 기쁜지,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싶은 나의 열정이 부쩍 늘어난다. 그때 내가, 내 무죄를 꾸미려고 어떻게 거짓말을 둘러댔었던가 하는 진실, 내가 얼버무린 거짓말에 내 자신이 어떻게 옭아매였던가 또 내가 '어떻게 기억력을 상실했던가 그래서 내가 콘서트를 가질 도시 이름을 잊어버릴까봐 종이에다 어떤 식으로 기록했었던가 하는 그 진실, 그 이야기들을 부끄러움 없이 남의 말 하듯 잔잔한 어조로 그에게 송두리째 풀어놓았다.
네 시간째로 들어간다. "목마르오?" "아닙니다."
"자크, 이리 와보게. 내가 한밤중에 술을 마시려고 어떻게 했었는지 보여주겠네."
나는 앞장 서서 자동타임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켠다.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간다. 마지막 계단을 세 개 남겨놓은 곳에서 나는 그를 돌아보며 삐걱 소리가 나는 이 계단을 건너디디라고 일러준다. 그는 순순히 내가 하는 대로 따라한다.
나는 벽장 문을 조심스레 연다. 자물통이 낡아서 덜거덕러리기 때문이다. 나는 술병 마개를 삐익 소리가 나지 않도록 딴다. 술을 미친 듯 마시던 모습까지, 안 마신 양 속임수를 썼던 술책까지 재연한다.
내가 연기를 하는 동안 자크는" 소리를 죽이고 웃고 있다. 나는 그에게 속삭인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불란서에 6백만 명이 있소." 자크가 듣더니 마음을 놓는 것 같다.
관객이 여자일 경우, 자기의 모습인 양 환각에 사로잡혀 수치심 때문에 가끔 고개를 숙이며 운다.
이 코메디는 자크를 주먹으로 한대 툭 치면서 끝났다. "자크,녀석, 올라가세."
다섯 시간째. 나는 그에게 베르사유와 크리스티안 그리고 A.A.에 처음으로 참석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갈색빛 책자를 읽었던가, 그리고 내가 나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던가도 이야기했다.
"피곤하오?" 그는 깨끗이 깔아놓은 침대에 누웠다. 나는 잠시 기도하러 기도실로 내려갔다. 기도할 때, 나는 나의 전능하신 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분 역시 내 곁에 가까이 계시고자 하신다. 전능하신 분과 자크 그리고 나, 우리는 공모자가 되어 행복하다.
나는 수정 유리잔과 비텔(역주* 불란서 생수의 하나) 물병을 그의곁에 둔다. 아마, 벌써 잠이 든 모양이다. 불빛이 자크의 눈에 부시지 않도록 나는 전기 삿갓의 방향을 돌린다. 종이를 끄집어내어 몇 자 적는다.
"자크, 잘 자게. 과거는 죽었다는 것, 그리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늘은 자네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마음속에 평화를 간직하게. 자네는 '형편없는 놈'이 아니네. 물을 많이 마시게. 9시에 나를 깨워주게. 집앞에 담배 가게가 있고 그 옆에 조그마한 커피집이 있으니 둘어가서 커피를 들게. 농담하며 놀게나." (5년 후, 자크는 이 쪽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언제나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면서.)
이튿날 아침 깨어보니 자크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담배를 사러 갔었지요. 옆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물론이다. 알콜중독자의 솔직한 자기 소개는 다른 알콜중독자에게 평화를 되찾아준다.)
그날 저녁 우리는 A.A.모임에 참석하러 메츠로 갔다. 그는 약간 불안해했다. 그러나 말할 차례가 돌아오니 다른 사람들처럼 이야기했다. "저는 자크입니다. 저는 알콜중독자입니다. 저는 뤼시앵과 같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틀림없다, 그가 말하고 싶다는 것은.......
온종일, 그는 핑계를 찾으려고 애썼으니까.
"뤼시앵,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술을 마신 것은 내 직업 때문이라는 것을. 비외르반의 아틀리에에서......."
"자크, 구실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게. 처음에는 대개 잘못 생각하고 모두 다 언제든지 이유를 찾는다네. 내가 술을 마신 것은 내가 하는 일이 너무 고달프기 때문이다. 내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작업장에서 몸을 덥게 하려고..... 니스에서 너무 더워 몸을 식히려고...... 나는 북쪽에 살기 때문에. 나는 남쪽에 살기 때문에. 나는 술에 잘 견디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든지 저항력이 없어서. 나는 집에 자식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외판원이라 많은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나는 솦속에서 나무 절단기와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괜찮게 생긴 편이라 여자들이 너무 따라서....나는 귀가 불쑥 튀어나와서 너무 못생겼기 때문에 여자들이 따르지 않아서.... 자크, 이런 모든 이유가 전부 거짓이라네. 자신을 속이는 구실이란 말이네. 자신을 움츠리지 말고 궤변도 부리지 말게. 몇 년이 지나면 자네는 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라네. 진정한 이유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다네."
자크와 나는 우리 수도원에서 내 동료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동료들이 늘 자크와 함께 있었고 어떤 동료들은 신중하고 친절하게 그를 대했다. 식사를 할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A.A. 모임에서 들었던 것을 심사숙고했고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그는 자신의 부서지기 쉬운 희망을 자신의 침묵속에 덮어두었다. 바람에 꺼질 듯 나부끼는 촛불을 손바닥으로 막아주듯이.
사흘째 저녁, 그가 떠나는 날이다. 나는 자크와, 강아지를 안고 있는 그의 부인을 콜롱베의 진입로까지, 내가 사흘 전에 그들을 처음으로 만났던 그 자리까지 데려다 주었다. 자크의 부인과 작별의 악수를 했다.
자크에게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그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나를 껴안는다. 그의 부인이 깜짝 놀라 쳐다본다. 내가 그의 귀에다 소근댔다. "웃으며 살게."
자크가 말안장에 오르려고 등자(鐙子)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그의 승마여행은 5년이 걸렸다(역주* 5년 후에 술을 끊게 되었다는 뜻)
낭시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와 감탄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이 역설적인 사실을 목도(目睹) 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천한 인간이외다.
인류의 폭력에 내맡겨진,
천하고 버림받은 인간이외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 이 비천한 놈이
이런 인물과 꼭같으오.
귀머거리는 듣게 하고
장님은 눈뜨게 하고
절름발이는 걷게 하고
문둥이는 깨끗이 낫게 하는
위인과 내가 같으오.
나라는 인간은 비천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이 구절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끊은 알콜중독지에게도 역시 약간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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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사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