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학당시 어느 국민학교 출신이 제일 많이 입학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덕수, 청운, 수송, 미동, 효제 등등 경복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그래도 많이 들어왔을 것인데 멀리 ‘수원 매산국민학교’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실 많이 놀랐다. 서울 안에서도 멀면 학교 다니기가 불편했을 텐데 수원이라면 아무리 안 되어도 30km 이상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통학을 할까?’ 걱정을 했다. 물론 기차가 있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1시간 이상 걸리고 배차도 자주 있지 않았다면 한참 힘들고 피로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당시 10명 이상 들어왔다고 들었다. 수원 매산국민학교 출신은 손 좀 들어보시지요. 매산 출신이 윤효중, 이상혁일지도 모르겠다.
강당, 우리가 1956년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3학년이 된 58년 12월 착공을 했다. 그러니 한 1~2년 지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에는 강당에서 졸업식을 할 수 있겠지 했지만 못했다. 그러니까 졸업식은 각반 교실에서 방송을 들으며 졸업식을 진행한 것이다. 만 3년이 지나도 준공을 못하고 62년 2월 3일 우리가 졸업을 한 후 거의 3년이 다 되어 64년 11월 3일 준공을 했다. 착공한지 거의 7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에는 공사가 중단되어 콘크리트에 철근이 삐죽삐죽 나와 있었던 생각이 난다.
1991년 10월 모교에 부임을 하고 1992년 1학년 담임을 하면서 특별활동 연극반 담당을 했다. 연극반은 매년 가을에 있는 경복축제에서 연극을 한다. 그러면 3월 학기 초에 연극반 지원자를 뽑아야한다. 아무래도 지원자가 많지 않으면 연극반 존폐가 위태롭기에 2학년 학생이 주축이 되어 별별 기발한 아이디어로 1학년들에게 연극반의 존재를 알리려고 애쓴다. 3월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는데 상의를 벗은 아이들이 복도를 질주한다. 알고 보니 연극반 아이들이 요새말로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 연극반 특징을 말하고 희망자를 받는다. 특징은 무대에 서면 주변 여학교 학생들이 많이 오고 일약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단다. 역시나 남자들의 쑈는 끝이 없나보다.
각반에서 연극반 지원이 끝나면 3월말 첫 모임을 갖고 반장 기획 연출 등등 구성을 마쳤다. 그리고 이제는 가을 축제에 올릴 작품을 선택해야한다. 아는 작품을 물어보니 별로 아는 것이 없어 이근삼의 작품을 하자고 내가 제의를 하고 책을 사다주고 올릴 만한 작품을 고르고 연습하도록 지도를 하였지만 생각보다 속도도 느리고 열의도 아는 것도 거의 없어 애를 많이 먹었다. 막판에 연습을 하기는 한다지만 좋은 연극을 하는 데에는 너무나 시간도 부족하고 경비도 많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공연 날 시작을 해야 하는데 막을 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연극반 반장을 찾으나 보이지를 않는다. 시간배정이 되어있어 제시간에 올려야하지만 반장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시간 엄수가 아니라 어떡하던지 늦게 공연을 시작하고 많은 여학생들에게 처음부터 연극을 관람시키기 위해 최대한 지연작전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연극반 다음 공연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또 역시나 남자의 로망은 그런 것인가 생각했다.
청운중학교에서 우리학교 운동장으로 빗물이 흘러나가는 개천이 있는데 땅속에 묻힌 높이가 120cm에 가로는 100cm는 됨직한 콘크리트 암거(暗渠, 땅속에 묻힌 배수로)가 청운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 경계선 바로 아래에 있다. 그러나 그 수로가 막히면 흙을 제거하거나 청소를 위해 크게 뚫린 채 남겨둔 큰 구멍이 난 곳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위험하니까 위에 철망이나 가리개로 가렸겠지만 그때는 그냥 노출되어 있었다. 물이 많이 흐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제나 질축했다. 그곳에서 청운중학교 쪽으로 들여다보면 멀지만 어둠속 끝에 그곳에도 구멍이 나서 환한 것이 보였다. 중학생 때이니까 그곳으로 걸어가면 청운중학교 교실이 분명히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왠지 혼자 걸어가기에는 무서워서 그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는 누군가가 그곳까지 올라갔다가 나왔다는 사실은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렇게도 놀았다. 암거의 높이와 너비는 내가 고개를 숙이어야만 걸어갈 수 있었을 것을 생각했기에 그 정도로 썼다.
지난 2월 7일 수요일 날 경복을 갔다 왔다. 총 동창회에서 내가 나온 사진이 들어간 탁상용 달력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안 갈 수가 없었다. 다시 가서 보니 학교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저 하늘과 땅 그리고 길만 그대로이고 건물은 하나도 그대로인 것이 없다. 남은 것은 ‘운강대’요 ‘효자유지’ 정도이다. 그리고 구석구석 변하지 않은 듯 부쩍 자란 나무들만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
학교 이곳저곳을 생각하면서 썼지만 사실 우리가 다닐 때의 학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우리가 졸업할 당시의 건물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하기야 졸업하고 56년이 지났으니 안 바뀔 수도 없다. 서운하면서도 괜히 섭섭했다.
서무과에 들러 생활기록부를 떼어달라고 했다. 신분증이 있어야한다기에 차에서 운전면허증을 갖다 보여주니 떼어준다. 그래서 중학교 생활기록부까지 떼어달라고 했다. 그것도 발급해준다. 전자서명에 진짜임을 표시하는 '경복'이라는 천공(穿孔)까지 찍어서 준다. 성적표를 보니 가관이다. 성적이 이렇게 밖에 안 되나하는 자책감이 확 든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학교 다닐 때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해보았자 소용도 없는 일이라 혼자 속으로 위로를 한다. ‘그래 그때 공부를 안 해서 지금까지 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다행이다’라고 좋게 생각했다. 이왕 학교 온 김에 35회 친형 생활기록부도 발급을 요청하니 정중히 사절한다. 본인 이외에는 그 누가 와도 안 된단다. 엄마 아빠는 물론 부인도 자식도 안 된단다.
발급비는 한 푼도 없다. 보물처럼 생각되는 생활기록부이지만 집에 와서는 말도 못 꺼냈다. 아니 안 꺼냈다. 누가 볼까봐 어디 깊숙이 넣어야겠다.
그래도 사실 확인을 한 것도 있다.
중학교 생활기록부
중학교 단기 4289(1956)년 4월 3일 입학, 4292년 3월 1일 졸업.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3월 3일)
경복고등학교 진학
1학년은 1-5반 53번, 2-6반 50번, 3-4반 33번이니까 3학년 때가 제일 컸나보다.
교과목은 국어, 수학, 사회생활,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업, 영어이고
성적은 수우미양가로 표시가 되어있다. 체육만 수, 우이고 나머지 교과는 대부분 미, 양이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경복중학교 4292년 3월 3일 졸업, 1992년 4월 7일 입학, 1962년 2월 3일 졸업이다.
1학년은 1-1반 53번, 2-1반 65번, 3-3반 69번이다.
교과목은 학년마다 다른 것이 있어서 중학교처럼 일정하지가 않다.
성적은 숫자로 나와 있다. 교과의 단위와 득점으로 나눈다.
1학년 국어 3단위 21점 미, 수학 6단위 39 미, 체육 2단위 18 수, 이렇게 나가다가 끝에
총계 38 단위에 득점 259 평균 68이다. 석차가 300/563명중이다
2학년 국어 3단위 23점 미, 수학은 없다, 독어 3단위 24점 우, 이렇게 나가다가 끝에
총계 40 단위에 득점 257 평균 71이다. 석차가 257/559명중이다.
1학년 지능검사 IQ (4292. 10. 26.) 123 지능검사까지 나와 있다.
2학년 영어표준검사(4293. 9. 29.) 90 이다. (마지막 회)
못다한 이야기는 다른 형식(산문이나 수필)으로 쓰겠습니다.
청운중학교 쪽 농구장 2면과 테니스장도 2면
오른쪽 노송이 꾀꼬리 동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서있는 소나무
중학교 건물 자리의 북악관
'북악을 등지고 솟아난 이 집---'
학교를 휘둘러보고 돌아 나오면서 마음이 흡족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본관 느티나무만 그대로 그자리에 서있다.
이제는 늙어서 지팡이를 집고 서있네.
우리 가슴을 언제나 들뜨게 하고 뛰게 하는 교가.
개학을 해서 학생들이 하교를 하는데 내가 있나 찾아보았다.
수위실 바로 뒤쪽으로 커다란 건물이 있다. 총동창회가 있다.
교문이다. 완전히 바뀌었지, 오히려 나무에 먹물로 쓴 현판이 더 다정다감하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변했구나, 변했어! 교문도 사람도!
북악산을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담고 살자.
첫댓글 지금까지 <구석구석에서>를 통해서 나도 모르는 추억을 많이 알게되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졸업 후 완공된 강당만 해도 당시 기준으로는 자랑거리 였는데 이 또한 세월따라 헐리고 지금은 그자리에 체육관이 들어서 있지요.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해서 중고교 시절의 생활기록부까지 떼어볼 생각을 했다니 대단합니다. 더우기 성적표에 석차까지 밝히는 솔직함이 놀랍네요. 난 그렇게 까지 못할것 같습니다. 교정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사진까지 올려줘 고맙습니다.
체육관에 강당 그리고 부속 건물도 여럿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쓰고 싶었습니다만 [구석구석에서]는 학교 안이라는 제한이 있어서 그만 끝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60여 년 전의 친구들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물론 많은 억측이 있을 수도 있지만 유정민이 본 요지경 속의 이야기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생활기록부를 사진으로 올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고마워요!.
놀랍습니다.기억력!감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