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관동앨범'을 통해 당시 '설악과 관동의 실재 모습'과,
지금과는 다른 그시절 우리의 관점 등을 살펴 볼까 합니다.
*아래 사진들은 모두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1960년대 초 만들어진 '관동앨범'으로 앨범에 해당하는 영어가 'All Bum'이군요.
이왕 오기를 할려고 했으면 'All Bom'이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All)을 봄(Bom)이 될테니까요.~
이 사진첩을 통해서 우리는
관동의 중심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관동팔경'에서 분단후 등장한 설악이라는 것과,
조선시대때 중심이었던 내설악에서 외설악으로 축이 이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행처는 '전국스탬프사'입니다.
명승지에서 스탬프를 찍던 걸 좋아했던 일제 문화의 흔적인데요.
60년대 후반이 되면서 스탬프가 아니라 '관광사진첩'이 주류가 되면서 자주 볼 수 없게 됩니다.
목장이 있고, 부락이 있고, 학교가 있던 당시 '아련한 설악동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맨 뒷장에 1965년 5월 9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설악산 기념 스탬프가 찍혀 있습니다.
설악산 침봉같다고 여기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갈매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낙산사나 의상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들은 '명승'보다 '고적'을 더 좋아했고요.
외설악에는 명승이라고 할 게 별로 없었습니다.(신흥사는 있긴 있지만^^)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해서 '설악'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볼까요?~~
설악산의 근대풍경....설악산 호텔이고요.
영어로는 호텔이 아니라 롯지Lodge로 표기했습니다.
1950년대 후반, 관광입국을 표방한 이승만 정권의 작품입니다.
룸은 모두 8개 또는 10개입니다...
그때는 옜날이라 저 방도 다 못채웠습니다...~~~
비선대입니다.
비선대 산장이나 철다리가 없던 시절, 요순시대^^의 비선대 풍경입니다...
신흥사 전경입니다.
보시다시피 치열했던 6.25의 설악산 전투에서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입구에 도로가 잘 놓여져 있었던 까닭은,
당시 설악산 전투때 전투사령부가 여기에 위치해서 찝차와 트럭이 다녔기 때문입니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이런 도로는 '불도저'를 같고 있던 미군공병대가 놓은 걸로 보여집니다.
흔들바위..
지금은 훨씬 더 훼손되었을텐데요., 바위면에 한시같은게 예쁘게 적혀 있네요.....~~~
선녀봉이라...
이런 호칭은 설악산 개발에 있어서 처음 언급되어야 할 최구현 선생의 작품일 겁니다.
최구현 선생은 금강산에서 사진을 찍다가 분단되면서 설악에 터잡습니다.
그의 역할은 좀 더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1970년대 초반에 찍고 만든 설악산 소개책자를 보시려면 ---> 여기를
홍련암이군요,,,,
저멀리 돛단배가 한가롭고...
이 풍경을 본 이가 과연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요?~~~
관동팔경 중의 청간정.
테두리를 급히^^ 각목으로 두런 모습을 알 수있습니다.
이승만이 찾으면서 청간정이라는 편액을 새롭게 달면서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막 세워진 육단폭포의 구름다리...
지금보면 얼기설기 그지없지만,,,당시에는 설악의 명물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런 건 지금식으로 하자면 다 '민자'사업입니다.
이용객은 돈을 몇십원씩 내고 건너가야 했습니다.
오죽헌..
박정희가 성역화 하기 전의 고졸한 모습입니다..
미륵봉이라는 모습.
지금하고는 좀 다른 앵글입니다..
이런 것도 있는데, 내설악 사진은 그리고 봉정암이나 대청봉 사진은 한장도 없다는 것...
당시 설악은 교통 숙박 등의 사정을 놓고보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토왕연봉..
좌측의 대형 소나무를 보면 이곳이 신흥사 입구일지, 또는 설악동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건 흑백인데, 이건 칼라인데요.
이런 걸 책색사진이라 하던가..흑백에 일일이 색을 입힌 방식입니다.
낙산 일출.
낙산에서 보는 일출이 조선에도 없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건 일제의 유습입니다.
이 앵글..그러니까 좌측에 소나무를 넣고 저 멀리 해돋이를 넣는 것도 일제의 앵글이죠.
경포호텔.,
겉모양은 번듯하지만, 안에는 엉망이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
유람용배고 있었군요.
이 사진은 처음 만납니다.
아무래도 경포대에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층배라는 거...~~~
날로 약동하는 묵호항...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화조대 등대.
신흥사 극락보전의 모습입니다.
깨끗합니다. 전화를 입지 않은게 보입니다.
보제루인가 하는 전각 한동이 조금 피해를 입었죠..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토왕성 폭포의 모습...그때도 장관이네요...
형제봉과 권금성 입니다.
지금과 달라서 그때의 권금성은 말그대로 '성벽'에 집중해서 찍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권금성은 조망대를 의미하죠...
계조암과 의상대입니다..
저시절은 아직 울산바위 계단이 개발되기 전이라, 울산바위는 넣지 않고 있군요.
의상대 소나무가 지금보다는 훨씬 작네요.....~~
경포대입니다.
쇠사슬이 상당히 두꺼운 걸 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승지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상 1960년대 초 산양이 지그재그로 뛰어놀던 설악산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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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구현 선생이 4291년 그러니까 1958년 만든 기념비적인 대작 '설악산'입니다.
가로길이가 30cm가 넘는데다, 내용도 대단합니다.
당시 설악은 처음 세상에 선보이는 까닭에, 그가 참고할 사진은 단한장도 없었기 쉽습니다.
그는 설악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이 사진집에 담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오늘날 허다한 설악사진집에도 볼 수 없는 '깊이'와 '거룩함'까지 담겨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 사진집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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