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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날개
희분이는 태어나고 차츰 커가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이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부러워서 한번은 엄마에게 그것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엄마는 너의 아빠는 미국으로 돈벌러 가셨으니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해서 묻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철없던 때라 엄마의 말씀에 대해서 더 이상 관심도 두지를 않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부터는 그것이 궁금해지는 것이었지만 엄마가 입을 열지 않으셔서 딸도 더는 묻지를 않았다. 그리고 희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을 하고 나서 부터는 아이들이 마을에 있는 교회 하나가 있었는데 저녁마다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죽을 쑤워서 먹게 하였으니 아이들은 그것을 얻어먹으려고 교회를 갔던 것이다.
희분이도 아이들을 따라서 한번 교회를 갔다가 죽을 얻어먹고 와서는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는 다시는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이어서 희분이는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아이들이 찾아와도 교회에는 얼씬도 하지를 않았다. 좀 커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에 교회의 목사는 단독으로 와서 교회를 개척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였지만 문제는 신자 중에 교회에 열성을 가지고 활동하던 고교 3학년 여학생과 남의 눈을 피해서 연애하는 것이 목격되어 동네의 청년들이 이런 목사는 마을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나서는 바람에 그는 쫓겨나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에 온 목사는 나이가 지긋하고 교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데 대해서 깊이 사죄를 하였지만 동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강 건너 불 보듯 하였고 희분이 어머니도 완강하기는 동네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온 목사네 아이와 희분이가 친구라니 어머니는 더 이상 희분이에게 교회를 나가지 말라 소리는 하지를 않게 되자 희분이는 그때부터 자유롭게 교회를 내내 다니다 보니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주일학교의 선생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희분이는 얼굴도 예쁘지만 피아노를 잘 쳐서 찬송시간에는 의례히 피아노 반주를 하였는데 교회 사람들은 모두가 희분이를 예뻐하고 희분이가 지도하는 합창단에는 남녀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추첨으로 단원을 뽑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희분이가 여름성경학교에 나와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대학생들이 농촌 봉사활동을 이 마을로 나오면서 낮에는 김을 매고 밤이 되면 어린이들에게 노래와 무용을 한 시간씩 가르치고 싶다면서 목사님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그러지 않아도 농촌마을에 일손이 모자라는 판에 대학생들이 나온다고 하자 대환영을 하면서 교회강당을 이용해서 숙식을 해도 좋다고 허락을 하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은 남여 가각 반반씩 20명이었는데 대표학생은 영문과 4학년의 송기덕 회장으로 키도 크지만 학생들을 인솔하는 폼이 군인 장교처럼 의젓하였다.
목사님은 희분이에게 학생들이 불편이 없도록 숙식에 필요한 물품을 대여하도록 숫자를 헤아려서 주라고 이르는 것이었으니 봉사활동 때문에 교회를 대표해서 그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이날 학생들은 인원에 맞추어 방을 배정하고 식사당번을 정하였고 대표 회장을 비롯한 간부학생 4명은 봉사활동의 범위를 정하기 위해서 마을의 반장님을 찾기로 하였다.
희분이와 대표학생들이 반장님을 찾아뵈오니 반장님은 40세의 여반장님으로 반장을 맡은 것이 불과 한달 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마을에 시급한 과제는 논둑의 풀을 깎는 일과 콩밭의 김매기 비닐하우스안의 딸기 따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희분이는 사실 반장님을 처음 뵙기도 하였지만 농촌에 살면서 풀 한포기 뽑아보지를 않았는데 반장님의 주문이 많자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리니 목사님은 농촌출신의 대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그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이런 기회에 저녁에 여름성경학교 어린이들이 노래와 무용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아무튼 희분이는 이날부터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에 대한 지역선정과 식사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니 그로서는 무거운 중책을 맡은 것이다.
희분이는 우선 식사에 관해서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식사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어머니 회원으로 하여금 당번을 매일 2명씩으로 교체하기로 하고 부식은 교회에서 대기로 하였다.
대학생들은 하룻밤을 자고 나서는 세 패로 나뉘어서 일을 하려 하자 반장님이 오셔서는 우선 부락의 현황을 설명하신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농촌의 젊은이들은 다 도회지로 나가는 바람에 농촌에서 일을 해야 할 분들은나이 드신 어르신네들뿐입니다. 여러 학생들이 이렇게 봉사활동을 나오셨으니 쌍수로 환영을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호미 쥐는 방법에서부터 풀 뽑는 요령을 잘 들으시고 일을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장님은 말씀을 끝내시고는 손수 호미질과 풀매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학생들 중에는 간혹 시골 외갓 댁에 가서 농사를 도운 적이 있다면서 걱정마시고 들어가시라고 하였다.
이날 처음으로 호미를 쥐어본 학생들은 일도 시작하기 전에 일을 하고 나면 땀이 날텐데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있느냐고까지 묻는 학생이 있었다.
“ 얘. 너 정신이 있는 아이냐 . 농촌에 무슨 목용탕이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냐.”
“ 잰 서울서 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야. ”
서로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어떤 학생들은 콩밭으로 가서 풀을 뽑았는데 뽑다 말고 질겁을 하고 밭에서 튀어나왔던 것이니 청개구리가 손에 달라붙자 “어마야.” 하고는 놀랐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학생은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서 고추를 따기 시작을 하였는데 따다 말고 어떤 학생은 코를 벌름거리다가 재채기를 냅다 하는 바람에 학생들을 놀라게도 하였다.
고추의 매운 냄새가 그들의 코를 자극하여 한사람이 재채기를 하자 덩달아서 하는 것이다.
고춧가루 옆에도 가지를 않았는데 재채기를 하자 반장님은 이다음에 시집을 가면 시어머니 밑에서 잘도 야단을 맡겠다며 웃으셨다. 첫날을 이렇게 놀라기도 하고 농촌의 새로운 영농법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하게 되자 그 다음날부터는 그래도 여유가 생겨서인지 가을에 다시 와서 벼 타작까지 하고 싶다고들 하였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던 밥만 먹고 다니던 학생들이 농촌에 와서 하는 일이 쉽게 손에 익을 리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봉사활동이라고 하니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대견하기까지 하였다.
하루의 일이 끝나자 모두는 배가 고프다면서 식당으로 들어오기 시작을 하였는데 남자보다도 여학생들이 더 힘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튿날부터 학생들은 하루의 일과의 양을 정해서 진종일 낮에는 일을 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나면 포크댄스를 하였는데 그리 되자 희분이도 이들과 어울리게 되다 보니 안면도 트게 되고 몇 명의 남학생들은 희분이를 서로가 좋아하는 눈치였다.
마침내 열흘 동안의 봉사활동이 끝나는 날 교회에서는 그동안 학생들이 수고하였다고 떡을 해서 차리고 송별연자리를 만들게 되자 대학생들은 그동안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준 무용과 노래 발표를 하도록 하였다.
이날 목사님은 내년에도 부락을 찾아달라고 하시면서 대학생들에게 수고비를 봉투에 넣어서 주었고 대학생들의 대표인 송기덕 회장은 이번의 봉사활동을 계기로 앞으로도 매년 이 부락을 찾겠다는 답사를 하였다. 이날 송별연은 밤늦도록 계속이 되었는데 연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대표회장이 희분이를 보고는 조용히 할 말 있다고 하는 눈치였다.
사실 이번 기회로 인해 희분이의 마음도 많이 열리고 대학생들과 만나서 서로 토의를 하다 보니 대인관계에 있어서 폭이 넓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송기덕 회장은 송별연이 끝나고 나서 학생들을 전부 숙소로 보내놓은 다음에 희분이를 불러서는 강가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오빠 왜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 물론이지 그동안 희분 학생이 우리 심부름을 해주느라 고생을 많이 하였는데 맥주라도 한잔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부른 거야.”
“ 정말요, 사실은 나는 맥주를 하지를 못하거든요.”
“ 요즘 사람 쳐놓고 맥주를 못 마시다니. 정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 주지. 어때.”
“ 오빠는 맥주를 몇 잔이나 하시는 데요”
“ 맥주가 좌석에 들어오면 모조리 마시기 때문에 맥주 량은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날 보고 하마라고 별명을 부르고 있지.”
“ 하마. 하마. 하마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 소풍을 갔다가 동물원에서 하마를 처음 보았는데 하마가 입을 벌리니 사람머리 하나가 다 들어갈 것처럼 크더라구요. 그러니 그 큰 입으로 얼마나 많이 먹겠어요.”
“ 하마를 닮아서 나도 맥주를 많이 먹나 봐. 하 하.”
강가에 이르니 후덥지근하던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강물에서는 이따금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고 고기들이 잠을 자는지 강물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송기덕 회장이 맥주를 따라주자 희분이는 “아주 조금만 따라주세요”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희분이는 맥주를 입에 대다 말고는 퉤퉤 하면서 맥주잔을 내려놓는다.
“ 왜 그러는데 그래.”
“ 맥주라는 게 이렇게 쓴 줄을 몰랐어요,”
“ 그렇지만 맥주에 맛을 들여놓으면 그 쓴맛이 단 맛으로 변한단 말이지요.”
“ 네, 쓴 맛이 어떻게 단맛으로 변해요.”
“ 그것은 시간이 가면 해결될 문제이고 정 못 마시겠으면 안 먹어도 좋아요.”
“ 정말요.”
“ 난 무엇이나 강요를 하고 싶지는 않거든.”
이날 송기덕 회장은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간간히 희분이에게 맥주를 권했는데 처음과는 달리 그 맛이 달콤쌉쌀한 맛도 없지 않았다.
“ 아! 사람들이 이 맛에 맥주를 마시는 모양이구나.”
희분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송기덕 회장이 주는 대로 맥주를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정신이 묘해지기까지 하였다.
송기덕 회장이 이날 희분이를 부른 것은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에 학생들을 위해서 애를 쓴데 대해서 고맙다는 표시로 맥주라도 한잔 사주고 싶기도 하였지만 은연중에 희분이의 수줍은 모습에 마음이 끌리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송기덕 회장은 이번에 가장 머리에 남는 것은 농촌에서의 생활이 힘은 들겠지만 맑은 공기와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흙을 가까이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이 다음에 농촌에 와서 살고 싶다는 말까지 하였다.
사실 봉사활동이라고 하지만 일이 고되고 저녁마다 어린이들에게 음악과 무용을 가르치던 학생들은 저녁만 먹으면 그냥 쓰러지는 것이었다.
“ 오빠. 맥주를 먹어서 그런가요. 왜 자꾸만 춥고 떨리고 졸리기까지 하지요,”
“ 맥주를 마시면 몸이 훈훈해지는데 강바람이 차서 그런 모양이이니 고만 일어납시다. ”
그런데 희분이가 회장을 따라서 일어나려 하자 갑자기 어지러워서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 왜 그래. 어서 일어나야지.”
희분이는 다시 일어나려다가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다.
회장이 놀라서 희분이의 팔을 잡아 일으켰지만 희분이는 한쪽으로 쓰러지며 중얼거린다.
“ 어 어지러워서 그 그래요. 먼 먼저 들어가요 요.”
희분이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송 회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다가 때때로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기에 송회장은 희분이를 들쳐 업고는 가까운 하숙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누구요.”
그때 주인 할머니가 업혀 들어오는 사람을 의아해 하며 말을 걸어 왔다.
“ 할머니.술 한 잔 먹었는데 이 사람이 맥을 못 추는데요.”
“ 웬 술을 그렇게 많이 먹인 게여. 어서 방안에다가 눕혀 봐요.”
잠시 후에 할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오시는데 대접 안에는 밤색갈의 물이 담겨 있었다.
“ 그럴 때에는 꿀물을 먹이는 게 좋아. 너무 술을 많이 먹이니까 그렇지. 잘못하면 죽는 수도 있지만 따뜻한 방에 눕히면 괜찮을 거니까 걱정 말고. 어서 방세나 내고 들어가요.”
송회장이 우선 희분이에게 꿀물을 먹이니 잠시 후 화색이 돌더니 그대로 잠이 드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에 잠이 깬 희분이는 아랫도리가 허전해서 보니 팬티가 벗겨져서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는 송기덕 회장이 잠을 자고 있었다.
희분이는 어제 밤의 일을 떠올려 보았지만 맥주를 먹고 난 다음의 생각이 전혀 나지를 않았고 팬티가 벗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후당당 뛰고 겁부터 나는 것이었다.
문득 지난 20일 동안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송 회장은 농담도 잘 하고 희분이를 가까이 하던 어느 날 동생을 삼고 싶은데 어떠냐고 묻는 것이었다.
“오빠? 송기덕을 오빠라고 부르라고?”
그는 형제도 없고 누구하나 가깝게 지나는 친구가 없다 보니 언제나 외로운 편이었다.
혹 형제들이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면 부럽기도 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먹이고 살리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니 형제가 없는 것이 그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희분이는 송 회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초도 서지 않은 채 대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받은 꼴이 되었으니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은 천둥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듯이 복잡해 지고 있었다.
문득 며칠 전 일이 다 끝난 뒤에 맥주를 한잔씩 나누고 있을 때에 송회장이 희분이에게 가만히 다가오더니 맥주를 권하면서 귀에다 대고 말을 하였다.
“ 먼저는 동생을 삼고 싶었는데 오늘은 먼저 한 말을 다 취소를 할 거야.”
“ 왜요. 내가 그새 싫어져서 그래요. ”
“ 글쎄. 싫어져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아야겠는데. 하. 하.”
“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남자들의 마음은 죽이 끓듯이 변하는가요,”
“죽이 끓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 저 앞에 걸려 있는 거울에게 물어보세요.”
“ 야 .우리 희분씨 멋있는 문자 쓰시네.”
그날 희분이는 송기덕 회장의 말을 그냥 받아 넘기기는 하였지만 가만히 생각을 하니 그는 희분이에게 애정을 표현하려는 암시를 주었던 것이다.
사실 희분이도 그 말을 듣고는 송 회장이 다시 보이고 그를 가까이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순간 하였지만 더는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희분이의 몸을 송기덕 회장이 덮치고 만 것이니 희분이는 무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어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술이 덜 취한 때 송 회장의 말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그 다음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 내년에 대학을 간다고 하던데 어디로 갈건데.”
송기덕이 묻는 바람에 희분이도 그제서야 내년 진학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 오빠가 다니는 학교로 가면 좋겠지요.”
“ 물론 난 그것을 염두에 두고 물었거든.”
“ 그럴게요. 학교 가면 잘 보아주세요.”
이튿날 봉사활동을 마치고 떠나자 마을은 갑자기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희분이는 대학생 오빠들이 떠나는 기차역까지 나가서 배웅을 하였는데 송기덕 회장은 희분이의 손을 잡으면서 가게 되면 곧 연락을 하겠다고 하였다.
날씨가 서늘해지는 가을절기로 접어들면서 조석으로 춥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을 하였다.
엄마는 그날 아침 일찍 시내로 장사를 나가시고 희분이 혼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서 밥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밥을 먹기 전에 물 한 사발을 마신 것 밖에 없는데 헛구역질이 올라와서 가슴을 치면서 잠시 앉아 있는데 구역질은 밥 냄새를 맡자 다시 시작이 되고 있었다.
어제 먹은 음식이 상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가지면서 밥도 먹지 않은 채 바로 하교로 갔는데 학교에서는 그날 학기말 시험을 본다고 학생들은 이미 입실을 다 한 뒤였다.
희분이는 살며시 출입문을 열고 자리에 가서 앉자 아이들이 모두 희분이를 쳐다보았다.
첫 시간을 겨우 끝내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역한 냄새가 올라오자 희분이는 아침과 같은 현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희분이는 할 수 없이 화장실 귀퉁이에서 구역질을 하였는데 그때 옆에 단짝 친구인 오경자가 지나다가 희분이를 보더니 왜 그러느냐는 것이다.
“ 희분아. 너 아침을 뭘 잘못 먹은 모양이구나. 체했으면 우리 약방엘 가보자.”
희분이는 약방엘 가자는 친구의 말에 따라서 학교 옆의 약국으로 간 것이다.
“ 아무것도 아침을 먹지 않았다구요.”
약방의 약사는 어제 먹은 음식이 뭐냐고 묻더니 뜬금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 혹시 근간에 남자하고 같이 있어본 적은 없었나요.”
약사의 말에 희분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었다.
송기덕이 맥주를 권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억지로 마시다가 나중에는 몇 잔 받아마셨고 그 다음부터는 어지러워서 송기덕에게 엎여서 하숙집으로 갔던 것이다.
“ 남자를 알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회충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도 있으니 회충약을 지금 먹어 보아요.”
“ 얘 너 혹시 봉사활동인가 뭐를 할 때에 남자들하고 놀아난 것은 아니니.”
약방에서 나오면서 친구가 하는 말에 희분이는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얼굴만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사실 오경자는 남자애들한테 인기가 있었고 남자애들에게 소문이 날 정도로 그들과 접촉이 많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남자 친구의 생일날인데 가까운 아이들끼리 파티를 한다고 해서 경자도 거기에 휩쓸려서 파티에 참석을 하고 맥주를 마시다 보니 남자나 여자나 술들이 취해 서로 애인하자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서로 끌어안고 연극 연습을 한다는 둥 밤늦도록 놀다가 보니 술이 취해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던 경자는 할 수 없이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곯아떨어졌는데 밤중에 몸이 이상해서 눈을 떠서 보니 큼직한 물건이 제 몸을 덮쳤는데 옆에서 자던 아이였다.
그날 워낙 아이들이 모두 취한 상태라 경자는 아무소리도 하지를 못하고 말았지만 남자애는 별로 말이 없던 아이였는데 그날 술을 먹은 다음에는 경자 옆에 와서 연애 좀 하자는 말까지 하는 것이어서 술이라는 게 사람의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는구나 생각을 하였는데 그 용기가 그를 덮치게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을 먹으려는데 속이 메스껍고 나중에는 밥도 먹기가 싫어서 왜 그런가 하고는 하교를 하다가 병원엘 갔더니 병원에서는 얼굴을 보더니 ‘남자하고 가까이 했죠.“ 귀신처럼 알아대더란 말이다.
“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의사에게 맡기니 시간은 많이 걸리지를 않았지만 죽을 뻔했어 얘. 만일 남자하고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 눈 딱 감고 산부인과에 가면 한 시간 안에 모든 일은 깨끗하게 처리가 된단 말이야.”
경자의 말을 들으니 그의 말대로라면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이번의 일이 만약 엄마에게 알려진다면 희분이는 엄마와의 결별을 생각해야 한다.
이날 희분이는 억지로 수업을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래도 이 일을 혼자 해결할 것이 아니라 송기덕에게 알려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나는 것이어서 편지를 써서는 우체통에다가 집어넣고 집으로 오려니까 봉사활동을 할 때의 그가 한말이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 먼젓번에 동생하자는 것 취소해야겠어. 왜 그러는지 생각 좀 해보라고.”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점심 또한 건너뛰다 보니 힘이 없어서 일어나서 걷는 것이 어지러웠다.
집에 오자 그는 꿀물을 한 대접 타서 마시려고 입을 대다가 고만 다시 구토가 나는 바람에 꿀물을 도저히 마실 수가 없어서 방에 가서 둘어눕고 말았다.
“희분아. 어디가 아파서 그러냐.”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자 희분이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고 말았다.
엄마가 희분이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 엄마.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 지금이 몇 시인데 일찍 왔다는 게냐.”
엄마는 그리고는 부엌에서 밥을 차려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 넌 밥이나 먹은 게냐. 그런데 솥에는 밥이 그냥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이냐.”
희분이는 엄마의 하신 말씀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고 밥을 먹다가 헛구역질을 혹시나 할까봐서 가만히 둘어 누운 채 그냥 있었다.
“ 어서 밥 먹지 않고 뭘 하는 게냐 어서 나오너라.”
" 엄마. 아까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들어왔어요.“
희분이는 그 말을 하면서도 가슴은 조마조마하였다.
“ 어떻게 해야지? 내일 산부인과를 가봐 . 옷은 무엇을 입고 가고.”
고민에 고민을 하다 보니 잠도 오지를 않았다.
다음날 희분이는 어제의 경자를 일찌감치 만나서 솔직히 그동안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을 하고 산부인과엘 함께 가자고 졸라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밤새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는 벌써 아침밥을 대 해놓으시고는 희분이를 부르는 것이었다.
“ 엄마 저 좀 있다가 밥을 먹을래요. 아무래도 속이 좀 안 좋은것 같아서요,”
“ 어제 먹은게 체했다는 말이냐.”
엄마는 마루에서 말씀을 하시더니 희분이의 방으로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찬바람이 확 들어오면서 반찬냄새가 나자 헛구역질이 다시 일어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데 두 번째의 구역질은 참을 수다 없었다.“
“왝 왝.”
엄마가 딸이 구역질을 하자 웬일이냐면서 등을 토닥거리는데 구역질은 멈추지를 않았다.
“ 너 어제 무엇을 잘못 먹은 게로구나. 그래서 밖에 나가서 함부로 사먹지 말라고 하였지.”
엄마는 딸의 등을 계속 토닥거리셨지만 구역질은 멋지 않았다.
엄마는 희분이의 모습을 보시더니 학교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병원을 들려오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딸이 헛구역질을 계속하자 엄마는 대뜸 딸의 상태가 속이 나빠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 너 그동안 봉사활동인가 뭣에 나갔다가 무슨 일이 있었지?”
희분이는 엄마의 말씀에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었지만 엄마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오늘 학교가 파한 후에 친구와 같이 산부인과엘 갈 작정을 하였는데 그러기 전에 엄마에게 들키다니 희분이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를 못하고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아이고야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아비도 젊었을 때에 나에게 그런 짓을 해서 너 하나를 건지고 나서 너만은 잘 길러 보려고 하였더니 어쩌면 의딸이 경쟁이나 하듯이 그런 모습을 재현하다니. 아이고야.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세상이 창피해서 어이 살꼬 .”
어머니는 한참동안이나 울음 반 넉두리를 하시더니 희분이를 일으켜 세우시는 것이었다.
“엄마는 세상에서 너를 누구보다도 잘 길러 보려고 애를 써왔고 너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내가 몸이 아프면서도 일을 하는 것도 너를 위한 것이었고 밤이면 온몸이 아파도 아픈 척도 하지 않은 체 다시 그 잍은날엔 일을 나갔는데 이제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며 누구를 위해서 더 산단 말이냐. 생각할 수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으니 강물에라도 나가서 빠져 죽자.“
엄마는 꿇어앉은 딸을 일으켜 세우더니 어께죽지를 잡고는 밖으로 끌고 나가려는 것이다.
“엄마 잘못했어요. 제가 그러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고 송별회날 먹지 않던 술을 강제적으로 먹이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일이 그렇게 되었어요. 엄마. 용서해주세요. 엄마.”
희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다 싶이 하면서 잘못했다고 울면서 손을 싹싹 빌자 엄마는 나가던 발길을 멈추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것이었다.
“ 아이고 야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이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젊은이 한 사람이 급한 걸음으로 희분네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는 지난여름에 봉사활동을 왔던 학생이었다.
그때 희분이 어머니는 툇마루에서 한발작도 움직이지 않은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엇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잇는 희분이의 어머니를 뵙자 얼른 그 앞에 가서는 무릎을 꿇는 것이다.
“ 어머니. 지난여름에 봉사활동을 왔던 송기덕 학생입니다. 그동안 잠시지만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쳐 드린데 대해서 무어라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여름에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에 남모르게 희분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 기간이 너무 짧았지만 희분이의 고운 마음씨를 알게 되었고 모름지기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감히 어머니에게 그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을 하니 저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습니다. 어머니! 그러나 이제 저는 희분이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노여움을 푸시고 희분이와 인연을 맺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저는 오늘 이후에 어머니를 저의 친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모실 생각입니다.“
희분이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송기덕의 말을 듣고 계시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으시었다.
“ 자네가 희분이를 사랑하겠다는 말을 나도 믿고 싶네만 아직은 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 어머니. 저는 오늘 집에서 희분이를 만나려고 떠날 때에 부모님에게 희분이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사돈되실 어르신을 얼른 만나 뵙기를 바라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을 덧붙이시는데 손자의 얼굴을 어서 보고 싶다고까지 하시었습니다.”
“ 세상에.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더란 말인가.”
“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결혼부터 하라는 말씀을 누누이 하셨던 분입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의 사주팔자를 보시더니 아들을 일찍 장가를 들여야 오래 살수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 요즘 세상에 어머니가 그렇게 미신을 잘 믿으신단 말인가 ?”
“ 미신이라고 하셨습니까. 저의 외할머니가 무당으로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 뭐 뭐라 . 할머니가 무당이라고 ? ”
‘ 무당이라면 귀신이 들끓는 집이 아닌가.’
희분이 어머니는 송기덕의 하는 말이 기가 막혀서 허공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집 앞에 서 있는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까치 한 쌍이 손님이 와 있다는 듯이 깟까치 노래하고 있었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