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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호의 『피천득 평전』에 부쳐
이만식
<가천대 영문학과 교수>
정정호는 우리가 어디에 위치하여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적합한 과제가 무엇인지 줄곧 연구하여 온 우리 시대의 가장 믿을만한 지식인들 중 한 사람으로서 한국사회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열어준” 바 있다. 이런 정정호가 “피천득 주의”를 제창했다. 그리고 피천득의 제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3년 후배”인 필자도 ‘피천득 주의자들의 길’에 동참하고자 한다(339). 우리가 이런 ‘주의(主義)’라는 기치(旗幟) 아래에서 뭉친 것을 피천득 선생님이 아신다면 조금, 아니, 많이, 놀라실 것 같다.
금아는 거창한 주의나 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밑바닥에서 조용히 명예 (무혈) 혁명을 시도했던 참을성 있는 세속적 일상사의 혁명가이며 ‘신역사주의자’이다. (256)
정정호의 『피천득 평전』은 ‘개인 일생의 사적 기록’인 전기(傳記)의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머리말」에서 자신이 번역한 새뮤얼 존슨의 글을 무심하게 인용하는 부분이 노리는 바의 의미는 심오하다: “역사에서 총체적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이야기들은 우리 각자의 개인적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교훈들을 별로 제공하지 않는다”(11). 정정호가 자신이 쓴 전기(傳記)의 읽기에 ‘역사’ 대 ‘개인적 삶’의 대결구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평전의 서술방법과 구성」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언급된 아래와 같은 일화(逸話) 때문일지도 모른다.
필자가 피천득 선생을 생전에 뵈었을 때 한번은 새뮤얼 존슨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 선생께서 “우리나라에는 새뮤얼 존슨 같은 대 비평가가 없단 말이야!”하고 아쉬워하시던 게 기억난다. (15)
정정호가 새뮤얼 존슨의 글을 인용한 논리적 근거, 그리고 “삶과 글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였던 금아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죄책감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13)라는 저술의 정서적 동기(動機) 등은, 피천득의 문학사적 의의를 적극 지지하는 ‘피천득 주의’의 핵심논리와 연관된다. 이에 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이 글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기반하고 있는 정정호, 더 나아가서 피천득의 역사적 유효성의 평가에 중요한 전기(轉機)가 되기 바란다.
정정호의 ‘죄책감’은 피천득의 다음과 같은 글에 대한 다른 작가들의 ‘난처함’을 해소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자책이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서영이가 아빠의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엄마」) (246)
‘비정치성’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에 덧붙여서 “수필의 주제가 삶의 작은 아름다움일 뿐이라는 인상의 발언을 한 데 대하여 선생님 자신이 섭섭함을 표하신 일이 있다”고 김우창은 기록한다(97). 스피노자처럼 “단순 소박, 순수, 검소에 토대를 둔 생활방식”(320)의 피천득이 표현하는 ‘섭섭함’이기에 일시적인 감상(感傷)은 아니다. 그건 “조실부모, 상하이 유학생활, 일제 강점기의 생활, 광복, 6.25전쟁, 4.19혁명, 유신독재 등”(232) ‘어려운 시대’를 살아냈음에도, 피천득의 “수필에는 어려운 시대의 느낌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97)는 지적에 대한 전면적인 반박(反駁)이다. 정정호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현대 한국어가 확립되기 이전인 1910년에 태어난 금아의 시와 수필을 살펴볼 때, 금아의 모국어이자 도착어인 한국어 능력이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섬세하고 탁월했는지 알 수 있다”(146). 그러니까 “우리말에 대한 금아의 애착과 그 훈련은 대단했”고 “금아의 경우 문학 교육, 창작, 번역 모두 타고난 재능 덕분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 “후천적인 교육을 통한 끊임없는 훈련과 지독한 연습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146).
일견 편하고 쉬워 보이는 피천득의 문학이 의도적인 훈련과 노력의 결과라면, 그의 글이 “단순하고 짧고 예쁘다고 해서 여리고 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220). 대부분의 평자들이 느끼는 ‘난처함’의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위에서 인용한 「엄마」의 내용과 프로이트와 라캉 등 서구 정신분석이론의 방향성이 정면으로 배치(背馳)된다. 아주 긴 내용의 각주(脚註)임에도 반복(反復)해서, 그것도 본문(本文)으로 격상(格上)하여 인용한다는 게 어리석은 짓 같아 보인다는 점을 잘 안다.
엄마와 아기 이야기를 가장 아름답게 풀어내는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상상계” 이론을 꺼내보자. 상상계는 라캉이 1950년대 “거울 단계”이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해낸 이론이다. 여기서 상상은 상상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판타지를 가리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어떤 쾌락을 가져다주는 대상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어린아이의 자아에 대한 인식이 부각되는 것은 언제나 ‘타자’에 의해 결정된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주체 형성은 소외와 공격성이 중심이 되는 상호 주관적인 맥락 안에서만 형성된다. 이 과정은 생후 2년 동안에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라캉의 거울 단계 초기에 일어나는 ‘상상계 질서’이다. 이 질서는 소외, 적대감, 공격성이 생겨나면서 개인적 주체가 형성되는 상징계 이전의 단계이다. 그 단계는 아버지의 법칙과 언어 체계의 억압이 시작하기 전이다. 또한 어린아이가 어머니(객체)와의 완전한 합치를 이루어 ‘차이’를 통한 자아 형성을 하기 이전이며, 어떤 결핍이나 욕망, 억압이 없는, 다시 말해 ‘무의식’이 생기기 이전의 ‘열락(jouissance)’의 상태를 가리킨다. (244)
동일한 ‘엄마와 아기 이야기’임에도, 라캉의 아름다움과 피천득의 아름다움은 서로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건 문화적인 비교의 단계를 넘어서는 두 세계관의 격렬한 대립과 충돌의 현장이다. 왜냐하면 피천득은 “아버지의 법칙과 언어 체계의 억압”이 시작된 훨씬 뒤에도, 즉 자신의 딸이 태어난 장년기(壯年기)에도, 아니, 그 딸이 자신에게 엄마 노릇을 하게 될 노년기(老年期)에도, “어린아이가 어머니(객체)와의 완전한 합치”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천득은 자신의 수필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산다.”고 다음과 같이 쓴다.
그리고 모든 경험은 이야기로 되어 버린다. 아무리 슬픈 현실도 아픈 고생도 애끊는 이별도 남에게는 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당사자들에게도 한낱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날의 일기도 훗날의 전기도 치열했던 전쟁도 유구한 역사도 다 이야기에 지나지 아니한다. (197)
그런데 이러한 피천득의 ‘이야기’ 이론은 근대 서구적 세계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열기 위한 투쟁수단이다. 피천득과 거의 유사한 이야기 이론에 의거하여, 하라리(Yuval Harari)가 서구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 [...]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이야기하는 자아와 동일시한다.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경험의 세찬 흐름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이야기이다. [...] 이야기의 줄거리에 거짓과 누락이 허다하고 여러 번 고쳐 쓴 바람에 오늘의 이야기가 어제의 이야기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까지도) 불변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 것이다. 이 느낌은 내가 나눌 수 없는 개인이며, 우주 전체에 의미를 제공하는 분명하고 일관된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미심쩍은 자유주의를 야기한다.
하라리의 설명이 지향(志向)하는 바는 근대적 세계관의 유효성에 대한 종말론이다. 저서의 제목도 아이러니하게 ‘호모 데우스,’ 즉 인간신(人間神)이다. ‘자유주의’ 등 근대적 이념이 제공하는 “이야기의 줄거리에 거짓과 누락이 허다하고 여러 번 고쳐 쓴 바람에 오늘의 이야기가 어제의 이야기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류가 “불변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데, 이는 “내가 나눌 수 없는 개인이며, 우주 전체에 의미를 제공하는 분명하고 일관된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잘못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서구의 이념적 난경(難境)을 카너만(Daniel Kahneman)은 2개의 자아가 하나의 몸 속에 공존하고 있다는 이론으로 설명하였다. 근대적 이념에 기반하여 결론을 즉각적으로 생각해내는 ‘이야기하는 자아’가 현실세계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자아’와 모순(矛盾)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사례로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수립하였기에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시간적으로 더 뒤로 돌아가면, 라캉이 자신의 정신분석학 이론체계를 통하여 ‘상징계’라는 현실세계를 넘어서서 ‘상상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굳이 상정(想定)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도 불변하는 자아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이야기 세계의 현실적 몰락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천득의 ‘이야기’ 이론을 설명하기 위하여 정정호가 각주로 인용한 라캉에 추가하여 카너만과 하라리 등을 언급한 이유는, 피천득의 글에서 “사소한 것은 아주 중요하게, 진부한 것은 새롭고 신기하게” 바뀌는 “이상한 ‘변형(metamorphosis)’의 힘”이 발견되기 때문이다(231). 피천득은 “전근대와 근대가 포월되어 탈근대로 넘어가는 장르일 수” 있기에 수필을 동원(動員)하였다(231) 피천득의 수필을 소리 내어 읽어내려 가면 “마치 종이 위의 글자를 접시 위의 음식처럼 먹고 마시는 것” 같은 이유는 그만큼 “삶에 가장 밀착된 장르”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231-32). 피천득의 다음과 같은 시 「기억만이」도 동일한 지향목표를 갖고 있다.
햇빛에 이슬 같은
무지개 같은
그 순간 있었으니
비바람 같은
파도 같은
그 순간 있었으니
구름 비치는
호수 같은
그런 순간도 있었으니
기억만이
아련한 기억만이
내리는 눈 같은
안개 같은
- 전문 (170-71)
피천득은 ‘무지개,’ ‘파도’와 ‘호수’ ‘같은’ ‘순간’들을 경험하였다. 그런데 그런 경험들에 의거하여도 ‘기억’은 ‘안개’ 같이 ‘아련’해져서 새로운 이야기’로 완성되지 못한다. 이는 피천득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다. 라캉, 카너만과 하라리의 노력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건 새로운 탈근대를 제대로 창조해내지 못한 시대의 총체적인 잘못 탓이다.
피천득의 중요한 업적은 실패에 있지 않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문학적 성취에 있다고 믿는다. “작가와 학자가 역사와 현실의 억압구조에서 취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설명에서 정정호는 “전자의 적극적 투쟁 방식이 후자의 소극적 저항 방식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 “후자의 길을 택한 문인이며 학자”였던 “피천득을 언어의 장막 뒤에 숨은 비겁한 방관자로만 보아야 할까?”라고 질문한다(219-20). 기질의 차이겠지만, 후배인 필자는 선배인 정정호보다 언제나 조금 더 공격적이기에, 피천득 선생님을 위한 수비 전략보다는 공격 작전을 수립하고 싶다. 이는 피천득이 등단한 1930년대 한국시단의 두 가지 주요 경향인 ‘리리시즘’과 ‘모더니즘’의 계열이라는 “한국문단의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라는 정정호의 겸손함을 필자의 오만함으로 대체(代替)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181). 그리고 거인의 어깨를 타고 올라선 난장이의 작전을 통해서 그러한 작업을 진행해 보려 한다. 정정호의 은유와 환유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것도 각주(脚註)였는데, 필자의 작전을 위해서 본문(本文)으로 격상시킨다.
체코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말을 빌리면, 수필은 ‘환유’의 세계이다. 이것은 표층 구조-심층 구조의 관계 속에서 표층을 통해 심층을 단순히 환기하는 은유적 관계가 아니고, 오히려 일상성의 삶의 조각 자체가 심층의 일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환유적 관계이다. 금아의 ‘조약돌과 조가비’와 ‘산호와 진주’가 환유적 구조를 가지는 것과 같다. (232)
필자의 논리를 정정호의 설명체계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근대적 이념의 상징체계에 기반을 두는 은유적 관계가 그 효력을 상실한 시대에, 피천득의 수필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내는 심층체계를 “일성성의 삶의 조각 자체”의 모습을 통하여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실증적인 작업이다. “금아에게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회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떠오르며 “이러한 차이는 엄청난 것”인데, “엄청난 변용력을 가진 금아는 아무리 슬픈 ‘기억’이라도 ‘기쁨’으로 승화”시킨다는 정정호의 눈 밝은 지적이 바로 동일한 논리에서 도출되는 결론이다(247-48).
피천득의 이러한 문학적 성취가 “텍스트의 진정한 의미, 나아가 작가 피천득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의도”(236), 즉 무의식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필자의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아주 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에드가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를 읽은 자크 라캉의 논문을 자크 데리다가 다시 읽는 것과 유사한 전략으로, 피천득을 읽은 정정호를 다시 읽고 있는 셈이다.
강경파 피천득 주의자로서 정정호가 겸손함을 오만함으로 전환하도록 격려하고 싶은 또 하나의 측면은 다음과 같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진의 노래”의 세계에서 “경험의 노래”의 세계로 옮아가고 있지만, 금아는 이 두 세계가 처음부터 통합되어 있었다. 그의 글은 초기, 중기, 후기와 같은 시기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단순성이라는 커다란 구조 속에 포용되어 있다. 독자는 이러한 단순성 속에서 복잡한 것을 가려내야 한다. (234)
정정호가 이미 거의(almost already) 다 설명하였다시피, 피천득의 문학적 성취는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명민한 전략의 업적이다. 그러므로 피천득의 시는 “새로운 형식을 가진 서정시”(221)다. 다니엘 벨이 “40여 년 전 예언한 ‘성스러운 것의 회귀’를 이미 실천하고” 있으며, 정정호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듯이 “탈근대 탈산업 시대의 새로운 종교의 출현”의 구체적인 현현이다.
금아는 각박한 효율주의 삶과 허무한 공리주의 세계를 촉촉이 적셔주는 마음의 글밭을 가졌다. 금아는 윤택한 감상주의를 위해 척박한 합리주의를 버렸다. 그러나 그의 감상주의는 요즘 유행하는 퇴폐적이고 무의지적인 나약한 값싼 감상이 아니다. 이것은 신고전주의 시대에 나온 이성과 기계주의에 저항하기 위하여 나온 감(수)성에 가깝다. 이러한 감성에서 나온 눈물은 이성중심주의의 근대성에 저항하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253)
한국문단의 테두리를 벗어나 당대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는 1930년대의 또 하나의 거물, 이상(李相)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정호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피천득보다, 필자가 이상문학상 수상특집에 시인의 시론으로 게재한 평론 「포스트모던 이상」(『시와세계』 2016년 겨울호)에서 자세하게 논리를 전개했던 이상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문학만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21세기를 위해 문학의 오래된 힘을 다시 소생시켜 새롭게 작동시켜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금아 피천득의 시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영시 교육 방법에 주목하는 이유다. (154)
피천득이 새롭게 구체적으로 창조해낸 ‘서정’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피천득은 소위 한국적 ‘리리시즘’ 계열의 한계를 포월[포함(包含)+초월(超越)]한다. 이는 정정호가 또 하나의 각주(脚註)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복원하고 지속시키는 노력”을 경주하였던 “피천득의 노년기의 삶”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원하였던, 감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논리와 이성을 넘어 맥락, 연계, 공감을 강조하여 인간의 온전한 생활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 능력”으로서의 감정이란 개념구조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156). 피천득의 ‘서정’은 전근대의 ‘감상’이나 근대의 ‘정서’보다는 탈근대적인 ‘정동’(affect)의 개념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우리의 ‘주체’라는 것이 근대 이래의 학문에서 상정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체가 아니라, 감정적이고 불확실한 주체라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정치적 주체는 정의와 주권의 주체라기보다 정치적 사안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여론에 휩쓸리는 주체이며, 경제적 주체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주체라기보다 감정적으로 충동구매와 투자를 하는 주체이며, 문화적 주체는 독립적인 취향을 가지고 대중문화에 접근하는 주체라기보다 드라마나 리얼리티쇼, 뉴스 등 매스미디어에 수시로 휘둘리는 주체이다. 즉, 실생활에서의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체가 아니라 정서적 혹은 감정적인 주체이다. 정동(affect)이라는 개념은 이 ‘정서적 주체’를 다루는 데 유용한 매개가 될 수 있다. 정동은 정서(emotion)나 감정(feeling)보다 넓은 개념의 용어이다. 감정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문화적으로 약호화된 방식으로 언어나 몸짓으로 나타나는 표현이라고 한다면, 정동은 개인적인 차원 이전의 단계, 즉 전개인적인(pre-individual) 단계에서 감정과 느낌을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 연구는 사회적인, 문화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 심지어 과학의 분야에서, 과거에는 측정하고 계량화할 수 없기에 일탈 또는 예외라고 치부했던 현상들을 충분히 이론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한다.
위와 같은 정동이론으로 피천득을 연구하는 작업은 또 하나의 시작이 되겠지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피천득의 당대성(當代性)이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의 곁에 있었기에, 그리고 너무나도 친숙하였기에, 잊기 쉬운 점은 피천득이 1910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정신의 경우 100주년을 기념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경우 당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피천득의 문학에는 라캉, 카너만, 하라리, 그리고 정동이론 등 당대의 이론으로 어렵지 않게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당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위대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