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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대웅전(靑龍寺 大雄殿)
보물 제824호로 서운면 청룡리 28 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 원종 6(1265)년 창건되고 공민왕 때 중건되었으며, 다시 조선후기에 중건된 건물이다. 다포계(多包系)의 팔작집인데, 공포는 안팎이 다 삼출목으로 되어있고, 앞면은 겹처마인데 뒷면은 홑처마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내부가구가 모두 드러나 있고, 측면의 기둥에서 대들보 위에 걸쳐지는 충량(衝樑)이 3개씩 있어 매우 특이한 구조를 보여준다. 공포의 쇠서에 봉오리를 새겨 조선후기의 기법을 보여 주는데, 살미 끝이 곧개 잘려진 첨자형의 공포를 가진 건물이다. 청룡사 031-672-9103
* 가는 길 : 안성 시내에서 완행버스를 이용, 죽산 하차(25분 정도 소요), 죽산에서 칠장리까지 는 하루 3회 운행하는 마을버스나 택시 이용(소요시간 약 25분)
* 위치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031-673-0776
안성시립 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은 우리나라 남사당패의 발생지로서 조선시대 최고의 예술 가이자 최초의 연예인으로 평가되는 안성 “바우덕이”의 예술혼을 이어 받아 민족대중문화인 남사당놀이를 보존하고 세계화하기 위해 결성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5間, 측면2間의 굴도리집 양식의 홑처마 맞배 지붕이다. 풍화루는 정면 11間, 측면 11間이다. 1969년 11월 3일∼12월 3일 까지 보수공사를 하였다. 관리인이 바로 부근에 거주하며, 관내 유림들의 내왕과 관심으로 보존은 양호한 편이다. 보개면 양복리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건축인 주심포 양식의 객사(客舍) 건물을 주건물 좌우에 붙어 뻗어나온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주되는 건물이 중앙에 있고 양 옆으로 부속사가 있는 날개집(翼舍)으로 주건물인 중앙에 3間, 양족에 익실이 각2間, 측면이 3間으로 이루어진 주심포양식의 배흘림이 약간 있는 건물로서, 수덕사 대웅전(1308년 국보 49호)과 강릉 객사문(고려말 국보51호)과 같은 주심포양식을 띄고 있다고 밝혔다.
객사란 고려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 하는데, 외국사신이 내왕할 때 묵던 숙소였다.
전형적인 객사의 외형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의 지붕에서 「와장승인묘안 숭정후육 십팔년 을해 (瓦匠僧人妙案 崇禎後六十八年乙亥)」라는 명문 암막새가 발견돼 1635년, 즉 17세기초에 중수되었음이 밝혀져 이 건물의 축조연대는 14세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기념물 제69호로 토석 안성시내에서 동북방 약17킬로미터 떨어진 매산리 뒷산 비봉산정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현재 높이 2.5m 가량의 석축만이 남아있다.
산성내에는 낙엽송 및 잔솔이 숲을 이루고 골짜기 남쪽으로는 논들이 흩어져 있다. 당시 동문이었을 듯 한 자리에 장대석과 석재가 흩어져 있고 정남쪽에는 남문으로 보이는 문이 남아 있으며 장대지(將臺址)로 보이는 곳에 4개의 주춧돌과 깨어진 기왓장이 흩어져 있다.
이 죽주산성내에는 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은 죽주방호별감으로서 몽골군의 침입 때 발군의 공훈을 남긴 송문주 장군의 전공송각이다. 송문주장군은 고종 23년에 죽주방호별감이 되어 죽주산성을 방어할 때 몽골병이 죽주산성에 이르러 강복을 권유하자 성에서 출격하여 몽골병을 물리쳤고 몽골병이 다시 포로 공격하여 사문이 무너졌으나 성중에서도 포로써 반격하였으며 무려 15일간 다방면으로 성을 공격한 몽골병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공성구를 불에 태운 후 물러갔다.
장군은 이 공으로 좌우위장에 승진하였다.
석남사
안성시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서운산 동쪽 기슭에 있다. 서운산 북쪽의 석남사는 조그마한 사찰이지만 절 입구에서 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08호)까지 오르는 돌계단의 경관이 볼만하다. 고려 광종이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 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갔다.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 렀던 수행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것.
날렵한 지붕 끝이 숲속에 살포시 가려있어 단아한 운치를 더한다. 이 건물은 공포의 짜임새가 조선 초기와 중기 사이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 적 의의가 크다. 신라 문무왕 20년에 고승 담화덕사가 창건했으며 이후 고려시대 혜거국 사가 크게 중수했다.
경내에는 16나한이 모셔진 영산전을 비롯해 대웅전, 마애석불 등의 도지정문화재와 석탑, 부도 등 향토유적이 있다.
석남사 031-676-1444, 676-5558
3.1만세운동
안성에서 3·1 운동이 전개된 것은 3월 11일에 읍내에서 였다. 당시 상인들은 철시하여 이에 동조하였으나 일제 경찰이 출동하자 해산하는 비교적 평화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의 산발적인 만세운동과 서울에서 귀향한 학생들에 의해 점차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은 고조되어 갔다.
그리하여 3월 29일에서 4월 2일까지의 안성읍과 4월 2일 일죽, 죽산 시장에서 잇달은 만세운동이 있었고, 심지어 군청으로 몰려가 수 천명이 연좌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안성지역의 곳곳에서 뒷산이나 앞산에 올라가 횃불을 신호로 일제히 결집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이러한 산발적인 시위를 극복하고 실력투쟁으로 진전시킨 것이 4월 1일의 원곡, 양성지역 독립운동이다.
원곡, 양성 역시 3월 10일 이후 산발적인 만세운동이었다. 그러나 원곡면은 사전 연락으로 3월 28일 내가천리 이시련(李時連) 집에 모여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했다. 이어 마을 단위로 봉화시위를 시행하여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4월 1일 1,000여명이 면사무소에 집결하였다.
이들은 면장인 남길우(南吉祐)와 서기 정종두(鄭鍾斗)에게 태극기를 주어 만세를 부르게 한 후 선두에 세워 양성으로 향해 나갔다. 접경지역인 성은고개에 이르러 시위군중은 각각 각목과 농기구 등을 지참하여 양성면으로 진행하던 중 그날 시위운동을 전개했던 양성면민 1,000여명과 합류하여 시위대는 2,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가 주재소로 향해 돌진하자 순사와 순사보는 그 기세에 압도되어 피신하기에 급급했다. 분노한 군중은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차례로 파괴 방화하고, 일본인 잡화상과 고리대금업자의 가옥도 전수·파괴했다. 그리고 일제 주구들의 탄압에 대비하여 이곳으로 통하는 교량을 차례로 제거한 후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일제는 현지의 경찰로는 사태를 수습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조선 주차군 제40여단 79연대 소속장교와 사병 30여명을 지원받아 주동자의 검거에 나섰다.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가족들을 협박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에 회유책으로 4월 19일 현 원곡초등학교 뒷산에 모아놓고 모든 사실을 불문에 붙이고 용서한다고 했다. 일제의 공포에 짓눌렸던 가족들은 주동자들을 설득하여 이곳에 나가도록 했다.
그러자 일제는 총검으로 사방을 포위하여 도주하는 자는 사살(현장 순국3명)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또 6월 1일에도 하사 이하 36명을 투입하여 나머지 색출에 나섰다.
이들은 가족들의 협박은 물론이고 민가에 난입하여 방화 약탈 등을 자행 했다. 그러나 일제의 빈틈없는 색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주동자들은 피신하여 후일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원곡, 양성의 3·1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맞선 무력투쟁이었다. 물론 일제의 야만적인 토벌로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031-651-0741
너리굴문화마을
너리굴문화마을은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너리굴문화마을에서 '너리굴' 이란 말은 안성 토박이 말로, 백두산 천지부터 시작된 산맥이 차령산맥의 끝부분인 비봉산 자락에서 넓은 골짜기가 되었는데 그것을 '너리굴'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너리굴문화마을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울려 있는 마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기 안성시 보개면 신장리 63-1 너리굴문화마을 전화 031-675-2171
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우고 있는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 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 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성지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편안함이 가슴에 와 닿는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를 둘러보면 가슴이 깨끗해짐은 느낄 수 있 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 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 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
성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어는 것은 성지 한 가운데 웅장하게 서있는 기념성당이 다. 이 성당은 천주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기념성당 뒤쪽으로 난 십 자가의 길에는 예수가 로마병사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 히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져 있는 청동조각 15점이 서 있다. 김대건 신부의 무덤과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는 미리내성당, 김신부의 동상, 성모성 당, 게쎄마니 동산(여기저기 나뒹구는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한 동산)등을 돌아보는데 2~3 시간이 소요된다.
031-674-1256
대림동산
안성시는 경기도 서부 평야지대와 내륙산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경기도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는 안성시는 동쪽은 이천시와 충청북도 음성군, 서쪽은 평택시, 남쪽은 충청북도 진천군, 북쪽은 용인시와 접하고 있다.
안성IC - 안성방향 - 중앙대 - 대림주유소끼고 좌회전 - 대림동산
안성천문대
안성천문대는 민간 천문대로서는 처음으로 첨단 관측시설을 갖춘 천문대로 1996년에 개관되었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안성천문대는 우수한 관측장비를 갖추고 좋은 환경과 확 트인 시야,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천체관측을 위한 활용 공간, 천문과 우주에 대한 청소년들의 교육공간, 일반 천문 동호회나 과학 담당 선생님들의 모임공간으로 되었다.
안성시 미양면 강덕리 79-14 문의/안내 031-677-2245, 019-9720-4831
아트센터 마노
거꾸로된 집 2층은 갤러리로써 특히 안성지역 작가들의 여러 작품과 미술계 행사들이 365일 진행 전시되며, 1층 아트샵에는 유리로만든 작품들과 유리공예체험, 라이트 클레이(점토공예)가 판매 및 체험이 가능한 문화공간이다.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34번지 아트센터마노의 거꾸로 된 집 자언 - 박의일 관장 [안성공예가회회장] 031-676-7815
태평무 전수관
태평무 전수관은 평생을 전통무용에 몸 담아온 강선영 선생에 의해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전승과 보존을 꾀하고, 재능있는 춤꾼들의 발굴양성과 개방화된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1998년 그의 고향인 안성에 사재를 털어 완성한 문화공간이다.
태평무 전수관 031-676-0141,02-747-0185
오하 관광농원
내방객들에게 각종 포도를 직판함으로써 신선하고 향긋한 맛을 즐길 수 있고, 가족 단위로 농원내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자연 휴양지이다. 주말이면 약 700여명의 외지 사람들이 포도맛을 보러 찾아든다. 포도의 종류도 가지가지. 8월초부터 재배되는 청포도, 델라웨어부터 중순이후의 거봉, 마스카트, 청수 등 다양하다.
이중 향기가 진하고 "쫀득쫀득" 육질이 좋으며 당도가 높은 것이 마스카트, 공베르 신부가 가져온 포도가 바로 이 품종이다. 하지만 만생종이라 수확량이 적고 그 생긴 모양이 나빠 도시로 출하되는 양이 많지 않다. 오하농장 등 일부 농원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품종이다.
경기 안성시 서운면 신능리 109 문의/안내 031-671-4500, 011-9809-9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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